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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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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츠빙글리, "주기도"
장코뱅 추천 3 조회 243 24.06.11 07:31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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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6.11 07:40

    첫댓글 “주기도문”, 『GODpia 성경서전: 아가페출판사』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를 가리킨다(마 6: 9-13 ;눅 11: 2-4 ; Did 8:2).
    이 주기도문 내용은 하나님의 이름, 나라, 뜻과 관련된 간구들, 그리고 기도를 드리는 자들의 육체적, 영적 필요와 관련된 간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도문은 누가복음에서는 단순한 형태 "아버지"로, 마태복음에서는 보다 긴 형태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유대교에서는 흔한 일이었다(예.사63: 16;렘 3:4).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아들로서(눅 2:49) 하나님께 대하여 '아바'라고 부르셨고(막 14: 36;참조. 롬8:15;갈4:6), 그의 제자들에게 동일한 형태의 말을 사용하도록 권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그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강한 의미를 전해 준다(참조. 마 6 : 8,32;벧전 1:17).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의 연관성은 간구의 처음 내용에서도 발견된다(이는 종종 '너희' 간구라고 불리운다).
    누가복음서의 두 가지(눅 11:2) , 그리고 마태복음서의 세 가지(마 6: 9-10) 간구들은

  • 작성자 24.06.11 07:41

    유대 예배식의 축복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들의 내용은 이 유대적 축복에 비추어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의 인격을 통해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마 4:17;눅 11: 20;16:16),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연관을 맺고 있다. 양식에 대한 간구(이는 '우리' 간구라고 불리 운다)에서 '일용할'로 흔히 번역되는 단어는 난해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해석되어져 왔다(예. “내일의 [RSV난외주], 오늘의, 미래의, 필요한, 계속적인, 매일 필요로 하는 것을 충분히 채워주는" 등). 죄 용서에 대한 간구에서 이 용서 받은 죄의 상징어로 사용되어 있는 '빚' (12절; 참조. 18: 23-25 ;눅 7: 41-43,47-48)은 누가복음에서는 '죄'로 번역되어 있다(눅 11:4).
    마6: 14-15의 기도 후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에 대한 이 본문의 내용은(참조. 18: 23-25;막11:25-26) 사실상 팔복 중 다섯 번째 복(마 5:7)에 대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의 간구(7:13;눅 11: 4)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는

  • 작성자 24.06.11 07:41

    오래 전부터 해석상 어려움이 있어 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셨지만(창 22:1 ;출 17: 7 ;신 33:8;대하 32:31), 악에 빠지도록 유혹하지는 않으셨다(약 1: 13).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신실성 여부를 드러내기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신다(신 8:2).
    그는 유혹의 세력을 억제케 하신다(욥 1:12;2:6 ;고전 10:13;참조. 왕상22:21-23).
    '유혹'(헬. '페이라스모스')은 광의적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로, "시험, 시련, 고난”,혹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겪은 어떤 체험(참조.4: 12)등을 뜻한다. 이 간구의 두번째 부분인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누가복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악'은 추상적인'악', '악한 자' 곧 마귀나 적그리스도(유대주의는 이 악이 인간 속에 선과 더불어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혹은 말세에 나타날 악('시험'도 이 악을 가리킬지도 모른다)을 가리킬 수도 있다. 마6: 13의 몇몇 고대 및 후기 사본들에는 결론적인 송영(대상 29: 10-13의 축복에 근거)이 첨가되어 있는데, [12사도의 교훈집](Didache)에는 보다 짧은 형태(권세와 영광이 당신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로 나타난다.

  • 작성자 24.06.11 07:42

    KJV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당신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로 되어 있다. 비록 가장 권위 있는 사본들이 이 송영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참조. [12사도 교훈집] [Didache]및 서방 역본)사용되어 왔으며, 주기도문에 있어서 매우 적절하고 소중한 결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송영이 마태복음의 원본에는 없다는 사실은 14, 15절이 12, 13절 다음에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어떤 학자는 주기도문이 산상수훈을 기도 형식으로 요약하고 있다고 올바로 지적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최종적으로 완전히 세워질 때까지 하나님 나라의 법을 더욱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이 기도를 늘 드려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라고 하시지 않고 “너희는 기도해야 한다”하고 하신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주기도문은 예수님 자신이 했거나 할 수 있었던 기도가 아니다. 첫째,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서가 아닌, '나의 아버지'로서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 되심은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즉 그는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던 것이다. 둘째

  • 작성자 24.06.11 07:43

    둘째, 그는 하나님께 그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의 뜻을 항상 완전히 행하셨으며 결코 죄를 범하지 않으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에서 개인적인 간구들은 유대 종교적인 문헌에서 여러 번 발견되지만, 전체적으로 주기도문이 나오는 곳은 전혀 없다. 주기도문은 필적할 만한 것이 없는 최상의 기도문으로, 짧은 내용 안에 참된 기도의 진수를 모두 담고 있다.

    ※ 참고 문헌J. Jeremias.'The Lord's prayer in Modern Research,” EXPT, LXX-I,1959-60, pp 141-146

  • 24.06.11 08:50

    @장코뱅 진짜 풍성한 내용이네요. 잘 읽어 보았습니다.

  • 24.06.11 10:21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6.11 07:57

    『IVP 성경주석: 복음서』, “마태복음 6장”

    6절. '골방'은 아마 창문도 없고 그 집에서 유일하게 문을 잠글 수 있는 창고를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거의 공적이지 않은 곳을 대표한다.

    7절. '중언부언한다'는 것은 헬라어로, 다른 곳에 알려지지 않은 '무의미한 말'을 번역한 것으로서 '의미 없이 지껄이는 소리'를 말한다. 초점은 (AV가 시사하듯) '반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함과 시끄러움 그리고 하나님의 눈에 띄려면 큰 소리로 하나님을 협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있다. 참 기도는 기술도 연기도 아닌, 일종의 관계다.

    9-13절. 마태가 제시하는 주기도문은 누가복음 11:2-4에 있는 것보다 길다. 대개 우리가 사용하는 판은 그보다 더 길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그 영광송은 후대의 마태복음 사본에만 나온다.

    14-15절. 이 구절은 용서라는 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경우에만 얻어지는 것으로 제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18:21-35을 보라. 거기서는 용서함과 용서받음 사이의 연결이 좀 더 명확하게 제시된다. 12절의 '빚'은 우리에게 그 비유를 생각나게 한다.

  • 24.06.11 09:09

    온갖 탐욕과 이단적 욕망에 사로 잡혀서 학습된 인위적 방언을 하는 신비주의자들이 읽으면 뜨끔할 내용 같습니다.

  • 24.06.11 17:40

    @노베 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6.11 07:56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것과는 다르게, 누가 본문은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미리 짜여진 형태의 기도문을 따라서 기도하라고 명하지 않으시고, 단지 우리의 모든 소원과 기도의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만을 제시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자유롭게 하나님께 구해도 되는 것들을 여섯 가지로 포괄하신다. 이러한 가르침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한 것은 없다. 기도는 가장 중요한 경건의 훈련인데도, 우리는 우리가 어떤 내용의 기도를 드려야 하고 어떤 것들을 우리의 소원들로 아뢰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입술과 마음이 하늘의 주인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기도의 규범을 제시해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 인정받는 합당한 기도를 드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규범을 기준으로 삼아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이 기도문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의도는 우리가 어떤 문구들을 사용해서 기도해야 하는지를 규정해 놓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가 명한 형태의 기도문에서

  • 작성자 24.06.11 07:56

    벗어나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원하여야 하는지와 관련해서 그 지침을 제시하여 우리의 소원들을 규율함으로써 그 소원들이 그 테두리와 한계를 벗어나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올바르게 기도하는 것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주신 규범은 그 기도문을 구성하는 자구(句)들이 아니라 내용 자체에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기도문은 여섯 가지의 간구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세 가지의 간구는 우리와는 상관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점을 꼭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의 간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율법이 두 개의 돌판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첫 번째 돌판은 경건의 의무들(pietatis officia)을 담고 있고, 두 번째 돌판은 사랑의 의무들(caritatis officia)을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기도문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고려하고 구하라고 명하심과 아울러,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유익들을 구하는 것도 허락하신다.

  • 작성자 24.06.11 07:57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우선시하는 마음이 되어 있을 때에만,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는 마음 상태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데만 마음이 팔려서,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도외시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본말(本)이 전도(顚倒)된 정말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주석: 공관복음』, “마태복음 6장”.

  • 24.06.11 09:21

    @장코뱅 역시 칼빈의 설명은 체계적이면서도 옛날 분 답지 않게 참신합니다.

  • 24.06.11 10:31

    @장코뱅 칼빈이 말은 장황하지만 항상 논리가 분명한데 여기서도 주기도문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설명하니 좋네요. 첫 부분 3개는 경건에 대한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고, 나머지 부분 3개는 사랑에 대한 것으로 우리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고.

  • 24.06.11 17:43

    @코람데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24.06.11 09:22

    츠빙글리는 신학적 실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경건과 기도의 깊이도 매우 심오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글입니다.

  • 작성자 24.06.11 10:04

    네, 공감해요. 댓글 감사합니다.

  • 24.06.11 10:51

    츠빙글리는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없고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군요.
    죄 용서에 대해서 내가 원수를 대하는 태도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더 잘 대해주시지는 않을 것이다 라면서, 주기도문은 나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는 기도이고 나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게 만드는 기도라고 한 말에서 그의 위상이 느껴집니다. 이 부분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이 되는군요.
    츠빙글리가 진실한 기도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람들 앞에서 소리쳐 기도하는 것은 위선이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이런 문제들이 있네요.

  • 24.06.11 17:46

    네, 좋은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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