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를 먹고 살아 온 나의 수호천사, 조인순 여사에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병규
나의 평생동지 조인순 여사!
지겹던 병상생활에서 퇴원하던 날, 심한 풍랑에 회오리치던 집안을 굳건히 지켜온 당신의 노고에 감사하며 이 편지를 쓰오. 당신은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나를 의연하게 지켰고, 부서진 허리뼈의 통증을 호소하는 나를 뜨거운 가슴으로 안아주었지요. 수술 뒤 미동도 할 수 없을 때 간병하던 당신의 마음은 강철보다 더 강했고, 당신의 손길은 비단결보다 더 부드러웠어요. 간병 50여일, 당신은 좁디좁은 간병인 자리에서 앉아 졸거나 오그리고 누워 날밤을 보내며 나를 보살폈지요. 힘겨워 하던 당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통증만 호소했지요. 그 힘겹던 순간에도 환자에게 이롭다는 간식거리를 챙겨 우리 입원실 여섯 명의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던 당신의 손이 천사처럼 아름다워 보였어요. 당신의 정성어린 간병에 통증이 완화되고 통원치료를 권하는 주치의의 의견에 따라 퇴원을 했지요.
집으로 온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말끔히 정돈된 집안, 내 글방은 병실로 꾸며져 있었지요. 뒤란 꼬마농장에는 어느 새 파종했는지 하얀 무가 통통하게 자라고 있고, 땅심[地力]을 높이려고 퍼다 놓은 황토가 겨우내 외양간에서 받아놓은 퇴비장만큼이나 수북이 쌓였더군요. 삼복더위에 1km가 넘는 병원을 오가며 간병하던 당신이 어느 틈에 그렇게 일을 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삶에 몸부림친 당신의 의지 앞에 나는 부끄럽기 그지없었다오.
스물세 살 곱던 당신을 아내 만나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면서 오늘까지 살아왔지요. 험난한 세상 살아갈 준비도 없이 결혼하여 신혼살림이란 둥지를 틀었습니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맨손으로 살아갈 길을 찾았습니다. 고향 떠난 사람의 집과 잡초 우거진 논밭을 전세로 얻어 농사를 시작했지요. 유족한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나 일을 모르고 자란 당신의 곱던 손은 닳아빠진 갈퀴처럼 앙상했지요. 그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나를 따라준 당신이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조인순 여사!
우리는 4,000평이 넘는 농토에 희망을 걸고 밤을 낮 삼아 일을 했지 않소? 땀 흘린 대가는 해마다 풍년농사였고, 불어나는 살림에서 보람을 찾았지요. 고달픈 농군의 삶에서도 네 자식을 얻었습니다. 농사에 힘겨워 자식들을 보살피는 일에 소홀했으나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지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모두 상을 받아올 때 우리 부부는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당신도 그 때가 기억나지요?
우리 부부가 성실히 살아오는 동안 고향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고향사람들은 나에게 변산농업협동조합 조합장의 큰 책임을 맡겨주었습니다. 내가 조합장이 되었을 때 당신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당신의 격려는 나에게 용기와 힘이 되었지요. 나는 성공한 조합장이 되려는 욕심으로 온갖 정력을 다 쏟아 부었어요. 집안일은 모두 당신에게 맡기고 조합 일에만 밤낮으로 매달렸었지요. 당신은 공직자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한 줄 압니다.
아이들이 모두 전주로 유학하여 자취를 했지요. 당신은 매주 200리 길을 오가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었죠. 집안일도 모두 당신의 몫이었고요. 합숙하며 밤낮으로 일하던 20여 명의 조합직원들의 찬거리까지 챙기던 당신이었어요. 당신이 그 무거운 짐에 눌려 쓰러질 때 나는 앞이 캄캄했지요.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는데 나는 조합 일에 정신이 팔려, 당신의 고통엔 관심조차 없던 게 사실이었소. 당신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때 얼마나 감사했던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조합장이던 내가 무고를 당하여 검찰에 불려갈 때, “당신의 결백은 하늘이 알 테니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라며 격려하던 당신의 위로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지요. 당신의 내조가 나에겐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땀의 대가는 분명하여 조합은 영세조합에서 성장자립조합으로 승격되었지요. 내가 농협중앙회장의 표창을 받던 날, 당신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지요.
안일한 생활과 행복을 멀리한 채, 모진 세월의 아픔을 참아 온 당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가슴이 뭉클하오. 당신이 걸어온 고난의 길을 거름으로 철없던 자식들이 바르게 자라서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소? 모두 당신의 강철 같은 모성애의 결과라 믿고 있다오.
나와 만나 46년, 그 긴 세월의 강물에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그리움이 있었고, 태풍 몰아치던 사나운 풍랑도 있었지요. 때로는 질병과 싸우고 가난과 힘겨루기를 할 때도 있었지요. 그 때마다 흔들리는 나에게 당신의 격려는 큰 힘이 되었다오. 고난을 인내로 몰아내자 부르짖던 당신의 절규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구려. 당신은 정녕 내 가슴속에 숨겨둔 보석 같은 사람이오. 긴 세월의 강을 건너 우리도 어느새 황혼의 들녘에 서 있구려. 당신의 곱던 얼굴에 패인 골 깊은 주름살은 우리 가정을 지킨 영광의 계급장이요, 당신의 하얀 머릿결은 바르게 자란 자식들이 달아준 훈장이라 여기시구려.
인생은 무었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지 않던가요? 우리가 비록 밑바닥 인생길에서 고난의 터널을 거쳐 왔지만 바른 길을 걸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남에게 조그만 피해도 주지 않고 정직하고 후회 없이 살아 왔다고 믿소. 이 모든 영광이 인내를 먹고 살아오며 나를 지켜준 당신의 덕이요.
내가 젊은 시절 당신에게 약속한 것이 하나 있지요.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친 뒤에는 우리 부부가 나란히 배낭을 짊어지고 8도 강산 유람이나 실컷 다니자는 약속 말이오. 이제 내가 완쾌되면 그 약속을 꼭 지키리다. 내가 건강을 회복하여 그 약속을 지키는 날, 우리가 부부로 오랜 세월을 살면서 하지 못했던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그 한마디를 분명히 해 드리리다.
2009년 10월 17일
당신의 평생 동지 김병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