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이희국 소시집 단평
삶의 행간에서 탐색하는 시공의 융합
김송배(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이희국 시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일찍이 『미래시학』(2017 겨울)에서 최서진 시인이 그의 작품 「다리」외 4편을 「세계에 대한 자각적 응시와 매혹」이라는 제목으로 시평을한 바 있다. 거기에서 살필 수 있는 것은 ‘삶의 여정에는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라는 요지의 시평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인생이라는 대명제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서 다양하게 자각적 응시를 적시하고 있어서 이희국 시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유승우 교수는 그의 시집 『자작나무 풍경』 해설에서도 ‘난초의 향기를 <천상의 향기>라고 한 것이나 찔레꽃의 가시를 <목말라 타던 서러움 모여> 되었다는 표현이나 <빨간 열매 까만 눈>을 <마음의 사리>라고 한 시행에서는 <신의 한 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찬사를 대할 수가 있어서 생명과 정신의 황폐화에 대한 시적인 고찰을 이해하게 된다.
이희국 시인의 생명성은 바로 인간의 존재와 동행하고 있다. 이러한 존재의 인식은 바로 시간성과 일치하는 공존의 현장에서 다변적인 삶의 지향점이 생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감지되거나 획득한 소중한 체험들이 그의 시적 상황으로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간이역」에서 ‘펴지지 않는 주름진 시간도 있다.’라거나 작품 「광장, 혹은 시장」에서도 ‘삶에 목마른 설익은 시간들 / 바글바글 푸념을 끓이면 시장은 금세 삶의 광장이다’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생존현장에서 응시한 그의 시간은 삶의 행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공원 한 구석 폐타이어
군데군데 뭉개지고 갈라진 지난 시간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평생 동안 무거운 짐을 지고도
도로를 질주하던 저 타이어
이제는 속도를 잃은 채
여생을 내려놓고 작은 담벼락이 되었다
질주하던 태양이 언덕을 넘어서는 저녁
다가오는 어둠의 걸음소리를 들으며
삶을 뒤돌아본다
젊은 날의 사랑과 뜨거웠던 열정
꿈을 향해 달려온 시간들
언덕을 넘어 설 때의 감동과 신선한 새 바람의 기억들
기억마저 흐릿한 과거가 되었다
나는 몇 킬로의 속도로 이곳까지 왔는가
햇살이 사위어가듯 이제는 속도를 늦추어야 할 나이
중년의 한 사내가 거울을 보며 웃고 있다.
--「어두울 무렵」 전문
여기에서 포괄하는 ‘시간’이 우리 인간과의 상관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러한 관점을 요약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즐겨 동원하는 시어들을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시간의 흔적’, ‘평생 동안’, ‘여생’, ‘저녁’, ‘젊은 날’, ‘기억들’, ‘과거’, ‘삶을 뒤돌아 본다’ 그리고 ‘중년의 한 사내’ 등의 상황들이 그의 시간성으로 삶과(혹은 인생) 동행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그가 설정하는 시간의 중심에는 ‘젊은 날의 사랑과 뜨거웠던 열정 /꿈을 향해 달려온 시간들’이 시적인 발상으로 적시되고 있어서 그가 그만큼 생명성에 대한 집착으로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는 몇 킬로의 속도로 이곳까지 왔는가’라는 어조에서 공감할 수 있듯이 지나온 시간의 아쉬움을 재생하면서 우리 인간들의 존재와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시적 진실로 명징(明澄)하게 현현하고 있다.
또한 그는 결론으로 제시한 ‘햇살이 사위어가듯 이제는 속도를 늦추어야 할 나이 / 중년의 한 사내가 거울을 보며 웃고 있다.’라는 어조에서는 만감(萬感)이 교차하고 있는데 한생을 정중하게 성찰하는 어조가 작품의 주제를 더욱 심화(深化)하는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찍이 T. S. 엘리엇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모두 미래의 시간에 있을 것이며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이 담고 있을 것이라는 언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간성은 영속적으로 우리들의 삶(인생)과 밀착하여 동행하는 귀중한 동반자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희국 시인도 이와 같은 인생행로를 절감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서 우리 인간들이 소유한 칠정(七情-喜怒哀樂惡五慾)에서 절실하게 체험한 생의 현장을 적나라(赤裸裸)하게 인식하면서 이러한 체험을 재생하여 이미지로 정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그의 시창작의 원류를 형성하고 거기에서 추출한 인생관의 진실이 성찰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성에서 그는 ‘시간의 흔적’(과거)에서 추억을 생산적으로 재생하여 그가 지향하는 정서의 중심축으로 정립하고 다시 다른 사유(思惟)의 원류로 변형시키는 시법을 이해하게 한다.
이것은 존재론에서 말하는 인식의 단계이다. 이 인식은 바로 자신이 아직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생명성과 직결하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를 성찰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실제로 칠정에서 본 바와 같이 희(喜)나 락(樂)은 작품과의 연결(이미지의 생성)이 약간 이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체로 이런 인식에서 성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희국 시인의 인생관 중심에는 커다란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것은 기원의식으로 전이(轉移)되는 가치관의 창출을 시적으로 투영하려는 노력이 생성하게 된다.
3.
내 마음의 담수호에는
삼십년이 넘은 시간의 사연들이 담겨있다
꽃샘추위에 웅크린 새싹처럼 병치레가 잦은 아이들
촉촉하고 말랑한 속 자식에게 다 주고
양분 없는 식탁 앞에 혼자 앉은 푸석푸석한 사람들
잎맥만 남은 잎사귀처럼 통증에 무너지면서도
괜찮다고 숨을 몰아쉬는 노인들,
흑백의 시간조차 지워가는 치매노인
한바탕씩 스치고 가는 애틋한 바람을
새벽 기도로 준비하는 호수
오늘도 삼정사거리 동경약국에는
쑤시고 결리고 절뚝거리는 사람들이 찾아와
아픔과 외로움을 하소연 한다
마음의 수문을 활짝 열어 물 나누고 싶다
메말라 가슴이 쩍쩍 갈라진 사람들에게 단비를 주고 싶다
꽃과 나무와 별을 닮은 사람들.
--「수문을 열어」 전문
우선 이 작품에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부분이 시간과 결부하는 상황(‘꽃과 나무와 별을 닮은 사람들.’ 등)들로 현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이희국 시인이 평소에 심중에 깊이 간직한 그의 인생철학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내 마음의 담수호에는 / 삼십년이 넘은 시간의 사연들이 담겨있다’는 상황에서 공감할 수 있듯이 앞의 ‘어두울 무렵’과 상응하는 이미지는 그가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혹은 인간들의 내면에서 현실과 괴리(乖離)되는 상황이나 소외되는 세상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간미 혹은 인생 달관의 시적 응시(凝視)가 항상 그의 내면에 관류(灌流)하고 있어서 그가 착목(着目)하는 주변 사물이나 관념의 한 부분에 이미 동행의 미학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희국 시인은 이 시간성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적 행로가 이 ‘새벽 기도로 준비하는 호수’에서 융화시키면서 어떤 화해를 탐색하고 있다. 이런 형상이 ‘오늘도 삼정사거리 동경약국에는 / 쑤시고 결리고 절뚝거리는 사람들이 찾아와 / 아픔과 외로움을 하소연 한다’는 어조로 현현함으로써 그가 지향하는 인생관이 미래 예측인 기원의 의식으로 전이하고 있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어조는 ‘마음의 수문을 활짝 열어 물 나누고 싶다 / 메말라 가슴이 쩍쩍 갈라진 사람들에게 단비를 주고 싶다’라는 그의 간절한 기원에서 나타나듯이 ‘싶다’라는 의존명사의 접미사에서 우리는 그가 대인간관에서 동병상린(同病相燐)의 미적 감응을 이해하게 된다.
4.
또한 이희국 시인은 이처럼 시간성에 집착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바로 공간개념과 동시에 탐색하는 시적원류를 확인하게 되는데 앞 작품에서는 ‘공원 한 구석’과 ‘담수호’와 ‘삼정사거리 동경약국’ 등의 공간을 병치한 바 있는데 다음의 작품에서는 더욱 시공(時空)의 주관적인 시적 의미를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해발 350미터
차디찬 태백산맥을 넘어오던 눈보라가
어머니 품 같이 소복한 분천역 광장에
휘돌다 내린다
세상에 절망한 사람들
꼬불거리며 흐르는 오십천을 거슬러
마지막 희망을 찾기 위해 찾아들었던 막장
삼촌은 깊은 지하의 갱도에서
검은 분진을 삼키며
실낱같은 꿈을 꾸며
위태로운 백열등에 하루하루를 걸어놓고 견뎠을 것이다
이곳 어디쯤에 묻힌 삼촌을 생각하는데
시린 기억이 하늘에 몰아친다
희고 맑은 눈꽃들이 날린다
언덕 위 늙은 소나무 한 그루에서
외롭게 살다 간 사내의 등을 보았다.
--「분천역(汾川驛)」 전문
그렇다. 이희국 시인은 ‘어머니 품 같이 소복한 분천역 광장에’서 감응하는 공간개념은 남다르다. 그는 ‘어머니’와 시적 화자인 ‘삼촌’과 ‘외롭게 살다간 사내’ 등이 바로 그가 체험한 소중한 시간의 메시지가 각인되고 있다.
칼 지브란이 일찍이 말했듯이 시간은 허공을 뚫고 자아(自我)로 날아간다는 명언이 이렇게 지나온 시간과 공간이 접목하면서 펼쳐지는 인생론이 더욱 묘미(妙味)있게 시적인 진실을 적시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시적인 공간인데 그는 ‘태백산맥’이나 ‘오십천’, ‘찾아들었던 막장’, ‘지하의 갱도’, ‘언덕 위 늙은 소나무’ 등등 그가 체험으로 획득한 장소들이 그의 뇌리에서 시적인 분화(噴火)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러한 공간에서 탐색하는 진실은 ‘위태로운 백열등에 하루하루를 걸어놓고 견뎠을 것’ 그리고 ‘시린 기억이 하늘에 몰아친다’는 시간과 동시에 발현함으로써 그가 구사하려는 시공의 조화가 시법으로 잘 형상화하는 점을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의 설정은 작품 「아파트」에서 ‘아파트’ 전체를 공간(여기에서 ‘침대’, ‘선반’, ‘화장실’, ‘천장과 바닥’, ‘무대’, ‘허공’ 등등)으로 시적인 상황으로 설정하여 작품을 전개하고 있으며 작품 「귀성길」에서 ‘도산서원을 싸고 선조들이 숨결 맴도는 곳’의 공간에서 ‘먼저 떠나간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시간을 동시에 적시하여 시적인 이해를 감지하게 한다.
대체로 살펴본 공간은 ‘낡은 천막촌 시장터를 헤집었다.’, ‘안암천을 끼고 살던 사람들’, ‘아침 해가 뜨면 줄 서있던 공중화장실’, ‘표류하다가 닿은 곳 금호동 언덕’ 등이 작품 「겨울 철새」에서 읽을 수 있으며 ‘사과나무 과수원에 내리는 따가운 햇살’과 ‘가을 하늘이 주는 선물’, ‘잘 여문 새소리를 가지마다 내걸었다’는 작품 「가을에 깨닫다」에서 우리는 시적인 본질의 지향점이 무엇이며 시정신이 어디에서 발흥되어야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희국 시인이 절실하게 천착(穿鑿)하는 시간과 공간의 접맥은 그가 추구하는 인생의 문제 즉 존재에 관한 다변적인 상황이 시공의 개념에 따라서 시적으로 승화하는 의식의 흐름이나 인식의 감도(感度)가 어떤 형상으로 분사(噴射)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
그의 지적인 감성(感性)과 지향적인 감응은 존재의 인식에서부터 성찰과 기원의 의지까지 그가 여망하는 시적인 진실이 창조될 것은 자명(自明)하다. 삶의 행간에서 탐색하는 시공의 융합이 그의 진솔한 시법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좋은 시 많이 보여주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