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표로 보는 세상 >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2015.8.4.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우취단체인 대한우표회는 1974년 4월 18일 미도파백화점에서 창립 25주년 기념 우표전시회인 PHILASEOUL 74를 개최했다. 그때 대한우표회 상무이사 강윤홍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일본 우취인 이치다 소이치(市田左右一)에게 사신을 보내 우표전시회에 초청했다. 이학박사(理學博士)로서 제철소 용광로 분야의 전문가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이치다는 당시 국제우취연맹(FIP) 부회장 자리를 맡고 있는 데다, 그 해 9월 싱가포르에서 발족한 아시아우취연맹(FIAP) 회장 자리를 맡은 일본 우취계의 거목이었다.
강윤홍이 이치다를 초청한 것은 단순히 한국 우취 작품의 수준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한국도 일본처럼 국제 우취계에서 활동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우취연맹(FIP)에 가입해야 하는데, 당시의 한국은 우취 실력이나 활동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 한국은 한 달 전인 3월 15일 한국우취단체총연합회를 결성하고 회장에 진기홍, 섭외위원장에 강윤홍을 선출한 바 있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으로 전국 우표취미단체를 회원으로 포용하는 한편 FIP와 FIAP 등 국제단체에도 가입하기로 결의했으나, 구호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몸이 단 강윤홍이 혼자의 힘으로라도 FIP 가입을 추진하기로 하고, FIP의 사정에 밝은 이치다를 초청하여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데 필요한 조언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이치다는 일본 우표수집가 세 명을 거느리고 서울을 방문했다. 대한우표회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을 구경하고 난 이치다는 이렇게 좋은 작품이 많은데 왜 FIAP에 가입하지 않느냐며 FIAP에 가입하도록 종용했다. 강윤홍은 한국이 FIAP는 물론 FIP에도 가입할 것이라며, FIP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이치다는 FI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FIP의 핵심 멤버인 유럽 여러 나라의 우취인과 사전 교감이 필요하다며 구체적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을 꼽았다. 그들 나라 대표들과 만나 FIP 가입 의사를 밝히고 한국 우취계의 실상에 대해 잘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한국이 FIP에 가입함에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북한 등 공산권 국가의 반대였다. 북한은 이미 10년 전인 1965년에 FIP에 가입했다.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우표수집가도 없는 북한이 일찍이 취미단체인 FIP에 가입한 것은 FIP의 기능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다. FIP가 만국우편연합(UPU)과 같은, 국제우편사업을 운영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단체로 잘못 알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FIP나 FIAP와 같은 국제우취단체에의 가입은 이름 있는 우표수집가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였다. FIP나 FIAP와 같은 권위 있는 국제단체가 주관하는 우표전시회에서 수상할 때 비로소 세계적인 우표수집가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표수집이란 어차피 국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 세계 각국의 수집가들이 서로 교유하며 자료를 주고받을 때 진정한 우취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우취단체는 국제무대에 진출할 힘이 부족했다. 국제전시회에 출품하여 수상한 경력이 없는 데다 FIP와 같은 국제단체와의 교류도 전무하다시피 해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나 다를 바 없었다.
그와 같은 악조건을 딛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나선 사람이 한국우취단체총연합회 섭외위원장 강윤홍이었다. 그는 1975년 스페인 마드리드로 날아갔다. 그때 마침 마드리드에서는 'ESPANA '75'라는 이름의 세계우표전시회가 열리고, 전시회가 끝나는 날 FIP 정기총회가 열리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가 마드리드를 방문하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우표수집가로서 세계우표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FIP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FIP에의 가입이 보다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가 굳이 비싼 비행기 값을 들여가며 10일이나 걸리는 스페인행 여정에 오른 것은 반드시 FIP에 가입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974년 3월 발족할 당시 한국우취단체총연합회는 FIP 가입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그 목표를 추진할 힘이 없었다. FIP에 가입하려면 우선 FIP 총회가 열리는 스페인 마드리드로 대표를 파견해야 하는데, 대표에게 여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만큼 가난했다. 게다가 FIP 총회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외국어 실력을 갖춘 우취인도 없다시피 했다. 그러자 섭외위원장 강윤홍은 그 모든 짐을 혼자서 지기로 했다. 전시회 출품도 자신이 하고, FIP 총회에서의 발언도 자신이 하고, 그리고 여비도 자신이 마련하기로 했다. 자신이 일인다역을 맡아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강윤홍은 그처럼 홀로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는 우취단체가 많고 단체마다 수십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FIP가 주관하는 세계우표전시회에 참석하려는 사람은 없었고, FIP에 가입하기 위해 동행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가 혼자의 힘으로 FIP에 가입하겠다며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으나 비행기표 값에 보태 쓰라며 지폐 한 장 건네는 사람도 없었다. 연합회장 진기홍이 분투하라며 격려의 전화를 걸었으나 빈손이긴 마찬가지였다. 모든 비용은 자신이 부담해야 했고, 모든 행동은 스스로 판단해 결정해야만 했다. 그는 딸을 미국 유학 보내기 위해 모아둔 돈을 헐어 여비에 보탰다. 우취단체를 육성해야 할 책임이 있는 체신부에는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왕복 비행기표 값과 10여일 묵게 되는 숙박비는 그의 직장인 일본 종합상사 니찌멘(日綿)실업에서 출장비라는 명목으로 부담해 주었기에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자 강윤홍은 우리나라 대사관을 찾아가 대사 신상철을 만났다. 신상철은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여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강윤홍은 스페인을 방문한 목적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FI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설명을 잘해야 할 것 같은데, 한국의 역사와 우취계 현황 등에 관해서는 제가 영어로 설명하겠습니다. 다음에는 FIP에 가입하게 되면 한국이 어떤 방법으로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그와 같은 내용은 아무래도 스페인어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원고는 제가 작성해 드릴 테니 그 내용을 스페인어로 낭독할 수 있는 분을 대사관 직원 가운데 한 분 추천해 주세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해드리죠." 대사 신상철은 선선히 동의했다.
강윤홍의 구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선 ESPANA '75 세계우표전시회에서 그가 출품한 작품 '태극우표와 그 가ㆍ첨쇄우표(加添刷郵票)'가 은동상을 수상했다. FIP가 주관하는 세계우표전시회에 한국 최초로 출품한 작품이 낮은 등급이긴 하지만 은동상을 받았으니 체면은 살린 셈이었다.
그러나 세계우표전시회의 수상 결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신경은 FIP 가입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표전시회의 전시 기간은 10일이고 FIP 총회는 마지막 날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 동안 가급적 많은 사람을 만나 표를 모아야만 했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캐나다 등의 대표를 찾아다니며 한국이 FIP에 가입하고자 하니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하루에 3~4명씩 골라 찾아다니며 열심히 설득했다. 우취인은 대부분 정치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총회 날이 밝아왔다. 먼저 발언에 나선 강윤홍이 한국의 역사와 우취계 현황을 영어로 설명했다. 뒤이어 스페인대사관 직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한국이 FIP에 가입하게 되면 FIP가 주관하는 국제우표전시회를 개최하여 국가 간의 우취 정보의 교류와 우취인 간의 친선 도모, 우취 문화의 발전을 위해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스페인어로 설명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박사학위 코스를 밟고 있는 중이어서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박수가 쏟아졌다. 각국 대표들의 힘찬 박수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대로 투표를 실시할 경우 전원이 찬성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때 스위스 대표가 발언권을 얻더니 스위스에 주재하고 있는 북한 외교관의 의견을 대신 전하는 것이라며 입을 열었다.
"FIP에는 이미 한국을 대표해 북한이 가입해 있으니 남한은 가입할 필요가 없고 가입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이 스위스에 주재하고 있는 북한 외교관이 전해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스위스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이탈리아와 남미 대표들이 연달아 발언권을 얻어 반박했다. 특히 이탈리아 대표는 격정적인 어조로 발언을 계속했으나 이탈리아어로 말했기에 그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자 미국 대표가 FIP 헌장에 정치적인 개입은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함으로써 스위스 대표의 기를 꺾었다.
투표가 실시되었다. 소련을 포함해 7개국 대표가 기권했을 뿐 나머지 대표들은 모두 찬성했다. 한국의 FIP 가입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오랜 세월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자 강윤홍은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 기쁜 소식을 한국우취단체총연합회장 진기홍에게 전하기 위해 서둘러 호텔로 가려는데, 누군지 어깨를 툭 쳤다. 뒤돌아보니 공산권 국가인 체코슬로바키아 대표 드보라체크였다. 거구인 드보라체크는 커다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축하 인사를 보냈다.
그들 5개 법 중에서 맨 처음 개정된 것은 국회의원선거법이었다. 국회는 1991년 12월 17일 그 동안 무료로 취급하던 선거우편물을 유료로 한다는 내용의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 결과 우편투표용지의 발송 및 회송, 선거공보우편물은 유료로 취급하기로 했는데, 부재자 신고우편물은 그대로 무료로 남아 있었다. 이로써 1948년 5월 초대 국회의원선거 때부터 무료로 취급하던 국회의원선거 우편물은 유료로 바뀌었다.
"축하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회원국 가입에 대한 입장은 나라에 따라 다른 것 아니냐. 우리가 남한의 가입에 대해 흔쾌히 지지하지 못했던 점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우취인의 입장과 정부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처럼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앞으로 잘 협조해 나가도록 하자."
강윤홍은 국제 우취계의 거물인 드보라체크와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드보라체크는 뒷날 FIP 회장이 되어 1984년 한국이 FIP 주관으로 세계우표전시회를 개최할 때 적극 도왔다.
그처럼 한국의 FIP 가입은 오로지 한국우취단체총연합회 섭외위원장 강윤홍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집념과 의지가 워낙 강했기에 너무나도 높은 벽으로만 알고 있었던 FIP 가입이 성사될 수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