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 교정 중
경산 시장 골목길에서 횟집을 하고 있다. 블록으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다. 주방에서 일하면 가게 홀을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출입하는 손님을 볼 수가 없다. 가게 인수 전 부터 출입문 윈도어 상단부에 작은 종이 하나가 달려 있었다. 문 여닫을 때마다 소리를 낸다. 울리는 그 소리가 가게 방문하는 손님맞이 주인다. 참 고마운 소리요 풍요의 소리다. 풍경이라는 작은 종이 주인 지기를 한다. 손님 마중의 물건이지만 보물 같은 존재다.
비내골 텃밭 버찌 나무 가지에도 누른 빛 작은 종이 있다. 바람 받으면 소리가 난다. 몇년 전에 달았다. 밭 드나들 때마다 맑은 소리 마중받기 위해서다. 낭만의 운치 맛이 참 좋을 것 같았다. 버찌나무의 꽃 화무랑 어우러지면 신기루 같은 만화 세상이 만들어진다. 정말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그림 속에서 우러 나는 풍경소리는 천상의 음악이다. 언제나 멋난 산수의 자연 풍경 더욱 빛이 난다. 정말 멋진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풍경이 산속 버찌 나무에 그냥 매 달려 있다
가게와 밭에서 권세처럼 턱 하고 한 자리 잡고 있다. 누른 황동 재질 세수가 던 색조는 더 깊은 영감을 보이게 한다. 지나가는 바람에 지나가듯 흔들림 흘려 보내는 소리. 그 시간을 애원하듯 그 순간을 즐기듯 나는 고유의 소리가 못난 풍상을 묻게 한다. 요쯤은 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낭만과 풍요가 힘듬인가? 바람 불어도 세연에 물던 끝자락 매달림이 녹이 슬었나? 오가는 이 없어 그냥 침묵하는 가게 작은 종도 동격이다. 두 장소의 풍경이 풀이 죽어 있다. 밥을 많이 주면 기운이 살아 날까? 나의 돈 힘 부실함이 문제인 게다.
소의 울음소리. 아이의 울음소리. 풀잎 품는 바람 불어 우는 소리. 시간의 소리들. 인간이 느껴 보는 이런 감성의 소리가 좋다. 처음의 소리로 칭하고 싶다. 탄생과 죽음의 소리가 거기에 같이 있다고 감히 말한다. 차갑고 예리하다. 한없이 포근함이다. 생이요 삶이요 역사 이야기다. 오랜 시간이 저장된 유구의 소리 있다. 그 사이에 인간의 영역이 담겨 있슴이다. 역사라는 단어인 시간으로 한몫이 되어 채워져 있다. 통쾌라 하고 곡이라 하고 싶다. 처음의 소리인 갓 태어난 외손주의 울음소리가 듣기 좋은 웃음의 이유인 것처럼. 삶의 풍경속에서 풍경소리를 불쑥 찾아 본다.
처음의 소리가 무너진다. 소리가 역사에서 사라진다. 인간 욕망이 부른 과욕으로 앞이 안 보인다. 부딪침과 목성 높은 소리만이 난무한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마지막 죽음에서 우는 곡성처럼 시원한 삭임의 소리가 힘을 잃어 간다. 태초부터 내려오는 울림의 소리를 듣고 싶다. 산속 계곡에도 산수 생물들의 생존경쟁 싸움장만 보일까? 약한 것 사라지는 현상. 큰 나무 더 잘라는 것. 꽃피고 지고. 자연의 순리가 순 아름다움만이 아닌 생이 각박하다. 능력이라 말해 본다. 자유의 법칙에서 살아남기. 슬픔과 기쁨의 현상이 물려 돌아 감이 보인다. 순리의 소리라고 할까?
고추와 가지 상추는 자라면서도 자유 분망하다. 수년을 스스로 사는 고사리는 겨울이라며 고개 숙여 움츠린다. 텃밭 비내골의 현상이다. 봄날 밭둑 버찌나무 가지의 꽃 풍경은 언제부턴가 소리가 없다. 벌들이 찾아 들지 않는다. 초목은 약육강식의 전장 전화戰禍에서 생존이라지만 공존과 상부상조도 같이 있다. 살생과 공생을 아는 태초의 심성을 행하고 있다. 새소리가 들린다. 낙엽 하나가 난다. 이런 광경이 늘려 있다. 자연 풍경 현상들. 순리라고도 하면서 사계를 보여 주는 소리다. 산수는 그대로 인데 풍경소리는 어디로 갔을꼬? 저기 풍경이 소리를 곧 채워 줄거라 믿었다. 요망사항으로 설치했다. 요망사항은 요망사항일 뿐일까?
절간은 바람 소리에 갇힌다. 처마에 작은 종소리 품고서 초목의 소리 난다. 추녀 팔 벌려 있는. 수양의 자리다. 마음 삭발의 의미가 종소리 듣는 거라며 사찰은 좌정했다. 고 저녁 한 분위기 만드는 목탁 소리와 종소리가 애심을 모은다. 향수를 찾는다. 시간은 허무다 하면서 바람이 지나간다. 대답하지 않는 종, 속으로는 울까. 삶을 숨기는 참. 수양을 소리로 들려주는 종. 석양의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올 때 강아지가 총총 찾는. 한적한 뜨락 봄날 마음은 영원이리라. 마을에 연기가 오르는 때 개소리가 막 들려온다. 잿빛 두루마기로 몸 가리고 산. 세속을 위한 좌정의 터에 오름이 열린다. 초연히 바람 불어와 추녀의 작은 종은 곱게 소리를 친다. 동경의 소리 향수의 소리다. 이 소리를 보쌈해 볼까? 소리 내는 능력이 무식인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영탁이가 인기다. 가게 윈도어 상단에 작은 종은 영탁이 노래보다 먼저 있었다. 칼잡이 업을 시작하면서 보게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 엄청 좋았다. 나는 피를 싫어한다. 하지만 붉은 피를 직접 보는 횟집을 한다. 글 품을 잊을 수 있는 종. 출입문 여닫을 때 잘 울렸다. 청아함의 소리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떨떠름 종소리로 느껴지곤 한다. 문지기 역할을 하기 때문일 거다. 남은 돈 투자해서 마지막 생업으로 시작했다. 풍경소리 들으면서 풍요의 멋을 기대했다 해 볼까?. 경자년 코로나 광풍에 소리가 팍 죽는다. 가끔씩 울리는 소리는 가슴을 더 힘들게 한다. 예쁜 풍경소리 나기는 동경이었다. 침묵의 시간은 길어진다. 한구석 자리만 차지한 물건 전시품이 된다. 장사의 재주가 불빈하면서 욕심은 많으니 어찌 좋은 소리가 날까? 저 물건의 잘못이 아니다.
초연해지기다. 절건의 소리 다를까? 작은 종은 가게와 비내골 밭에서 맑고 좋은 깊은 정감을 얻으려 했다. 둘 다 잘 울리지 않는다. 왜 울리지 않을까? 무게가 무거운가 보다. 천년 바위 흉내? 종벽 쳐야 하는 동그란 추가 힘이 든가 보다. 기다림에 들림이 없다. 가게 문이 수시로 활짝 열리면. 버찌 나무 가지가 수시로 춤을 추면. 침묵하던 종소리 만들어 질 것이다. 과욕을 줄이고 보시의 마음을 내어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자.연민이 번민을 지나고 생의 가운데에서 인연을 알면, 웃음과 울음 같은 내면의 소리가 날 것이다. 자연의 공생 물로 아울려 짐을 기다려 본다. 풍경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24. 03. 13.
바람이 부니 초목이 변한다. 자란다가 맞다. 소나무 참나무들이 눈으로는 자람을 못 보는데 텃밭의 그림자는 해마다 더 길어짐을 본다. 장대비 오는 날 계곡에 용울음소리 난다. 나뭇가지 돌부리 데리고 가는 아우성의 소리. 교향곡 같은데 마지막 사망 곡도 있다. 한적한 물소리가 솔잎 가지 찾을 때 포근한 햇빛이 좋아한다. 초록이 진 녹이 되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금방 수북이 쌓이는 계절있다. 눈이 오는 날 산야가 모두 하얗다. 뭇 때가 낀 것들 못 오게 신성한 소도지역으로 만든다.
풍경소리 / 초고
주방에서 일하면 가게 홀을 볼 수 없는 구조다. 출입문 윈도어 상단부에 작은 종이 하나가 달려 있다. 문 여닫을 때 울리면 그 소리를 듣고 손님 들린 걸 알기 위해서다. 풍경이라는 작은 종이다. 손님 마중하는 물건이다. 비내골 텃밭 버찌 나뭇가지에도 달려 있다. 바람 받으면 소리가 난다. 밭 드나들 때마다 맑은 소리 들으려고 달았다. 가게와 밭에서 한자리 턱 하게 잡고 있으면서 둘 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묵언 수행자도 아닌데.
소의 울음소리. 아이의 울음소리. 시간의 소리. 인간이 느끼는 감성의 소리. 처음의 소리로 칭하고 싶다. 탄생과 죽음의 소리가 같이 있다고 본다. 차갑고 예리하다. 한없이 포근함도 있다. 생이요 삶이요 역사 이야기다. 오랜 시간이 지난 유구의 소리다. 그 사이에 인간의 영역이 담겨 있다. 역사라는 단어에 시간으로 채워졌다. 외손주의 울음소리가 듣기 좋은 이유다, 웃음이 좋은 이유다. 처음의 소리가 무너진다. 소리가 역사에서 사라진다. 인간 망이 부른 과욕으로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부딪침과 목성 높은 소리만이 난무한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마지막 죽음에서 우는 곡성처럼 시원한 삭임의 소리가 힘을 잃어간다. 태초부터 내려오는 울림의 소리를 듣고 싶다.
바람이 부니 초목이 변한다. 자란다가 맞다. 소나무 참나무들이 눈으로는 자람을 모르는데 텃밭의 그림자는 해마다 더 길어짐을 본다. 장대비 오는 날 계곡에 용울음소리 난다. 나뭇가지 돌부리 데리고 가는 아우성의 소리. 교향곡 같은데 마지막 사망 곡도 있다. 한적한 물소리가 솔잎 가지 찾을 때 포근한 햇빛 좋아한다. 초록이 진 녹이 되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계절이다. 눈이 오는 날 산야가 모두 하얗다. 뭇 때가 낀 것들 못 오게 신성한 소도지역으로 만든다. 고추와 가지 상추는 자라면서도 자유 분망하다. 수년을 스스로 사는 고사리는 겨울이라며 고개 숙여 움츠린다.. 텃밭 비내골이다. 밭둑 버찌나무 가지에 매달린 작은 종 풍경은 언제부턴가 소리가 없다. 조용하다. 초목은 약육강식의 전화戰禍에서 생존한다. 살생과 공생을 아는 태초의 심성을 행하고 있다. 새소리가 들린다. 낙엽 하나가 난다. 이런 광경이 늘려 있다. 자연 풍경이다. 순리라고도 하면서 사계를 보여 주는 소리다. 산수의 소리다.
절간은 바람 소리에 갇힌다. 처마에 작은 종소리 품고서 초목의 소리 난다. 추녀는 늘 팔 벌려 있다. 수양의 자리다. 삭발의 의미가 종소리 듣는 거라며 사찰은 좌정했다. 고 저녁 한 분위기 만드는 목탁 소리와 종소리가 애심을 모은다.. 옛 향수를 찾는다. 시간은 허무다 하면서 바람이 지나간다. 대답하지 않는 종은 속으로는 울까. 삶을 숨기는 참. 수양을 소리로 들려주는 종. 석양의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올 때 강아지가 총총 찾는 곳 한적한 뜨락. 봄날 마음 영원이리라. 마을에 연기가 오르는 때 목탁 소리가 막 들려온다. 잿빛 두루마기로 몸 가리고 세속을 위한 좌정의 터. 초연히 바람 불어와 추녀의 작은 종은 곱게 소리를 낸다. 동경의 소리 향수의 소리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영탁이가 인기다. 가게 윈도어 상단에 작은 종은 영탁이 노래보다 먼저 있었다. 칼잡이 업을 시작하면서 보게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 엄청 좋았다. 나는 피를 싫어한다. 하지만 붉은 피를 직접 보는 횟집을 한다. 출입문 여닫을 때 잘 울렸다. 청아함의 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떨떠름하게 웃어야 하는 종소리로 느껴지곤 한다. 문지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남은 돈 투자해서 마지막 생업으로 시작했다. 풍경소리 들으면서 풍요의 멋을 기대했다. 경자년 코로나 광풍에 소리가 죽는다. 가끔씩 울리는 소리 더 힘들게 한다. 풍경소리 나기를 동경하였는데. 침묵의 시간은 길어진다. 한구석 자리만 차지한 물건으로 된다.
초연해진다. 작은 종은 가게와 비내골 밭이나 같이 달려 있다. 둘 다 잘 울리지 않는다. 왜 울리지 않을까? 무게가 무거운가 보다. 종의 벽 쳐야 하는 동그란 추가 힘든가 보다. 기다리는 소리는 들림이 없다. 들릴 것이다. 연민이 번민을 지나고 생의 가운데에서 인연을 알면 다시 소리가 날 것이다. 웃음과 울음 같은 내면의 소리가 날 것이다. 자연의 공생 물로 아울려 짐을 기다려 본다. 아름답고 정겨운 본래의 풍경 소리를.
18. 04
가게, 산의 풍경 설명
풍경의 고유 용도
풍경 동경 마음
지금 풍경의 용도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