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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은 일단 짜져라. 이곳은 어른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노무현은 말했다. 사람 대접 받으려면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 통해야 사람 대접 받는다. 신을 수염난 할아버지로 아는 사람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귀신, 내세, 천국, UFO 믿는 사람, 점보러 다니는 사람은 글자 아는 사람의 대화상대가 아니다. 그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신이 있다는 것은 의사결정의 궁극적인 근거와 연결되어 일관성이 있다는 말이다. 의사결정 자체가 없는 인간이 99 퍼센트다. 눈치를 보고 정답을 맞추려 하는건 의사결정이 아니다. 남이 설계한 판에 숟가락 들고 달려드는 것은 의사결정이 아니다. 자신이 설계한 판이라면 여러가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근원의 동력원과 한 방향으로 모두 연결하는 것이다.
주체적인 의사결정이라면 무엇을 결정하든 기분 내키는대로가 아니라 근거가 있어야 한다. 궁극적인 동력원에 닿아야 한다. 나를 만족시키려고, 혹은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이겨먹으려고,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사람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왜 성공하려고 하고, 돈을 벌려고 하고, 사람을 사귀려고 하는가? 좋아서? 결국 호르몬 때문이다. 그런 자와 대화하지 않는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는게 보통이다. 호르몬이 나와서 행동한다면 노예다. 인간대접 해줄 이유가 없다. 호르몬에 따른 수동적 반응과 이성에 따른 주체적인 의사결정은 다르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똥이 나와서 화장실에 가는 것은 의사결정이 아니다. 스스로 결정하려면 전부 한 줄에 꿰어져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서 필연적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은 무엇인가? 그것이 신의 미션이다. 인간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궁극적인 근거는 원래 우주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고 인간이 또한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래의 목적을 알아내야 한다.
생물이 진화하는 것은 DNA가 원래 진화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진보하는 것은 원래 진보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의무다. 의무를 실천하지 않으면? 빚을 갚지 않는데 누가 돈을 빌려주겠는가? 권력과 의무는 동시에 발생한다. 신이 없다는 생각은 권력과 의무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고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어쩌다 진화했을 뿐 생태계는 진화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다 진보했을 뿐 사회는 진보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다 내게 권력이 생겼을 뿐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 내게 돈 빌려준 놈이 바보인 것이며 떼먹어도 상관없다? 그런 식이면 애초에 생태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식이라면 애초에 사회는 성립되지 않는다. 빚을 떼먹을 인간에게 누가 돈을 빌려주겠는가?
상대가 바보라서 돈이 내 수중에 들어온게 아니고 내가 신용을 팔아 돈을 산 것이며 갚지 않으면 신용이 훼손되어 내가 파괴된다. 내가 곧 신용이기 때문이다. 나의 평판과 나의 지위가 신용이다. 내 몸뚱이만 내가 아니고 나의 사회적 평가가 나다.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게 아니고 그 경우 내가 피괴되어 다른 존재가 된다. 나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빚을 갚지 않을 방법은 없다.
무신론자는 무슨 짓을 해도 양심에 거리낄 일이 없다. 인간이 극도로 잔인해져서 사이코패스가 된다. 무신론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나친 자기검열을 한다. 그래서 나온게 정치적 올바름 소동이다. 이후 지식은 위축되었고 엘리트는 권위를 잃었고 지성이 사라진 세상이 되었다. 카리스마를 잃었기 때문이다. 위험을 회피할수록 리스크는 커진다.
왜 신이 존재하는가? 인간에게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의사결정의 회피가 목적이므로 논외다. 그 권력이 그냥 주어진게 아니고 나의 존엄을 팔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의사결정 능력은 우주의 탄생과 연결되는 것이다. 애초에 우주가 그렇게 설계되어 탄생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는 인간의 권력과 의무를 부정한다. 권력도 없고 의무도 없으므로 행동이 산만하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면?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가상의 감시자를 붙여 자기 행동을 통제한다. 무신론자의 신은 자기검열인 것이다. 빚이 있는 사람의 행동은 예측가능하다. 그는 빚을 갚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빚이 없는 사람은 예측가능하지 않다. 예측가능하려면?
자기검열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감옥에 자신을 가두어야 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으므로 뒤에서 쫓아오는 늑대를 이용해서 자신에게 동력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신이 있으면 의무가 있으므로 행하게 된다. 신이 없으면 의무가 없으므로 행하지 않는다. 의무가 없는 대신 의무를 지어낸 것이 PC정책이다. 평판, 눈치, 질투, 모함 이런 것으로 신을 대리한다.
진화론으로 가보자. 당신이 신이라면 생태계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생존경쟁은 위험하다. 천하무적 포식자가 등장할 수 있다. 독사처럼 입에서 독을 뿜는 독사자가 있다면? 오리너구리는 뒷발에 돋아 있는 독발톱으로 사람을 찌른다. 포식자인 주제에 새끼를 개처럼 많이 낳는다면? 생태계가 초토화된다. 고등동물은 멸종하고 모기같은 이상한 것이 지구를 점령한다.
바둑으로 치면 초반 포석이 있고 중반 전투가 있다. 생존경쟁은 포석을 생략하고 바로 전투 들어가는 것이다. 단기전을 잘하고 장기전을 못한다. 인간의 직립은 칠백만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게 쓸만하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인간의 직립은 700만년 동안 신통하지 않았다. 직립보행에 도전한 인간의 조상은 거의 500만년 동안 멸종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목이 긴 동물은 기린 하나 뿐이고 코가 긴 동물은 코끼리 하나 뿐이다. 게화현상이 있다. 새우가 게로 변하는 현상인데 물에 떠다니기보다 바닥에 붙어다니는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바다에 사는 많은 종의 갑각류가 점차 게로 변했는데 왜 기린화현상이나, 코끼리화현상이나, 사람화현상은 없을까? 게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다 바닥에 붙잡을 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우가 물에 떠다니기보다 게가 바닥에 붙어다니는게 낫다. 환경이 존재하므로 종이 존재한다. 키가 큰 나무가 있으면 기린이 있다. 사바나에 나무가 많아지면 정글이 되므로 숲을 파괴하는 코끼리가 있다. 인간의 조상은 특이한 환경에 적응했다. 그것은 변화 환경이다. 낙타 무리도 날씨에 적응해서 추운 곳에 쌍봉낙타, 더운 곳에 단봉낙타, 고산지대에는 라마가 있다.
주체와 객체가 있다. 다윈의 경쟁개념은 객체위주, 환경위주 수동적 발상이다. 우리는 주체 위주의 능동주의 사상을 가져야 한다. 말하자면 권력의 주체가 져주고 이기는 역설전략인데 비해 객체는 닥치는대로 이겨먹는 전술이라는 말이다. 생존경쟁이 옳다면 무조건 다 이겨야만 한다. 구조론이 옳다면 권력이 있으므로 일부러 져줄 때도 있다.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
인간은 꼬리를 잃고, 털을 잃고, 이빨을 잃고, 야간시력을 잃고, 발정기를 잃고, 채식능력을 잃고, 사냥능력을 잃었다. 인간은 도구로 사냥하지만 개코원숭이는 이빨로 사냥한다. 인간은 직립하므로 각이 나오지 않아서 이빨로 짐승의 목을 물어뜯을 수 없다. 왜 환경은 인간에게만 가혹한가? 인간은 왜 많은 핸디캡이 있는가? 그것은 인간을 부단히 이동하게 하는 장치다.
인간은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숲도 아니고, 사바나도 아니고, 물가도 아니고, 이동환경이 주어졌다. 옷을 입고 불을 피워서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냈다. 존재하는 환경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없는 환경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탁란하고 개와 고양이는 인간에게 의탁하여 탁생을 한다. 탁생동물도 없는 환경을 만들어낸 셈이다.
우리가 전략적 사고를 해야한다. 살을 내주고 뼈를 베는게 전략이다. 초반 포석은 바둑알 낭비로 보인다. 그걸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게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분의 바둑알이 넉넉해야 가능하다. 당장 두 집을 내야 산다면 생존에 급급해서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 당신이라면 700만년 후에나 이익이 배당받는 주식회사에 투자하겠는가? 700만년간 인간 종은 적자였다.
인간은 야간시력을 내주고 나무에 오르는 손을 얻었다. 꼬리를 내주고 나무에서 내려와 땅을 얻었다. 털을 내주고 직립보행을 얻었다. 이빨을 내주고 도구를 얻었다. 발정기를 내주고 가족을 얻었다. 채식능력을 내주고 지구력을 얻었다. 사냥능력을 잃고 사회성을 얻었다. 전방위적으로 생존능력을 잃고 대신 지능을 얻었다. 권력과 의무의 교환이지만 손해보는 거래다.
먼저 손해보고 나중에 이득보는 것이 전략이다. 문제는 보상이 700만년 후에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당신이라면 그런 거래를 하겠는가? 무신론을 따르면 이런 고도의 전략적 포석이 불가능해진다. 한 방향으로 모이는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신이 없다면 뒷감당이 필요없다. 의무를 다할 이유가 없다. 그냥 고프면 삼키고 부르면 싸는 하루살이 인생이라면 전략이 없다.
인간이 잃은 것과 얻은 것
야간시력 상실 - 밤에 포식자를 피해 나무에 오르며 손을 얻었다.
꼬리 상실 - 나무에서 균형을 못 잡아 땅으로 내려와 걷는 발을 얻었다.
이빨 상실 - 송곳니를 잃고 짐승의 가죽을 자르지 못해서 도구를 얻었다.
발정기 상실 - 발정기에 새끼가 독립하는데 독립이 없어져 학습을 얻었다.
털 상실 - 새끼가 어미 등에 매달리지 못해 팔에 안으면서 직립을 얻었다.
사냥능력 상실 - 사냥감을 뒤쫓지 못해 몰이사냥으로 사회성을 얻었다.
채식능력 상실 - 장이 짧아지고 허리가 날씬해져서 지구력을 얻었다.
왜 무신론이 해로운가? 전략적 대응은 먼저 잃고 나중 얻는다. 무신론자는 잃지 않으려고 정치적 올바름 따위로 방어행동을 하다가 카리스마를 잃었다. 정치적 올바름은 정치적 안전의 추구다. 책잡힐 일이 없고 욕먹을 일이 없으나 보폭이 좁다. 인간은 700만년 동안 많은 것을 잃고 먼저 약해진 후 나중에 강해졌는데 그들은 반대다. 약해지지 않으므로 강해지지 못한다.
진화의 법칙 - 먼저 잃고 나중에 얻는다.
진보의 법칙 - 의무를 지고 권력을 얻는다.
하나도 잃지 않으려 하고 욕먹지 않으려고 하는 보신주의가 지식인의 카리스마를 훼손해서 철학자가 조롱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게 다 촘스키 때문이다. 지식인의 행동반경을 좁혔다. 할말을 못하는 나약하고 비겁한 지식인상을 만들었다. 무신론은 때로 인간을 강하게 하기도 한다. 양심의 가책이 없다. 유나바머 카진스키가 대표적이다. 테러행위에 죄의식이 없었다.
바둑의 포석은 바둑알 하나로 이득을 얻는게 아니다. 여러 바둑알이 연계되어야 하며 종반이 되어야 명백해진다. 마샤오춘이 이창호에게 졌다는 사실은 계가를 해보고 깨닫는다. 신이 있다는 것은 개인이 단위가 아니고, 집단이 의사결정 단위이며, 평가는 개별적으로 정해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정해진다. 선행이나 악행은 의미가 없고 활력이 중요하고 방향이 중요하다.
무신론은 개별적 행위를 평가하므로 사회의 상호작용 총량을 낮춘다. 초반에 좋은 자리에 포석을 해도 하수가 둔 바둑은 의미가 없다. 나중에 찬스가 와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주 안의 모든 바둑알을 연결하여 전체의 그림을 보고 가치를 판단하는 눈을 얻어야 한다. 처음 인간이 꼬리를 잃고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지금까지의 전개는 확률 안에 담보되어 있었다.
꼬리와, 이빨과, 발정기와, 털과 사냥능력과, 채식능력을 잃고 대신 좋아진 것은 없었다. 인간의 조상은 지구에 1천 개체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 길을 가겠는가?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대신 환경을 제작했다. 많은 것을 잃어 적응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다음에야 옷을 입고 불을 피우며 환경을 제조한다. 먼저 궁해지지 않으면 나중 통하지 않는다.
선궁후통. 이전에 포석으로 둔 수가 나중에 전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럴 때 내부에 권력이라는 이름의 압력이 걸린다. 비로소 의무를 다할 수 있게 된다. 먼저 투자하지 않고 이익배당을 요구하면 곤란하다. 선배당 후투자는 우주 안에 없다. 신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자의적 선택이 아니고 물리적으로 강제된다는 것이다. 전부 한 줄에 꿰어지면 가속도와 관성력이 걸린다.
무더운 사바나에서 대낮에 먹이활동을 하며 체온을 낮추려고 털을 잃은게 아니고 돌연변이로 강제된 것이다. 여름에는 털이 체온을 낮춘다. 양들은 겨울에 흩어져 있고 여름에 모여 있다. 목동은 말한다. 양들은 사악해서 겨울에는 동료가 춥도록 흩어져 있고 여름에는 덥도록 모여 있다고. 허튼소리다. 겨울에는 흩어져서 햇볕을 받고 여름에는 동료의 그늘을 이용한다.
인간이 이빨과 털을 잃은데 따른 당장의 이익은 없다. 이익이 있다고 해도 무려 700만년 후에 있다. 700만년짜리 프로젝트를 뛰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끝까지 간다는 호연지기가 필요하다. 신이 있다는 것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전부 한 줄에 꿰어지는데 따른 가속도 힘과 관성력 힘으로부터 일용할 의사결정 에너지를 조달한다는 말이다. 에너지 없이 어떻게 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