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幷川 至櫟川亭子 將軍峰在其左 靑華山鎭其後 面面山川 雖鬱鬱蒼蒼 以風烈雪虐 故未了見水石 而歸館於新基
幷川(병천)을 지나 櫟川(역천)정자에 이르니, 將軍峰(장군봉)이 좌측에 있고, 靑華山鎭은 뒤쪽에 있다. 여러 산과 냇가가 비록 鬱蒼(울창)하여도 매서운 바람이 불고 큰 눈이 오는 바람에 水石들을 보질 못하고, 新基의 객관으로 돌아왔다.
※櫟泉亭: 광정에 있는 정자로 력천 宋明欽의 父 宋堯佐가 숙종 29년에 창건했으며,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려 하므로 이조판서요, 사도세자의 스승이던 송명흠이 극간을 하고, 이곳에 은둔하여 제자를 길러 낸 곳이다. 櫟상수리나무 력.
※櫟泉 宋明欽은 1705~1768 정조의 스승으로 알려진 조선후기 학자. 1764년 贊善 때 經筵官이 되어 정치문제를 논하다가 왕의 비위에 거슬려 파직 당했다. 본관 恩津. 字 晦可. 號 櫟泉. 시호 文元. 李縡(이재)의 문인. 士禍를 피해 아버지를 따라 沃川 등지에서 살았다. 그 뒤 천거를 받아 충청도 都事·持平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 1755년(영조 31) 노모의 간청으로 玉果縣監이 되었으나 모친상을 치른 뒤 사직했다. 죽은 뒤에 復官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櫟泉集, 櫟泉疏末條陳이 있다.
※鬱鬱蒼蒼: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매우 푸르고 울창함. 수목이 울창한 모양. 鬱답답할 울. 蒼푸를 창.
主人家主翁 亦術士 而指此 謂牛腹洞正基云 主山 則紗帽峰 落脉爲三印峰 老仙峰爲案 老人星在南鍾皷巖 在基前數十步 外森列峰巒
주인인 가장께서도 術士이시니, 이곳을 가리켜 말하길 牛腹洞(우복동) 바른 터전이라 이른다. 主山은 紗帽峰(사모봉)에서 뻗어 내린 곳이 三印峰이고, 老仙峰이 案山(안산)이 되고, 南極老人星은 남쪽에 鍾皷巖(종고암)이 있고, 우복동 正基 앞에서 수십 보 밖에 森列峰(삼열봉)이란 뫼가 있다.
※家主翁: 家長. 牛腹洞: 靑華山은 경북 문경시의 농암면 화산리와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 984m). '청화 지명은 『택리지』에 청화산은 내외 仙遊洞을 뒤에 두고 앞에는 龍遊洞을 임하였다. (중략)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이 나타나서 가리는 것이 없으니 자못 福地이다. 라는 기록에 등장한다. 牛腹洞이라는 명당이 있다고 전해지며, 淸潭·靑華山人이란 호를 갖는 이중환(1690~1752)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皷: 鼓의 俗字. 巒뫼 만.
自誇貴格 而自己料量 但恨案近太高 又未圓局 且水弱山 强田土 甚瘠
스스로 貴格이라 자랑하는데, 자기 생각에는 다만 案山이 가까이에 너무 높고, 또 둥글지가 않은 것, 또 물은 적고 산세가 강하므로 밭이 너무 瘠薄(척박)한 게 恨스럽다고 한다.
※瘠파리할 척, 여위다.
十一日陪斯文 觀八判洞 南有葛嶺 北有板峴 西有夜峙 東有安到里 遲到里 卽洞天水門 水北又有飛於峙 峙左有華山洞云
11일에는 儒學에 참배하고 八判洞을 보러 가니 南쪽에는 葛嶺(갈령), 北쪽에는 板峴(판현), 西쪽에는 夜峙, 東쪽에는 安到里, 遲到里(지도리)가 있는데, 洞天의 水門이고 냇가 북쪽에는 또 飛於峙(비어치)가 있고, 고개 왼쪽에는 華山洞이라 말한다.
※陪모실 배, 遂行하다, 補佐(輔佐)하다, 더하다, 보태다, 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물어주다, 陪臣, 家臣. 斯文: 儒敎의 道義나 또는 文化를 일컫는 말. 儒學者를 달리 일컫는 말.
是日歸期 似遠與嚴友伴 行至沙潭店 李姓家留宿 翌日夜深 抵家
이날 약속이나 한 듯 멀리서 同行 嚴柱誠 친구가 돌아와, 沙潭店의 이씨 家에 이르러 잠을 자고 다음 날 밤이 깊어서야 집(凉泉山 竹田)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