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특별히 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던 어제와 다르게 흑백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소리도 없이 피었던 목련잎은 보도블록 위에 차갑게 식어있다. 이곳저곳 밟혀 멍들어 버린 모습에 괜히 안쓰럽다. 이런걸 보고 봄을 탄다고 하는 걸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걷고만 있는데 깊은 물 속으로 침잠하는 것만 같다. 머릿속은 생각들이 뒤엉켜 어지럽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나오는 가사들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적막이 싫어 듣고 있는 것뿐.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있자 하니 고작 한 시간 사이에 쌀쌀해진 바람이 살결에 닿는다. 봄인데도 해가 질 때쯤이라 차가워진 건지, 하늘을 덮은 먹구름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따른 결과가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유 모를 우울감의 원인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 바보 같기도 하다. 발치에 떨어져 있는 목련잎을 주워본다. 하이얀 백지장 같은 이파리에 멍이 들어 얼룩진 게 참 못생겼다. 봄이 왔다고 알려주더니 저 할 일 다 했다고 금세 떠나버린다.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내게 말하려 한 건지 시들어버린 목련에 해주고 싶었던 말인지. 이렇게 말하면 우울감이 달아날까 입 밖으로 뱉어본다. “괜찮아.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괜찮아.“ 효과가 없을 줄 알았는데 시끄러울 정도로 쿵쿵거리던 심장 소리가 잦아든다. “괜찮아. 괜찮아. 잘하고 있어. 괜찮아.” 나 자신에게 해주는 위로가 처음인지라 서툴기만 하다.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미어지는지. 먹구름보다도 먼저 울어버렸다. 따뜻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뭐든 잘될 거라는 위로를 듣고 싶었던 걸까. 머릿속 엉켜있던 실타래는 길을 찾은 듯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한다. 눈을 떠보니 언제 피어있던 건지 모를 벚꽃과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지나며 헤어져야 할 것들이 있다. 목련은 지고 벚꽃은 피어난 것처럼. 벚꽃이 지면 목련은 다시 피고 따스한 바람은 다시 차가워지기 마련이다. 나도 그러한 것이다. 예전 일은 잠깐 묻어두고 새로운 꽃을 피울 때가 왔다. 시작되었다. 나의 봄이. 나의 개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