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밖으로부터 왔다”고 함은, 바로 마음을 깨치는 것이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종(宗)에 미혹하면 멀리 다른 지방의 밖에 있게 된다. |
마치 『화엄론(華嚴論)』에서 이르기를 “열 부처님 세계의 작은 티끌 수같이 많은 세계 밖에서 왔다 함은, 미혹함으로부터 믿음에 들어감을 밝히기 때문에 ‘왔다’고 하며 ‘저 세계’라고 말한다. 그 안에 계신 부처님 명호는 부동지불(不動智佛)이다 함은 부동지불임을 밝히기 위함이니, 이것은 시방의 범부와 성인이 똑같이 근본의 지혜가 있음을 여기서 밝혔다”고 한 것과 같다. |
지혜는 믿는 마음을 능히 일으키기 때문에 그를 이름하여 ‘왔다’고 하며, 이 부동지불은 온갖 중생에게도 언제나 스스로 지니고 있다. 만일 모양을 취하면서 미혹함에 따르면 곧 티끌의 장애가 그지없게 되며, 만일 한 생각에 미혹함을 깨닫고 모양을 통달하면 곧 깨끗하기 마치 허공과 같다. |
미혹함에 따르게 된 것만을 ‘밖’이라 일컫고 깨치는 곳을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로 부처 세계는 본래 멂과 가까움과 안과 밖 등의 장애가 없고 가고 옴이 없으며, 끝없는 부처 세계는 털구멍과 작은 티끌의 겉을 벗어나지 아니한다. |
지금 멀고 가까움에 이른다는 뜻은 처음 신심 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넓어지고 크게 하기 위하여, ‘저 세계 안으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또 미혹함으로부터 깨쳐 들음을 밝히기 때문에 ‘왔다’고 말한다. |
그러므로 종경(宗鏡) 안에 들어가면 도리로 보아 배움은 끊어야 한다. 백 사람[百氏]의 학설은 한 분의 가르침으로 밝힐 수 있고, 온갖 변화[萬化]의 실마리는 한마디 말로써 단정할 수 있다. |
혹은 이르기를 “향적(香積)은 여기서부터 42항하 세계에 떨어져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은 42위(位)를 겪고 지내는 마음 자리 법문이다. 혹은 이르기를 “꽃과 영락을 뿌리매 공중에서 네 기둥의 보배 받침이 이루어졌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은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으로서 한 마음에 갖추고 있는 네 가지 덕[四德]인 열반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이르기를 “이 꽃과 일산 등은 모두가 무생법인에서 생긴 바다”라고 했다. |
혹은 부처님께서 “그 때의 사슴 왕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곧 옛날과 지금을 결합시키면서 자기 마음이 하나와 같은 법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