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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햇불을 건네 줌
여호수아 22~23장
기억절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수 23:10)
중심 사상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승리에 대한 놀라운 약속들을 이스라엘과 공유하시며, 그 성취의 조건들을 매섭게 발표하신다.
서론
두 고별사. 이번 주에는 여호수아가 여호수아서 마지막에 행한 최초의 두 고별사를 살펴볼 것이다. 7년간의 정복 활동이 마친 후 두 지파와 반(半)지파에게 행한 첫 연설은 끝나고, 그들은 요단 동편에 있는 그들의 기업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준비하였다. 여호수아가 한 두 번째 연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지 오랜 후”(수 23:1)였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한데 모으고 배교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하나님의 약속으로 그들을 고무시키고, 끝까지 그들의 기업을 차지하도록 훈계하며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충성하라고 권고한다.
“그럴싸한 정보에 따르면,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약 83세였다. 갈렙보다 5년 연장인 그는 그 땅의 정복을 끝냈을 때, 90세였다. 여호수아 24장 29절에 따르면, 그는 110세에 죽었다. 우리의 계산이 맞고 23장의 사건이 여호수아의 생애 말년에 일어났다고 할 것 같으면,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신 후 20년이 경과하였음에 틀림없다. … 이와 같은 시간의 추이 가운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로 그들이 가나안 족속과의 친교를 통하여 부패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였다”(본교 성경 주석 2권, 291).
여호수아가 동편 지파들을 축복함(수 22:1~9)
동편 지파들의 특별한 사업은 완수되었으며 그들은 이제 여호수아의 축복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어쩌면 이 일에는 실로에 이스라엘의 본부를 세우는 일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9절은 그들이 실로에서 떠나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동편 지파들이 요단 동편에 있는 그들의 기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어떤 책임을 부여 하였는가?(수 22:5, 22:1~5).
답:
<참고> 이 책임에 나오는 많은 용어들은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기술적인 용어들이다. 예를 들어, 여호와께 “친근히 하”(수 22:5)라 또는 “매달리라”는 호소가 그것들이다. 이 히브리어는 언약의 유대 관계를 말하는 문맥 가운데 나타난다(창 2:24; 신 10:20, 11:22).
여호수아는 두 지파와 반(半) 지파를 어떻게 축복하였는가?(창세기 1장 28절, 9장 1절, 12장 2절; 민수기 6장 23,24절; 신명기 1장 11절과 같은 다른 성경절에 비추어 축복의 성경적 의미를 탐구하라.
답:
<참고>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 축복의 의도된 역할을 성취하기 위하여 능력을 부여 받는 것이다. “축복은 능력의 마법(魔法)적인 부여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경건한 소원을 말하는 그 이상이다. 그것은 물질적 ․ 영적 모든 능력과 번영의 근원이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마르텐 H. 우드스트라, 여호수아서: 새 국제 구약 주석, 230).
우리 형제 자매들의 더 많은 축복이 있게 된다면,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예수께서는 어떤 실례를 제시하셨는가?(마 19:13~15)
답:
<참고> “예수께서는 당신과 접촉한 어린이들 중에서 당신의 은혜와 후사요, 당신의 나라의 시민이 될 남녀들을 보셨다. … 그분께서는 어린이들이 … 매우 쉽게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을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아셨다”(시대의 소망, 514, 515).
반역으로 추정된 사건(수 22:10~20)
여호수아 22장 1~9절에서 여호수아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半) 지파에게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려는 열심에서 요단강의 동쪽 강둑에 제단을 세웠다. 이 제단은 실로에 있는 제단을 닮았다(수 22:28). 건축자들은 희생을 드리기 위하여 그것을 세우고자 갈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 되기를 원했다. 그들은 요단강으로 인한 다른 지파들과의 분리가 그들을 종교적으로 그들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을까 하고 염려 하였다.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들이 요단 동쪽의 두 지파와 반 지파에 대하여 행한 고소를 요약하라(수 22:16).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누가 잘못인가?
답:
<참고> 그 땅을 정복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주된 사업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연합해서 해야 할 공동 사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공동 목표의 결핍은 그들로 피차간에 더욱 쉽게 “싸우”도록 만든다.
그대가 부정적인 소문에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감정이 어떠했을 것인지 알 것이다.
이 사건을 아간의 경우와 비교하라(수 7장). 우리는 죄를 처리함에 있어서 지나친 관대와 지나친 가혹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유 22,23 참조).
답:
<참고> “죄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한편으로는 완만하게 행하는 것을 피하는 일이 중요한 반면에 가혹한 형벌과 근거 없는 의심을 피하는 일 또한 다 같이 중요하다.
자신들의 행위에 관하여 자책하는 데는 그다지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과오를 범했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을 매우 혹독하게 취급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 일찍이 비난과 힐책으로 그릇된 태도를 교정 받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 바른길에서 아주 멀리 떠나가고 저희 마음이 굳어져서 죄를 뉘우치지 않는 자들이 많다. 친절한 정신과 겸손하고 관대한 태도가 과오를 범한 자를 구원할 수 있고 많은 허물을 가리울 수 있다”(부조와 선지자, 519, 520).
증거의 제단: 거짓 고소를 처리함(수 22:21~32)
르우벤 지파의 반응을 요약하라. 그들의 대답 가운데는 거짓 고소를 처리하는 어떤 원칙이 잘 나타나 있는가?(수 22:28, 22:21~32).
답:
논쟁을 해결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르우벤 지파의 반응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답:
<참고> “모든 사람들이 거짓 고소를 당할 때 되 비난하는 일을 삼가고 그 대신 온화하고 화목케 하는 말을 한다면, 매우 많은 악을 피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죄에 맞서려는 열심에서 부당한 의심을 한 자들은 그들의 형제들에 대하여 가장 호의적인 견해를 가져야 하며, 그들의 무죄가 밝혀질 때에는 기뻐해야 한다”(엘렌 G. 화잇 코멘트, 본교 성경 주석 2권, 999).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수 22:22). 두 지파와 반 지파는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세 가지 이름( ‘엘, 엘로힘, 야훼’)을 반복한다. 이 문구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뜻한다. 이 지파들은 그들을 거스려서 행한 고소에 소스라치게 놀랐으므로, 그들 편에서 이 말을 반복한 것은 그들의 열성과 신실함을 나타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 무리는 비슷한 동기에서 행동하였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잊지 않았음을 확신하려는 열망에서 제단을 세웠다. 나머지 지파들은 또한 하나님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그들의 동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나쁜 사람으로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칭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하였음을 알았을 때, 동편 지파들을 비난함으로써 잘못 판단한 일에 대하여 변명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믿는 동료들 사이에 연합을 도모하는 원리를 어떻게 설명해 주는가?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다른 성경절과 비교하라(시 133; 요17:20~23; 벧전 3:8,9).
답:
<참고>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연합과 우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이다. … 우리는 진리의 한 원칙도 희생하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연합의 상태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끊임없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520).
햇불을 건네 줌(수 23:1~13)
이스라엘에게 한 여호수아의 첫 번째 고별사를 살펴보라(수 23:6,1~13). 가나안 정복을 시작할 때에 주신 하나님의 기별과 이 말의 유사성을 주목하라(수 1:8, 1:2~9).
답:
<참고> 여호수아 23장 6절에서, 여호수아는 그가 모세로부터 지휘권을 물려받았을 때, 그의 용기를 북돋우었던 주제를 선택한다. “매우 담대하여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켜 행하며 그것에서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과 주님 사이의 깊은 개인적인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친밀한 두 용어를 적어 보라(수 23:8,11).
답:
<참고> 여호수아의 충고는 우상 숭배자들과의 교제와 혼인에 대한 경고의 일부이다(수 23:6~8,12,13 참조). 그와 같은 경고는 우리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후 6:14,15; 고전 5:9~11; 엡 5:7,11 참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교제함으로 위험에 처했던 것처럼 불경건한 자들과 접촉함으로 큰 위험에 빠져 있다. 천재와 재능 있는 사람들의 작품들은 너무도 자주 치명적인 독을 숨기고 있다. 매혹적인 가면 아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아 부패시키는 주제와 사상들이 표현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그리스도인 나라에 경건이 쇠퇴하고, 회의주의와 불경건이 판치게 된다. …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에워싸는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는 불경건한 자들과의 연합, 특히 믿지 않는 자들과 혼인함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 우리는 회심하지 않는 자들의 구원에 항상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들을 향하여 친절하고 예의바른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벗이 된 자들만을 우리의 친구로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다”(엘렌 G. 화잇 코멘트, 본교 성경 주석 2권, 999, 1000).
여호수아 23장 10절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한 약속을 숙고해보고,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오늘의 승리를 위해 이 약속을 주장하라.
자비와 공의(수 23:14~16)
14절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모든 선한 것이 이루어졌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킨다. 여호수아서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에 성실하셨던 다양한 경우들을 찾아보라.
답:
<참고>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선한 일들이 확실히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을 붙잡는 일에 실패했을 것 같으면 나쁜 일들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너희가 죄를 범하였을 때(수 23:16). 또는 “너희가 범죄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도 이스라엘이 충성될 것이라고 추측하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이 가치 있음을 입증할 때까지는 축복들을 거두시지 않는다.
여호수아서(23:15,16)와 그밖에 다른 곳에서(민 11:33; 대하 36:16; 계 14:10,19, 15:1) 하나님의 진노와 보복하시는 공의를 얼마나 실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답:
<참고> “사단은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라는 그럴듯한 이론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기만한다. 사단은 하나님의 위협적인 말씀이 당신의 도덕 정치에 있어서 어떠한 목적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 말씀은 결코 문자 그대로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을 취급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죄를 그 참 성질 그대로 나타내심으로, 즉 죄의 분명한 결과는 비참함과 죽음이란 사실을 증거하심으로 의의 원칙을 유지하셨다. 죄에 대한 무조건적 용서는 존재한 적이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용서는 바로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인 의의 원칙의 포기를 나타내게 된다. 이것은 타락하지 않은 우주를 경악으로 충만케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결과를 충실히 지적하셨는데 만일 이 경고가 참되지 않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공의를 무시하는, 이름만의 자비심이란 것은 참 자비심이 아니요 다만 우유부단일 뿐이다”(부조와 선지자, 522).
실시하려는 의도가 없이 경고하는 것은 속임수, 곧 하나님의 본성에 전적으로 반하는 특징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잔인한 어떤 것이다.
연구 토의 요약
연구와 명상
지상의 교회가 몇 가지 문제와 논쟁들을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를 알기 위하여 사도행전 6장 1~7절과 15장 1~35절을 연구하라. 이러한 문제들은 여호수아 22장 10~3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면했던 문제들과 얼마나 유사하였는가? 논쟁을 해결하는 어떤 원칙이 그 모든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부조와 선지자 517~522쪽과 사도행적, 87~96, 188~200 쪽을 읽어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어려움과 오해들은 그 성격과 결과에 있어서 종종 이스라엘에게 큰 재난이 될 뻔했던 일들(수 22:10~32)과 유사하다. 열 지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로 인정하신 백성들이 관심사와 예배에 있어서 분리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형제들의 가상적인 변절을 비난하는 일에 신속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명예와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는 바로 그와 같은 노력 가운데서 단순한 오해로 말미암아 얼마나 중대하고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는지를 보게 된다. 참된 종교 사업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정직하게 노력하던 사람들이 그릇된 판단과 심한 견책을 받았다. 이러한 곤경 하에서도 그들의 사업에 나타난 지혜는 모방할 가치가 있다”(엘렌 G. 화잇, 영문 시조, 1881년 5월 12일).
토의 사항
그대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취급하는 일에 있어서 관대함이나 가혹함으로 인한 보다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가 그대에게 “그대는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수 22:25 참조)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그대의 회중 가운데는 여호수아 22장 10~32절에서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존재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번 주 교과는 그대의 교회가 그와 같은 상황을 처리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불신자들과 교제하는 문제를 다루는 이번 주 교과에서는 어떤 원칙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와 같은 교제는 어떤 면에서 그대 자신의 경력이나, 가족이나 아는 사람과의 생활에 함정과 두통거리와 가시가 되었는가?
요약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러 여호수아는 횃불을 다음 세대에 넘겨준다. 그의 당부는 특별히 우리 마지막 세대와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