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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2026년 09월 27일(일요일)
덕절(德寺)이라고도 부르는 수락산 흥국사(水落山 興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는 봉선사)에 속해 있는 절이습니다.
599년(진평왕 21) 원광(圓光)이 창건하여 수락사(水落寺)라 하였다는데, 그 뒤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1568년(선조 1)에 선조는 이 절에 생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원당(願堂)을 짓고 편액(扁額)을 하사하여 흥덕사(興德寺)로 개칭하였는데, 민간에서 덕절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가 되었습니다. 1626년(인조 4) 다시 흥국사로 개명하였습니다.
1793년(정조 17) 왕실의 시주를 받아 기허(騎虛) 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하였습니다. 1856년(철종 7) 은봉(隱峰) 스님이 육면각(六面閣)을 중수하고 단청하였다. 1878년에 다시 불타버린 것을 용암(庸庵) 스님이 중건하였으며, 1888년 제암(濟庵) 스님이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고 단청하였습니다.
이 절은 덕흥대원군의 원찰이 된 이래 왕가(王家)에서 편액을 내리고, 몇 차례에 걸린 중수 · 중건을 지원한 특별한 사찰입니다. 1790년(정조 14)에는 봉은사(奉恩寺) · 봉선사(奉先寺) · 용주사(龍珠寺) · 백련사(白蓮寺)와 함께 전국의 사원을 관할하고 승풍(僧風)을 규정(단속) 하며 왕실의 안녕을 빌던 오규정소(五糾正所)의 한 사찰로 채택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 시왕전 · 독성전(獨聖殿) · 만월보전(滿月寶殿) · 단하각 · 응향각 · 만세루(萬歲樓; 현재의 대방(大房)) · 승방(僧房) 등이 있습니다.
흥국사 0.6km
수락산 흥국사 일주문
흥국사 일주문은 정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근래에 세운 것이지만, 정면에 걸린 흥국사 편액 글씨는 물이 흐르는 듯 활달한 필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국사(興國寺) 편액
일설에 따르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1875~1965)의 글씨라고 하는데, 낙관 등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일주문에서 100m 남짓 올라가면 정면 언덕에 승탑 1기와 비석들이 서 있는 비전(碑田)이 있습니다.
1818년 소실된 만세루(萬歲樓) 터에 1878년 무렵에 건립된 이 건물은, 「염불 수행 공간과 누ㆍ승방ㆍ부엌 등의 부속 공간을 함께 갖춘 독특한 형식의 복합 법당」입니다. 이 대방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독특한 건축 양식과 공간 구성 및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서 2011년에 등록문화유산(근대 문화재)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학이 날개를 편 듯한 모습의 흥국사 대방은 건물 앞에 긴 주초석을 세워 산기슭의 기울기를 누그러뜨리면서, 조선 후기 자연주의 미학을 보여주는 흥국사의 얼굴 같은 건물입니다. 정면 7칸 측면 8칸 규모의 'H자형 팔작지붕 건물'로 현재 요사채와 더불어 설법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흥국사가 불화를 조성하는 불모(佛母)들의 근거지인 경산화소(京山畵所)로 불릴 때, 이 건물에서 많은 불화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건물은 곱게 다듬어진 장대석을 쌓고 그 위에 세운 것으로, 누각과 방사(房舍)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흥국사(興國寺) 편액
정면에는 흔히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으로 불렸던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 1820~1898)이 쓴 흥국사(興國寺)라는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요사채
영산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한 다포식 건물로서 1892년(고종 29)중건 한 건물입니다.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시기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화를 모시고 있어 '팔상전(八相殿)'이라고도 부릅니다. 현재 건물은 1892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八(여덟 팔)’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입니다.
전면에는 각 칸마다 분합문을 달았고, 벽체는 중방을 기준으로 아래쪽은 판벽을 구성하고 위쪽은 흙벽에 미장마감을 하였습니다. 판벽과 흙벽에 모두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건물 앞쪽은 칸마다 4짝의 문(들어걸개문)을 달았고, 옆면과 뒷면은 나무판과 흙으로 벽을 치고 벽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영산전(靈山殿) 편액
영산전의 편액과 기둥에 붙어있는 네개의 주련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 있던 소조 석가여래 삼존좌상(塑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보물)을 새로 지은 나한전으로 옮겨 모신 후에, 새로 조성한 석가삼존상을 모셨는데 후불탱화는 보이지 않는습니다.
본존불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불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습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보관 중앙에 새겨진 아미타불의 형상이 있습니다.
이는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의 자비를 현실 세계 속에서 실현하는 수행적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대세지보살
대세지보살 보관에는 정병이 있습니다.
대세지보살의 보병은 막중한 부모의 은혜를 표현하기 위하여 전생의 부모 유골을 넣었다고 하며, 이렇게 부모님 유골을 보병 안헤 모신 곳은 지금 만나는 모든 이들이 전생의 부모님을 꺠우쳐주기 위한 메시지라고 합니다.
내부는 불단 앞쪽에 두 마리의 용 장식을 두면서 천장에 학과 연꽃, 쌍희자, 큰 기름과 경사를 상징하는 금자를 그려 넣어 한껏 장식하였습니다.
내부에도 대들보 위로 마주보고 있는 용을 설치하였습니다.
내부는 불단 앞쪽에 두 마리의 용장식을 두면서 천장에 학과 연꽃, 쌍희자. 큰 기쁨과 경사를 상징하는 글자를 그려 넣어 한껏 장식하였습니다. 불단 위에 설치한 집 모양의 단좌은 지붕이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쪽 지붕에는 ‘적멸궁(寂滅宮)’이라 이름을 써서 걸었고, 위쪽에는 ‘내원궁(內院宮) ’이라고 걸었습니다. ‘적멸궁’은 석가모니불이 깨달음의 도를 성취한 궁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원궁’은 궁궐의 왕의 어머니와 왕비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흥국사 영산전이 왕실의 복을 빌기 위한 장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산전 주련
兜率夜摩迎善逝(도솔야마영선서) 도솔천과 야마천에서 부처님을 맞았는데
須彌他化見如來(수미타화견여래) 제석천과 타화천에서도 여래를 뵙네.
同時同回會如此(동시동회개여차) 같은 시각 같은 모임, 다같이 이러하니
月印千江不可猜(월인천강불가시) 달이 천 강에 비치는 뜻 의심할 수 없어라
4번째 주련의 위쪽 月과 印인 사이 오른쪽 옆에 있는 낙관의 글씨는 정확히는 해독이 안되지만 대원군인(大院君印)인 듯하며, 아래쪽 可와 猜사이 왼쪽 옆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 1820~1898)의 호인 석파(石坡)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어 흥선대원군의 친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흥국사 대웅보전(경기도 문화유산자료)
대웅보전은 대웅전의 격을 높여 부르는 말로, 석가모니 불상을 모시는 사찰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물입니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한 다포식 건물입니다. 처마 네 귀에는 지붕의 하중으로 처마가 처지게 되어 무너질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추녀에 활주(活柱)로 받쳐 지탱하고 있습니다.
남양주 수락산에 있는 흥국사는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의 부친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실에서 후원한 곳입니다. 여러 번 화재가 나서 1821년에 다시 세우고, 1888년에 고쳐 지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흥국사가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대웅보전 건물의 지붕에서도 나타나는데, 지붕 위 5개의 조각상상은 궁궐에서도 특히 중요한 건물에만 올리던 특수 기와의 한 종류입니다.
흥국사 대웅보전의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양 끝에 용머리 장식이 있습니다. 지붕 아래쪽 처마와 기둥 사이에는 공포를 설치하였는데, 건물의 앞뒤 양옆에 모두 둘렀습니다. 공포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화려하게 돋보이도록 하는 장치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가 새겨져 있어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조각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웅보전의 창문은 모두 들어걸개문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서까래 끝에 문을 매달 수 있는 장치(들쇠)가 달려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대웅보전 목조 석가삼존불좌상(木造 釋迦三尊佛 坐像,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대웅전 내부에는 목조 석가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오른쪽에는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아보는 보현보살이 석가모니불을 보좌하고 있습니다.
조성 발원문이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시기와 최초 봉안 사찰은 알 수 없으나, 얼굴 표정이나 신체 구성. 옷을 입은 방식 등에서 18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조각승 상정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가장 화려한 광배를 가진 이 불상은 불꽃무늬,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승 등이 새겨져 있어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사자를 타고 있는 동자상이 보이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상이 보이는 보현보살
칠성탱화(七星幀畵)
탱화 구성은 가운데 두 손으로 금륜을 잡고 앉아 있는 칠성광여래를 중심으로 그 아래쪽에 일광, 월광보살이 역시 대칭적으로 앉아 있는 삼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는 칠여래, 칠은성군, 남극노인성, 삼태육성 28수 등을 가득히 배열하였습니다. 여러 존상들의 모습이 도상에 충실한 만큼 색다른 느낌은 없으며 그림의 구성력도 수준급입니다.
제작연대는 1868년에 그렸습니다.
감로탱화(甘露幀畵)
1868년 흥국사 대웅보전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불화입니다. 화면 상단의 일곱 부처님을 중심으로 아미타부처님, 지장보살님, 인로왕보살님 등 여러 존산을 표현하였습니다. 중단에는 갖가지 공양물과 꽃을 올려둔 시식단과 의식을 진행하는 스님들이 자리합니다. 하단에는 두 쌍의 아귀와 죽음의 장면,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장면 등을 표현하였습니다.
불화의 제작은 영환 스님이 주도하였으며 불화소인 흥국사에서 조성된 이 불화는 서울, 경기 일대에서 활동한 화승들 사이에서 공유되어 화면의 구성 및 도상이 유사한 감로도가 등장합니다.
신중탱화(神衆幀畵)
탱화 상단 오른쪽에 합장하고 있는 재석, 범천을 비롯한 근속들이 배치되었고 그림 오른쪽에는 투구를 쓰고 무기를 든 천횽을 중심으로 한 근속, 무장들이 주로 배치되어 있는 구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우의 재석, 범천 및 천룡의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으나 크기나 이치로 볼 때 실질적으로 범천, 재석 위주의 신중탱화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좌측에는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들이 많습니다. 제작 연대는 1868년 입니다.
쇠북(금고)
대웅전의 네 귀퉁이에 보이는 활주(活柱)는 대웅전의 처마, 특히 추녀 끝을 받치기 위해 설치한 가느다란 기둥입니다. 지붕 무게가 무거운 팔작지붕 구조에서 하중을 분산하고 처마의 곡선을 아름답게 살리는 기술적·미적 기능을 합니다.
대웅보전 귀마루지붕 위 5개의 구법행자상
불경을 구하러 천국으로 가는 서유기의 삼장법사 일행을 묘사한 조각상입니다.
<서유기(西遊記)>에서 불경(佛經)을 구하러 천축(天竺)으로 가는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스님의 일행이 올려져있어 눈길을 끈니다. 갑옷을 입고 위엄 있게 구법의 길을 개척하는 늠름한 손행자(孫行者=손오공)부터 저팔계(八戒), 사화상(沙和尙=사오정), 마화상(馬和尙=필마온), 삼살보살(三煞菩薩=현장스님) 등이 있습니다.
이들을 ‘잡상(雜像)’이란 궁궐이나 성문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사찰인 흥덕사에 잡상이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왕실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보전과 시왕전 사이에서 다소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독성전(獨聖殿)이 나옵니다.
정면1칸, 측면 1칸의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한 아주 작은 건물입니다.
1칸짜리 아주 작은 건물임에도 팔작지붕을 한 것이나 이름도 각이 아닌 전을 붙인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독성전(獨聖殿) 편액
다른 절에서는 삼성각에 같이 모시기도 하는 독성(獨聖)은 홀로 깨달은 혹은 홀로 지내는 성자라는 뜻의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합니다.
독성탱
만월보전
대웅전 뒤편으로 석축을 쌓아 한 단 높인 대지 위에 세웠는데, 사찰 건물로서는 유례가 드물게 한 변의 길이가 230cm에 불과한 육각형 모양의 법당으로 크기는 4평 정도 됩니다.
사찰 건물로는 드물게 육각형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다포식 건물입니다. 육각형 각 변의 길이는 2.3m 정도라고 하며, 겹처마에 모임지붕을 하였는데 지붕마루 가운데에는 호리병 모양의 절병통이 놓여 있습니다.
활달하게 뻗은 처마를 6개의 활주로 떠받치고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지긋이 올려다보면 기둥 하나하나가 모두 연꽃이고, 그 연꽃이 모인 연못 같은 천장이 넓게 보면 하나의 별 모양이 됩니다.
가운데에 석조 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약사후불탱화와 팔상도 8폭의 불화도 있습니다.
불단에는 1861년(철종 12)에 기록한 시주자 명단이 붉은 글씨로 쓰여 있고, 왕실 시주자 명단인 위축현판문(爲祝懸板文)과 기타 시주질이 걸려 있습니다.
육각형의 건물이어서 만월보전 기둥에 붙인 약사여래불을 찬탄하는 주련이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합니다.
만월보전(滿月寶殿) 편액
만월보전(滿月寶殿) 편액도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하는데, 낙관은 보이지 않고 왼쪽에 가로로 계사오월(癸巳五月)이라 적었으니, 고종 30년(1893)에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네글자는 얼핏 정한일서(丁澣日書)처럼 보이지만, 한(澣)이라는 글자가 10일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정(丁) 자가 아닌 하(下) 자로 읽어서 하한일서(下澣日書)로 새겨야 합니다.
만월보전 약사여래 좌상
수락산 흥국사의 약사여래불은 결가부좌를 한 채 두손으로 붉은 약합을 받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원래 돌을 깎아 조성한 불상 표면을 하얗게 분칠하여 백불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입술은 빨갛게 장식했습니다.
만월보전에는 모셔진 석조 약사여래좌상은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얀 보름달처럼 모습을 하고 있는데, 더해서 신비한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약사여래불의 전체 높이는 120cm로 몸 전체에 비해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얼굴이 도톰하여 푸근한 인상을 줍니다.
만월보전 내부
만월보전 주련
東方世界名滿月(동방세계명만월) - 동쪽의 불세계는 만월이라 하옵는데,
佛號琉璃光皎潔(불호유리광교결) - 부처님의 이름은 유리광불로 그 광명은 희고 맑습니다.
頭上旋螺靑似山(두상선라청사산) - 머리 위의 나발은 산처럼 푸르시고,
眉間毫相白如雪(미간호상백여설) - 미간의 백호상은 백설처럼 희옵니다.
만월보전 주련은 가로는 좁고 세로가 긴 나무판에 위쪽에는 하엽(荷葉)을, 아래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가운데 바탕에는 흰색을 칠했으며, 글씨는 음양각으로 얕게 새기고 검정색을 칠했습니다.
4번째 주련의 위쪽 白과 如인 사이 왼쪽 옆에 있는 낙관의 글씨는 대원군인(大院君印)인 듯하며, 아래쪽 如와 雪인 사이 왼쪽 옆에는 석파(石坡)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어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興宣大院君 石坡 李昰應 1820~1898)의 친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왕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한 주심포 형식으로 보이는 건물입니다.
1818년(순조 18) 흥국사의 많은 건물들이 큰 화재로 소실되어서 4년 뒤인 1822년 (순조 22)에 승려 기허가 다른 건물과 함께 시왕전을 중수하였으며, 1870(고종 7)에도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시왕전(十王殿) 편액
내부에는 1792년에 42명의 조각스님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것으로 확인되는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 등 21구의 불상"(201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흥국사 시왕전에는 모두 21구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는데, 시왕상 속에서 나온 복장물 중 발원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1792년에 모두 42명의 조각 스님들이 참여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개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합니다. 이 밖에도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문 입구에 장군(將軍)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尊像)을 갖추게 됩니다.
이들 중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또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입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道明尊者-좌보처)와 무독귀왕(無毒鬼王-우보처)을 협시(脇侍)로 모셨고, 후면에 탱화가 걸려있습니다.
도명존자 옆에는 생전에 지은 선악의 업을 비춰 주는 거울인 업경대(業鏡臺)가 있습니다.
지장보살 뒤쪾에는 후불탱화로 지장보살도가 걸려 있습니다.
지장보살
중앙에 위치한 지장보살은 민머리 스님 모습입니다.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
지장보살의 왼쪽에는 업경대(業鏡臺)와 열명의 왕중에서 홀수에 해당하는 제1-진광대왕(秦廣大王), 제3-송제대왕(宋帝大王), 제5-염라대왕(閻羅大王), 제7-태산대왕(泰山大王), 제9-도시대왕(都市大王)이 역시 앉아있고, 판관(判官) 녹사(錄仕) 사자(使者)는 서 있습니다.
시왕 뒤로 총10폭으로 그려진 시왕도가 걸려 있습니다. 이곳 시왕전에 있는 불상과 그림은 모두 같은 해인 1792년(정조 16)에 일괄 조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제1-진광대왕(秦廣大王)
제3-송제대왕(宋帝大王)
제5-염라대왕(閻羅大王)
제7-태산대왕(泰山大王)
제9-도시대왕(都市大王)
판관상
판관상
사자상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지장보살의 오른쪽(우리가 볼 때는 왼쪽 방향)에는 열명의 왕 중에서 짝수에 해당하는 제2-초강대왕(初江大王), 제4-오관대왕(五官大王), 제6-변성대왕(變成大王), 제8-평등대왕(平等大王), 제10-오도전륜대왕 (五道轉輪大王)이 앉아있고, 판관(判官) 녹사(錄仕) 사자(使者) 및 인왕역사(仁王力士)는 서 있는 모습입니다.
제2-초강대왕(初江大王)
제4-오관대왕(五官大王)
제6-변성대왕(變成大王)
제8-평등대왕(平等大王)
제10-오도전륜대왕 (五道轉輪大王)
판관상
판관상
사자상
금강역사상
지장보살 주변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뿐만 아니라 좌우에 열 명의 왕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시왕(十王)으로 저승세계의 지옥을 담당하는 왕 들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7번 차례로 심판을 받는데, 이것을 근거로 한 것이 49재(齋)이고, 이후에도 세 번의 심판을 더 받는데, 100일째, 1년째, 3년째 되는 날에 지내는 100일 제사, 소상, 대상이 바로 그 것입니다.
시왕(十王)을 명부전에 배치할 때는 좌·우를 번갈아 가면서 좌측(향우)에 제일진광대왕(秦廣大王), 제삼 송제대왕(宋帝大王), 제오 염라대왕(閻羅大王), 제칠 태산대왕(泰山大王), 제구 도시대왕(都市大王)을 배치하고, 우측에는 안쪽부터 제이 초강대왕(初江大王), 제사 오관대왕(五官大王), 제육 변성대왕(變成大王), 제팔 평등대왕(平等大王), 제십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을 배치합니다.
시왕상은 소조상(塑造像) 혹은 목조상(木造像)으로, 각 왕은 원유관(遠遊冠)이나 통천관(通天冠), 오량관(五梁冠) 같은 것을 쓰고 둥근 옷깃(團領)에 소매가 넓은 관복(大袖平服袍)를 입고 용두(龍頭)와 봉두(峰頭)로 장식된 의자 위에 앉아 홀을 들거나 수염을 쓰다듬기도 하고 경전을 읽고 명부를 펼쳐들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