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화산의 남평문씨 묘소
문송수(文松壽) (초명: 문송자 文松子)
광탄 화산선영 문씨묘소 중 최고 위의 묘 ( 신유정의 외손자)
오늘은 2025년 3월 1일 이다
2025년 2월 26일 충북 증평에서 무절공종회와 둘째 아들이신 참판공(계조)종회의 감사보고가 있었다
나는 작년회의에서 참판공종회 감사가 되어서 참석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남평문씨 묘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관리등의 문제 파묘등의 이야기가 있어
10여년 전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봤던 내용을 보다 다시 정리를 해 보았다
파주 광탄 화산의 무절공 묘역의 왼쪽 산록에는 남평문씨의 묘가 자리를 잡고있다
어려서 어른들께 전해 듣기로는 무절공의 종사관 묘역이라 들었다
전에 궁금증에 묘표의 내용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종사관은 아닌것 같았다
아래는 내가 본 남평문씨 내용이다
남평문씨 최고 위쪽의 묘의 상석 묘표는 다음과 같다
봉훈대부(奉訓大夫) 행교서교리(行校書校理) 남평문공(南平文公) 송수(松壽) 지묘(之墓)
문송수의 묘 인데 문송수의 초명(처음이름)이 문송자( 文松子)이다
문송수가 세종(世宗) 17년(1435)에 문과에 급제하는데 문과방목을 보면
외할아버지가 신유정(辛有定)으로 나온다
그러면 문송수는 무절공의 외손주가 된다
그런데 전에 내가 찾아볼때나 지금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것이
아버지는 모든 자료에 문승조(文承祥)로 나와서 맞는데 어머니는 신씨가 아닌 복창군 보의 녀로 나온다
그래서 전에는 증손자 인가 생각도 했었는데 알수없는 일이다
문송수의 할아버지 문계종이 무절공(신유정)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것을 보면 문계종의 아들 문승조와
무절공(신유정)의 딸과 서로 사돈을 맺은것 같은데 문승조의 配가 신씨란 자료는 아직 확인을 못했다
그래도 문송수(문송자)의 국조문과방목 내용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부-문승조.모-복창군 보의 녀(문과방목에 외할아버지가 신유정이니 딸신씨여야 함 추정)
조부-문계종
증조부-문달한
외조부-신유정(문송수 문과방목 기재 내용)
처부-김희,성노담
외가쪽 산에 산소를 쓴것으로 보인다.
문씨묘소 최고 위의 산소가 문송수인걸 보면
그밑으로 문송수 후손들의 묘소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문송수의 조부 문계종과 신유정의자료
사사 노비를 부당하게 획득한 박자안 등을 파직시키다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박자안(朴子安)과 총제(摠制) 윤곤(尹坤) 등 9명의 직임을 파면시키고, 전 이성 도병마사(泥城都兵馬使) 신유현(辛有賢)을 평택현(平澤縣)으로 유배시켰다. 처음에 중 혜경(惠敬)이란 자가 있어 그 노비를 귀암사(龜巖寺)에 시주(施主)하였는데, 그 수가 불어서 수천 명에 이르렀다. 나라에서 절의 수(數)를 제한하게 되자, 귀암사가 혁파당하니, 박자안 등이 그 노비를 조상(祖上)이 시주한 물건[施物]이라고 하여 무인년 이래 일찍이 관에 소송하여서, 이때에 이르러 차지하였다. 허응(許應)이 대사헌이 되어 귀암사 노비를 다시 속공(屬公)하도록 건의하니, 박자안 등이 분(憤)을 품고 의정부에 소송하고, 또 말하기를,
“허응도 또한 사손(使孫)인데, 다만 같이 소송하지 못하여 노비를 얻지 못한 까닭으로, 원망하여 속공(屬公)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였다. 사간원에서 탄핵하여 아뢰었다.
“박자안 등이 문득 의정부에서 의논하여 수교(受敎)한 일을 가지고 마음대로 고소를 행하여 사헌부를 헐뜯었을 뿐 아니라, 도당(都堂)도 능멸[埋沒]하였습니다. 또 혁거(革去)한 사사(寺社)의 노비는 비록 그 자손(子孫)이라 하더라도 다시 다투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세대(世代)가 오래고 멀어서 계속(係屬)을 밝히기 어려운 것을, 다만 지금 대변(對辨)하는 자가 없다고 하여 감히 소송하여 차지하였습니다. 허응(許應)도 또한 풍헌(風憲)의 우두머리로 의(義)를 핑계하고 사정(私情)을 꼈으니, 아울러 부당합니다.”
이에 박자안·윤곤·신유현 및 신유정(辛有定)·문계종(文繼宗)·송득거(宋得琚)·배금(裵錦)·배한(裵澣)·김자온(金自溫) 등은 모두 죄를 얻고, 오직 허응(許應)은 특별히 면하였다.
12세 남평문씨 순평군파 문송수(文松壽)
봉훈대부(奉訓大夫) 행교서교리(行校書校理)공 휘 송수(松壽) 묘표(墓表)
공(公)의 휘는 송수(松壽)이고 자는 몽징(夢徵)이며 본관은 남평인으로 고려 충숙공(忠肅公)극겸(克謙)의 팔세손이다. 조부 계종(繼宗)은 이조에 벼슬하여 성재(省宰)의 직위에 이르고 아버지 승조(承祥)는 사헌부 지평(持平)이었으며 어머니는 복창군(福墨君) 휘 보(譜)의 따님이다. 영락(永樂) 정해년(1407)에 공(公)이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쓰고 글을 저술하여 명성이 날로 전파되었으며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을과(乙科 제 3인의 급제에 올라 종부직장(宗簿直長)을 보직 받고 얼마 후 부친 상을 당하였다 연속해서 모친 상을 당하니 여묘살이로 예를 다하여 지냈고 태종 때 벼슬이 여러 번 올라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렀으며 갑자년에는 서장관(書狀官)이 되고 교서관의 교리(校理)였다가 경진년 2월에 병으로 돌아가시니 이 해 여름에 파주 화산의 술좌(戌坐)에 안장됐다. 직위가 덕망과 맞지 않으니 당시에 논의하기를 애석하다고 했다. 출전:남평문씨 세덕록
생년:1407년 정해(丁亥) 수:54세
졸년:1460년 경진(庚辰)
과거 및 취재
문송자(초명:文松子)- 문송수(改名: 文松壽 )
[문과] 세종(世宗) 17년(1435)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3[探花]위(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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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改名) | 문송수(文松壽) |
본인본관 | 남평(南平) |
거주지 | 미상(未詳) |
선발인원 | 33명 [乙3・丙7・同進23] |
전력 | 생원(生員) |
관직 | 교서관교리(校書館校理) |
문과시제 | 책문(策問):종학・호구・호패・병농・노비(宗學戶口戶牌兵農奴婢) |
[가족사항]
[부(父)]
성명 : 문승조(文承祚)
품계 : 통선랑(通善郞)
관직 : 인순부판관(仁順府判官)
관직 : 종친부전첨사부전첨(宗親府典籤司副典籤)
[조부(祖父)]
성명 : 문계종(文繼宗)
[증조부(曾祖父)]
성명 : 문달한(文達漢)
[외조부(外祖父)]
성명 : 신유정(辛有定)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
성명 : 김희(金希)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2]
성명 : 성담로(成聃老)
본관 : 미상(未詳)
문송수(문송자)의 국조문과방목
신유정의 외증손자 문송수의 묘
신유정의 외증손자 문송수의 묘
신유정의 외증손자 문송수의 묘
신유정의 외증손자 문송수의 묘에서 내려다본 문씨 후손 묘
신유정의 외증손자 문송수의 묘에서 내려다본 문씨 후손 묘
첫댓글 문과 조선국조방목 문송자의 외조부 신유정
색인 되었슴
문송수 부는 승조 남평문씨 대종보에
배 영산신씨 기록이 없슴
향후 더 세밀한 고증이 요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