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강 외 4
- 바라나시 1
김덕남
산산조각 깨어진 나, 산산조각 흩어졌다
엉겁결 발을 들고 갈 곳 몰라 서성이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갠지스를 굽어본다
깨어진 얼굴 위로 떠내려가는 기도들
소용돌이 까르마가 나를 덮쳐 오는 날
꽃불의 간절함마저 재가 되어 떠 간다
녹야원에서 무릎 꿇다
- 바라나시 2
사슴뜰 울려퍼진 첫 음성 듣습니다
사방으로 퍼져가다 심방을 두드리는
헐벗은 영혼 자락에 방울 하나 답니다
귀 열어 당신 말씀 전율로 다가오는
눈 열어 저 높은 곳 심연에 파문 이는
떨림은 눈동자 싸고 물결치며 흐릅니다
숲에서 걸어나와 생의 근원 찾아가신
거룩한 발자국을 한 발 한 발 따라가며
한소끔 끓는 심처에 눈부처를 심습니다
이슬
- 부다가야 마하보디 대탑
뉘신 지, 날 부르며 별을 안고 아롱이는
어둠 속 길 잃을까 천 개의 눈을 뜨는
아득한 기억 밖에서 나를 향해 반짝이는
눈시울 굴러내려 가슴에 맺혀 있는
살여울로 부서지다 은하로 흘러가는
눈 한번 감는 사이에 그렇게 왔다 가는
룸비니로 가는 길
- 네팔
당신이 오실 길에 옷을 벗어 깔게요
긴 머리 모두 풀면 사뿐 밟고 오세요
마음눈 환히 뜨고자 발끝으로 갑니다
수미산 머릴 베고 바다에 발을 뻗쳐
해와 달 나눠 쥐고 불새로 오는 당신
보랏빛 연꽃 송이를 무릎 아래 바칩니다
거푸집
- 쿠시나가르 열반당
육신의 문을 열자 살별이 날아온다
산란한 별빛으로 카스트를 불사를 때
저 환한 기쁨을 꿰어 인드라로 비춘다
천둥도 잠재우고 번개도 눈 감기고
찰나에서 영겁으로 꽁지별이 스쳐가듯
광배로 뿜어나온 빛 해탈교를 건넌다
- 시작노트
길에서 시작하여 길에서 생을 마감한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길에 동참했다.
길 없는 길을 만들고 길 위에 길을 낸 한 인간의 고뇌와 수행, 그 고행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부처님은 일생을 나무 아래에서 시작하여 나무 아래에서 마치셨다. 룸비니의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나시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시고, 쿠시나가라의 사라 쌍수 아래에서 열반하셨다. 태자의 몸으로 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벗어던지고 길에서 생을 마친 그는 인간일까, 신일까.
순례하면서 나는 무엇을 느꼈나. 욕망만 가득한 채 살아온 게 보인다. 이제 내 안의 욕망을 그러려니 하고 알아차림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매 순간 충실한 삶이 바로 내 인생의 주인임을 느낀다.
- 《시조시학》 2024. 여름호, 시조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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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댓글로 하루가 행복합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 불교의 교리를 꿰뚫고 계시네요.
저는 아직 흉내만 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