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식이 둘 사이의 하나라면 함수는 하나 안의 둘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아기가 있다. 이는 방정식이다. 아기 안에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다. 이는 함수다. 방정식은 아기의 외부를 보고 함수는 아기의 내부를 본다. 구조론은 내부를 보는 눈이다. 외부는 누구나 본다. 인간의 눈이 외부를 보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부를 보는 눈은? 깨달음의 특별한 힘을 빌려야 한다. 깨달은 사람이 내부를 본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석가의 말이다. 공간의 방정식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시간의 함수를 설명하고 있다. 어느 쪽이 위일까? 함수가 위다. 함수는 사건이고 방정식은 사물이다. 사물이 명사라면 사건은 동사다. 불이 타는 것인가, 타는 것이 불인가? 불이 명사라면 타는 것은 동사다. 불은 공간의 방정식으로 파악하고 타는 것은 시간이 걸리므로 시간의 함수로 파악한다.
대승불교는 얼버무리고 있다. 불이 체라면 타는 것은 용이다. 금강경은 체용일심론을 주장한다. 체와 용, 색과 공은 하나의 두 모습이라는 말이다. 틀렸다. 공즉시색은 있어도 색즉시공은 없다. 타는 것은 불이지만 불은 타는 것이 아니다. 불은 관측자가 있다. 불이 불인 이유는 인간이 그것을 봤기 때문이다. 타는 것은 목탄가스와 산소의 반응이지만 불은 인간의 관심사다. 불은 인간이 개입하여 오염시켰다.
자연에 동사는 있어도 명사는 없다. 움직이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어긋난 것과 하나는 나란한 것이다. 어긋난 것이 변화라면 나란한 것은 불변이다. 그런데 산불도 불이고 전깃불도 불인가? 산불과 전깃불은 전혀 다른 반응인데 인간이 개입하면 같아진다. 이는 오염된 것이다. 백조목 플라스크를 사용하지 않아 세균이 침범한 것이다. 오염된 실험은 실패다. 변화가 공이라면 불변은 색이다. 색은 오염이다.
공은 아무 것도 없는게 아니다. 변화가 있는 것이다. 변화는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낸다. 불변은 인간이 개입하기 좋은 모습이다. 인간은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