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현달을 정독해 주세요 / 박동주(박현숙)
햅쌀을 대야에 가득 담아요
차고 푸른 물을 넘치도록 부으면
햅쌀은 물에서 부족한 잠을 채워요
쌀눈까지 하얗게 불었을 때
당신을 향한 마음이 몸을 풀어요
상현달처럼 떠오르는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속삭여 주세요
도톰한 떡살에 소를 넣어요
당신을 향한 비문은 골라내고
꽃물결 이는 구절만 버무려 소를 만들어요
당신 생각으로 먹먹해지는 마음이
색색의 반달로 차오르도록
한밤중이 되었을 때
서쪽 하늘을 골똘히 보아주세요
반죽을 작게 떼어 양 손바닥 사이에 넣고
가을볕이 등을 쓰다듬듯 잔잔히 궁글려요
이야기를 담은 소를 가운데 넣어
가을 한나절을 빚은 색색의 상현달들
떡살에 별자리가 뜨기도 해요
비껴간 당신을 향해
밤하늘 높이 상현달을 띄워요
이야기가 스며든 여러 빛깔의 편지지
하얀 송편에는 첫 마음을 써요
어떤 송편에는 첫 눈이 내리고
첫 발자국 첫 속삭임이 들어 있어요
시 심사평] 서정시 기본형에 매우 충실한 작품…미적 완결성 갖춰
장석주 시인. 안도현 시인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전통적인 서정에 충실한 시가 많았다. 화자가 어떤 대상을 만나면서 세계와의 내밀한 동일성을 꿈꾸는 시, 뿌듯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로 마무리되는 결말…. 대부분 은유적인 기법에 기대어 잘 빚은 항아리처럼 고만고만한 체형을 갖고 있는 시들이 그렇다. 응모자들이 ‘농민신문’이라는 신문사의 이름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일까. 우리는 해마다 오는 신춘이 아니라 이제껏 한번도 와보지 못한 놀라운 신춘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마지막까지 유심히 읽은 작품 중에 ‘허물’은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채 정리가 되지 못했고, ‘용접공’은 현실감이 살아 있지만 소품이었고, ‘간헐천’은 능숙한 솜씨에 비해 자기 갱신의 의지가 약해 보였다.
‘도배사’ 외 4편을 쓴 분은 시에서 감각이 발생하는 지점을 잘 간파하고 있는 사람이다. 일상을 화사하게 형상화하는 솜씨가 뛰어나지만 매번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 멈추고 만다. 더 자신 있게 세상과 ‘맞짱’을 떠도 좋을 것이다. ‘돌무덤’ 외 5편은 이미지의 충돌에 의한 유장한 서사의 전개가 볼 만했다. 하지만 자신이 발견한 시적인 것의 절정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 응모한 시의 길이와 연의 형태가 모두 비슷한데, 고정된 틀을 부숴야 한다.
당선작으로 고른 ‘상현달을 정독해 주세요’는 서정시의 기본형에 매우 충실한 시인데, 당신이라는 대상과의 거리 조정으로 미적 완결성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함께 응모한 시편 중 ‘미나리’도 수작이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첫댓글 참신하고 조곤조곤 옛이야기 하듯 다정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