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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장
제4장 비 유
[대 지]
一. 씨뿌리는 비유(1-9)
二. 비유로 교훈 하는 이유(10-12)
三. 씨 뿌리는 비유 해석(13-20)
四.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라(21-35)
五. 천국은 싹이 자라는 것과 같음(26-29)
六. 겨자씨 비유(30-32)
七. 신령한 도리를 비유로 가르치심(33-34)
八.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35-41)
[본문강해]
一. 씨뿌리는 비유 (1-9)
.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 바다에 나 않으시고 온 무리는 바다 대 육지에 있더라
*예수님이 바닷가에 앉으시매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무리들은 해변에서 있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말씀하실 때에도 앉아서 가르치셨다.
. 4:2-4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실 때에 그 첫째 비유는 씨뿌리는 비유였다.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다. 전도자들은 예수님이 씨를 부리는데 수종드는 사람들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눅8:11 참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씨이다.
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완고하여 받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다(15절 참조). 마음이 길가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그 사람은 말씀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새는 악한 자 즉 마귀를 상징한다(마13:19).
. 4:5-6 더러는 흙이 점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밭은 돌 위에 흙이 얇게 덮여 있어서 떨어진 씨가 그 흙에 묻혀서 싹이 나지만 돌 때문에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못하고 해가 돋으면 곧 말라죽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받아 얼마 동안 좋아하다가 그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과 핍박이 들어올 때에 말씀을 포기해 버리는 자이다. 싹이 말라죽은 것을 보니 영혼이 중생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도를 즐거워한 것에 불과하다.
또 돌은 완강하게 박힌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지식과 전통, 고집 같은 것을 가리킨다. 이런 것들을 제거하지 않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부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 4: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가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일락이다. 가시밭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이다(18-19절 참조). 누가복음8:14에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기씀으로 받고 참으로 믿는다. 교회에도 잘 출석하고 봉사도 잘한다. 그러나 지나는 동안에 생활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향락주의 때문에 기운이 그리로 다 빠져나가 온전히 결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농사할 때에 씨가 가시밭에 떨어지면 가시가 영양분을 다 흡수하여 곡식이 잘되지 못한다. 비료를 주어도 가시에게 영양소를 다 빼앗겨 곡식은 잘 자라지 못하여 변변히 결실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곡식이 말라죽지는 않았으므로 중생한 사람이지만 믿음의 진보가 없고 신앙의 열매가 별로 없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은 믿는 일에는 힘쓰지 아니하고, 세상 걱정과 돈 버는 일과 향락을 즐기는 일에 시간과 정력과 재산을 다 소모해 버리는 자이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 앞에 가지만 신앙의 열매가 별로 없으므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 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실히 깨닫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는 그 말씀대로 실행하게 된다. 누가복음8:15에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 하는 자니라"고 하였다. 말씀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대로 실행한다. 그리하여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많은 열매가 맺힌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양잿물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양잿물을 먹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을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좋은 땅이다. 성도의 마음이 옥토와 같이 되어야 신앙의 열매가 잘 맺힌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묵은 밭을 기경하라"고 했다(렘4:3참조). 가시가 나고 잡초가 난 묵은 밭을 갈아 좋은 밭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길가와 같이 완고한 고집을 가진 자는 그 고집을 버리고 회개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돌 짝 밭과 같은 사람은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뿌리가 깊이 박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적인 기존 지식과 지혜 위에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부리가 박히지 못하며 환난과 핍박이 올 때에는 넘어지게 된다. 예를 들면 유교 사상이 강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성경 말씀을 유교 사상과 비교하여, 유교사상에 맞으면 옳고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박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자기의 지식과 지혜를 다 내어버리고 세상 염려와 재리의 욕심과 일락을 버려야 한다. 믿는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 그것이 가시가 되어 그리로 기운이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너희 친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될 것을 다 아신다고 하였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며 내일 일은 내일에 가보면 무슨 대책이 나온다. 그러므로 장래 문제를 가지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했다(마6:33-34).
또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부하려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털어진다(딤전6:9-10). 돈을 많이 벌어 놓고, 좀 더 부자가 된 다음에 예수를 잘 믿겠다는 사람은 벌써 시험과 올무에 빠진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면 항상 염려와 근심을 면하지 못하고 믿음을 지킬 수 없다.
또 성도가 안일주의와 향락주의에 빠지게 되면 믿는 일하는 기운이 그리로 다 빠져나가 기도할 마음도 없어지고 충성할 마음도 없어진다. 방탕하며 향락주의로 나아가면 기도를 하여도 기도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예배당에 열심히 나와도 열매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다 끊어 버리고 생명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힘써 은밀한 골방을 찾아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말씀대로만 순종하는 자리에서야 한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과거에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순종하므로 자기 영이 자라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가시가 제거되고 옥토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 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영의 귀가 있는 자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가 있다.
二. 비유로 교훈하는 이유(10-12)
. 4:10-11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들을 묻자오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복음이다. 이 복음을 아는 것이 너희(택한 백성)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외인(불택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복음은 택한 백성에게만 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육신의 눈은 표면적인 것은 볼 수 있으나 영적 진리의 세계는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육신의 귀로는 비유의 말씀을 들으나 영의 귀가 열리지 못하였으므로 그 비유의 신령한 뜻은 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택한 백성을 위한 것이며 불택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택자는 듣기는 들어도 영의 귀가 없어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므로 돌이키지 못하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
三. 써 뿌리는 비유 해석(13-20)
. 4:13-15 또 가라사대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이 구절들의 내용은 3-4절에 기록된 씨 부리는 비유의 설명이다(여기에 대한 해설은 3-4절 강해 참조할 것).*
. 4:16-17 또 이와 같이 돌발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나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이 구절들은 5-6절의 돌발에 대한 설명이다(여기에 대한 해석은5-6절 강해 참조할 것).
. 4:18-19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이 구절들은 7절의 가시밭에 대한 설명이다(여기에 대한 해석은7절 강해 참조할 것).
. 4:2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녀라
이 구절은 8절의 좋은 땅에 대한 설명이다(8절 해석 참조할 것).
四.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라(21-25)
. 4:2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마5:14)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5:16). 사람이 등불을 켜는 목적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 두려 함이 아니고 등경 위에 놓아 모든 사람들에게 비취게 하려 함이다. 성도를 왜 빛이라고 하였는가?
①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이다.
② 중생한 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③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빛이 성도를 통해서 세상에 비취어 나감으로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잔들에게 하나님과 그 말씀의 빛이 비취어 나가게 한 것이다. 그러나 등불을 켜서 평상 아래나 말 아래 두면 그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한다. 성도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는데 왜 빛을 비추어 내보내지 못하는가?
첫째, 빛을 말 아래 두었기 때문이다.
말은 곡식이나 물질을 되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말 아래 둔다"는 것은 물질 아래 둔다는 의미이다. 즉, 성도가 물질의 지배 아래 들어간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물욕으로 기울어져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그 말씀보다 물질의 지배를 더 받게 되면 그로 인하여 성도가 심령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한다.
둘째, 평상아래에 두었기 때문이다. "평상"은 침대와 같은 것으로 성도가 평안히 누어서 잠자며 안일주의에 바진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게을러서 신앙적으로 잠자는 생활을 하고 일락을 사랑하며 안일주의로 나아가면 심령이 깨어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한다. 디모데전서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 라"고 말했다.
세째, 그릇으로 덮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8:16에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지 않는다고 했다. 그릇을 영어 성경에는 container라고 했다. 컨테이너는 물건을 넣어 자동차나 배로 운반하기 위하여만든 육면체로 된 대형 버스의 크기 만한 큰 상자이다. 이것은 성도가 통을 짜놓고 그 속에 들어가 자기나 자기 당파만 위하는 사욕에 빠진 상태를 말한다. 성도의 마음이 이러한 상태가 되면 흑암 속에 갇히게 되어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어 들어갈 수 없고, 밖으로 비취어 나갈 수도 없다.
성도의 빛이 비취어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이 세 가지 장애물들을 우리가 다 제거해 버려야 우리 성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빛이 밝히 비추어 나가게 된다. 이 빛이 비추어 나가야 자기가 살고, 어두운세상도 밝아지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려 낼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감으로 빛을 잘 비추어 내보내야 한다.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등불을 등경 위에 두어야 그 빛이 잘 비취어 나가게 된다. 등불을 등경 위에 둔다는 것은 믿음 지키는 것을 세상의 것 위에 두라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등경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위로 걸어가야 한다. 베드로가 바다위로 걸어간 것처럼 성도가 세상을 발아래 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하나님 말씀대로 나아가야 성도에게 있는 빛이 멀리까지 크게 비취어 나가게 된다.
또 자기가 낮아지고 희생되면서 주와 그 말씀만 높이라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되겠고 나는 쇠하여야 되리라"고했다(요3:30). 세례 요한이 자기는 낮아지고 희생하면서 주님과 그 복음만 높였으므로 그 빛이 크게 비취어 나갔다. 요한복음5:35에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라고 했다. 성도 자신도 말씀을 위해 희생하면 등경이 될 수 있다. 그 등경 때문에 등불이 높아지고 멀리까지 비취여 나간다. 자기가 등경이 되어서 진리의 빛이 비취여 나가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살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생명 내놓고 희생할 때, 힘이 있고 등경이 높아진다. 또 등경이 높아진 것만큼 빛이 넓게 멀리까지 비추어 나가게 된다.
. 4:22-23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나님께서 등불을 켜서 빛을 비추어 나가게 하시려고 성도 속에 빛을 숨겨두고 감추어 둔 것이다. 누가복음8 : 17의 숨은 것이나 감추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마태복음10:26-27에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했다.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은밀한 가운데서 신령한 귀로 듣고 깨닫게 해주신 것이 어두운 가운데서 들은 것이다. 이것은 감추어 두고 숨겨 두려함이 아니고 그 빛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우리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은 귀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하늘의 비밀이요 하늘 나라의 새 소식이다. 그것은 감추었던 만나이며 질그릇에 담긴 보배이다. 그 말씀을 성령께서 은밀한 가운데서 영의 귓속에 들려주시고 깨닫게 해 주셨다. 그 귀하고 보배로운 진리를 받았으면 광명한데서 드러내고 지붕 위에서 많은 사람에게 전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말(두)과 침상과 그릇을 다 깨뜨려 내버리고 세상과 우리의 몸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있는 빛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다.
. 4:24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여기 헤아린다는 것은 마태복음7:2에 있는 헤아린다는 것과는 뜻이 다르다. 마태복음7:2의 것은 사람을 헤아리는 것을 가리키고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여기고 귀하게 여긴 것만큼 하나님께 은혜와 진리를 더 많이 받게 되고 그 사람도 존귀하게 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작게 헤아려 그 말씀을 작게 평가하고 작게 여기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도 작게 받고 그 사람의 인격도 작아진다. 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은혜와 진리도 작게 받고 그 사람의 인격도 작아진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은혜와 진리를 받지 못하고 그 사람도 하나님께 무시당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작게 헤아리지 말고 크게 여기고 귀한 보배로 여기고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야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많이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
더 받으리니 덤으로 더 주신다는 뜻이다. 성경 말씀을 받을 때에 두렵고 떨림으로 귀히 여겨 보배로 받는 자는 그 만큼 모든 것을 받게 되고, 덤으로 그 이상의 것을 받는다는 뜻이다. 열왕기하22:11에 요시야왕은 잃어 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책을 찾아서 읽을 때에 그 말씀에 너무 놀라서 옷을 찢고 통곡을 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요시야왕에게 그 만큼 큰복을 주시고 또 덤으로 더 많은 것을 주셨다.
. 4: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빛을 비추어 내보내는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빛을 비추어 내보내지 못하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뜻이다. 또 크게 헤아리는 헤아림이 속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받고 크게 헤아림이 없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긴다는 말이다. 말씀을 귀하게 여건 사모하고 순종하여 그 말씀의 빛을 비추어 내보내는 성도는 더욱 더 은혜와 진리와 신령한 복을 많이 받게 된다.
五. 천국은 싹이 자라는 것과 같음(26-29)
. 4:26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이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신 것 같다. 마태복음에는 이 말씀은 안 쓰고 가라지 비유만 썼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와 주장을 받는 나라이며 신약 교회를 가리킨다.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하나님의 나라인 지상 교회가 성장 발전되어 나아가는 것이 마치 땅에 씨를 뿌림과 같다는 것이다.
. 4: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씨를 뿌려 놓으면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씨가 움이 트고 싹이 나서 자라난다. 영적 생명의 역사도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난다. 하나님께서 신적 역사로 은밀한 가운데서 자라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는 것이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씨를 뿌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비가 오지 아니할까 염려하지 말고 뿌리기만 하면 된다. 전도할 때에도 이 사람이 예수 믿겠나 믿지 않겠나 염려하지 말고 부지런히 말씀을 전해야 한다. 도저히 싹이 나지 않을 것 같아도 씨를 뿌려 놓으면, 하나님이 나게 해 주신다. 씨를 뿌려 놓은 후 빨리 싹이 나오지 않더라도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씨를 뿌린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자라게 하신다.
싹이 나서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나 또 사람이 물을 주고 돌봐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이 할 일을 바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해주어도 그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잠언27:23에"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고 했다.
.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사람이 할 일을 잘하면 하나님이 열매를 많이 맺게 해 주신다. 처음에는 싹이요 사람이 할 바를 하면 하나님이 싹이 나게 해주시고 또 자라나게 하시고 열매가 맺혀 충실한 곡식이 되게 해주신다. 사람은 곡식을 해하는 짐승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곡식이 익어갈 때에는 새가 오지 못하도록 잘 돌보고 지켜야 한다. 처음에 싹이 나온다는 것은 말씀을 받은 자 속에서 그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 즉 영적 생명이 살아 기뻐하며 그 말씀으로 힘을 얻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는 이삭이요 싹이 나서 자라나면 이삭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그 이삭이 충실한 곡식으로 된다. 처음에는 새로 나온 이삭이 여물지 않아 알맹이가 없어도 시일이 지나면서 비와 햇빛을 받아 연단을 받으면 알맹이가 생겨 여물어서 충실한 열매가 맺게된다. 우리의 신앙도 중생한 다음에 많은 시일이 걸려 시련과 연단을 받아야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가 맺힌다. 성도가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은 마음 밭에 종자를 심은 것이며 그 말씀이 생명이 된 것은 싹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걸어간 것은 이삭이 된 것이고 걸어갈 때 여러 가지 시험과 연단을 통과하는 것은 충실한 열매로 결실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 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말세에는 곡식도 익고 포도(악인)도 익는 때이다(계14:14-20). 말세에는 포도가 익는 것과 같이 악이 익어서 그 악이 하늘에 사무친다. 성도는 그 가운데서 많은 환난과 핍박과 연단을 받아 희게되며 정결케 된다(단11:35). 그 때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셔서 택한 백성인 곡식을 거두어 하늘로 올려 간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곡식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열매를 잘 맺혀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六. 겨자씨 비유(30-32)
. 4:30-32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 운동을 가리킨다. 지상 교회 운동은 겨자씨 한 알을 심어 놓은 것과 같다. 겨자씨는 작아도 생명이 있어 심긴 후에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 복음의 씨는 이와 같이 위력이 있고 창성해 나가는 생명력이 있다. 복음의 한 말씀은 미미하고 아무 보잘것없는 것 같으나 점점 자라서 나무와 같이 커지고 큰 세력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와서 의지하고 살려고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믿고 순종해 나아가면 그 생명이 점점 커지고 믿음이 점점 자라나서 그 인격이 점점 커진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영적 생명 운동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이렇게 하여 생명 운동이 커지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과 교회를 의지하여 살려고 모여든다. 이것이 새가 깃들이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의 조상인 청교도들이 처음에는 지극히 작은 세력이었으나 하나님을 잘 섬겨서 세계적으로 강대국이 되었고 세계의 많은 나라가 미국을 의지하며 혜택을 받고 있다.
어린 아이 하나가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작은 일 같으나 그 아이가 말씀을 받아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나타나고, 나중에는 믿지 않는 친척과 친구와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을 의지하며 혜택을 받을 때가 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힘써 전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믿는 일을 잘하는 것이 제일 귀한 일이며, 모든 사람이 복 받는 일이다.
七. 신령한 도리를 비유로 가르치심(33-34)
. 4:33-34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예수께서 비유가 아닌 것도 많이 말씀하셨으나 본문에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신령한 도리를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신령한 도리를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비유가 아니면 알지 못하겠으므로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또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다. 마태복음13:34-35에 "예수께서 이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 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또 마태복음13:10-13에는 친국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지만(즉 믿는 사람에게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허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비유로 말씀하심은 천국비밀을 믿는 자에게만 알게 하기 위함이다. 외인들은 비유로 말해주면 그 비유만 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 비유의 신령한 뜻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八.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35-41)
. 4:35-38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치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광풍이 일어나서 물결이 배에 부딪혀 배 안에 물이 많이 들어오므로 대단히 위태하게되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다.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죽을까봐 벌벌 떨면서 무서워하였으나 예수님은 평안히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의 말이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절)라고 하였다.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 같은 풍랑을 만났으나 제자들은 죽을까봐 벌벌 떨었고 예수님은 평안히 주무셨다. 예수님은 믿음이 크기 때문이며 제자들은 믿음이 적은 연고였다. 풍랑을 만나고 죽을 지경을 당해 보아야 큰 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 없는 자가 드러난다. 예수님의 믿음은 왜 큰 믿음인가?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죽이고 살리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으니 풍랑이 아무리 심해도 하나님이 죽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을 믿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으면 아무리 위태한 지경을 만나도 죽을까봐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려면 평소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적은 일에서부터 연단을 많이 받아 믿음이 자라나야 한다. 믿음이 자라나면 큰 환난을 만날 때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둘째, 육신 중심으로 살지 않고 영의 생명으로 살았다. 육신이 죽는다고 해도 영의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울도 빌립보서1:21에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다. 성도의 중생한영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사는 세계에 들어가면 항상 담대하고 평안하여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다.
우리의 육신이 죽는 것은 영혼이 쓰고 살던 장막 집을 벗어 놓고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것이다(고후5:1 참조), 예수님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참조)라고 하였다. 다니엘도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살았기 때문에 몸이 죽는다 해도 영은 영원히 죽지 않게 될 것을 믿고 감사한 것이다.
세째,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다.
아무리 풍랑이 심해도 그 물결이 능히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능력으로 지켜줄 것을 믿은 것이다. 하나님은 사자의 입도 막아 주시고, 풀무 불 가운데서도 타지 않게 해 주시고, 홍해 바다나 요단강도 갈라서 육지와 같이 건너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네째,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을 믿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전 목적은 죄인들의 구속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업을 이루기 전에는 하나님이 데려가시지 않을 것을 믿은 것이다. 제자들도 자기들의 사명을 깨달았다고 하면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여 구원 운동에 이용하려고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중에 있는데 왜 도중에 죽도록 내버려두겠는가! 제자들이 자기들의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에 죽을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사명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려두신 것이다.
.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시험이 지나간 다음에는 잔잔하여진다. 문제는 그 시험을 믿음으로 합격하였느냐 불합격하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시험에 불합격되면 믿음이 적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원통한 마음을 가지고 통회하며 회개해야 한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분한 마음과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여 가슴을 치면서 대성통곡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너희가 왜 죄에 대하여 통한히 여기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였다(고전5:2 참조).
우리에게 시험이 들어왔을 때에 그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하면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고 실패하면 억울하고 분하며 부끄럽기 짝이 없다. 또 자기 자신이 밉고 원수처럼 여겨진다. 그때에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며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여 다시는 그러한 자리에 바지지 않도록 결심해야 한다.
.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어찌 믿음이 없느냐 풍랑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증거이다. 누가복음8:25에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과 영적 생명으로 사는 믿음이 적었다(35-38절해석 참조).*
.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예수님의 은혜로 물결이 잔잔하여진 다음에는 "아하 좋다"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 것을 붙들고 통곡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제자들이 원통히 여기거나 통곡을 하지 않고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잘 깨닫지 못하고 신앙이 연약한 가운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