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혼하였다
나는 제대하고 대구 교동시장과 거리가 가까운 곳에 방 하나 부엌 하나 있는 집을 전세로 구입하였다. 교동시장에 나의 고향 친구가 전기재료 상회를 한다기에 나는 고향 친구 사무실로 찾아갔다 .들리는 소문처럼 넓다는 사무실에 전기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직원도 몇 명과 경리 아가씨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친구 황00 씨에게 인사하면서 친구가 오랜만이네.군에서 제대하였는가를 하기에 군 3년 만에 제대하고 갈 데가 없어 친구한테 찾아왔다.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내가 자연히 군에서 공병 건설 부대에서 전기공사를 하다가 군에 제대하였다고 말하고 친구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고 황00 친구 나를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말했습니다. 친구는 자네가 기술이 얼마인지 잘 모르지만. 이곳에 있으면 전기공사 업자들이 와서 일용직을 구하고 일용직 기술자를 구하려고 전화가 온다면서 전화가 오면 친구 너도 다른 전기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여라 그러면 내일부터 아침 7시 30분까지 개인 공구 가지고 이곳 사무실로 오기로 약속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나는 제일 먼저 자전거를 한 대 사고. 그리고 전기 일할 때 쓰는 공구 벤 지. 도라 바..망치·칼. 그리고 안전밸트 공구 가방도 사고, 돈이 많이 들어갔다. 나는 자전거가 나의 재산목록 1번이기 때문에 저녁에는 방에서 나와 같이 생활하였다. 나는 간단히 아침밥을 해먹고 자전거로 20분 거리 있는 친구 사무실에 도착하니 아직 아침 7시 20분인데도 벌써 5명 정도 나와서 대기하고 하고 있었다. 나는 도착하여 친구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친구가 여러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오늘부터 나의 친구 강명조도 같이 일하기로한다고 소개하고 나도 여러 사람과 악수를 하면서 군에 제대하고 여러분과 같이 일하게 되어서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잘 부탁드린다. 하고 기다리는 중 어느 전기공사 가입자가 와서 오늘 일할 사람 3명이 필요하다 하면서 3명만 황00 사장에게 부탁하였다. 황00 친구는 가장 먼저 오늘 처음 온 강군(나)하고 다른 2명하고 공사업자 차를 타고 공사 현장에 도착하였다.
오늘 작업은 건축에 철근을 넣은 다음에 전기배관을 하는 공사였다. 우리 3명은 전기도면에 명시된 대로 한 사람은 전동·전열 배관한 사람은 전화 배관.또 한 사람은 소방공사 배관을 나누어서 하는데 나는 소방 도면을 보니 군에서 본 도면과는 차이가 컸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군에서 공사와 이곳 공사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이 현장에서 알았다.. 일을 하다가 모르면 도면 가지고 가서 고참님한테 물어보고 하여 내가 맡은 소방공사 배관은 도면대로 잘 시공하였는지 고참님께 부탁드려서 확인해 보니 한곳이 도면대로 되지 않아서 재시공하였다. 그날 현장 공사는 무사히 끝나고 건설 사장님께 그날 일당을 받아서 회사 차로 다시 교동 친구사무실로 왔다.
내가 오늘 같이 일한 고참에게 오늘 처음인데 인사 겸 내가 막걸리 한잔 사겠다며 주변 술집으로 3명이 함께 가서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먹으면서 나는 아직도 전기공사 실력이 군에서 배운 것이니 아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고 했다.. 그날 집에 오면서 현 책방에 들러서 전기공사 서적을 2권이나 싸서 집에 와서 밥 먹는 밥상에서 공부를 하면서 오늘 현장에서 배관공사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시작하여 보자는 생각으로 그날 저녁은 편안한 밤이 되었다.
이렇게 하루 품팔이 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일간지 신문에 전기기능사 2급 자격시험이 있다는 소식에 나는 날짜와 장소 시간을 메모하여 집으로 오면서 서점에 들러서 전기기능사 2급 책 한 권을 사서 밤이 새도록 읽고 또 읽었다.
시험을 치는 장소는 대구공고 시험을 치는 날 문제지를 보니 아는 문제가 많이 없어 읽고 또 읽고 하여 답안지는 시간에 맞추어서 내었다. 그리고 실기시험은 내가 하는 일이고 전선 연결 배관공사 기타 시험은 큰 어려움 없이 치루었다. 20일 후에 발표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나는 매일 일용직 생활을 하면서 오늘도 어느 현장에서 전기공사를 마치고 친구사무실에 오니 강명조 기능사 2급에 합격하였다고 나에게 전해주어 뛸듯이.기뻤다. 그래도 국가 자격증이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황00 친구 나를 부르더니 너는 일용직일 그만하고 00 전기공사 업체에서 월급 받으면서 생활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기에 나는 이곳 일용직 수입보다는 적지만 안정된 직장이고 퇴직금도 준다니 나는 00 전기공사에 가기로 마음먹고 친구에게 공사업체로 가겠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정중히 인사하고 그날은 일용직일 도 나가지 안았다.
다음날 친구가 말해준 전기공사업체에 가서 교동 황00 사장 소개로 왔습니다.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다음은 공사부 사무실에 가서 사장님이 강명조는 오늘부터 우리 공사부에 일하게 된 사람이다. 다 같이 인사하고 앞으로 공사부가 잘되길 바란다면서 그날부터 공사부에 일하게 됐다. 나는 이곳 전기 공사부에 열심히 일하면서 맞은바 책임을 완수하면서 사장님 월급은 내가 노력해서 드린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하였다. 그리고 그때는 왜 그리 전기고장이 많이 나는지 한 달에 몇 번씩 밤중에 전화로 연락이 오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있어서 밤에 어디 가게 되면 인근 파출소에서 자기 팔목에 도장을 찍어서 길을 가다가 순찰하는 분을 만나면 확인을 보여 주면서 전기공 사부 사무실까지 자전거로 가서 자재를 챙겨서 차에 싣고 경산에 있는 직물공장에서 밤이 새도록 수리하고 나면 아침이 되었다. 잠 한숨 못 자고 얼굴이 부어서 사무실 오면 그렇게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 당시는 이런 일은 아주 많으니까. 그리고 주변에서 아침 먹고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옛날부터 전기공 사무는 출근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없다는 전기공 사부의 구호다.
세월이 홀려 어느 날 고향에 어머니께서 맞선을 한번 보았으면 하시길래 나눈 나는 얼마나 반갑던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정해주신 날짜에 나의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학명리마을로 갔습니다.
맞선보는 날 나는 정장 옷이 없어서 그냥 상위는 회사 복을 입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잘못했다는 마음 듭니다(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장모님)마는 버스를 타고 선보는 마을에 내려서 맞선볼 집에 들어가서 장인어른 될 사람에게 큰절로 인사드리고 장모님에게도 인사드리고 지금 나의 집사람 될 사람에게 첫마디가 가족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딸 4명에 남동생 1명 나는 너무 다복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집사람은 뭘요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장인어른 되실 분은 내 앞에서 나는 사윗감으로 좋다고 말씀하십디다. 집사람은 5남매 중 맞이였습니다. 그러니 내가 장가가면 맞 사위가 된다.
나는 그길로 대구 전기공사업 직장에서 일하고 있으니 결혼 날자가 나왔다면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은 동명 처가 집에 하고 3일 만에 우리 집으로 와서 7일 만에 나의 아내와 대구에서 신혼생활이니 혼자 살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방도 조금 넓고 부엌도 조금 큰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는 계속 공사업체에 잘 다니면 나의 아내는 하루가 지루하다면서 홀치기(가내부업)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혼자 생활하다가 옆자리에 배우자 한 사람이 있으니요. 정말로 넘 행복했다. 혼자 있으면 입 꼭 다물고 책이나 아니면 때로는 막걸리나 마시면서 하루를 보내지만. 배우자가 있으면 없는 살림살이 한 푼 듀폰 모아서 저축하고 일 갔다 오면서 붕어빵 한 봉지 싸서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어 먹으면 그게 행복이었다.. 이 세상 음식 중에 이것보다도 더 맛있는 것은 없를 것이다
집에 와서 집사람에게 전기공사를 무엇을 했는데 무엇이 어렵고 힘이 들 때도 있더라고 이야기하면 자기는 오늘 가내 부업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벌었다 하면서 우리의 신혼생활은 이렇게 홀려 가고 있었다.
없는 살림살이는 푼 돈모아서 저축하고 십만 원이 백만 원 되고 예쁜 아들 하나 딸 하나가 태어나고 나는 힘들게 살아도 예쁜 자식들 보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힘들다고 생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잘 아는 지인이 나보고 약간 변두리에 집 한 채 있는데 이곳은 전세금이 많아서 지금 바로 내는 돈이 많지 않다고 하면서 지금 구입하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회사가 쉬는 날 집사람과 함께 주소로 찾아가 보니 48평에 방만 6개 부엌은 작고 각자 따로 되어있고. 단 아직도 수도가 안들이 와서 신청하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는 말씀. 그날 저녁에 나와 집사람하고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여 이곳 전세 받고 월남에서 조금 모아둔 돈하고 하여 그 집을 매입하기로 하였다. 집을 구하여서는 좋은데 직장이 너무 멀어서 아침 일찍 먹고 자전거를 열심히 밝으면 회사를 다니면서 세월이 홀려 갔다.
어느 날 어느 현장에 가니까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 성서는 개발이 한창인데 그곳에서 공사나 장사를 하며 부자가 된다는 말에 나도 이번에 한번 생각을 바꾸어보자는 마음으로 그날 저녁에 집사람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개인사업을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하니 집사람은 직업도 안정적이고 직장도 좋은데 왜 힘드는 자기 사업을 하려고 하면서 집사람은 은근히 직장생활 하면서라고 살았으면 좋겠다는말을한다.
나는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한번 해보는 것도 좋다고 집사람에게 여러 번 이야기하고 가장 힘든 것이 사무실 구하고 사무실 물건 넣는 것 돈이 문제였다. 다음날 교동에서 전업사 하는 친구를 찾아가서 지금 성서 건설 붐이 한창인데 그곳에서 사무실 하나 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니 너의 생각도 좋다 하면서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내가 지금 돈이 사무실 구입하는 돈은 되는데. 사무실에 넣을 자재는 없다 하니까. 마을금고에서 집 담보로 하고 돈 조금 내어서 하면 된다고 하길래 나는 그날 저녁 먹고 다시 집사람에게 오늘 낮에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금고에서 대출하여 사업을 한번 해보는 것 좋다는 것을 집사람에게 설명하였다. 결국은 집사람도 나의 고집을 못 꺾고 두 손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에 공사부 사장님 사무실로 찾아가서 사장님께 정중히 인사드리고 사장님 저도 어렵지만 개인사업 한번 해보고 싶다고 라고 말씀드리니 우리 강 대리는 이제부터는 월급쟁이는 다시는 못 하겠느냐고 말씀하십디다. 나는 우리 사장님께서 왜 강 대리는 다시는 월급쟁이를 못할까 참 이상도 하신 우리 사장님이 시다. 나는 개인사업 하다가 혹 잘못되면 다시 사장님 밑에서 일하고 싶은데 왜 두 번 다시 월급쟁이 못한다는 말씀에 나는 그 당시 마음으로써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오늘 개인사업에 재미를 보면 두 번 다시 많은 돈을 주어도 월급쟁이는 못한다는 사장님의 깊은 뜻이 새긴 말씀이었다. 나는 사장님께 그동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도 여러 가지 것 있으면 사장님께 말씀을 드리겠다고 인사들하고 퇴직하였다. 그리고 성서 이곡동 도로변에 10평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인생의 변화가 이렇게 어려운 줄 옛날은 정말로 몰랐다 옛 어르신 말씀에 가고 싶을 때 가라 하고 싶을 때 하여라 그래 내일 위하여 우리 가족과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 한 몸 바칠 각오다.
어느 선생님께서 돈 많이 모으는 법이 있다고 말을한다 내가 선생님께 여러 번 여쭈어서 알아낸 비법“남에게 기분 좋게 하면서 너의 이윤을 많이 챙겨라.” 지금도 선생님의 이 말씀은 뜻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언제쯤 글귀대로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