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찾는 카페 '화순하다'
이번에도 오픈 시간 11시에 맞춰 들렀다.
늘 앉던 1층을 벗어나 2층으로~
카페라떼 한 잔, 딸기라떼 한 잔, 쌀 베이글 두 개랑 함께.
화이트 톤의 매장 안이 청결하다. 널찍한 창문 위로 주르륵 빗줄기가 흘러 내린다.
창 밖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 앙상한 가지 위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 서너 마리가 기웃거린다.
이른 시간이라 둘 만의 시간이 단조롭고 여유롭다.
벽에 맞붙은 책장에 책들이 몇 권 꽂혀 있는데 한강의 시집이 보인다.
'한강, 시집도 있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꺼내 든다.
그녀의 소설은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 시대정신을 호출해 내곤 한다.
오월 광주에서 겪은 나의 경험들이 슬슬 새어나오며 감정이입의 순간을 가져다 준다.
시를 사랑하던 아주 오래 전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괜히 문학소녀인 척 하던 그 시절
몇 편 안되는 시 읊조리며 괜스리 세상 슬픔 외로움 혼자서 다 차지한 양 울적해 하던 풋풋했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에서 만난 가슴을 울리는 시 한 편 <괜찮아>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시를 전부 다 읽을 수 없어 듬성듬성 읽어 내려가다 눈이 멎었던 시 한 편.
지난 시절 이러저러한 일들이 떠오르며 먹먹함이 찾아 들었다.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왜 그래 라고 보챘던 어리석었던 순간들.
사춘기 시절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 들어 동굴 속에 갇혀 있던 아들들에게 왜 그래 윽박지르던 부끄러웠던 모습들.
그래 괜찮아 한 마디면 되었던 것을...
그래 괜찮아
이제 괜찮아
카페 화순하다에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
맛난 커피랑 넘치는 여유, 수다 속에 스미는 안온함, 작은 웃음
오늘은 감사함도 얻는다.
한강의 시 한 편에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따스함을 만난다.
시집 한 권을 통째로 읽어도 마음을 울리는 시 한 편 만나기 어려운데 행운의 시간이었다.
첫댓글 자주 찾는 카페 "환플기행"에서 만난 한강의 시 "괜찮아"
고마워요. 내게 이런 시가 있음을 알려줘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