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5일째? <넥스트 투 노멀>에 묻혀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나야 이 주제에서 벗어날 지 알 수 없습니다. 10일? 한 달? 저도 잘 모릅니다. 저 자신이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비로소 손을 털고 나올 것입니다. 최소한 매우 꼼꼼하게 스토리분석을 해서 그 내용을 게시글로 올릴 정도는 돼야 할 듯합니다. 매우 훌륭한 작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변질되어 버렸기에, 이를 바로 잡는데 필요한 기본지식 정도는 꼼꼼하게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Next to Normal 브로드웨이 공연작은 매우 수준 높은 작품입니다. 정신질환(조현병에 가까운 조울증)을 겪는 당사자의 고통과 그 당사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이 매우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의 관점과 가족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고 싶지만 어디에서 서로 어긋나는지 등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약물치료, 심리치료, 최면치료, ECT 등의 본질에 대한 깊은 수준의 통찰과 해학, 나아가서는 조롱과 냉소가 곁들여져 있고, 당사자들의 진정한 고통이 무엇인지? 에 대한 통찰과 공감, 그리고 그 고통에 무감각한 치료진과 가족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습니다.
Next to Normal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치료장면이 비중있게 등장하는데, 이는 이 작품이 정신질환에 초점을 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정신질환을 겪는 당사자를 대하는 치료진과 가족의 정형화된 태도를 통해, 타인의 고통과 소망에 무감각한, 즉 그들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을 꼬집고 있습니다. 즉 정상이라는 미명 하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판단되는 것에 대하여 잘못됐다, 고쳐야 한다. 잊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기존의 치료관행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조소를 보냅니다. 이는 정상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Normal을 강요해서도 안되고, Normal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정상이 아니라도 좋으니 자신의 고통과 광기까지도 모두 끌어안고 가라. 정상이 되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래서 제목이 Next to Normal 입니다. 정상은 아닌 거죠. 정상의 주변? 정상의 언저리? 이렇게 번역하면 되겠죠.
그런데 이 작품이 2011년도와 2013년도에 우리나라에서 공연될 때, 작품의 초점이 <정신질환>이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위기>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제목도 <평범함의 주변, 그 어디>로 번역되었습니다. 작품해석의 오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소개된 작품의 시놉시스(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다이애나), 어머니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딸(나탈리),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 잡으려는 아버지(댄). 계속되는 아버지(댄)의 노력에도 어머니(다이애나)의 상처는 깊어만 가고 가족들은 힘들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평범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며 평범하지는 않아도 그 언저리에 있는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다."
한편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악화되는 양극성장애와 투쟁하는 엄마에 관한 것이며, 그녀의 질병과 그것을 경감시키려는 노력이 그녀의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이 뮤지컬은 또한 상실에 따른 슬픔, 자살, 약물남용, 현대정신건강의학의 윤리, 그리고 교외생활의 취약점과 같은 이슈를 제기한다."
한편 이 작품은 2009년도에 토니상 3개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데 이어, 2010년도에는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퓰리처상위원회는 수상배경을 “교외에 거주하는 가족의 정신질환을 잡고 씨름하고, 주관성의 영역(the scope of subject matter)을 뮤지컬로 확장한 강력한 록뮤지컬.”이라고 밝혔습니다.
저는 2011년도와 2013년도에 국내에서 이 작품을 공연할 때, 관계자들이 이 작품의 핵심주제와 핵심메시지를 잘못 파악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봅니다. 그 결과 초래된 문제가 Normal을 정상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평범함이라고 번역한 것이고, 이러한 번역의 차이는 또 다시 작품해석에 추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아마도 당시의 관계자들은 정신질환에 초점을 둔 작품이 대중의 공감을 얻고 각종 상들을 휩쓸었다는게 상상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정신질환은 단지 소재의 일부이고 초점은 일반대중 즉 <중산층>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저는 이런 의문을 느낍니다. 이 뮤지컬은 미국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는데, 그렇다면 작품소개글이나 인터뷰 기사도 꽤 있을텐데, 이 작품을 국내에서 공연한 관계자들은 그러한 글들에 대한 기초조사도 안 하고 공연을 했나? 하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실망스러운 일은 이 작품에 대해 구글에 올라온 글들을 검색해 본 결과, 국내 공연에서 이 작품의 초점을 <중산층 가정의 위기>로 보고 Normal을 평범함이라고 번역한 점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을 소개한 다수의 기사와 몇몇 평론글과 많은 사람들의 감상평이 올라 있었는데, 모두 다 일단 연출자의 설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부터 자신의 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그 다음부터는 모든게 다 잘못 끼워진 것이지요.
처음부터 작품해석이 잘못되었으니, 중간 중간에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이에 대해서 기사, 평론, 감상문 등은 한결같이 "미국과 우리나라의 문화적 차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아닙니다. "정신질환을 지닌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당연히 그렇게 묘사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지요. 특히 딸 나탈리의 마약복용에 대해 문화적 차이로 해석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작품은 스토리 전개에서 사실적 묘사와 대조(대비)라는 2가지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탈리의 마약복용은 엄마 다이애나의 약물복용과 ECT에 대비되는 장치입니다. 즉 약물치료와 ECT가 마약복용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 어차피 환각상태, 마비상태, 기억상실상태, 자아상실상태를 가져오는 것 아니냐? 라고 대비시키는 장면입니다. 이 작품이 정신질환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대비는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작품 소개가 잘못된 결과 관객들이 그 맥락을 놓쳐버린 거지요.
이 작품은 스토리도 매우 훌륭하지만, 무대장치와 무대조명, 그리고 음악이 모두 다 매우 훌륭합니다. 이 작품은 록뮤지컬입니다. 따라서 때로는 조명과 음악이 록공연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스토리를 잘 몰라도 무대장치와 조명, 그리고 음악만으로도 뭔가 들뜬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관객들의 감상평도 스토리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등장배우, 무대장치, 조명, 음악 등에 초점을 둔 감상평이 많았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분위기만 즐겼지, 핵심메시지는 놓쳤다고 봐야겠지요. 매우 아쉬운 대목입니다.
연말쯤 이 작품이 다시 공연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정신질환>이라는 이 작품의 핵심메시지가 제대로 부각되고, <당사자의 내면심리와 가족의 심리, 그리고 그들의 고충>이 제대로 강조되는 작품으로 공연되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이 작품의 스토리분석을 철저히 해서 게시글을 올리고, 중요한 외국 자료들을 번역해서 게시글로 올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연출자와 평론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제 겨우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등재글을 번역했을 뿐입니다. 아직은 근거자료가 1편 밖에 없는 거지요.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저는 "넥스트 투 노멀"이라는 이 작품에 빠져서 지내야 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며칠새 넥투노가 공연되던 당시의 팬들의 반응을 찾아보고 있어요. 상당수가 변연출의 연출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결말에 왜 다이애나가 떠났는지 이해가지 않는다-미국식 정서라서 그렇겠지 라는 글을 상당히 많이 봤습니다. '재기'의 개념을 전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예전의 저처럼요. 또 제가 안타까웠던 것은 정신의학, 정신질환에 대해 잘 몰라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모두 '미국식 정서'로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팬들 사이에 아빠가 아들 게이브를 처음부터 볼 수 있었다, 아니다라는 의견이 분분해서 재밌더라구요. 저도 이쪽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되는 사람이 있으니 좋네요. 이 뮤지컬은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과 재기모델(recovery model)이 기본철학으로 깔려 있어요. 즉 전통적인 치료방법들(약물치료/심리치료/최면치료/ECT)을 조롱하고 비판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 대안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뮤지컬이죠. 남편은 전통적인 의료적 치료의 추종자이죠. 아내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정상(Normal)으로만 만들려고 하죠. 따라서 다이애나가 전통적인 치료를 거부하기로 결심한 순간에, 그 추종자인 남편을 떠날 수밖에 없는 거죠. 남편은 아내를 사랑했지만, 진정한 사람이 아니었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엄청 중요한 메시지예요.
(계속) 이 뮤지컬에서는 "아들의 환시와 환청"이 스토리 전개의 출발점이에요. 이것을 두고 의사들은 "병이다. 비정상이다. 잘못된 것이다. 없애야 한다."고 보고 있죠. 즉 증상으로 보는 거죠. "아들의 환시와 환청"은 증상일 뿐이라는 거죠. 남편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다이애나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증상이기 이전에 "영혼의 상처"죠. 죽는 날까지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실감이죠. 따라서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끌어안고 충분히 슬퍼해야 할 아픈 경험이죠. 의사도 남편도 이 일을 해주지 않은 거죠. 증상을 증상으로만 볼 것인가? 그것이 환자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으려 함께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이 메시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