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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문보기 글쓴이: Next Paul Scholes No18
축구에서 분명 포지션은 중요하다. 하지만 경기에서 포지션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수비와 공격시 선수의 포지셔닝이 문제일 뿐이다. 중앙 수비수가 때에 따라서 상대편 미들까지 들어와 2선에서 작업하는 경우를 축구에선 흔히 볼 수 있다. 몇 십년전의 수비적인 롤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수비수 역할은 많은 부분에서 진화를 이뤄냈다. 단적으로 중앙 수비수는 장신을 쓸 수 밖에 없다. 다분히 상대 공격수에 대한 제공권 장악도 필요하고, 장신의 선수는 다리도 길기 때문에 상대 공격을 미리 저지하는 태클에서도 우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아직도 수비수의 덕목중의 하나는 키를 빼놓을 수 없는 것도 방어적 개념에서 출발한 이 수비라는 역할의 기본적인 과제이다. 그리고 공격에서도 이러한 제공권은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필자가 말한 공격은 바로 세트피스 내지는 코너킥이다.
1. 포메이션과 경기력
그렇다면 왜 축구에서 말하는 포지션 파괴는 기본적인 전형과 대치를 이루지 않는 것일까. 그 얘기를 하기에 앞서 한가지 전제하고 넘어갈 명제는 축구에서 감독의 전술을 한 몫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선수구성이나 경기에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내기 위해 눈에 보이는 대형이다. 혹자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고 치부할수도 있으나 감독의 의중을 경기전에 알 수 있는 건 포메이션이다.
결국 포메이션이란 건 경기중에 정상적인 패턴을 유지할 때 유지하는 대형이고 그 대형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전술적 역량과 상황은 오로지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들의 자유도, 패스웤 내지는 패스 스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전형의 변화는 역습과 지공, 라인을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문제, 오프사이드의 활용등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은 변화될 수 없다. 그 변화의 목적은 뭘까. 득점이다.
[ 패스 스킬로 먹고 산 노년의 피를로 ]
[ 좀처럼 진격하지 않는 후안 로만 리켈메는 농부입니다. ]
1. 리켈메는 플메로서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크로스는 물론 킬패스와 득점까지 모든 전과정에 참여하는 그의 이런 성향은 템포를 죽이면서 빠른 역습 템포에 길들여진 현대 축구에서 거꾸로 가는 시계를 가진 듯한 벤자민과 같았다.
2. 바로셀로나에 잠깐 있기도 했지만 비야 레알에 임대후 이적하면서 능력을 그의 능력은 결과적으로 바르셀로나가 놓친 재능이었다. 이후 그를 대신할만한 선수가 메시였으니 그의 능력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앞서 말한 패스스킬은 크로스, 킬패스, 쓰루패스, 전진패스, 노루패스, 2대 1패스 등등 볼키핑이나 드리블에 관련된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에 따른 공의 움직임을 말한다.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다. 좀 있음 다룰 바르샤의 433을 얘기할 때 전술의 다양한 진화를 말할 때 반드시 이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패스웤의 발전만큼 중요한 패스 스킬은 바르샤가 오래도록 극강의 점유율을 과시한 원동력이다.
이와 별도로 필자가 한창 축구와 관련된 글을 쓸 무렵 포메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적으로 역설해 왔다. 어쩌면 전형이 주는 의미는 경기중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수 있다. 초기 토털 축구에서 본 것처럼 뛰어난 공미 플메 선수들을 막는데 우루루 몰렸다 공을 잡으면 수비수, 공격수 할 것 없이 전원 공격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본다면 당시에 발달한 전형은 토털축구앞에서 무용지물처럼 보일 수 있다. 요즘처럼 오프사이드가 발전하고 수비대형의 유지를 중요시하는 현대 축구에서 그나마 클롭의 벌떼 축구 정도만이 토털 축구를 변태적으로 받아들인 축구의 진화로 보여진다. 토털축구에 대해서 이왕 말한 김에 한마디 더하자면 이런 축구 개념은 초기에 모든 클럽들이 따라하기 힘들었다. 사키가 토털 축구에서 더 나아가 수비와 공격의 대형을 설명하기 전까지는 토털 축구는 네덜란드만이 고유하게 가진, 그 중에서도 아약스만이 이해할만한 클래스가 필요했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보였던 지난 날들의 바르샤의 티키타카같은 마법이었다.
[ 메시 : 티키타카를 넘어서서 ]
지금도 2000년대 후반 선보였던 바르샤의 점유율 위주의 공격은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 오프사이드를 파괴하면서 역습의 스피드를 최강으로 올렸던 다이나믹 전형을 처절하게 파괴했던 미궁의 연속들이다. 그 경기를 재탕해봐도 공이 뺏기는 그 순간부터 철저하게 상대가 잡지도 못하게 만드는 기술들을 구현하느라 애쓴 바르샤의 유스들이 공을 수비진까지 내렸다가 어느새 공격 대형으로 들어가는 지루한 공포를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그 지루함의 공포는 언제나처럼 메시로부터 시작한다. 점유율의 433과 다이나믹 433의 만남은 그렇게 한쪽의 몰락을 가져왔다.
2. 경기력에서 한참 멀어져 갔던 퍼거슨의 4231과 그 대척점에 있는 벵거의 4231
[ 미헬스 리누스 토탈 축구의 창시자 ]
그렇다면 433 대형을 두고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2000년대 초기 퍼거슨이 트레블을 이룬 직후 레알과의 경기가 끝난 후에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다이나믹 전형에서 4231전형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당시 유행했던 4231의 전형은 90년대 중반 벵거나 아스날에 부임하면서 수정의 수정을 거쳐 나왔던 4231과 조금 다른 형태였는데, 그 차이는 강팀과 강팀의 대결에서 수비와 공격 밸런스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최적의 전형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상대가 라인을 올려 공격을 시도할 때면 3선과 4선에서 강화된 수비를 바탕으로 상대의 오프사이드를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도 쉽게 뚫어낼 수 있었던 전형이 4231이었고, 1,2선의 적은 인원으로 상대의 미들을 파괴하는 움직임보다는 상대가 라인을 올리면 자연히 공격수와 상대 수비수의 위치가 그다지 멀지 않곳에 위치한 만큼 상대의 공격에 수동적이지만 다분히 빠른 역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전형이다.
[ 알렉스 퍼거슨 ]
벵거가 계속적으로 추구하는 지금의 4231과는 거리가 있는 전형의 결과물이다. 같은 전형을 가지고도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전형을 쓰는 목적의 차이이다. 벵거처럼 아름다운 패스를 통한 빠른 역습을 추구하는 자들의 전형과 2000년대 초반 수비와 공격 밸런스를 맞추는 적합했던 4231의 사용법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퍼거슨이 시도했던 4231은 그동안 다이나믹 전형에 눈을 떠왔던 선수들에게 그 스스로의 원칙을 버리는 이적행위와 다를바 없다. 오히려 그 전형은 맨유에 암흑을 가져왔던 그림자에 가까웠다.
당시 4대 미드필더 중 하나였던 베론을 영입하면서 창의적인 패스의 시도를 일구려 했던 퍼거슨은 상대의 압박과 체력에 오히려 정확한 롱패스가 상대에게 주는 위협감보다 훨씬 덜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영입 초에 보여준 베론의 역량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처방을 내렸다. 베론을 수비형미들로 보직을 변경한 것이다. 2000년 중후반 이후로 퍼거슨이 선수들에게 시도하는 이런 포변의 모습은 꾸준히 감지되어 왔다. 베론에게 있어 창의적인 패스시도는 선수들의 압박을 견뎌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피엘 리그에서 오래도록 그 역량을 드러내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베론이 처음부터 부진의 늪에 빠진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만 그를 위한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 베론 너 왜 여기 왔었니? ]
3. 사키의 기반위에 정석으로 잡아가는 433의 혁명적 전술 변화의 도래 - 미헬스 리누스와 다른 역할과 의미를 가진 433 전형
[ 포르투에서의 무리뉴 ]
한창 4231이 눈을 끌 때쯤 해서 수비적인 433 대형이 급부상하던 시기는 무리뉴가 포르투를 이끌고 우승을 일궈내던 시기였다. 이 때쯤 첼시로 건너가 그가 이끄는 전설의 포메이션을 일궈내는데는 시간이 얼마 들지 않았다. 첼시의 우승은 그와 함께 처음부터 시작했었고, 라인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든 내리든 그는 433포메이션을 가지고 선수들의 종적 간격을 최소화하면서 상대편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도록 선수들의 수비적 역량을 좁은 간격 유지를 통해 강화시켰다. 공격에서도 그의 좁은 라인 간격 유지는 마찬가지다. 오늘날 첼시가 체력을 바탕으로 한 기술적 역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유도 무리뉴가 이끌었던 첼시의 포스가 남긴 뇌리의 연속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흔적은 후에 약해진 스쿼드를 가지고도 수비축구로 UEFA 우승컵을 들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당시 감독은 디마테오, 중국계혼혈처럼 생긴 소년명수의 탁월한 지도력인지 선수들의 담합인지 몰라도 당시 일군 챔스 우승은 리그에서 한참 밀린 순위가 동기 부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쨋거나 무리뉴가 첼시에 남긴 유산중 하나인 수비적 관점의 433은 지금도 433을 쓰는 정석으로 쓸만하다.
[ 무간지 맨유로 얼렁 오소 ]
그렇다면 점유율의 433과 다이나믹433이 급격하게 부딪히면서 생긴 기류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챔스에서 맨유가 바르샤를 만나기 전까진 극강의 전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맨유는 442 시절부터 경기장을 굉장히 넓게 쓰면서 선수들의 역할과 움직임에 큰 자유도를 부여받곤 했는데, 이것이 맨유가 가진 역습의 원천이었다. 이 역습이란 것은 한방이란 의미와 동의어다. 다시 말하면 경기력을 반전시킬 수 있는 득점과 팀스피드의 향상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클래식 윙어의 드리블이나 정확한 크로스를 거쳐 직접 키퍼와 대면하는 공격수에게 해결을 맡기는 방식은 사키가 정의한 수비대형에서 공격 대형으로 나가는데 중요한 전술적 의미를 내밀고 있다. 한 선수가 가진 역량으로 수비수를 유린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을 가지고 드리블하다 끝내는 방식의부분적인 종식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공격을 하는데 세축의 루트 확보와 선수들의 스페셜한 능력의 분업화를 통해 득점에 이르는 과정은 맨유를 통해 사키가 준 영감에 대한 보답으로 그 위력이 하루가 다르게 배가 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성취는 누구도 제시하지 않은 감독의 성취였다.
사키가 내민 토털축구의 정형화는 공격과 수비방식에 대해서 패스 대형이 아닌 수비대형의 사각대형을 의미하는데 당시에 그가 정의한 것은 수비대형에 국한되고 라인을 올리고 내리는 시점이나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방식의 고도화 작업은 미완의 대기였다. 이런 대기의 만성을 비교적 빠른 시간안에 성과를 낸 감독이 바로 퍼거슨인 것이다. 이런 전형의 장점은 능력의 분업화 말고도 장기적으로 리빌딩을 하는데 부족분에 대해 필요한 능력을 가진 자원의 영입을 비교적 쉽고 빨리 그 효력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또한 감독의 역량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린 처방의 효과는 결국 그의 발목을 잡는 계기도 되었는데, 바로 체질의 변화에 대한 선수들의 거부감이다. 10년 넘게 맨유를 이끌어오면서 사키의 442대형을 혁명적인 수준으로까지 올린 감독의 막판 선수들의 움직임은 공미플메로의 전환이었는데, 이러한 회귀는 아이러니하게도 맨유가 가진 공수밸런스의 문제였다. 당시 맨유는 득점이 많은만큼 실점도 비교적 많이 허용했다. 역대 최소 실점은 기록에서 말해주듯 2000년대 초반 첼시가 우승했을 때임을 상기해보면 맨유의 큰 자유도는 상대 선수들에게 많은 공간을 허용하면서 역습의 중요성만큼 키퍼의 중요성이 계속 대두되어왔다. 슈마이켈 이후 반 데 사르가 오기 전까지 맨유의 암흑기를 상기해봐도 맨유가 가진 다이나믹의 뒷받침은 중앙 수비의 능력과 키퍼의 선방이 크게 중요할 수 밖에 없다.
현재도 여전하게 따라오는 키퍼의 역량은 맨유가 다이나믹한 공격으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 사항이다. 어느 팀들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과거 맨유처럼 역습 스피드가 현저하게 빨랐던 팀에서는 아군이 전진하는 만큼 상대에 대한 뒷공간이 열리는 문제는 득점을 하고도 내내 따라오는 위협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키퍼의 선방 능력은 최후방 수비수로서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지금의 맨유는 역시나 키퍼의 본질적인 능력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데, 누가 그런 극한 직업을 경험하고 싶어할까.
4. 반할의 4231 - 큰 자유도가 허락되었던 다이나믹 포백에서 보였던 역습도 압도적인 점유율에 의한 득점 공식도 없는 4231.
현재의 맨유는 과거 퍼거슨이 추구했던 4231 때와 비슷한 전철을 겪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때보다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것이 맨유가 겪고 있는 증후군의 실상이다. 베론의 영입 실패 사례에도 불구하고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았던 골든보이 안데르손을 영입하고 또 실패, 이젠 좀 급이 낮고 도르트문트라는 게겐프레싱의 전방압박을 통한 공격으로 인해 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이 대신 벌여준 체력싸움과 압박 때문인지 공간의 자유도가 넓어 졌음에도 브릿지 역할만 감당했던 무늬만 공미에 해당한 가가와를 영입하는 것까지 모든 공미 영입들은 실패를 거듭해왔다. 마타의 영입은 패닉바이, 에레라의 영입은 박투박의 역할을 높이 평가해 이뤄진 영입이지만 이들의 역할은 미들에서 중앙 공격을 주도하는 역할이라 맨유에서 오래도록 득점을 책임지는 섀도우롤과는 거리가 먼 자원들이다. 거센 수비적 압박에 견디는 공미라면 모를까. 변하지 않는 체질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맨유의 기본 멘탈은 아직도 다이나믹 전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기본적으로 이피엘 리그는 공미의 출세를 막기 쉬운 구조이다. 공수전환이 빠르고, 볼 탈취시 역습이 가능한 동네에서 수익구조가 비교적 균등한 리그의 선수들의 클래스 차이는 점점 강팀들이 까다롭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당장 레스터 시티가 1위를 오래도록 차지하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올시즌 무리뉴 3년차라고 하나 첼시의 몰락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은 맨유를 좋아하는 팬들을 제외하고도 이피엘의 여타 클럽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실바라는 출중한 공미를 가지고도 맨시티는 세대 교체를 하지 못해 지난 시즌에는 맨유에게 압도당한 전력의 4대 2 패배를 봤고, 올시즌 초반이지만 토트넘에게 대패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또한 점점 하위권의 팀들이 끈끈한 조직력으로 실바의 클래스에 대항마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인데, 맨시티는 최고의 상태로 로테가 아닌 주전급 모두가 나와도 약팀과의 경기에서 승패를 장담하기 힘든 경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5. 펩의 부임과 분데스의 성과에 대한 고찰, 그리고 맨시티의 전술 변화의 관점 - 에레라의 빗장수비의 진화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맨시티
올시즌 펩이 맨시티로 부임해도 이러한 결과는 당분간 이어질 거고, 어쩌면 펩이 크게 좌절을 맛보게 될 팀은 이피엘에 존재할지 모른다. 왜냐구, 이피엘은 뮌헨처럼 독식구조의 분데스도 아니고,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뚜렷한 라리가에서 유스의 버프를 받아 최상위의 전력을 냈던 고향팀과 같은 단일철학을 맨시티에선 제공하지도 못하며 챔스에서 모래알이 되는 맨시티의 선수 영입은 돈으로 최상위가 아닌 차선의 영입 전쟁에서 승리해온 전력만 가득한 팀을 맡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실바는 펩이 지도하면 메시가 될 수 있을까 ]
한가지 큰 차이점은 맨시티엔 메시가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다비드 실바정도가 펩의 요구조건에 부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바를 메시처럼 활용하려면 바르샤에서 했던 요구조건과 다른 전술이 필요하다. 이피엘 특성상 펩은 전술변화를 급격하게 가져가서 공격적인 루트의 다양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펩이 생각할 수 있는 득점루트는 아구에로와 실바의 공격을 극강으로 만들기위해 수비전형대신 공격적인 전형을 만들지 모른다. 바르샤에서 점유율의 433으로 경기 운영을 했다면 맨시티에선 4선에서 바로 2선까지 치고 들어오는 빠른 역습 위주의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이탈리아식 수비전형으로 수년간 호흡한 맨시티의 전형은 3331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의 스리백으로 변환될시 큰 실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피엘은 뮌헨처럼 실험이고 뭐고 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며 약팀들도 보여주는 경기력의 수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 펩의 3331 ]
1. [ 실제 펩이 구현한 뮌헨의 3331 전형 ] 1516시즌 이 전형의 대한 의문은 도르트문트의 게겐 프레싱을 상대했을때 가장 우려했었던 게겐프레싱에 이은 역습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결국 5대 1로 이기고 만다.
2. [ 분데스리그서 통하는 3331 전형 ] 필자가 그 경기를 보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던 건 저렇게 공수 전환이 빠르지 않은 분데스리그에서 그나마 전방 압박에 이은 벌떼 공격의 도르트문트만이 공수전환의 팀 스피드를 향상시킨 팀이지만 항상 뒷문에 취약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압박의 수위를 전방에서 높이는 만큼 수비의 빌드업도 거의 중앙 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3. [ 결론 ] 고로 펩의 뮌헨에서의 성공은 이피엘처럼 만만치 않을 듯 싶다.
3331전형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바르샤의 뮌헨화의 비교적 이른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분데스의 전체적으로 수준이 낮은 리그임을 반증하고 있다. 전형의 변화로 선수들의 움직임이 제약되면서 급격한 체질변화를 가져갈 때 선수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그 전형이 분데스에서 먹힐 수 있었던 원인중 하나는 이피엘처럼 공수전환이 빠른 리그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격과 수비가 비교적 덜 분화된 상태로 패스 축구의 구현은 비교적 용이할 수 밖에 없다. 이피엘의 강팀에서 그런 선수들의 반발을 받고 성공한 감독의 사례는 장기집권한 퍼거슨 정도고, 벵거는 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내는 그의 현명한 판단을 구단에서 지지하고 있으며, 실제 어린 꼬꼬마들을 상대로 계속 챔스권을 유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나머지 감독들은 명장이든 졸장이든 선수들의 항명과 태업으로 보야스처럼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펩이 3331전형을 이피엘에서 선보인다고 가정했을 때 분데스와 달리 이피엘의 감독들은 전술의 약점을 찾아내 집요하게 그 부분을 파고드는 전략으로 모든 팀들이 분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해법 또한 분주하게 찾아야 할텐데, 아무리 찾아도 계속 허점은 발견할 것이고, 그 전형으로는 경기력은 물론 승리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은 빠른 공수전환에 있다. 빠른 공수전환은 선수들의 체력을 급격하게 소모시키는데, 해결 역시 빠른 공습을 통한 득점이 이피엘에서 생존하는 가장 올바른 해법이다. 막말로 횡적 공간의 선수들이 세명만 존재한다면 역습위주의 포백으로 가는 팀들의 팀스피드 향상으로도 침투조건이 정말 용이해지지 않을까. 이러한 약점은 아까 언급했던 빠른 공수전환때문에 통하기 힘들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 하인케스는 트레블을 남기고 ]
막말로 3331의 전형을 펩이 구사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하인케스의 간결하고 지속된 역습 파괴 전술이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벤과 리베리의 역할을 제약시키고 나서 이 전형을 구현할 때 가장 큰 제약은 선수들의 간격 유지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패스 축구의 본질에서 마땅히 더 진화되지 않고 구현시키기 위한 전제로 굳어가는 선수들의 전진을 제약시키는 역효과를 어떻게 승화시키는가가 문제다. 포백에 기반한 사키의 축구를 구현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측면의 크랙을 제약시키고 중앙에서 많은 패스들을 거쳐 간다면 횡적 간격이 포백보다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는 문제도 내포되어 있다. 중원을 조율하는 이의 수비 간격 조절은 실패할 수 밖에 없고, 포백에서 진화하는 무한한 전술 패러다임은 다 무시된 채 무한 패스 축구로 점유율을 극한으로 승화시켜야만 하고 다른 팀들의 역습에 대응이 가능한 클래스들을 모아야 이런 전형은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바르샤처럼 극강의 전력을 구성하거나 아님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리그에서 닭대가리가 되던가의 선택 정도라고 보면된다. 그래서 필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분데스의 전체적으로 낮은 클래스들의 선수 구성이 뮌헨의 바르샤화를 진행하는데 무리가 없었다고 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마저도 처음엔 솔직히 성공할 수 있을까 미지수로 남겨놓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도르트문트가 선수유출만 되지 않았어도 뮌헨의 3331전술은 이미 파괴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 설명하다 만 분데스에서의 펩의 성공은 절대적으로 독일 리그 전력의 80%를 차지하는 뮌헨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팀들의 경기력을 볼 때 리그의 수준이 높지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했는데, 이피엘 리그와 대조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잘 짜여진 포메이션에서 공수조율에 능한 선수들이 존재하면 할수록 빛을 내는게 이피엘 리그인데 반해, 공격에서 상대적으로 첨병 역할을 잘하는 선수들이 훨씬 눈에 잘 띄는 것이 분데스리그다. 이것은 뭘 뜻할까. 분데스는 이피엘보다 선수들의 압박과 체력싸움이 그리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빠른 공수전환에서 필요한 조율의 역할이 보이지 않아도 아주 중요해진다면 결국 탈압박과 볼간수를 잘하는 선수들의 매끄러운 경기운영이 다른 클래스 있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극대화시키는데 반해, 그런 역할 분화가 그다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리그라면 분명 현대 축구 수준에 미달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분데스리그는 공격 따로 수비 따로인 경기력이 대부분이다.
레버쿠젠을 보자, 최근 매시즌마다 수비력이 안타까울만큼 지적을 받고 있음에도 역습 축구로 수비불안을 커버하고 있다. 그렇다고 레버쿠젠의 공수전환이 빠르다고 볼 수 없다. 세리에의 콰드라도처럼 그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낼 뿐 첼시의 콰드라도가 된다면 평범 이하의 수준을 드러낼 팀이 레버쿠젠의 현주소다. 사실 볼프스부르크나 도르트문트를 제외한 분데스리그 대부분의 팀들이 상업화에 대한 진전이 없는 동안 이피엘에선 그에 대한 성과를 누리고 있는데, 확실히 클래스 있는 선수들의 영입에 제약이 심한 독일리그는 그 태생 자체가 노당자들의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구단주 또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레전드로 성장해 은퇴후 관리자로 전철을 밟고 구단주가 되는 모범적인 사례가 존재한다. 뮌헨의 베켄바워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거대한 갑부구단 뮌헨조차도 도르트문트처럼 일찌기 주식회사로 발돋움한 사례를 따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분데스는 외국인 출장 제한 규정이 아직도 살아 있다.
전에 썻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레버쿠젠이든 슈투트가르트든 도르트문트든, 볼프스부르크까지 전시즌의 우승했던 선수들을 고대로 빼오는 클래스를 막아낼 방법은 없는게 뮌헨이다. 그런 리그에서 리그의 발전을 기원하기란 누워서 침뱉기에 불과하다.
6. 맨유의 전술과 과도기 앞에서
이제 맨유 얘기를 좀 해볼까.
전형의 변화를 이렇게 쉽게 구현할 수 있는 뮌헨과 달리 맨유에선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4231의 전형의 변화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점유율의 우세속에서 상대팀들은 지지않는 해법에 이어 이기는 해법까지 내놓은 상태도 불과 15라운드가 지나기도 전에 말이다. 그리고 감독 또한 이 전형을 고착화시키면서 선수들의 전진능력을 극도로 제약시키는 상황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실정이다. 이런 지루한 패턴을 축구라고 볼 팬들이 누가 있을까. 큰 실패는 전략의 분수령이다. 그런데 그런 큰 실패를 통해도 전술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감독으로서의 결과에 대한 변명은 구차한 노릇이다.
필자는 아직까지도 반할에 대한 지지는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전술이 변화를 추구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그에게는 불행인지 몰라도 그의 철학이 더이상 유효하게 먹히지 않을 때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감독의 역량으로 승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 감독의 숙명이다. 이미 그가 원했던 선수들의 영입은 맨유에 합류되었고, 남은 건 감독의 능력인데, 한 포메이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제한시킨다면 어떤 선수가 축구로서 창의성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아군이 움직이지 않는데, 아군의 공격움직임을 막으려고 수비대열을 이탈할리는 없다. 자유도의 장점은 상대 수비의 대열 이탈이다. 선수 본인의 클래스가 증명되는 순간이 존재하려면 빠른 공수전환이 속에 어느 밸런스의 추가 급격하게 기울거나 상대 수비가 공격하는 선수를 뒷받침할 때인데, 전자는 이피엘에서 변하지 않는 리그 특성이고, 후자는 한 선수의 위대한 탈압박이 가능할 때 가능한 전술이다. 하지만 후자보다 전자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한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후반의 전술 변화가 용이하며 어떤 선수든지 상대의 수비를 쉽게 뚫어 생기는 득점 가능성과 선수들의 개개인의 능력이 빛을 발휘하는 자유도가 크게 허락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부여된 자유도의 효과는 선수들의 경기력과 집중력 향상이다. 그 향상은 해법이 되고, 지금까지 맨유의 우승과 챔스 우승을 이뤘던 공격의 축이 되었다.
[ 현재 맨유의 상태 ]
[ 부제 : 영입을 해도 구관이 아직까진 명관이다.]
누가 언제부터 캐릭에게 중원의 후방을 처음부터 도모했을까. 비단 캐릭이 맨유에 영입된 목적은 스콜스처럼 중원의 조율과 패스 줄기를 담당하기 대체자로 영입된 것은 틀림없다. 지금 그의 역할은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좀더 후방에 머물며 선수들의 공수조율을 하는데 포백보호와 전진패스를 통한 아군의 공격 루트 확보는 스콜스에게서 보여지지 않았던 롤의 진화이다. 과거 스콜스가 중앙에 머물며 상대 문전으로 쇄도해 득점을 내던 패턴은 캐릭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캐릭은 아직까지 맨유 중원의 핵심이다.
[ 애증의 하그리브스 ] [ 부제 : 3시즌동안 병상에서 ]
[ 터질만하니 대장염 앓은 대런 플레쳐 ]
[ 플레쳐는 에반스와 함께 동거동락 IN WBA ]
이런 전술의 해법은 하그리브스의 3년간의 전력이탈과 준 월클과 월클 사이에서 대장염으로 전력에서 이탈된 플레쳐라는 두 박투박 자원의 공백때문에 감독이 짜임새 있는 전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헐거워진 중원을 캐릭에게 맡기면서 자연히 중원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포백보호라는 새로운 롤을 그에게 부여한 것일 뿐이다. 본래 캐릭은 토트넘에서 중앙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지 맨유에서처럼 포백보호를 위해 후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자원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의 맨유의 캐릭롤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던 시절의 익숙해진 롤의 진화일 뿐이다. 과거 미들이 압도적으로 강했던 0910시즌 첼시에게 중앙의 긱스와 플레쳐의 중원 기용을 통해 3대 0의 완승을 거뒀던 것처럼 중원의 열세는 이미 6년전부터 거슬러 올라온 과제이다. 박투박으로 월클의 반열에 올라가기 시작한 플레쳐를 두고도 중원의 열세는 계속 불거진 문제였는데, 이걸 한시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던 시절에 제대로 된 영입을 했다면 맨유의 현재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비단 윙어의 천국이었던 맨유의 모든 A급 윙어들의 폼 저하도 마땅히 버텨줘야 할 척추라인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맨유가 1차적으로 시급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측면 크랙의 영입이 확실하다. 그리고 노쇠화가 진행된 올시즌 중원의 문제는 차츰 보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솔직히 0910시즌에 몇경기 보여줬던 윙어의 중미 기용은 시즌내내 운용하기 힘든 과제다. 상대가 측면을 집요하게 노리고 측면의 과부하를 크게 일으키면 윙어기용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상대가 텐백운용을 하게 되어도 이런 경기 운영은 힘들게 된다. 첼시라는 강팀이 미들에서 맞불을 낼 때 크게 유효한 전술이기에 이런 전술을 고착화시키려면 수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7. 사키이즘의 진화와 초기 사키의 수비관점을 두고 벌어지는 433에서의 전술 진화
라볼피아나와 포백 빌드업의 차이
사키가 고안한 플랫한 대형의 442는 거기서 진화한 라볼피아나와 개념이 다른데 그 차이는 수비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선수들이 대형을 유지하면서 공간에 들어오는 선수를 묶고 대형을 좁게 가져가면서 상대의 침투루트를 차단하는데 중점을 두지만 좀더 공격적인 대형을 유지하면서 상대 배후의 침투를 노리는 전형으로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라볼피아나 전술이다.
그렇다면 마저 언급하다 말았던 점유율의 433과 다이나믹 433의 차이를 비교해 보자. 이 둘의 차이는 패스줄기의 생성과 빌드업 관여에서 상이한 시작점과 관계가 있다. 바로 수비의 시작을 포백으로 시작하느냐 아님 중앙 수비에서 빌드업을 시작하느냐의 차이이다. 중앙 수비에서 빌드업을 시작한다면 포백을 전부 일렬로 구성할 필요는 없다. 일단 초기 점유율의 극한을 위해 수비형 미들을 포백에 가까이 붙여 일시적인 스리백 변형을 추구하는 라볼피아나 전술이 구사되면 좌우 풀백은 풀백이 아닌 윙백의 위치에서 빌드업에 관여하게 되는데 미들의 수적 우위를 일시적으로 가져갈 때 후방빌드업이 완성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침투의 요건을 완성시키기 위한 방법을 구현한 것이 펩이다. 우리가 보는 티키타카의 구현은 단순 패스의 질 향상으로 이뤄진게 아니라 어떤 위치에선 패스를 유연하게 돌리기 위해 삼각형태(트라이앵글)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 리카르도 라 볼페 감독 사키의 또다른 진화의 시작으로 라볼피아나를 창시한 감독 ]
라볼피아나는 브라질에서 발생한 투볼란치와 대조적으로 4선의 빌드업을 추구하는데 3선의 동참과 풀백의 2선 침투를 위한 해법으로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리카르도 라 볼페가 최초 구현한 전술이다. 이런 방식은 점유율의 극한을 노리고 쓴 것이 아니라 후방 빌드업의 유연한 구성을 썻다고 보는 것이 맞다. 라볼피아나의 유래도 그의 이름을 따서 형용사형으로 변형된 축구의 빌드업 개념이고 변형 스리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전방에서 풀백의 공격적 침투와 상대팀의 전방압박 회피가 주목적인 것이 골자였다.
라 볼페는 멕시코의 국대 감독으로 와서 그가 생각한 일시적인 스리백 변형을 구현해냈는데, 어찌보면 라볼피아나의 개념은 리베로와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리베로와 라볼피아나의 차이점은 수비형 미들이 4선으로 깊숙이 볼을 가지고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수비진의 초기 빌드업 개념으로 리베로가 존재한건 사실이나 수비형 미들이 상대가 공을 가진 상태가 아닌 아군이 공을 가진 상태에서 상대 압박을 견디는 능력을 키우게 된 능력을 통해 수비형미들의 롤이 딥플메로 진화되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개념이 라볼피아나이다.
라볼피아나 개념이 진화된건 사키가 제안한 플랫한 대형을 등에 업고 발전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딥라잉의 개념이 공미 플메의 대척점에 선 까닭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서 플메의 진화를 생각해보자. 사키의 포백이 공미플메를 막는 초기 토털 축구의 대형을 정립한 전술로 발전했기 때문에 수비 라인에서 빌드업에 관여하며 경기력을 풀어갈 마땅한 중원의 능력자가 탄생해야 하는 건 어쩌면 축구 발전에서 필요한 시기는 당연히 도래하는게 아닐까. 어떤 이들은 딥플메를 레지스타라고 하는데 레지스타는 이탈라아 어며, 이피엘에선 이런 유형보다는 박투박 유형의 미들을 꾸준히 배출해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딥플메에 대한 개념이 발전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현재 캐릭이나 스콜스 같은 유형의 선수는 지금도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플레이 메이커의 개념이 1.5선에서 3.5선까지 공유하게 된 건 진화가 아닌 반전과 응전의 결과물일지 모른다. 사키가 고안한 442의 개념에서 딥플메의 성립 조건은 어디에도 없고, 지금도 정립된 개념이 아니라서 덜분화된 형태의 산물을 우리는 보고 있다. 어쩌면 피를로나 귄도간처럼 공미플메에서 딥플메로 전환된 역사(히스토리)를 생각한다면 이제 축구 전술에서 오래도록 그 빛을 발휘하는 딥플메의 성립조건을 이제는 점진적으로든 급진적으로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공미의 기본조건은 탈압박과 볼간수외에 득점을 책임지는 임무가 모두 주어지고, 전형의 고착화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많지만 사키가 제안한 플랫한 442에서 딥플메의 기본조건은 굳이 득점을 책임질 필요가 없이 선수들의 패스 줄기를 담당하고 포백보호와 전형의 유동적인 전술 변화가 가능한 위치에 있기에 좀 더 전술의 다변화를 추구하거나 비교적 용이하게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닐까.
8. 바르샤의 라볼피아나와 펩, 그리고 레이카르트
라볼피아나 개념이 그 이전에는 쓰여지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반할이 레이카르트를 그런식으로 썻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기본적으로 433을 쓰되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자유로운 변형을 맨유에서도 추구했던 반할의 성향상 그 역사를 보면 당시 레아카르트에게 그런 역할을 맡겼다고도 하는데 당시의 개념이 라볼피아나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미들의 압도적인 경기력 우위를 추구하는 반할과 라볼페의 후방빌드업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카르트가 아약스로 다시 돌아온 시기에는 키퍼에게 백패스가 가능했던 90년대 초반이었다. 라 볼페가 멕시코 감독으로 부임했던 시기는 2002년이다. 그러니 라볼피아나의 개념은 키퍼에게 백패스하는 조건이 없어지면서 생긴 빌드업 개념이라 보는 편이 맞다.
[ 라볼피아나의 개념적 이해도 ]
1. [미들의 빌드업 참여] 후방빌드업이 가장 잘되는 순간이 미들이 빌드업에 참여하면서 패스 줄기를 확보할 때다. 미들이 공격에 관여하면서 상대 수비의 빗장을 허문다면 그것만큼 최선의 방어가 없겠지만 문제는 그런 공미 플메의 우세가 계속되면서 수비의 발전과 분화를 촉진시켰다는 것이다.
2. [사키이즘의 진화] 아리고 사키의 442 개념은 수비에 대한 기본 개념을 모든 이들에게 이식시키는데 충분했다. 현재도 진화중인 전술의 뿌리는 사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뜻 보면 343전형이라 볼 수 있는 전형이나 빌드업에 관여하는 미드플더의 존재는 빌드업에 관여하지 않고 볼을 이끌고 미들에 직접 참가했던 수비의 개념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수비수가 미들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홀딩미드필더가 수비 빌드업에 관여한다는 건 사키가 건네준 수비론에서 한참 진화된 방법이다. 미들 본연의 임무를 다하면서 포백을 보호하는 개념으로까지 발전하는데 공헌한 빌드업 방식이 바로 라볼피아나이다.
3. [펩이 바르샤에 가져온 점유율 방식] 훗날 이런 방식의 빌드업은 펩에게도 영향을 줬다. 결국 펩은 완벽하게 크루이프의 철학을 옮긴 건 아니다. 사키의 영감을 받은 빌드업 방식을 바르샤의 패스철학에 접목한것이 맞다.
4. [주전술이 된 라볼피아나] 풀백의 공격력이 극대화된 바르샤이다. 보니 라볼피아나 말고도 433에서 343으로 변형될시 수비수가 직접 공격에 관여하는 전술도 가끔 보여주긴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펩이 점유율의 압도적인 공격력을 위해 사용한 전술은 라볼피아나로 귀결된다.
[ 바르샤의 패스에 의한 점유율 방식 ] [ 득점을 위해서 바르샤가 취하는 실제 공격 대형 패턴 ]
1. [ 패스와 전형의 유지의 상관관계 ] 바르샤는 빌드업 이후의 침투의 과정이 항상 패스를 중심으로 하다보니 상대에 대한 탈압박에 대해 전 포지션의 이해도와 기술적 수준이 대부분 준수하다. 평균 신장이 다른 팀들에 비해 단신들이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실제 패스를 위한 선수들의 간격은 짧다. 이는 패스를 위해 선수들의 특정한 능력을 죽이는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나 바르샤에선 그런 부작용이 없는듯 하다.
2. [ 볼 점유율을 위한 압박 ] 보통 볼을 뺏기면 뺏긴 지점에서 다시 볼탈취를 통해 볼에 대한 점유를 다시 시작하는데, 상대편은 이런 볼 점유율에 대해 지루하고 지치고, 볼만 쫓다 상대의 탈압박에 허탈해지기 일쑤다.
3. [ 바르샤 득점의 패턴 ] 실제 득점을 위해 바르샤가 움직이는 패턴은 여러가지이나 과거 티키타카 시절의 바르샤는 중앙 문전으로 쇄도하는 메시의 드리블을 막기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미들 수준은 굉장했다. 사비 이니에스타와 부스케츠의 수미롤로 인해 뒷문은 언제라도 질식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4. [ 크루이프이즘 ] 단순히 점유율을 기본 모토로 삼은 것이 아니라 크루이프의 철학을 바탕으로 패스를 통해 체력을 비축하고, 공격을 효율적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것이 바르샤의 철학이었다. 이는 미헬스 리누스가 보여준 초기 토털 축구를 완벽히 이해했던 요한 크루이프의 말이기도 하다.
라볼피아나를 제일 잘 쓴 감독으로 펩을 들 수 있는데 라 볼페가 멕시코 감독으로 있던 시절 펩도 약물 복용 소송에 휘말리고, 잦은 부상으로 바르샤의 10년 생활을 마감하고 어찌어찌 멕시코로 들어온 과르디올라가 라 볼페의 전술을 쓰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펩의 마지막 선수시절이 0506시즌 멕시코 리그인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인 점을 상기해보자. 그의 포지션 또한 레이카르트처럼 수비형 미들이고, 레이카르트의 후임으로 바르샤를 맡았을 때 이미 바르샤의 433전술은 그 토대를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다만 반할이 망가뜨린 팀을 레이카르트가 비교적 일찍 팀을 정비해서 부임했던 0304시즌을 잘 봉합하고 0405시즌에 리그 우승, 0506시즌에 챔스우승과 리그우승이란 더블을 달성한 이후부터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많이 없어졌다는 것 정도가 바르샤의 루즈한 팀상황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었다.
[ 거스 히딩크 ]
[ 로날드 쿠만 ]
레이카르트가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히딩크가 월드컵으로 상종가를 치던 시기였고, 보드진 내에서는 히딩크와 쿠만 두 네덜란드 감독을 저울질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요한 크루이프의 강력한 지지로 감독에 부임했던 걸 상기해 보면 그 결과물은 정말 복불복에 가까웠던 부임이었다. 전방의 강력한 스위칭 포지셔닝으로 공격적 축구를 구사했던 레이카르트의 운영은 0405시즌 챔스에서 첼시의 수비적인 433과 대응했을 때 1승 1패의 결과를 냈지만 1차전에선 2대1로 승리 2차전에선 2대4로 패했는데, 외계에서 온 호나우지뉴와 사무엘 에투, 지울라에 이은 메시의 성장으로 0506시즌엔 리그우승과 챔스우승을 모두 거머쥔다.
레이카르트가 이런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도 오래 펩의 6년 처럼 오래 지속하지 못한 까닭은 리빌딩의 실패에 있다. 사실 바르샤는 리빌딩을 유스 출신으로 메꿔도 맨유의 욹어먹는 10년 유스정책처럼 오래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준비되어 있었다. 흔히 한국 야구에서 말하는 꿈의 92세대나 맨유의 클래스 92세대처럼 바르샤에선 그 싹이 이미 자라서 2000년대 후반 그 능력을 폭발시킬 선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로운 영혼의 선수를 다루는 방식은 결국 선수들의 느슨한 멘탈과 미들자원의 활동량 저하로 팀 사기의 저하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 상황이 닥치고 나서야 레이카르트는 이거저거 전술변화를 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와 대조적으로 퍼거슨은 승리에 취하지 않고 곧바로 대대적인 리빌딩을 항상 진행해왔다. 퍼기의 아이돌로 대변했던 선수들이 그의 은퇴 끄트머리까지 쫓아와서 현역으로 불질렀지만 어쨋든 다른 부족분에 대한 포지션의 꾸준한 발굴과 영입은계속되었다. 펩에겐 펩의 아이돌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데 반해 퍼거슨에겐 항상 그의 유산인 베컴, 긱스, 스콜스외에 다수의 유스들이 존재한다.
펩이 바르샤의 극강의 포스를 터뜨렸음에도 불구하고 펩의 아이돌이라 붙일 수 없는 까닭은 처음부터 바르샤는 펩의 유산을 들고 시작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크루이프가 아약스의 유스 시스템을 정착시키면서 흘러나온 세대들이 바르샤의 유스들이다. 그리고 펩 또한 거기에 속해 있는 1세대이다. 그러기에 펩이 이룬 성과는 온전히 펩 자신만의 역량이라 평가할 수 없고, 대부분이 바르샤의 전력을 바르샤의 유스정책이라 말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부분이 펩의 성공을 함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부분이다. 현역시절의 펩이 자기의 패스를 이해할만한 클래스의 바르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수비형 미들을 소화했다면 그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이것이 바르샤에서 선수들을 배출하는 방식이다. 단순 영입이라면 감독의 결과물이겠지만 당장 로마에서 별 성적을 거두지 못한 엔리케를 데리고도 이런 성적을 내는 것이 바르샤의 탈 감독 효과이다.
레이카르트는 퍼거슨처럼 될 기회를 놓치고 펩 또한 장기 집권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그 또한 감독의 역량보다 트렌드적인 마인드로 바르샤를 지휘한 것이다. 물론 그 스스로는 트렌드라 하지 않겠지만 바르샤 아니면 쓰기 힘든 극강의 점유율을 펩이 다른 곳에 가선 그와 동일하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전혀 아니다.
9. 수비형 미들 레이카르트와 펩의 차이
[ 전설들의 현역시절 ]
[레이카르트, 반바스텐 , 루드 굴리트 ] 이들은 세명의 얼간이 오렌지다.
레이카르트와 펩 분명 그 둘은 수비형 미들이란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고, 레이카르트가 좀더 전형적인 레지스타의 전형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지지만 레지스타가 꼭 딥플메가 아닐 수 있다는 예를 보일 수 있는 것이 레이카르트에서 볼 수 있다. 하긴 당시 딥플메란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던 시기에 키퍼에 대한 백패스가 허용되던 시기였으니 굳이 수비빌드업을 전진시켜야 할 의무가 없었던 그때 그 시절에는 딥플메가 오늘날처럼 분화될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수비 라인 바로 앞에서 미들이 영리한 포지셔닝으로 포백보호를 굳이 해야 할 필요가 많지 않았고, 오로지 수미가 소화해 낼 역할은 상대의 예봉을 꺽는데만 주력하면 돼었다. 사키의 지도 이후로 레이카르트는 멀티 포지션을 소화했던 아약스에서 맡은 역할보다 훨씬 만개된 전술변화의 핵이 되었다. 현역 당시 어마어마한 활동량과 체킹으로 8889시즌 사키 지도하에서는 홀딩 역할을 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압박한 후에 공격루트를 여는 전형적인 90년대 초반 초기 수비형 미들에서 보여주는 레지스타의 전형이 되었고, 아스날의 비에이라로 이어지는 체력에 기반한 압박 축구의 홀딩 역할을 선도하는데 중요한 시조가 되었다.
[ 탈압박을 전시하는 부스케츠 ]
[ 부스케츠의 탈압박 ]
[ 부스케츠의 탈압박 2 ]
[ 부스케츠의 탈압박 3 ]
[ 부스케츠의 탈압박 4 ]
1. 부스케츠의 탈압박 방식은 캐릭과 유사한 수준의 탈압박을 보여준다. 일단 공미의 움직임처럼 보이는 그의 볼다루는 방식을 보면 중앙이나 3선에서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이나 방향 전환을 통해 볼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캐릭이 보여주는 탈압박 방식처럼 빌드업과 침투 이전의 클랙식한 전개과정이다.
2. 위의 보여주고 있는 부스케츠의 탈압박은 볼 점유율에서 아주 중요하다. 과르디올라가 부스케츠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바로 이런 탈압박 방식이다. 실제 부스케츠가 두드러지는 건 몸싸움을 통한 볼 탈취가 아니라 볼간수다.
다음은 캐릭편이다.
[ 캐릭의 전진 패스 시리즈 ]
[ 걍 찔러주는 쓰루패스의 캐릭 ]
[ 반페르시편 ]
[ 베르바토프편 ]
1. [ 90년대 맨유의 득점루트 ] 베컴과 긱스, 스콜스가 존재하던 시기에 득점 공식은 스콜스의 좌우로 뿌려주는 패스 이후에 직접적인 크로스를 올리거나 혹은 중앙에 침투한 공격수가 직접 오프사이드를 뚫고 득점하는 방식외에도 베컴이 중앙에서 바로 상대 문전까지 올려주는 크로스에 의한 득점 패턴이 존재했다. 긱스의 드리블 능력은 이런 중요옵션위에 또다른 다이나믹 맨유를 완성시켰다. 세가지의 옵션은 득점에 크리티컬하게 다가와서 맨유가 가진 쭉쭉 뻣어나가는 택배의 위력은 항상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었다.
2. [ 맨유의 득점 공식 전진패스 ] 문제는 베컴과 긱스, 스콜스가 빠지면서 생긴 득점루트의 의존도 심화다. 실제 맨유는 캐릭의존도가 심한데, 캐릭의 나이는 30대 중반이다. 리빌딩이 가장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맨유인데 캐릭을 마땅히 대체하기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그가 없으면 패스를 중원에서 안정적으로 뿌려줄 자원이 많지가 않다.
3. [ 결론 ] 지금의 맨유는 중원에서 안정적으로 패스를 뿌려줄 자원이 필요하다. 필자는 기성용이 맨유에 오는 것에 찬성이다. 수년전에는 반대했지만 지금의 맨유는 패스를 적재적소에 뿌려줄 중원의 리빌딩이 절실하다.
반면 펩은 90년대 초반부터 바르샤에서 활동하면서 2000년 대초반 바르샤의 주장에서 은퇴하기까지 당시에 레지스타가 추구하는 체력형보다 영리하게 포지셔닝을 잡아가면서 수비형 미들을 소화하였다. 당시의 홀딩에겐 탈압박이 아닌 상대 선수의 압박이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데 주효하게 먹힌 만큼 수비형 미들에게 플메적 요건을 갖춘다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옵션에 가까웠다. 오늘날의 알론소나 부스케츠, 귄도간과 최근 떠났지만 막판 슛팅력 좋은 제라드에게 맡긴 리버풀의 후방 빌드업의 임무는 상대를 막아내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던 초기 홀딩미드필더의 역할 분화의 조건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데 현재와 비교하면 훨씬 덜 진화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 완장을 찬 펩 ]
[ 펩을 바르샤에서 환호하는 까닭은 그가 카탈루냐 지방 출신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이 축구에도 묻어나서 인지 바르샤가 시민구단이라 해도 별로 달가운 클럽은 아니다. 시민구단으로 자랑스러워할 거라면 분데스는 노동자 중심의 철저한 사회적 자생 클럽이니 이들보다 더 상업적 모델 구조에서 벗어난 정석이 아닌가 싶다. 물론 분데스리그가 그들보다 수준이 높다는 건 아니다. ]
카탈루냐 출신인 펩 또한 지금처럼 어느 정도 정석적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피를로, 알론소, 부스케츠나 캐릭과 최근의 딥플메로 전환한 귄도간과 같은 유형의 전형적인 딥플메는 아니었다. 레알에서 뛰었던 수비형 미들 레돈도가 뛰던 시절이 그의 선수 시절임을 감안하고 보면 그냥 홀딩 역할에서 포지셔닝을 잘 잡아서 플레이를 이끄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는 스페인 국대에서도 드러나는데 당시 라울의 롤이 플메였던 걸 상기해보면 공격에서 섀도우롤을 수행하는 스트라이커가 플메롤을 수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페인의 축구 발전을 이끌어 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스페인 국대로 차출된 라울 앞에서 펩이 수비 빌드업에서 보여주는 플메 수준은 포지셔닝 정도로 그쳤고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라울은 레알마드리드에서도 최고의 선수로 아직까지 변하지 않는 위치를 누리고 있다. 그가 프랑스출신이었다면 지단과 같은 플레이와 많이 비교할 수 있는데 반해 펩의 위치는 수동적인 위치선정으로 한정지을 수 밖에 없다. 당시 라울과 비교되던 플메롤을 수행했던 스트라이커는 테크니션에 가까웠던 베르캄프가 유일했다.
따지고보면 축구에서 꽃은 수비가 아닌 공격과 득점에 있으니 당연히 제일 먼저 이뤄진 분화의 시작도 공격이지 수비는 아니다. 일찌기 마라도나를 막을 수 있었던 수비수는 전무했던 것처럼 공격에서 상대 수비가 답을 내지 못하면 수비의 목적은 무의미해진다. 이런 극강의 선수를 막을 방법으로 사키의 442가 대두된 건 정말 시기 적절한 반전의 결과이다. 수비의 혁명적인 혁신의 결과는 과거축구에서 현대 축구로 넘어오는데 수비적 롤을 진화시켰고, 기존의 정의했던 4선의 임무보다 더 분화되고 촘촘한 라인의 대형을 유지하는데 공헌하는데 마라도나 같은 전천후 공격수 대신 위에 언급한대로 측면의 크랙과 공격수의 미들임무강화로 분화와 멀티가 섞인 공격적 업무를 통해 세축의 공격 대형의 발전은 한 선수의 대한 의존도를 급격하게 줄이고, 리빌딩의 용이한 지점까지 올라온 건 사키가 퍼거슨에게 준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10. 바르샤의 암흑기에서 영광을 이끌어낸 두감독 레이카르트와 펩
[ 레이카르트 IN 바르샤 ]
퍼거슨에게 트레블의 영광을 줬던 9899 시즌 이후의 바르샤는 이후로 0405시즌 이전까지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펩이 뛰던 바르셀로나의 90년대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6번의 리그우승과 두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든 클럽의 위상은 여전했으나 당시 딥플메에 대한 정의조차 제대로 내리기 힘들던 시절의 펩이 떠나고 나서 바르샤의 성적은 추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맨유가 0304시즌부터 0506시즌에 겪은 흑역사는 바르샤가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수준이다. 팀 성적인 챔스권 밖으로 밀려나는 굴욕을 감당하기가 쉬운일일까.
이런 상황을 목전에 두고 레이카르트와 펩이라는 두 수비형 미들 출신 감독이 바르샤의 중흥을 이끈건 아이러니 하게도 딥플메의 희귀를 경험하고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미뤄 볼 때 수비밸런스를 염두에 둔 플메의 조건이 공미플메를 구하는 것보다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펩은 부스케츠를 데뷔시키고 메시라는 가짜 9번을 통해 수비와 공미의 조화를 티키타카를 통해 구현해 내었지만 현재의 맨유는 캐릭과 마타, 혹은 에레라를 데리고도 바르샤 축구에 한발도 다가가기 힘든 처지다. 대형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4231과 433의 차이가 클래스 있는 선수들을 데리고도 현재의 경기력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 바르샤 감독이 된 펩의 초기 시절 ]
지루한 축구로 고무되던 바르샤의 티키타카는 더 이상 오래 지속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크루이프의 패스 축구는 솔직히 말하면 펩이 구현하는데도 애를 먹은게 사실이다. 지루한 축구는 크루이프가 얘기했던 패스 축구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펩 이전의 레이카르트가 바르샤의 중흥을 이끌었던 스위칭의 433과 괴물같은 미들의 영입으로 이룬 결과물들은 어찌보면 맨유가 굴욕의 2000년대 초중반의 흑역사를 지나고 나서 비로소 완성된 다이나믹 433으로 귀결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마저도 그 결과물을 오래 지속시킬 수가 없었다. 선수들의 노쇠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될 리빌딩의 모든 전제 조건이 선수들의 잠재력을 기준으로 다이나믹한 공격의 한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기량 성장은 선수들이 교과서로 배울 수 있는 과목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다이나믹 전술로 교과서로 규정지을 수 있는 전술적 설명은 하기가 쉽지 않다. 그 말속에 숨겨진 전술의 변화와 대형의 변화는 무한대로 뻣어나가기 때문이다.
같은 433을 가지고도 레이카르트가 이끈 화끈한 공격의 433과 펩이 이끈 점유율은 압박의 높은 강도로 뺏긴 볼을 재탈취하는 과정으로 이뤄낸 성취인 만큼 앞으로도 같은 전형을 가지고 감독의 선수구성이나 공격과 수비의 흐름을 팀스피드와 포지셔닝을 중심으로 공수전환의 변화를 주의깊게 보는 것은 중요한 전술적 과제의 해결을 보는데 의미가 있다. 장기적으로 한 전술을 오래도록 유지한다면 변화하는 전술에 퇴보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만큼 감독의 용병술과 전형의 변화는 장기집권에 중요할 수 밖에 없다.
11. 감독으로서의 레이카르트와 펩의 전술 차이
펩이 바르샤 1군에 포함되기 그는 상대선수들의 체력싸움에 취약점을 보여서 그를 3부리그로 보낼 뻔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펩은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해 영리한 두뇌를 바탕으로 바르샤에서 그의 역할이 두드러진 않았지만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우승을 이끄는데 충분한 역할을 감당했다. 반면 레이카르트는 발랑도르 후보 3위에 오르는 등 만능 수비형 미들로 지금까지 레지스타의 교본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제기하고 싶은 것이....
왜 같은 433을 가지고도 레이카르트와 펩이 이끄는 전술의 방향은 다른 것인가. 레이카르트는 초기 태동되었던 사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과 반대로 펩은 크루이프의 전술적 메커니즘을 90년대 후반대 까지 경험한 수비형 미들이다. 레아키라트가 요한 크루이프의 지도를 받지 않은 건 아니다. 아약스에서 17세에 데뷔한 80시즌부터 86시즌까지 그는 중앙수비수와 수비형 미들, 크루이프 감독이 84시즌부터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막판에는 윙 포지션까지 소화해내며 공격 포지션이나 수비 포지션 모두 A급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AC 밀란으로 이적한 반 바스텐에 이어 젊은 나이에 주장완장을 차고 이적의 불화를 겪으면서 사라고사에 임대된 후에 8889 시즌 사키가 있는 AC 밀란으로 이적한 전례를 가지고 있는 만큼 크루이프의 축구를 모르진 않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패스 축구를 지향하는 요한 크루이프의 지도를 받지 않겠다며 반 바스텐처럼 AC 밀란으로 얼마 후 이적해 버리고 사키가 보여준 압박 축구에서 그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한다.
[ 요한 크루이프감독과 펩 선수시절 ]
[ 현재의 펩과 요한 크루이프 ]
이에 비해 펩은 90년초반 요한 크루이프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고, 수비형 미들에서 체력보다 포지셔닝을 좋게 가져가면서 상대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는데 주력했던 유형이었다. 따라서 상대의 움직임이 좋지 않으면 과르디올라가 패스를 주기 힘든건 당연지사다. 실제 바디체킹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홀딩의 역할보다 후방의 안정을 도모하며 빌드업에 관여한 플레이가 펩의 선수시절을 대변하는 능력이기에 현대 축구의 딥플메 요건을 충족시키는 초기 선수로 둘 수밖에 없다. 2000대 초중반부터 중후반까지도 수비형 미들의 넓은 활동량 커버와 상대 공격을 무력화하는 역할이 실제 전방의 공격을 이끄는데 훨씬 파괴적이고 매혹적이어서 수비형 미들의 플메적 성향보다 더 우세하게 진화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성향을 반영하듯 펩은 바르샤의 체질을 패스축구의 본질에 맞게 변화시킨다. 전 선수의 패스마스터화가 그가 추구한 축구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을 선수로 메시를 가짜 9번으로 롱런시키고, 부스케츠를 현대적 플메개념에 맞도록 수비형 미들에 적합시킨 것이 그가 바르샤 전력을 점유율로 극대화시키는데 중점을 둔 부분이다. 그의 이런 전술을 모든 이들은 티키타카라 부르지만 정작 그는 뮌헨에 가서 크루이프가 초기에 보여준 3331전형을 다시 구현하기 시작한다.
[ 아리고 사키 신기원의 시작 ]
솔직히 말하면 바르샤의 기본 포지션인 433은 사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라 보여진다. 초기에 사키가 보여준 플랫한 442는 진화의 발전이 무서워서 바르샤도 그 영향권에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가 보여준 3331전형은 아약스 시절 이후에 바르셀로나에 부임하면서 보여줬으나 AC밀란을 이끄는 카펠로 감독에게 4대 0으로 대패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참고로 카펠로는 아리고 사키가 감독 재직시 수석코치로 있던 감독이다. 사키의 영향을 철저히 받은 카펠로의 전술은 결국 공간을 지배했던 압박 축구이후에 사키가 확실하게 정의하지 않은 공격에서 마무리 짓던 방식을 선수들의 다양한 스킬들을 적재적소로 쓰면서 전술이해도를 넓힌데 비해 바르샤는 초기 미헬스 리누스가 보여준 433에서 수비수가 올라간 343의 변형을 썻다. 343으로의 변형은 선수들에게 많은 체력적 부담을 준다. 그리고 수비수에게는 자주 올라가기 시작하면 공수전환에서 일찍 체력이 방전되어 잦은 역습을 허용하게 되면 공간에 대한 허용범위가 넓어진다. 따라서 플랫한 대형의 442를 쓰는 팀 입장에선 이렇게 나오는 상대의 침투할 공간이 훨씬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고, 수비시에는 밀집의 포백을 유지할 수 있기 되니 카펠로의 밀란은 좀더 효율적으로 공간을 점유할수 있어 가능했던 완승이었다.
사실 343의 변형의 시점은 패스 축구라 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전술이다. 풀백이 윙백으로 올라가면서 일시적으로 스리백을 형성하는 라볼피아나와 태생적으로 다른 343 변형은 3선의 수비형 미들이 조율하는 역할과 달리 4선의 수비수는 기본적으로 수비의 임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형에 대해 필드위에서는 누구도 완벽한 시나리오를 제공하지 못한다. 때문에 오늘날 433에서 343변형은 어느 클럽도 주 전술로 고착화시킬 수 없다. 펩이 존재했던 바르샤라 하더라도.
현재의 펩이 이룬 바르샤의 유산은 어쩌면 사키가 고안한 포메이션과 유사하지만 철학의 본질은 다른 것일 수 있다. 그 또한 배출되는 유스를 통해 성장할 따름이다.
[ 레이카르트의 433 0506시즌] [ 펩의 433 1112시즌 ]
1. [ 펩의 1112시즌의 433 ] 바르샤가 비로소 극강의 시기를 달리던 중흥기였다. 왼쪽 포워드는 전시즌 보얀이 자리잡았으니 담시즌부터 빌라 주전을 꿰차기 시작한다. 보얀 이전에는 이브라히모비치였다.
2. [ 레이카르트식 433 ] 레이카르트는 당시 영입을 통해 미들 중원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전방의 화력은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 바르샤가 보여줄 수 있는 공격의 최정점을 달리기 시작했고, 그 열매는 0506시즌 더블을 기록함으로 피크에 서게 된다. 다만 아쉬웠던 건 이당시에 사비의 부상으로 이니에스타가 바르샤 주전을 꿰차게 되었을 때 빨리 리빌딩을 시도해야 하는게 맞지 않았나 싶다. 이미 성과를 낸 선수들에겐 동기부여가 사라지기 때문에 퍼거슨이 진행했던 리빌딩의 방향을 유스를 중심으로 과감하게 기용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지 못하고 방임하고 있었던 감독의 대가는 경질이었다. 물론 때늦은 전술변화를 주기는 했지만 그가 이룬 단단한 성과는 펩에게로 넘어갔다.
3. [ 티키타카의 시작 ] 그리고 펩은 어린 선수들을 위주로 티키타카의 완성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아래그림참조]
아 참고로 보얀 크리키치에 대해서 말이 나와 잠깐 써보자면 ...
[ 보야 크리키치 IN 바르샤 ]
그는 빅클럽에서 미리 서둘러 영입하고자 했던 어린 선수였다. 맨유의 야누자이 정도는 저리가라 할만큼 그의 가능성은 득점력을 통해 드러냈는데, 바르샤 유스 팀에서 7년동안 900골을 넘는 능력을 보였다. 바르샤 B팀에서도 그는 능력을 증명했는데, 그의 라리가 데뷔전은 20007년 9월 오사수나 전이었다.
90년생으로 지금 당시 데뷔나이는 10대 후반에 불과했다. 이브라히모비치가 이적한 1011시즌부터 9번의 위치에 서서 27경기 6골을 바르샤에서 기록했지만 멘탈적으로 너무 문제가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메시를 넘어선 행보를 보여왔으나 이것은 라 마시아에서 거둔 7년간의 득점을 의미할 뿐이었다. 나이가 어려 로마와 밀란에 임대된 후의 그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결국 2014년에 스토크 시티로 180만 유로에 완전이적한다. 로마에 임대시 감독은 루이스 엔리케 였는데, 로마에서 밀란으로 그를 임대해 가면서 그가 바르샤 유스에서 이룬 성과는 유스로 끝나고 말았다. 몸은 유리가 아니라도 멘탈이 유리면 개고생하는 케이스다.
[ 스토크시티에서의 보얀 ]
오랜만에 글쓰다 보니, 제 맘대로 써지는게 없네요. 일단 야근에 주말 근무에 미친듯이 플젝 뛰느라 힘들었던지 집에서 한 나흘 쉬게 되네요. 그리고 토요일 날잡아서 글을 쓰는데, 분명 머리는 이렇게 써야지 하는데 몸이 안 따라 줍니다. 막판 결론 없이 이런 식으로 글을 마무리 짓는 건 처음이긴 한데, 그만큼 제 체력이 후달린다는 의미겠죠. 대충 좀 길어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쓴 글중에는 좀 짧은 편이긴 하네요. 어쨋든 긴글 읽어 내리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쉴지 모르지만 그래도 돈은 벌어야 겄고, 참 제 인생 착잡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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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쓴글 [맨유까페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