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만족한 세상
2050년1월1일, 대한민국은
모두가 만족한 세상이 되었다. 인류학자들도 만족했고, 이상주의자들도 만족했다. 지도자들도 이만하면 이상국가가 실현되었다고 여겼다.
언론들도 떠들어댔다. 거지가 없는 나라, 굶주리는 자도 없고 죄를 지을 일이 없으니 감옥도 없어졌다.
재벌도 만족하고 부자들도 상류층도 모두 만족했다.
플라톤이 주장했던 이상주의 국가.
5천만의 인구 가운데
3천여 명의 신 귀족층
10만 명의 재벌들
어느새 우리사회는 사람들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은 더욱 살기 힘든, 그러니까 크게 두 부류의 계층으로 분류시켜나가고 그걸 더욱 확고하게 고착화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부류에 속하든지 간에 한번 속하게 되면 요지부동이 됩니다. 그 옛날 양반으로 태어나든 상놈으로 태어나든 한번 신분이 정해지면 개인이 아무리 몸부림을 치든 굳어진 체재는 끄떡없듯이 말입죠.
인간 세계는 이렇듯 개개인의 뜻과는 달리 한번 정해진 서열에 따라 요지부동이 된다는 겁니다. 이건 음모입니다. 치밀하게 짜인 음모이지요. 그런 징후가 지금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10년 후를 내다봅니다. 세계 각국의 상황은 차치하고라도 대~한민국 국민은 간단히 다음 네 가지 부류로 나눠집니다.
0.5% 미만의 신 귀족층이 형성됩니다. 신의 경지에 이를 만큼 무소불위의 권능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국가 경제력의 90%를 쥐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 대통령도 나오고 장관이며 국회의원들이 나옵니다. 그들 신 귀족층은 저희들끼리만 똘똘 뭉칩니다. 자녀들의 결혼도 부모의 결정에 따라 같은 신 귀족층 간에 정략적으로 이뤄집니다. 그들 신 귀족층들은 철저한 베일에 쌓여있게 마련이며, 영화나 소설에서 상상에 의해 재현되지만 대중들에겐 별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5%남짓의 상류층이 존재합니다. 그들 상류층은 신 귀족층의 수족역할과 방패역할을 하면서 나름대로 상상을 초월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상류층은 하층민과 신 귀족층의 가교역할과 완충역할을 합니다. 신 귀족층은 그들 상류층에게 투자하여 지속적인 부를 축적하며 또한 그들을 통제합니다. 그리고 혹 있을지도 모를 하층민들의 대규모 반란이나 난동에 그들 상류층을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3% 남짓의 중산층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경제력은 미약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존재는 하층민들로 하여금 "출세했네~"라는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됩니다. 그들 중산층은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지요. 아이디어도 좋고 뱃장도 있으며 열심히 일해 얻은 자리입니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잖습니까? 자신보다 월등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시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 즉 '이웃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속담처럼 자신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성공하면 그게 그렇게 배가 아프고 시샘이 나는 겁니다.
요즘 거리의 상가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웬만큼 큰 자본 없이 장사하기도 힘듭니다. 구멍가게들은 슈퍼마켓 때문에 문을 닫아야하고 슈퍼마켓 또한 대형할인매장 때문에 문을 닫아야합니다. 음식점 또한 대형화하지 않으면 손님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적은 밑천으로 할 수 있는 장사도 마땅찮습니다. 작은 상점들이 점차 줄어들고 따라서 점원 일자리도 줄어듭니다.
기업들은 점차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북한, 태국, 필리핀 등으로 빠져나갑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부산지역의 기업들만 해도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51만 명의 일자리를 결국 중국으로 빼앗겼다지요. 국내에 남아있는 기업들도 생산 공장라인을 컴퓨터와 로봇으로 무장한 자동화 설비로 교체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일자리마저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열이 극성인지라 요즘 애들 웬만하면 다들 대학을 나옵니다. 대학 나온 애들이 월급 100만원 안팎의 일자리에 만족할리 없습니다. 놀아도 굶지는 않으니 적은 월급에 고된 일을 하려하지 않아 중소기업엔 취직하려하지 않고 그냥 떼돈 벌 궁리만 하며 PC방에서 시간을 허비하거나 기술 없이 시간당으로 버는 아르바이트 자리만 전전합니다. 그렇다고 중소기업 입장에서 사람 쓰기위해 대기업 월급수준을 맞출 바엔 차라리 공장 문을 닫는 게 더 유리합니다. 그런 식으로 악순환이 계속 되풀이되다 보면 결국엔 국내 일자리가 거의 사라질게 뻔하지요.
그러면 나머지라 할 수 있는 91.5%의 사람들은 뭡니까?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하층민이지요. 겨우 굶주림을 면한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을 잘 돌봅니다. 아니, 신 귀족층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층민들의 동요를 원치 않습니다. 하층민들이 동요하여 떼 지어 습격하면 철옹성 같은 신 귀족층의 요새라 하여 안전할 리 없잖습니까? 그러니 무위도식하는 절대다수의 대중을 '만족한 돼지'로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춥고 배고프게 되면 길거리로 나서게 되고, 하나 둘씩 모이다보면 무리를 짓게 마련이지요. 그렇게 수백 명만 모여도 "우리 저 슈퍼마켓 쳐들어갈까?"라는 제안이 쉽게 나오게 되고 누구라 할 것 없이 슈퍼마켓으로 '와르르르~~' 몰려가게 마련이지요. 그게 모라토리움에 처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경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춥고 배고프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런 상황을 신 귀족층이나 상류층이나 중산층이 원하는바 아니지요. 그래서 하층민들을 철저히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길들이느냐? 간단하지요. '만족한 돼지'로 길들이는 겁니다.
지금도 출산율이 저조하여 국가에선 걱정이 많다지요. 인구가 곧 노동이요 국력인데 오죽하겠습니까. 젊은 사람들 사이엔 지나칠 정도로 이기주의가 만연하여 자신의 인생을 배우자나 2세에게 바치려하질 않지요. 여자들 또한 옛날처럼 '여자팔자 뒤웅박팔자'라 하여 남편 잘 만나 호강하려는 생각을 않습니다. 특히 전문기술을 지닌 데다 혼자 벌이가 짭짤하다 싶으면 결혼할 생각은 아예 접어둡니다. 적당히 맘에 드는 남자를 번갈아 만나가며 성적쾌락을 즐길 줄 압니다. '뭐 때매 시집가서 남편이며 애한테 얽매이느냐'는 겁니다.
결혼한 부부들도 예사롭게 이혼합니다. 아이를 낳으려하지 않는 이유는 육아비며 교육비가 많이 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옛날처럼 자식 키워 효도 받겠다는 생각이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런 생각이 없어진 게 아니라 애들 다 키워봤자 저만 아는 이기심 때문에 효도할 줄 모르는 게 더 큰 이유일 겁니다. 그러니 자식 낳아 모든 것을 다 희생해가며 키워본들 결국 배반당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요.
자식한테 효도를 받기위해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넉넉한 사람들의 얘기이고, 전 생애를 다 바쳐 전 재산을 다 바쳐 자식을 키우고 끝내 늙어서 가진 게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배반당했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10년 후쯤 되면 우리 국민들 대부분은 나 홀로 세대가 되리라 봅니다.
적당히 눈이 맞으면 성적쾌락을 즐길지언정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할 겁니다. 그때쯤 되면 국가는 정자와 난자를 사들여 필요한 인구수만큼 인간을 인큐베이터에서 생산해낼 테지요. 부모가 뉜지도 모르는 애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겁니다. 자식에 대한 애정도 없고 부모에 대한 존경심도 없는 세상에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겠고요.
컴퓨터와 인터넷은 더욱 발전하여 방안에서 모든 일들이 해결됩니다. 인터넷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필요한 생필품도 주문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날 것이고 직장이 있는 사람들도 구태여 회사로 출근할 필요가 없지요. 인터넷을 통해 화상회의도 하고 작업물도 인터넷으로 보내면 되니까요. 영화나 음악 감상은 물론 보다 발전한 시뮬레이션으로 모험도 하고 도박도 하고 여행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상섹스도 실제처럼 땀을 흥건히 쏟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원하는 이상형의 이성과 함께 말입죠.
그래서 정부는 일 안 하고 놀고 지내는, 즉 전 국민의 91.5%에 이르는 무위도식하는 자들에게 3평이나 4평쯤 되는 아파트를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그 정도의 공간에는 침대와 컴퓨터 책상,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갖춰집니다. 그리고 인터넷과 컴퓨터를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겨우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전자화폐를 지급하는데 인터넷으로 음식이나 생필품을 주문할 때 필요한 전자화폐이지요. 실제로 밖에 나돌아 다닐 필요가 없어 종이화폐는 쓸모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로도 '만족한 돼지'가 되어 자기 방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려 하질 않게 되지요.
혹 돈이 많이 드는 취미생활에 젖어든다거나 실제로 밖에 나돌아 다니려하는 소수의 활동적인 사람들은 더 큰 돈이 필요하겠지요. 따라서 정부가 주는 그런 자그마한 혜택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사업을 하거나 정부에서 주는 단순 일자리를 얻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사회구조는 이미 하층민으로서는 그리 큰돈은 벌수가 없는 구조로 굳어버려 열심히 일해도 별로 나아지는 것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성공하는 사람도 있는지라 그런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신분상승을 하게 되리라는 겁니다.
"정부가 뭔 돈이 그리 많아 91.5%에 이르는 숱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겠느뇨?"
통일이 안 된다 치고…….(될지도 모르겠지만) 10년 후의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 명을 헤아린다 치고……. 한 사람에게 부담되는 금액은 30만원 내외입니다. 즉 4평짜리 방의 임대료와 인터넷, 컴퓨터 등의 사용료 등 기껏해야 10만원이면 족합니다. 그리고 매월 각자에게 지급되는 전자화폐는 지금 가치로 환산하여 20만원 내외입니다. 그 돈으로 먹는 거 하며 입는 거를 해결해야하는데 물론 충분하지요. 대량생산되는 인스턴트 음식은 값이 아주 쌉니다. 아프면 약값 들고 기타 등등 쓰임새가 좀 더 들 때도 있지만 '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씹게 된다.'고 없으면 없는 대로 버티는 것이 없는 사람들의 근성이지요.
그러니 5천만 명의 91.5%면 4천6백만 명을 정부가 먹여 살리는 것인데 한 사람당 월 30만원씩 계산하면 매월 총13,800,000,000,000원(13조8천억 원)이 소요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년 165조6천억 원이 소요된다는 계산인데 그 정도의 금액은 큰 부담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소 허황된 얘깁니다만, 10년 후의 당신은 어느 부류에 속하게 될지 스스로 진단해 보시지요. 신 귀족층에 해당될까요? 아님 상류층에 속하게 될까요? 아님 중산층에 해당될까요? 혹시 '만족한 돼지'인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건 아닌지요?
10년 후에 우리 모두는 현 삼성그룹의 후계자 '이재용' 씨를 신으로 받들어 모시게 되지나 않을까 싶네요.
"하늘에 계신 이재용 아버지, 이재용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옵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