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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혼인도 안한 사람이 무슨 부인이 있겠습니까? 부인 같은 건 있지도
않으니 요만한 소녀가 입을 수 있는 옷 좀 몇 벌 골라 주십시오. "
손을 휘휘 저으면서 아니라고 말하는 추남을 보는 옷집 주인의 얼굴에
웃음이 더 짙어졌다.
알겠다는 듯이 손벽을 마주친 주인은 옷을 몇 벌 가져와서 추남에게 건네
줬다.
"여기 있습니다. 따님이 좋아 하시겠네요. 근데 손님 나이에 비해 따님이
무척 큰 것 같은데 일찍 혼인하셨나 봐요? "
이번에는 딸이라는 말을 하는 옷집 주인을 보는 추남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아니! 이 아줌마가 정말 누구 신세를 망쳐 놓을려고 작정했나? 분명히
혼인을 안 했다고 했는데 갑자기 딸이 왜 튀어나오는 거냐고!.. 근데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 걸까? '
더 이상 주인에게 대꾸해 주기도 귀찮았던 추남은 돈을 지불하고 황급히
옷집을 나섰다. 그곳에 더 있었다가는 무슨 말이 더 튀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객점으로 돌아가다가 대장간에 들려 손에 맞는 칼 한 자루를 구입하고
어제 무공 비급을 팔던 상인이 있던 곳으로 가 보았지만 상인은 이미
어디로 토꼈는지 보이지 않았다.
'흐음.. 이놈이 뭔가 구린 게 있으니까 일찌감치 도망을 간 모양이로구나.'
추남은 속으로 상인을 욕하면서 다시 객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에 도착해 보니 아직까지도 강운은 욕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욕실로 향하던 추남의 귀에 강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아~ 드디어 다 씻겼다. 하하! 그래도 때 벗겨놓고 보니까 얘도 제법
이쁘게 생겼는걸.. 아함~ 졸려라. 근데 형아는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운아 옷 사왔으니까 가져가서 갈아입혀라."
혼잣말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밖에서 소리가 나서 웬만하면 놀랄 만도
하건만 강운은 전혀 놀라지 않았고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로 행동했다.
"아! 형아 왔구나. 옷이 어디 있는데? "
"욕실앞에 갖다놨으니까 갖다가 입혀라. "
말을 마친 추남은 너덜너덜해진 옷을 벗어던지고 새로 사온 옷으로 갈아
입고 아까 못다한 검술 수련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옷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욕실 바깥으로 나온 강운은 옷을 집어들다 말고
추남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다시 옷을 집어들어 욕실
안으로 들어가 소녀에게 옷을 입힌 다음에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혀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덜너덜해진 옷을 걸쳐 입고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었던 거지 소녀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마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지금의 소녀를 봤다면 절대로 거지였었다는
걸 믿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 만큼 그녀의 모습이 완벽하게 변해 있어서 꼭 환골탈태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소녀가 많이 변하게 된 데에는 강운의 공이 가장 크다 할 수
있는데 물론 때를 밀어주고 씻겨준 것도 큰 공이라면 큰 공일 수
있겠지만 그 보다도 더 큰 공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강운이 소녀의
때를 밀어 주면서 환골탈태를 시켜 줬다는 것이다.
사실, 강운은 활골탈태가 뭔지 알지도 못했지만 단지 소녀의 몸이 너무
약한 것 같아서 자연의 기운을 내공으로 변환시켜 조금 밀어 넣어줄 때
그 기운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녀의 몸에 조금 변화를 가한다는
것이 그만 환골탈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소녀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꿈에서라도 되고 싶어하는 환골탈태와 함께
2갑자가 넘고 3갑자에 조금 모자라는 엄청난 내공을 소유한 천하절색
미인이 됐다는 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지만 그녀의 몸 안에선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일을 꾸민 건 강운의 짓이었다.
강운은 소녀의 몸에 내공을 불어 넣어주긴 했지만 내공이 단전에만 머물
러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사부가 준 단환을 먹이고 추남이 보던 책을
뺐어서 운기행공을 시켜주려 했었지만 안타깝게도 강운은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운기행공을 시켜 주려했던 계획은 포기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강운은 소녀의 내공만 2갑자 더 늘려준 셈이 된 것이다.
내공이 추남 정도만 되도 현 무림에서 최고수로 인정을 받고 그를 꺾을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을 터인데 만약 5갑자에 육박하는 내공을 지닌
이 소녀가 무림에 나선다면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 확실했다.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던
강운은 소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아직까지도 이름을 모르는 검법을 5성 가까이 달성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는 추남은 강운이 갑자기 비급을 뺐어들고 한참동안이나
뒤적거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글도 모르는 아이가 책을 가져가서 뭘하겠냐는 생각에 다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중에 강운이 신경질 적으로 비급을 탁자에 집어던지는
바람에 명상에서 깨어났다.
'운이가 왜 갑자기 읽지도 못하는 책을 들고가서 성질을 내는걸까? 혹시
나한테 글을 가르쳐 달라는 표시를 한건 아닐까?
'흠.. 그래. 그 동안 내가 운이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 같구나. 내일부터라
도 당장 글을 가르쳐 줘야지 안 되겠다. '
추남딴에는 강운을 걱정해서 한 생각이었지만 사실에서는 상당히 많이
빗나가는 생각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떤 거 부터 가르칠까? 어떻게 하면 운이가 좀 더 쉽고 빠르게 글을 읽
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느라 한참동안 고민하던 추남은 고개를
돌려 강운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소녀와 함께 서로 뒤엉켜 자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운이 녀석! 하루 종일 때를 밀더니만 피곤했던 모양이로구나. 근데 저렇
게 서로 뒤엉켜 자다가 소녀가 중간에 깨어나면 많이 놀랄 텐데..
떼어놓을까나? 음.. 보기 좋은데 그냥 놔두지 뭐. 흐흐흐.. 잘만 하면
이번만큼은 운이가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걸.'
추남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거리며 웃다가 다시 한번 강운을 쳐다
보더니 검술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꿈을 꾸었다.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아련한 기억 속에 그녀는 사랑
하는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바라본 하늘은 언제나 맑고 푸르게만 보였고 세상의 모든 것
들이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보였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움도 잠시, 어느새 하늘은 검붉은 핏빛으로 변해 있었
고 그토록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지옥의 아수라의
형상처럼 흉칙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다.
언제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충성을 아까지 않던 사람들이 가족들을 다
죽이고 이제는 자신마저 죽이기 위해 지옥의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소녀는 도망쳤다. 숨이 막혀 쓰러질 때까지 뛰고 또 뛰었지만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시퍼런 칼을 들고 쫓아오는 악귀들이 그녀를 죽이
기 위해 쫓아왔다.
몸에 힘이 점점 빠져나가서 이제는 서 있을 힘조차 없게 되었지만 소녀
는 그래도 쉬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쳤다.
하지만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지옥의 악귀들은 그녀가 지쳐 쓰러질 때
까지 끈질기게 쫓아왔고 이젠 기어갈 힘마저 남아있지 않던 소녀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악귀들이 혈광을 빛내며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저 예요.. 저라구요! 모르시겠어요? 화린이라구요.. 흑흑..
아저씨.. 제발.. "
소녀가 아무리 애타게 소리쳐 불러보아도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
다. 이미 그들은 소녀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흉흉한 기세로 소녀를 덥쳐가던 악귀들 중 하나가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소녀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아악~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