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보도 "김 의원은 독립운동한 김학규 장군과 족보상으로 남남"
또 김학규 장군의 며느리인 전봉애(田鳳愛·80)씨를 포함한 복수의 인사들이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金一鍊)은 독립군이 아니라 일제하 만주국 경찰이었다’는 요지로 증언했다고 17일 발매되는 월간조선은 보도했다.
지금까지 김희선 의원은 “증조모 선우순(鮮于順)이 의성 김씨 김순옥(金淳玉)과의 사이에 할아버지 김성범(金成範)과 작은 할아버지 김학규(金學奎)를 낳았고, 안동 김씨 집안에 재가(再嫁)하면서 두 아들을 데리고 갔다. 친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때문에 김성범은 ‘의성김씨’, 김학규는 ‘안동김씨’가 됐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1936년 발간된 ‘의성김씨 태천공파’ 파보(派譜)와 1992년 제작된 ‘의성 김씨 대동보’에 따르면, 김성범(김희선 의원의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김순옥(金淳玉)은 1897년 사망했다. 이때 김성범의 나이는 15세였고, 1900년생인 김학규 장군은 세상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김학규 장군의 호적과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김 장군은 ‘의성김씨’ 김순옥(金淳玉)이 사망한 지 3년 후에 ‘안동 김씨’ 김기섭씨와 재가한 선우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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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시할머니(鮮于順)가 우리 시어머니(김봉수·金鳳洙 여사)에게 ‘남편이 죽고 혼자 되니 살 수가 없어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안동김씨 집안으로 시집왔다’고 늘 얘기를 했고, 그 얘기를 나는 시어머니에게서 들었다”며 “두 사람(김성범과 김학규)은 친형제가 아니다”고 했다.
전봉애씨는 김학규 장군의 장남 김일현의 부인으로, 김일현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뒤 1950년 동두천 전투에서 7사단 1연대 중대장으로 전사했다.
김학규 장군의 후손들은 “김희선 의원이 독립군 가계임을 자처하기 위해 김학규 장군의 아버지를 바꿔버리는, 환부역조(換父易祖·지체가 좋지 않은 사람이 부정한 수단으로 자손이 없는 양반 집을 이어서 자기 아비 할아비를 바꾼다는 뜻)를 했다”고 흥분하고 있다.
김희선 의원은 자신의 부친 김일련에 대해 “한독당 비밀청년 당원으로서 김구 선생의 밀명으로 활동하다가 실종됐다”고 주장해 왔다.
김학규 장군의 며느리 전봉애씨는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1919~1954?)이 광복 전 만주 유하(柳河)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가를 색출해서 취조했다’는 한 제보자의 주장에 대해서 김일련씨가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유하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한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당시 전 여사는 김일련씨 옆 마을에 살아 서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전씨는 “그건(만주국 경찰 근무 사실) 그 주위에서 흩어져 살았던 김희선 의원들의 삼촌들도 다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내가 김일련씨의 직책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면서 “김일련씨가 제복 입은 것은 못봤고, 사복을 입은 것만 봤다. 그러니 고등계인지 일반계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희선 의원 집안과 가까운 다른 익명의 증언자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김일련씨는 남한으로 내려와 장사를 시작했고, 1949년 배에 물건을 잔뜩 싣고 중국으로 장사하러 갔다”며 “그후 러시아에서 납치돼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김희선 의원이 1954년 러시아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의 내용에 대해 “ ‘못돌아 올 것 같다’는 내용이지, 독립운동 얘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씨는 ‘김희선 의원의 할아버지 김성범과 아버지 김일련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두 사람이) 독립운동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