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zoid'는 **'조현성(분열성) 인격장애'**와 관련된 용어로, 사회적 관계에 대한 흥미가 없고 감정 표현이 매우 적으며, 혼자 있기를 선호하는 사람의 성향을 묘사합니다.
schizoid
adjective
psychology specialized
uk /ˈskɪt.sɔɪd/
us /ˈskɪt.sɔɪd/
suffering from or behaving as if suffering from schizophrenia:
a schizoid personality
schizoid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 않으며, 감정적으로 냉담하고 무관심해 보일 수 있습니다.
들뢰즈의 '분열자'는 "분열한 것", "갈라져 나온것" 이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分裂者 / 分裂子로 표기될 수 있다.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아버지'나 '오이디푸스'와 같은 초월적인 원리나 공식에 의해 통일적, 융합적, 통합적으로 해석되는 무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자체가 여러 방향으로 끊임없이 분열하고 변화하는 욕망의 다양체(덩어리)임을 의미합니다.
'분열자'는 이러한 분열된 무의식을 뜻하는 용어로, 무의식이 고정된 통일성을 갖지 않고 내재적인 이유에 의해 끊임없이 변환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분열(分裂): 나눌 분, 찢을 열. '나누어 찢어짐'을 의미합니다.
자(者): 놈 자. '-하는 사람' 또는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접미사입니다. 여기서는 ~하는 것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분열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분열분석이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판하면서 들뢰즈 과타리가 창안한 무의식의 분석 방법 입니다.
분열분석의 대상 역시 무의식인데 그들은 무의식이란 다양한 방향으로 갈라진 욕망의 다양체란 점에서 분열자 내지 정신분열자라고 합니다.
분열자는 무의식이 분열되어 있음을 즉 통일성을 갖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말입니다.
프로이트도 주체의 분열, 무의식의 분열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의 성적 분석을 갖는 이드와 그것을 억압하는 초자아의 대립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분열자는 욕망이 대립되는 두 방향이 아니라 상이한 여러 방향을 동시에 향하고 있음을 표현하려는 말로 무의식의 분열을 대립이 아닌 차이를 통해 개념화하려는 것입니다.
정신분열증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분열자는 임상적 실체로서의 질병을 뜻하는 정신분열증이 아닙니다.
정신분열증적이라 함은 여러 방향으로 분열된 욕망의 본성을 표현하는 말이죠. 그런데 정신분열자는 정신분열증의 형용사형이란 사실로 인해 양자를 애써 구별하려는 들뢰즈 카타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것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오해하게 되면 분열분석은 정신분열증이나 정신병에 대한 낭만적 찬가라는 흔한 비난이 즉각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정신분열자란 다양한 방향으로 동시에 향하고 있는 욕망의 잠재성을 표현하는 말인 반면 정신분열증은 망상이나 환각 무논리 증 같은 증상을 동반하는 현행적 질병을 명명하는 말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이러한 분열자 개념을 이해하려면 니체와 스피노자를 모태로 하는 욕망의 개념을 경유할 필요가있습니다.
증상적 행동은 물론 일상의 언행을 추동하고 의식의 작동을 규정하지만, 의식이 포착할수 없는 욕망의 흐름이 바로 무의식 입니다. 충동 이라고도 하지요.
스피노자는 자신의 실존을 지속하려는 이 충동이나 욕망을 코나투스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힘을 사용하고 힘을 투여하게 합니다. 힘을 어디에 어떻게 투여할 지를 규정하는 성분을 니체는 힘에의 의지라고 합니다. 힘에 대해 명령하고 그 힘의 작용 양상을 규정 하려는 의지를 뜻하지요.
들뢰즈 가타리가 말하는 욕망이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나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를 뜻합니다.
이는 생존과 결부된 모든 활동, 단지 먹고 번식하는 것 뿐 아니라 놀고 쉬고 즐기고, 훈련하고 싸우는 등 모든 활동을 생산하는 추동력 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수없이 다양한 방향으로 동시에 열려있으며 여기에서 저기로 힘의 투여 지점을 쉽게 바꿉니다. 욕망이 그자체로 분열자라고 함은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좀더 깊이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욕망에서 다른 욕망으로 이동할 뿐아니라 하나의 행동안에서도 주저하고 망설이며 상이한 욕망 사이를 이동하곤 합니다.
하나처럼 보이는 욕망안에도 복수의 욕망이 섞여 있는 겁니다. 음식을 먹으며 살 찔까 걱정하고 책을 읽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경우가 많죠. 이런점에서 하나로 보이는 욕망조차 하나가 아닙니다. 그래서 들뢰즈 가타리는 욕망이란 분열적 흐름이고 다양체라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