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된 강연 원고
여러분, 세계 경제 규모 3위에 첨단 기술과 세련된 도시문화로 유명한 곳 하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정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네, 바로 일본인데요.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 일본 정말 많이 가죠. 엔화가 싼 것도 있지만 도쿄의 네온사인이나 질서정연한 사회 시스템을 연상하게 되죠.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일본의 경제와 도쿄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들, 사회와의 접촉을 스스로 끊고 철저히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히키코모리 때문인데요.
일본에는 이 히키코모리가 무려 146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백수나 무직자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일본 사회의 뿌리를 흔드는 심각한 병리 현상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게다가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히키코모리의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젊은 청년들의 문제라고 여겨졌던 이 히키코모리가 이제는 절반 이상이 4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중장년층이라는 점입니다. 일본 사회 전체의 고령화와 맞물려 폭발적인 시한폭탄이 되어 가고 있는 히키코모리 문제.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을까요? 과연 개인의 나약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들을 가두어 버린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일까요?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일본의 히키코모리 현상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한국까지 확산되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와 함께 아주 쉽고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히키코모리라는 단어의 개념부터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히키코모리는 말 그대로 '끌어당기다,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유래했어요. 단순히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심각한 사회적 고립 상태를 의미하는데요. 일본 후생노동성의 정의를 보면 6개월 이상 사회 참여를 거부하고 가족 외의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으며 집이나 방에 머무는 상태를 뜻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본 정부는 히키코모리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어요. 방에서 거의 나가지 않는 경우, 방 밖으로는 나가지만 집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경우를 협의의 히키코모리로 봅니다. 그리고 집 근처 편의점이나 취미 활동을 위한 외출만을 하는 형태는 광의의 히키코모리로 분류하고 있죠.
사실 우리가 흔히 히키코모리라고 하면 만화나 게임에 몰두하는 젊은 청년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실제로 이 현상이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1980년대에는 10대 청소년들이 따돌림이나 학교 부적응 등의 이유로 등교를 거부하고 방에 틀어박히는 형태로 나타났거든요. 하지만 2022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히키코모리 인구 약 146만 명 중에서 40세에서 64세 사이의 중장년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요. 특히 40대가 전체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60세 이상도 전체의 25%를 넘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히키코모리가 젊은이들만의 문제라는 공식이 완전히 깨져 버린 셈이죠. 흥미로운 걸 넘어서 정말 놀라운 얘기인데요.
이들이 왜 이렇게 장기화되고 중장년층으로 확대되었는지 이해하려면 일본의 지난 30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르는 장기 불황은 단순한 경제 침체를 넘어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1990년대 초 거품 경제가 붕괴한 이후 정규직 일자리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직업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거든요. 이 시기에 사회에 진출해야 했던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들을 '취업 빙하기 세대' 혹은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부르는데요. 1970년 전후에 태어나 버블 붕괴 직후 고교나 대학을 졸업하면서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세대를 말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평생 직장이라는 꿈을 꿀 수 없었죠. 그러다 보니 청년들은 취업 과정에서 수차례의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 사회의 특징 하나가 청년들을 더욱 힘들게 했는데요. 바로 실패에 가혹한 문화입니다. 일본 사회는 실패에 대해 극도로 가혹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경쟁에서 단 한 번만 미끄러져도 그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엘리트 코스에서 완전히 탈선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마치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의 레일 위를 걷고 있는데 실수로 발을 헛디디는 순간 다시는 기차에 오를 수 없을 것이라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압박감은 결국 젊은이들이 스스로 경쟁에서 이탈하여 방으로 숨어들게 만드는 강력한 원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일본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인 강력한 집단주의 문화 역시 히키코모리를 양산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일본 사회에는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메이와쿠(민폐)' 문화가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일본에 가면 연신 미안합니다를 반복하는 모습도 보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냥 보면 예의 바르게 보이는 이 문화가 청년들에게만큼은 개인이 공동체의 기대치에 부응해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만약 취업에 실패하거나 사회생활에서 뒤처지게 되면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시선과 압박은 자존감이 낮아진 개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됩니다. 그렇게 차라리 방 안에 숨어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타인의 기대와 실망스러운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 기재가 발동되는 것이죠. 결국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인간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자신을 향한 가족과 주변의 실망감을 견디지 못해 은둔을 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러한 은둔 생활이 잠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려 10년, 나아가 20년 이상 지속되면서 일본 사회는 '8050 문제'라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데요. 8050 문제는 80대 이상의 노부모가 50대 안팎의 중장년 히키코모리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기형적인 가족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평생을 모아온 부모의 연금이나 저축에 의존해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노부모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세상을 떠나게 되는 시점입니다. 부모라는 방패막이가 사라지는 순간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는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은 물론 사회 복귀를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말 그대로 극단적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거든요.
실제로 2018년 1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한 아파트에서 82세의 어머니와 52세의 딸이 한 방에서 세상을 떠난 채로 발견됐습니다. 이 두 모녀의 사인은 영양실조와 저체온증이었어요. 딸은 20대에 잠시 직장 생활을 했으나 30년 가까이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고,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약 보름 뒤 어머니를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밖에도 같은 해 12월 도쿄의 아파트에서도 91세 어머니와 66세 아들에게서 같은 형태의 비극이 확인됐어요. 유일하게 의지할 곳이었던 부모의 죽음 이후 함께 생을 마감해 버리는 동시 고립사가 일본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2019년 6월에는 전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이었던 76세 아버지가 44세 히키코모리 아들을 사지로 내몬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아버지는 경찰에 "아들이 남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걱정돼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진술했다고 해요. 이 사건은 일본 사회가 직면한 8050 문제의 처참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되었죠. 게다가 시간이 흐른 8050 문제는 이미 '9060 문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90대 부모가 60대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이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하고 있을까요? 일본 정부는 히키코모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려 전국 47개 지역에 히키코모리 지역 지원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상담 핫라인을 개설하고 비영리 단체들과 협력하여 은둔형 외톨이들을 위한 사회 복귀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심지어 2021년에는 '고독·고립담당 대신'까지 신설해 범정부적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히키코모리 기본법 제정까지 추진하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러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히키코모리의 사회 복귀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성공적으로 완전 복귀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비율이 10%를 채 넘기기 어렵다고 진단하고 있어요.
아니, 이렇게 국가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복귀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전문가들은 복귀가 힘든 가장 큰 장애물로 낙인 효과와 사회적 불신을 꼽습니다. 오랜 기간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이들은 이미 자신이 사회의 부적격자라는 강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들에게 갑자기 "자, 이제 나가서 일을 하세요"라고 하는 것은 20년 동안 쉬었던 근육으로 마라톤을 뛰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심리적 부담감을 준다는 겁니다. 게다가 일본 사회가 히키코모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다는 점도 복귀를 어렵게 만들어요. 재활 훈련을 받고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과거의 은둔 사실이 알려지면 편견과 차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죠.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히키코모리 현상이 더 이상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020년 이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사람들의 사회 활동을 강제로 축소시켰어요. 비대면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유럽, 미국 등에서도 사회와 단절된 채 집에서만 생활하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역시 청년층을 중심으로 고립되거나 은둔하는 인구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2023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고립 은둔 청년 규모는 최대 54만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추정이 나왔습니다. 서울시만 보더라도 청년의 4.5%에 해당하는 약 13만 명이 고립 은둔 상태에 있다고 해요. 일본의 고립 청년 지원 단체 전문가는 "한국의 4.5%라는 수치는 일본에서도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굉장한 수치"라며,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보다 훨씬 심각해질 가능성이 존재하고 한국형 8050 문제도 마주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극심한 취업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계층 이동의 절망감, 그리고 SNS로 인해 타인의 성공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하하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이 일본의 과거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일본의 히키코모리 현상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히키코모리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 박약이 아니라 고도의 성장 사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들을 세상 밖으로 다시 불러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실패를 포용하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제공하는 따뜻한 시선과 구조적인 안전망이 필수적일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일본과 한국 모두 이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고요. 지금까지 지식세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https://youtu.be/zIsGfUllaQY
히키코모리의 정의와 실태 변화
히키코모리는 6개월 이상 사회적 교류 없이 고립되어 지내는 상태를 뜻합니다.
과거에는 10~20대 젊은 층의 문제로 여겨졌으나, 최근 일본 내 히키코모리(약 146만 명) 중 절반 이상이 40~60대 중장년층으로 조사되어 고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발생 배경: 구조적 요인과 사회적 문화
고령화가 부른 사회적 비극: 8050 및 9060 문제
80대 노부모가 소득이 없는 50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평생 부양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었습니다.
부모 사망 후 자녀도 영양실조나 고립사로 생을 마감하거나, 미래가 불안해 자녀를 해치는 등의 극단적인 사회적 비극이 계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해결의 한계와 사회 복귀의 난제
일본 정부는 전담 지원 센터를 운영하고 담당 부처 및 관련 기본법 제정을 추진 중이지만 실제 사회 복귀율은 10% 미만으로 매우 저조합니다.
본인의 낙인 의식(부적격자라는 생각)과 더불어, 복귀 후에도 이어지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이들을 다시 숨게 만듭니다.
한국 사회로의 확산과 시사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역시 고립·은둔 청년이 최대 54만 명(서울 청년의 약 4.5%)에 달하는 등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취업난, 계층 이동 절망감, SNS 상대적 박탈감 등 원인이 일본과 매우 흡사하며, 이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안전망 구축과 '실패를 포용하는 사회적 시선'의 전환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