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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트에 들어오신 분들은 이 반야심경을 3번씩 만 읽어보면 좋은 나날이 될 겁니다)
위대한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것(지혜로 열반의 완성)』의 핵심이 되는 경전《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피안(彼岸)-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이름. 또는 그런 경지.]
[일체를 초월하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가장 핵심되는 부처님의말씀《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om namo bhagavatyai arya -prajna- paramitaayai
옴! 존경스러운, 거룩한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것(지혜로 열반의 완성=반야바라밀다)』을 경배합니다.
거룩하신 관자재보살께서[觀自在菩薩(관자재보살)]께서
심오한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것(지혜로 열반의 완성=반야바라밀다)』을 수행하면서,[行深般若波羅蜜多時(행심반야바라밀다시)]
"물질(육체,형상). 감각, 표상, 의지, 의식"[오온(五蘊)~~~色, 受, 想, 行, 識]'들과 '자체 존재'가 모두 '실체가 없는 것[공(空)'임을 확실하게 보셨느니라<확실히 깨달아, 이 모든 고통(4고, 8고)에서 벗어났느니라>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度一切苦厄 (도일체고액)』란? 이 한 구절은 산스크리트어의 원전에는 없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번역한 구마라집 (鳩摩羅什 kumārajīva 인도 출신의 승려) 이 이 5자를 삽입한 것이다. 그것이 뒤에 현장이 번역한 심경에도 그대로 두었다.
사리자여![舍利子(사리자)]
'물질적 형상'은 '실체가 없는 것[공(空)]'이고, 실체가 없는 것[공(空)]'이 바로 ''물질적 형상'이니라.
'물질적 형상'이라 해서 '실체가 없는 것[공(空)]'과 별개의 것이 아니고,
'실체가 없는 것[공(空)]'이라 해서 '물질적 형상'과 별개의 것이 아니니라.
[色不異空(색불이공) 空不異色(공불이색)]
'물질적 형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공(空)]'이며,[色卽是空(색즉시공)]
'실체가 없는 것[공(空)]'이기 때문에 '물질적 형상'일 수 있는 것이니라.[空卽是色(공즉시색)]
'감각, 표상, 의지, 의식(지각의 타래)들도 이와 마찬가지니라.[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舍利子(사리자)]
여기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실체가 없는 것[공(空)]'의 모습은[是諸法空相(시제법공상)]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不生不滅(불생불멸)]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不垢不淨(불구부정)]
부족하지도 않고 가득하지도 않느니라.[不增不減(부증불감)]
그러므로 사리자이여![是故(시고)]
자체 존재가 '실체가 없는 것[공(空)]' 은 '물질적 형상'도 아니고,[空中無色(공중무색)]
'감각(느낌)'도 아니고, '표상(생각)'도 아니고, '의지(행동)'도 아니고, '의식(마음)'도 아니며,[無受想行識(무수상행식)]
(감관작용의 주체로) '눈', '귀', '코', '혀', '몸', '생각함'들도 아니고,[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
(감관작용의 대상으로) '물질(육체)', '소리', '냄새', '맛', '촉감', '법'들도 아니며,[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
눈의 경계로 부터 의식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18계 전부가 다 아니니라.[無眼界 乃至 無意識界(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진리에 대한 무지[무명(無明)- 근본번뇌, 모든 괴로움의 근본적인 원인, 번뇌로 인하여 불법의 근본을 이해 못하는 정신 상태, 어리석음)]'도 아니고,[無無明(무무명)]
또한 '진리에 대한 무지'가 '없어지는 것(깨달음)'도 아니며, [亦無無明盡 乃至(역무무명진 내지)]
늙고 죽음도 아니고, 늙고 죽음의 없어짐도 아니니라.[無老死 亦無老死盡(무노사 역무노사진)]
괴로움도, 괴로움의 생성[번뇌의 모임(쌓임)]도, 괴로움의 소멸[열반(잃음)]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수행(길)]도 아니며[無苦集滅道(무고집멸도)],
지혜도 아니고, 얻음도 아니니라.[無智 亦無得(무지 역무득)]
【‘고’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즉 인생의 괴로움,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멸’은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
그러므로 사리자여!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以無所得故(이무소득고)]
'깨달음 있는 존재'는[菩提薩陀(보리살타)=보살]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것(지혜로 열반의 완성=반야바라밀다)』에 에 의지하여 머무르므로[依般若波羅密多故(의반야바라밀다고)]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心無罣礙 無罣礙故(심무가애 무가애고)]
두렵지 아니하고,[無有恐怖(무유공포)]
뒤바뀐 헛된 생각에서 멀리 벗어나[遠離顚倒夢想(원리전도몽상)]
완전한 열반에 이르럿느니라.[究竟涅槃(구경열반)]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것(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三世諸佛依般若波羅密多(삼세제불의반야바라밀다)]
『위 없는 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었느니라.[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러므로 알라!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것(지혜로 열반의 완성=반야바라밀다)』은[故知般若波羅密多(고지반야바라밀다)]
'큰 신비한 마음 틀(주문)'이며,[是大神呪(시대신주)]
'큰 밝고 묘한 마음 틀(주문)'이며,[是大明呪(시대명주)]
'위 더 없는 마음 틀(주문)'이며,[是無上呪(시무상주)]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마음 틀(주문)'이니,[是無等等呪(시무등등주)]
모든 괴로움을 평정하며, 거짓 됨이 없기 때문에 진실하니라.[能除一切苦 眞實不虛(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그러므로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것(지혜로 열반의 완성=반야바라밀다)』 안에서 말하여진 '생각 틀(주문)'은 다음과 같으니라.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가자, 가자, 저 언덕[彼岸(피안)]으로 가자, 저 언덕[彼岸(피안)]으로 모두 함께(완전히) 가서, 깨달음을 이뤄 영원할지니!.”→3회 반복[가테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스와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테(gate)는 가자, 파라(para)는 저 언덕, 상(sang)은 완전히라는 의미이고 보디(body)는 깨달음이며, 스바하(svaha)는 영원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의역하면 '가세가세 저 언덕으로 모두 함께 가세 깨달음이여 영원하소서!'
또는 '닿았노라, 닿았노라. 피안에 닿았노라, 깨달음에 이르니 영원한 기쁨이로다!' 정도가 된다
옴마니페메훔(Om mani padme hùm)
반야심경 270자 독송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10자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25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27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20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25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27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 15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空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34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縟 多羅三漠三菩提 /22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 다라삼막삼보리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25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卽說呪曰 /22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즉설주왈
揭帝揭帝 波羅揭帝 波羅僧揭帝 菩提娑婆訶 /18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https://www.youtube.com/watch?v=HfGmZfYBJ8E
Prajna Paramita Hrdaya Sutram
프라즈냐 파라미타 흐리다야 수트람
(prajna: 지혜, parammita: 완성, hrdaya: 심장 즉 정수, sutra: 경전)
Aryavalokitesvara Bodhisattva Gambhiram Prajna-paramita Caryam Caramano,
아리야바로키티스와라 보디삿트와 감비람 프랏슈냐 파라미타 챠럄 챠라마노
Vyavalokiti Sma, Panca-skanda Asatta Sca Svabhava Sunyam Pasyati Sma
뷔야바로키티 스마 판챠 스칸다 앗삿타 스챠 스와바바 순니냠 팟샤리 스마
Iha Sariputra, Rupam Sunyam, Sunyata Iva Rupam,
이하 샤리뿌트라 루밤 순냠 슈니야다 이바 루밤
Rupa Na Vrtta Sunyata, Sunyataya Na Vrtta Sa-rupam,
루바 나 벨다 슈니야다 슈냐다야 나 벨다 사-루밤
Yad Rupam Sa-sunyata, Yad Sunyata Sa-rupam,
야 루밤 사-슈니야다 야 슈니야다 사-루밤
Evam Eva Vedana Samjna Sam-skara Vijnanam.
이밤 이바 븨다냐 삼냐 삼- 스카라 븨이냐남
Iha Sariputra, Sarva Dharma Sunyata-laksana,
이하 샤리뿌트라 살바 다르마 슈니야다-라챠나
Anutpanna Aniruddha Amala A-vimala, Anuna A-paripurna.
아눗바나 아닛루댜 아마라 아-비마라 아누나 아바리푸르나
Tasmat Sariputra,
타스맛 샤리뿌트라
Sunyatayam Na Rupam Na Vedana, Na Samjna Na Sam-skara, Na Vijnanam.
슈니야다얀 나 루밤 나 븨다나 나 삼냐 나 삼스카라 나 브이냐남
Na Caksu Strotra Ghrana Jihva Kaya Manasa,
나 쟈소 쇼트라 그라나 지바 카야 마나사
Na Rupam Sabda Gandha Rasa Sparstavya Dharma,
나 루밤 샷다 간다 라사 스빠르스따비야 다르마
Na Caksur-dhatu Yavat Na Manovijnanam-dhatu.
나 자쇼 다또 야왓 나 마노비냐남 - 다또
Na Avidya, Na Avidya Ksayo,
나 아비리야 나 아비리야 쟈요
Yavat Na Jara-maranam, Na Jara-marana Ksayo,
야왓 나 쟈라 마라나 나 자랴-마라나 쟈요
Na Duhkha, Samudaya, Nirodha, Marga.
나 둣카 사모다야 니로다 마르가
Na Jnanam, Na Prapti, Na Abhi-samaya,
나 야남 나 브람비 나 아비-사마야
Tasmat Na Prapti Tva,
타스맛 나 플랍티 타
Bodhisattavanam Prajna-paramitam A-sritya Vi-haratya Citta Avarana,
보디삿트와냠 프라슈나 파라미타 아-쉿티야 비-하랴댜 쉿타 아바라나
Citta Avarana, Na Sthitva Na Trasto,
쉿타 아바라나 나 쉿티팟 나 트랏소
Vi-paryasa Ati-kranta Nistha Nirvanam.
븨-파리얏사 아티-크루안다 니시타 니얼바남
Try-adhva Vyavasthita Sarva Buddha Prajna-paramitam A-sritya
트리-야다 비야봐싯타 살바 보다 프랏슈나-파라미타 아-쉿탸
Anuttara-samyak-sambodhim, Abhi-sambuddha.
아누따라-삼먁 -삼보림 아비-삼보다
Tasmat Jnatavyam Prajna-paramita Maha-mantra,
탓스맛 냐따비얌 프랏슈나-파라미타 마하 - 만트라
Maha-vidya Mantra, Anuttara Mantra, Asama-samati Mantra,
마하 -비냐 만트라 아누따라 만트라 아삼마 -삼마티 만트라
Sarva Duhkha Pra-samana Satyam Amithyatva,
살바 듓카 프랏-샤마나 삿냠 아미댜두앗
Prajna-paramita Mukha Mantra, Tadyatha,
프랏슈나-파라미타 묵카 만트라 닫이야탓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와하
Prajna Paramita Hrdaya Sutram
프라즈냐 파라미타 흐리다야 수트람
(prajna: 지혜, parammita: 완성, hrdaya: 심장 즉 정수, sutra: 경전)
Aryalokiteshvara Bodhisattva gambhiram Prajna Paramita caryam caramano vyavalokiti sma
아랴알로키띠슈와라 보디샅트봐 감비히럄 프라즈나 빠라미따 챠럄 챠랴마노 뷔야왈로키티 스마
성스러운 관자재 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行을 행하시면서 깊이 살펴보셨나니,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panca-skanda asatta sca svabhava sunyam pasyati sma.
판챠-스칸다 아샅따 스챠 스왑하와 순니얌 빠샤띠 스마
다섯 가지가 있어서 그들 고유성질이 空함을 보시었다.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Iha Sariputra, rupam sunyam, sunyata lva rupam, rupa na vrtta sunyata. Sunyataya na vrtta sa rupam, yad rupam sa sunyata, yad sunyata sa rupam. Evam eva vedana, samjna, sam skara vijnanam.
이하 사리쁘트라 루팜 순니얌 순니야따 이와 루팜, 루파 나 브리타 순니야타, 순니야타야 나 브리타 사루팜, 야드 루팜 사 순니야타 야드 순니야타 사 루팜 이밤 이바 비다나, 삼냐, 삼스카라 비즈나남,
사리쁘트라여! 여기 물질은 空이고 空이 바로 물질이다. 空은 물질과 별개의 것이 아니고 물질은 空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물질인 것은 곧 공이며, 공인 것은 곧 물질이다. 느낌[受]과 인식[想]과 현상들[行]과 알음알이[識]도 바로 그와 같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Iha sariputra, sarva dharma sunyata laksana. Anutpanna, aniruddha, amala, a-vimala, anuna a-paripurna.
이하 사리쁘트라 살바 다르마 순니야타 락샤나 아눗빠나 아니루디하 아말라 아-비말라 아누나 아-빠리뿌르나
사리뿌트라여, 여기서 모든 법들의 空의 특징은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부족하지도 않고 가득하지도 않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Tasmat Sariputra, sunyatayam na rupam. na vedana, na samjna, na sam-skara, na vijnanam.
탓스맡 사리뿌트라 순니야따얌 나 루팜. 나 베다나, 나 삼냐, 나 삼-스카라, 나 비냐남
사리뿌트라여, 그러므로 空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도 없으며 인식도 없고 심리현상들도 없으며 알음알이도 없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na caksu, srotra, ghrana, jihva kaya ,manasa. na rupam, sabda, ghandha, rasa, sparstavya, dharma. Na caksur-dhatu, yavat na manovijnanam-dhatu
나 챡수 스로트라 가라나 지바 카야 마나사. 나 루팜 샵다 간다 라사 스파르스타비아 다르마. 나 챡숴 다투, 야밭 나 마노비냐남-다투
눈, 귀, 코, 혀, 몸, 마노도 없고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법들도 없으며 안계도 없고 내지 의식계도 없다.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Na avidya, na avidya ksayo, yavat na jara-maranam, na jara-marana ksayo.
나 아비디야, 나 아비디야 크쟈요, 야밭 나 자아-마라남, 나 자라 마라나 크쟈요
無明도 없고 무명의 소멸도 없으며 내지 늙고·죽음도 없고 老死의 소멸도 없다.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Na dukha, samudaya, nirodha, marga. na jnana, na prapti, na a prapti.
나 두카 사무다야, 니로다, 마르가 나 갸나, 나 쁘라쁘띠, 나 아쁘라쁘띠.
苦·集·滅·道도 없고 지혜도 없으며 증득도 없고 증득하지 않음도 없다.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Tasmat na prapti tva Bodhisattvanam, prajna-paramitam a-sritya vi-haratya citta avarana, citta avarana na sthitva, na trasto. vi-paryasa ati-kranta nistha nirvanam.
따스마 나 쁘라쁘띠 트바 보디사트바남, 프라즈나-빠라미땀 아-슈리탸 비-하럍탸 치따 아와랴나, 치따 아와랴나 나 스티트봐, 나 트라스토, 비-파리야사 아티-크란다 니쉬타 니르바남.
사리뿌트라여, 그러므로 증득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마음에 장애가 없이 머문다. 마음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고 顚倒를 넘어서 궁극의 열반을 증득한다.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Try-adhva vyavasthita sarva Buddha Prajna-Paramitam A-sritya Annutara-Samyak-Sambodhim, Abhi-sambuddha.
트리-아드봐 비야봐스티타 사르봐 붓다 프라즈나-파라미탐 아-슈리탸 안누따라-삼약-삼봇힘, 아비-삼붓다.
三世에 머물고 계신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위없는 바르고 완전한 보리를 완전히 깨달으셨다.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Tasmat, jnatavyam Prajna-paramita Maha-Mantra, Maha-vidya Mantra, Anuttara Mantra, asama-samati Mantra.
타스맡, 즈나타뷔얌 프라즈나-빠라미타 마하-만트라. 마하-비비야 만트라, 아누따라 만트라, 아사마-사마띠 만트라.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반야바라밀은 위대한 주문이고, 크게 신령스러운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고, 동등한 것이 없는 주문이며,
故知 般若波羅蜜多是大神呪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sarva duhkha pra-samana satyam amithyatva. Prajna Paramita mukha Mantra Tadyatha,
사르봐 두카 프라-사마나 사티얌 아미타트봐. 프라즈나 파라미타 무카 만트라 타티야타
모든 괴로움을 평정하며, 거짓됨이 없기 때문에 진실하다. 반야바라밀다에서 이러한 주문이 설해졌나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삼가떼 보디 스와하
가자! 가자! 저 넘어! 완전히 저 넘어로! 깨달음을 위하여 스와하!
揭帝揭帝 波羅揭帝 波羅僧揭帝 菩提娑婆訶
18계를 현대적인 용어로 풀이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6근(六根): 주관의 작용 기관
안계(眼界): 시각 기관, 즉 눈
이계(耳界): 청각 기관, 즉 귀
비계(鼻界): 후각 기관, 즉 코
설계(舌界): 미각 기관, 즉 혀
신계(身界): 촉각 기관, 즉 몸
의계(意界): 마음(6식, 심왕, 심법)의 작용 기관, 즉 의근(意根)
6경(六境): 객관
색계(色界): 시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색깔이나 형태(모양과 크기)를 가진 물질 일반, 즉 소리 · 냄새 · 맛 · 감촉을 제외한 모든 물질적 성질
성계(聲界): 청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소리
향계(香界): 후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냄새
미계(味界): 미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맛
촉계(觸界): 촉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감촉
법계(法界): 마음작용 및 마음작용의 대상
마음작용으로는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 탐욕 없음 · 성냄지 않음 등이 있으며, 마음작용의 대상에는 특히 무위법(열반 · 진여 · 법성 등)이 포함된다.[5] 무위법을 제외하면 마음작용의 대상은 대체로 개념(또는 비물질적 사물)이라 할 수 있다.
6식(六識): 마음(6식, 심왕, 심법), 주관
안식계(眼識界): 색깔과 형태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시각
이식계(耳識界): 소리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청각
비식계(鼻識界): 냄새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후각
설식계(舌識界): 맛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미각
신식계(身識界): 감촉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촉각
의식계(意識界): 법계(法界, 전5식의 대상을 제외한 기타)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제6식 또는 제6 의식
空思想
공 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다.[1] 도교의 일부에서도 채용되며 원불교에서도 나타난다. 서방에서 나타난 허무주의와는 다르며 모든 것의 덧없음을 뜻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필요없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념과 물질적인 것[모든]을 뛰어넘어 해탈했음을 나타내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에서 공(空)은 반야심경을 비롯하여 대승불교 계통에서 특히나 강조된다. [3] [4] 여기서 공은 존재가 자성(自性)[5]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 모든 것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연기에 의해 다른 것들에 의존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자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아[6]는 자아가 자성을 가지지 않고 공함을 말한다. 설일체유부 등의 학파에서는 법만은 실제로 존재함, 즉 공하지 않음을 말했다.[7][8] 그런데 용수의 중관학파는 이에 반대하여 모든 것이 공하다고 주장했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한 것들도 전부 다른 것들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공한 것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공함도 공하다. 용수의 해석에서는 공(空)과 연기가 아주 밀접한 개념이 된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은 자아를 비롯한 모든 것에 자성이 없으므로 집착할 대상이 없음을 말하고 이것이 불교의 근본 사상이 된다.
■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 바라밀다를 행할 때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지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사리자 색불 이공 공불이색
사리불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 또한 그러하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사리불자여 법은 본래 공한 모양으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不垢不淨 不增不減
불구부정 부증불감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느니라.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느낌과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으며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노사 역무노사진
늙고 죽음이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느니라.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으며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菩提薩陀依般若波羅蜜多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보살은 반야 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故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罫(줄 괘,거리낄 홰)]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 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得阿縟多羅三邈三菩提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가장 높은 주문이며 아무것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아라.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느니 주문은 이러하느니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가테가테(gategate) 파라가테(paragate) 파라삼갓데(parasamgate) 보디스바하(bodhisvaha)-산크리스트어]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에 가서, 깨달음을 성취하여지리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대승 불교 반야 사상(般若思想)의 핵심을 담은 짧은 경전.
총 262자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佛經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현장(玄?)법사가 번역하였다.
■ 전도몽상(顚倒夢想)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 전도몽상(顚倒夢想)이 있다. 전도(顚倒)는 바르게 보지 않고 뒤집어 보는 것이고 몽상(夢想)은 꿈이나 헛것을 현실이나 진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에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전도몽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부처님의 세계인 구경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전도몽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삼법인(三法印)을 알고 깨우쳐야 한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나’라는 실체 또한 없다는 것을 체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 모든 고통의 뿌리는 바로 전도몽상이다. 고통의 시작이며 고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렇듯 진리적인 차원에서 전도몽상도 있지만 우리사회는 탐욕과 승리를 위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전도몽상 또한 차고 넘친다. 결점은 숨기고 장점만을 부각해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전도몽상도 있지만 거짓을 진실로 포장해 대놓고 강요하는 전도몽상도 있다.
반야심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般若心經)
불교 경전. | [개설] 대승불교 반야사상(般若思想)의 핵심을 담은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경으로 완전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그 뜻은 ‘지혜의 빛에 의해서 열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마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반야심경
짧은 경전으로, 당나라 삼장법사인 현장(玄裝)이 번역한 것이다. 260자로 되어 있다.《대반야바라밀다심경》(大般若波羅蜜多心經)《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또는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핵심...
위키백과
불교경전 요약 , 반야심경
(반야바라밀다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
본 이름은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반야(般若)는 프라즈냐(ⓢprajn?)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지혜’라는 뜻이고, 바라밀다(波羅蜜多)는 파라미타(ⓢp?ramit?)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완성’, 심(心)은 흐리다야(ⓢh?daya...
■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 바라밀다를 행할 때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지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사리자 색불 이공 공불이색
사리불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 또한 그러하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사리불자여 법은 본래 공한 모양으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不垢不淨 不增不減
불구부정 부증불감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느니라.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느낌과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으며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노사 역무노사진
늙고 죽음이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느니라.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으며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菩提薩陀依般若波羅蜜多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보살은 반야 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故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 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得阿縟多羅三邈三菩提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가장 높은 주문이며 아무것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能除一切苦 ??不?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아라.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느니
주문은 이러하느니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원래의 음은
갓데갓데(gategate) 파라갓데(paragate) 파라삼갓데(parasamgate) 보디스바하(bodhisvaha)이다
이것을 자꾸 읽다보니 읽기 쉬운 음으로 바뀌었다.
우리말로 옮기면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에 가서. 깨달음을 성취하여지리다.”
gate: '아제'라고 읽는다. 우리말과 뜻이 비슷하다. '가자' '가다'라는 뜻이다.
para: '바라'라고 읽는다. '저 언덕'이라는 뜻이다. 번뇌와 괴로움이 있는 곳은 이 언덕, 번뇌와 괴로움이 없는 깨달음의 세계는 저 언덕. 강 이쪽 언덕에서 강 저쪽 언덕으로 건너는 것에 비유한 ‘彼岸’을 말한다.
parasamgate: '바라승아제'라고 읽는다. 여기에서 sam은 완성형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저 언덕에 가서'가 된다.
bodhisvaha: '모지사바하'로 읽는다.
bodhi는 보리라고도 읽는다. 진리라는 뜻이다.
svaha는 성취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이루어지이다.'라는 뜻이 된다.
반야심경의 마지막에 나오는 진언의 일부분입니다.
원래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입니다.
진언은 원래 번역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 원음을 그대로 소리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진언에 담겨 있는 의미가 부처님의 깨달으신 경지 그 자체를 직설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오묘하고 깊어 우리 범부의 사량(思量)이나 이론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번역에 의해서 진언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 깨침의 세계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두 번째,
진언이 가지는 소리의 진동 그 자체가 깊은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보살이 삼매를 얻어서 그 힘으로 특정한 소리에 가피를 입힌 것이 진언이며, 또한, 이 우주의 근원적인 진동의 기운이 진언이므로 그 소리를 떠난 진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통 이 구절은 해석을 하지 않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원어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그 함축된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으리라 생각하며, 또한 이미 이에 대한 많은 해석이 이미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산스크리트 어는,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스바하’인데,
그 의미를 살펴보면,
‘가테(gate)’는 ‘간 이여’, ‘가자’, ‘파라(para)’는 ‘저 언덕, 피안’을 의미하고, ‘상(sam)’은 ‘완전히’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의 뜻이고, ‘스바하(svaha)’는 ‘영원 하라, 행복 하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진언의 힘을 빌려 『반야심경』이 가지고 있는 깨침의 소리를 함축하고 있는 이 주문은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략 아래와 같은 의미로 연결하여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즉, 이 언덕에 있는 무명 중생의 입장에서 해석해 본다면,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 우리 함께 저 언덕으로 가세, 깨달음이여! 행복이 있어 지이다(영원하여라)”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어리석은 중생에서 마음을 닦아 나가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해석해 본다면,
“가는 이여!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온전히 가는 이여!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우리들 중생의 입장에서 반야 바라밀다를 증득하신 깨달은 부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라면 조금 달리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신이여! 가신이여! 피안으로 가신이여! 피안으로 완전히 가신이여! 깨달음을 이루신 이여! 영원하소서.”
또한 이미 반야 바라밀다를 증득하여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할 것입니다.
“건너갔네, 건너갔네. 저 언덕에 건너갔네. 저 언덕에 모두 다 건너갔네. 깨달음을 성취했네.”
이상과 같은 의미의 해석을 기본으로 하여 조금의 의역(意譯)을 붙여 본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취했네, 성취했네. 모든 소망 성취했네. 만 중생들의 모든 소망 다 성취했네.”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우리 모두 행복하여라. 이 세상 우리 모두 다 함께 행복하여라.”
이 주문이야말로 반야심경 전체의 결론이며, 불교 전체의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주문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궁극의 경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게송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명쾌히 내려 주고 있습니다.
묘법의 마음
[관곡지(官谷池) : 경기도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
아제아제바라아제
지고한 경계는 허망하지 않는 진실
진실하여 결코 허망하지 않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설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1. 반야(般若)의 다양한 모습
반야(般若)는 2종반야·3종반야·5종반야로 분류됩니다. 2종반야는 공반야(共般若)와 불공반야(不共般若)를 말합니다. 이는 판교(判敎)를 위한 구분입니다. 천태종에 의하면 공반야는 성문(聲聞)·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이 다함께[共] 깨달을 수 있도록 설한 가르침으로, 《반야경》은 여기에 속합니다.
불공반야는 오직 일승(一乘)의 보살만을 위하여 설해진 것입니다. 이른바 원융무애(圓融无涯)한 경지는 성문이나 연각은 제대로 알 수 없고 오직 보살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는 불공(不共)입니다. 《화엄경》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3종반야는 문자반야(文字般若)·관조반야(觀照般若)·실상반야(實相般若)를 말합니다. 여기에 경계반야(境界般若)와 권속반야(眷屬般若)를 더하면, 이게 5종반야입니다. 학자에 따라 구분과 용어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렇게 구분됩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은 우주 삼라만상의 참모습, 즉 실상(實相)입니다. 참모습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이 참모습에 대한 깨달음이 실상반야입니다. 사람들이 실상반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이미 여러 가지 사고의 틀에 얽매어 있기 때문입니다. 관습에 얽매이고, 환경의 지배를 받고, 언어문자에 의존합니다.
삼매(三昧)는 먼저 이런 기존의 관념, 사고의 틀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른바 무념무상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 경계에서 얻게 되는 지혜가 관조반야입니다. 관조반야란 언어문자로 분석해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경계임을 나타냅니다.
부처님은 처음 실상반야를 얻으시고 너무도 황홀하여 그대로 열반에 드시려고 하였습니다. 그 깨달음의 경계가 언어문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니, 얼마나 황홀할까요? 그저 상상만으로도 환희에 젖는데…… 하지만 부처님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을 생각하셔서 열반에 드는 일은 뒤로 미루시고 깨달은 바를 전해주시고자 하십니다.
이로써 문자반야가 성립합니다. 중생을 위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유효한 수단이 언어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상이니, 참모습이니, 관조니 경계니 하는 말들은 다만 하나의 방편으로 이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자반야를 방편반야라고도 합니다.
문자반야가 설해짐으로써 자연스럽게 경계반야가 드러납니다.
천태종의 오시팔교(五時八敎)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 최초로 설한 시기를 화엄시(華嚴時)라고 합니다. 처음 득도하고 21일간 화엄경을 설하셨다고 하지요. 따라서 《화엄경》은 부처님 깨달음의 경계가 가장 원형대로 문자화된 것이라고 할 있습니다. 부처의 경계에서 관조되는 실상의 모습, 이게 화엄 세계입니다. 인류의 문화유산 중에 이보다 더 황홀하고 위대한 세계는 없습니다.
《반야경》은 열반에 들기 전 22년간에 걸쳐 설해집니다. 가장 긴 시간, 가장 많은 말씀이 전해진 것이지요. 이는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남김없이 깨달음에 인도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부 경전은 부처님의 대승세계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이런 큰 자비심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 같은 중생들이 잠깐 들은 말씀만으로도 삶의 경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야경》에서는, 성문은 성문의 경계, 연각은 연각의 경계, 그리고 보살은 보살의 경계가 마치 거대한 교향곡처럼 다함께 펼쳐집니다. 이게 반야경의 위대함입니다.
2. 말이 씨가 된다.
▲ 기형도 시인의 유고시집. 이 시집에서 마치 주문처럼 되뇌어진 시어들은 시인의 죽음을 예언하는 게 되었다.
실상과 언어의 관계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한 이데아와 그림자의 관계와 흡사합니다. 동굴 속에 죄수들이 묶여 있습니다. 이들은 동굴의 한 면만을 볼 수가 있지요. 이 동굴 면에 동굴 밖의 그림자가 비춥니다. 동굴 속 죄수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동굴 밖의 실제 세계를 상상할 뿐이지요. 이런 구도는 지난 호에 살펴본 비트겐슈타인의 세계와 그림의 관계와도 흡사합니다.
그림자는 절대로 이데아가 아닙니다. 그렇듯이 언어문자는 결코 깨달음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말하는 것이지요. 문자는 단지 달, 즉 실상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선가에서 말하는 지월(指月)은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문자에 대한 상당한 경멸이 섞여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언어문자가 그저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면, 왜 반야라는 호칭을 붙여서 문자반야를 따로 구분할까요? 그리고 언어문자는 정말로 하나의 전달수단에 불과한 것일까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시인의 《빈집》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 3가 파고다 극장의 한 좌석에서 기형도 시인은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전날 저녁, 그는 신문사―당시 중앙일보 편집부에서 근무 중―에서 나와 인사동에 들러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잔을 마십니다. 그리고 홀로 인사동 길을 걷다가…, 극장에 들르고…, 그리고 차가운 주검으로 화(化)했습니다.
생전에 출간을 위해 정리하던 시집은 유고집이 되어버렸고, 〈빈집〉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시가 되었습니다.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잘 있거라’. 그렇게 시인은 작별을 고하며 빈집에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그리곤 마치 관(棺)에 못질을 하듯 문을 잠가 버리지요.
일단 언어화한다는 것은,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을 지금 여기로 불러내는 동시에 그 대상이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하는 ‘숨겨진 힘’을 부여하는 일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라는 우주 창조를 위한 말씀이나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은, 말이 상상이나 신념과 같은 인간 내면의 정신적인 현상을 실제 현상으로 현존케 하는 불가사의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자신의 노랫말처럼 자신의 삶이 되더라는 대중가수들의 심심찮은 고백 또한 마찬가지다. 이 같은 언어의 힘을 우리는 ‘언어가 가진 주술성’이라 할 수 있겠다.
정끝별 시인의 평론처럼, 언어의 주술성으로 기형도 시인의 죽음을 이해한다면, 그는 〈빈집〉을 비롯해 자신의 유고집에서 구사한 시어(詩語)의 주술적인 힘에 이끌려 삶을 마감한 것이 됩니다.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마침내 죽음으로 그 예언을 실현하는 것이지요.
정신의학에서는 자살하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고한다고 합니다. 평소의 말속에 죽음에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프로이드는 죽음의 본능을 삶의 본능인 에로스(Eros)에 대비하여 타나토스(Thanatos)라고 하였습니다. 말에 에로스나 타나토스를 담게 되면, 그 말은 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관성을 띠게 됩니다. 말이 일정한 방향성을 띠게 되면, 가속도가 붙게 되고, 결국은 그 말을 실행에 옮기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언어는 힘을 갖게 됩니다. 언어의 힘은 그러므로, 일정한 방향으로 반복될 때 우선적으로 나타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부모, 특히 어머니가 평소 되풀이해서 해 주던 말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너는 커서 뭐가 될 거야라고 하면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것은 그 말이 반복을 통해 일정한 방향성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됩니다.
3. 그것은 마법 같은 것
‘언어의 주술성’이란 용어는 언어의 불가사의한 힘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정한 언어가 일정한 방향으로 반복되면 그 언어는 예언처럼 현실화되지요. 마치 주문이 외어지면 일어나는 현상과도 같은 주술성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언어의 주술성이 부정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합니다. 오히려 언어의 주술적인 힘이 발휘된 사례가 예외적이지요. 주술이라는 말 자체는 결코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르네 데카르트, 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의 철학적 방법이 근대인의 사유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 진리는 분명하고 확실한 근거 위에 성립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진리의 명증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진리 아닌 것으로 간주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고가 근대의 과학과 합리주의를 꽃 피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합리화의 과정을 막스베버라는 독일의 사회학자는 탈주술화, 혹은 탈신비화라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근대 합리화의 과정은 결과적으로 진리로 믿어 온 많은 것들을 이 세계로부터 추방해 버리는 과정과 다름없습니다. 형이상학이나 신학적 명제들은 모두 비과학, 혹은 비합리라는 판결과 함께 진리 아닌 것, 혹은 무의미한 게 되어 버렸지요.
기독교나 불교 같은 세계종교는 나름의 조직과 힘이 있어서, 과학과 대비되는 종교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지만, 그런 힘이 미약했던 전통 종교들은 모두 미신으로 전락합니다.
이렇게 근대적 사유에 의해, 많은 세계 이해가 걸러져서, 전근대, 혹은 원시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비과학의 세계로 귀양 가게 된 거지요. 그러다가 포스트모던, 즉 근대 이후에 겨우 유배지에서 풀려납니다.
탈신비화가 근대화였다면, 탈 근대화는 근대가 추방해 버린 신비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근대적 사유에서 벗어난 현대인들은 뭔가 신비롭고 마법적인 세계도 분명히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쯤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이 큰 인기몰이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거의 마법 같은 것이지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란 영화에서 주인공 샘이 아내가 될 여자에게 처음 손길이 닿았을 때 느꼈던 확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이 사람이야.’라는 느낌. 이 느낌처럼 분명한 게 또 있을까요? 이는 진실하고 결코 허망하지 않습니다. 과학이나 이성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니 마법 같은 것이지요.
4.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현대인은 똑같은 줄거리, 뻔한 내용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또 봅니다. 로맨틱 코미디, 서부영화, 슈퍼영웅 이야기…… 이른바 장르영화가 가능한 것은 많은 관객들이 보고자 하는 방향으로 줄거리가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를 보러 간 관객은 극중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보고 싶은 거지, 비참하고 불행한 현실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또 보는 것입니다.
뻔 한 내용을 알면서도 영화관을 찾는 것처럼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알면서 교회를 가고 절을 찾습니다. 종교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큰 구속력을 갖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의식에서 행해지는, 예컨대 ‘아멘’이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같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문이나, 제의(祭儀)는 매우 강력한 방향성을 갖게 됩니다. 때로는 지나쳐서 오히려 맹목적인 독단을 드러낼 정도로 그 힘은 강합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알라. 이는 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위가 없는 최상의 주문이며, 같이 비교할 게 없는 주문이니라. 능히 일체의 고통을 제거하나니 진실하여 결코 허망하지 않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설하시며, 말씀하셨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는 주문입니다. 뜻은 대략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으로 온전히 가자. 깨달음이여! 참으로 좋구나!”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중용》을 외우면 귀신이 범접하지 못한다고 아버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하시는 말씀이려니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조금도 허망하지 않는 진실한 말씀이셨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중용》에 쓰인 문자들은 인간 본성의 지극한 덕성을 표현한 것들인데, 어찌 감히 귀신 따위가 범접할 수 있겠습니까. 《반야경》에 쓰인 문자들 또한 반야로써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지고한 경계는 결코 허망하지 않는, 진실한 것입니다.
▲ 영화 〈올드보이〉에는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가 일으킨 비극적 종말이 그려진다.
영화 〈올드보이〉는 생각 없이 툭 던진 말 한마디가 한 여자를 죽음으로 몰고, 마침내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말 한마디로 고통을 받고,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습니다. 하물며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언어는 그 자체가 매우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요즘 특정 언론이나 인터넷 매체에서 결코 진실하지도 못한 허망한 말들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사회갈등은 증폭되고… 일본의 극우인사들이 똑같은 내용의 말을 되풀이하며 주변국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언어의 힘이 그렇게 쓰이면 비극입니다. 말에 증오와 억지를 담으면 세상은 증오와 억지가 넘치고, 말에 사랑과 이해를 실으면 세상이 곧 사랑과 이해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른말[正語]을 강조하셨고, 대승에 와서는 언어문자가 반야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김문갑/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mahā_]prajñā_pāramitā_hṛdaya_sūtram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완전한 지혜(彼岸)에 이르게(度)하는 반야경의 핵심(정수)을 담은 경전[般若波羅蜜多心經]
The sutra on the heart of the perfection of wisdom.
** 문장 구성 : 범어(산스크리트) / 한글 번역 / 한문(현장번역) /영어 /순서로 구성됨.
굵은 글자 영문자는 범어(산스크리트)로마자 표기이다.
** Müller(뮐러)본 소본 반야심경을 근거하였다.
** 끝부분의 조계종 한글반야심경 참조하기 바랍니다.
** 위 중국 찬불가 가수 황혜음의 범어 반야심경 노랫말은 조금 틀린 단어들이 있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00. namas sarva-jñāya |
일체 지자에게 귀의 합니다. [歸依 於一切智者]
Homage to all of the knowledge or wisdom.
[또는 oṃ namo bhagavatyā ārya_prajñā_pāramitāyai | ]
존경스러운(행운을 가진) 거룩한 지혜의 완성에 머리 숙입니다.[歸命具足福德慧]
Homage to the holly noble perfection of wisdom.
1-1. āryāvalokiteśvaro bodhisattvo gambhīrāṃ prajñā_pāramitā_caryāṃ caramāṇo,
vyavalokayati sma |
거룩한 관자재보살께서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수행하면서, 낱낱이 두루 보셨습니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The noble bodhisattva Avalokiteshvara practicing a deep practice of the perfection of wisdom.
1-2. pañca skandhās tāṃś ca sva_bhāva śūnyān paśyati sma |
오온들이(있어서), 그리고 그(五蘊)들 자성(自性)이 ‘공(空;없음)’함을 보셨습니다.
[or 그것(五蘊)이 실체(自性)는 없다(空)고 간파하였다.]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And he saw them as void of any existence on their own.
2-1. iha śāriputra rūpaṃ śūnyatā śūnyatāiva rūpaṃ
샤리푸뜨라여! 여기(이 세상에는) 색(色;물질, 형체가 있는 것)은 공성(空性)이고, 공성은 곧 색이다.
Here, Sariputra, the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just the form.
2-2. rūpān na pṛthak śūnyatā śūnyatāyā na pṛthag rūpaṃ
공성은 색과 다르지 않고, 색은 공성과 다르지 않다(or 별개의 것이 아니다).
Emptiness is not different from the form and the form is not different from emptiness.
2-3. yad rūpaṃ sā śūnyatā yā śūnyatā tad rūpam |
색 그것은 공성이고, 공성 그것은 색이다.
What is the form, that is emptiness; what is emptiness, that is the form.
2-4. evam eva vedanā_saṃjñā_saṃskārā_vijñānāni |
수(受, 느낌) 상(想, 인식) 행(行, 심리적인 현상들) 식(識, 알음알이)도 이와 같으니라.
And just so it is with feeling, perception, mental impulses and consciousness.
2-0.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3-1. iha śāriputra sarva-dharmāḥ śūnyatā-lakṣaṇā
사리뿌뜨라여! 여기 모든 법들은 공성(空性)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
舍利子 是諸法空相
Here, Sariputra, all the phenomena have the emptiness as the characteristic.
3-2. an_utpannā a_niruddhā a_malā a_vimalā an_ūnā a_paripūrṇāḥ |
그들은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부족하지도 않고 가득하지도 않다.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not arisen, not destroyed, not defiled, not purified, not lacking, not complete.
4-1. tasmāc Chāriputra śūnyatāyāṃ na rūpaṃ na vedanā na saṃjñā na saṃskārā na vijñānam |
사리뿌뜨라여! 그러므로 공성(空性)에는 물질(色)도 없고 느낌(受)도 없고 인식(想)도 없고 심리현상들(行)도 없고 알음알이(識)도 없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Therefore, Sariputra, in emptiness, there is no form, no feeling, no perception, no mental impulses, no consciousness.
4-2. na cakṣuḥ-śrotra-ghrāṇa-jihvā-kāya-manāṃsi |
눈, 귀, 코, 혀, 몸, 마노(意)도 없고,
無眼耳鼻舌身意
No eye, ear, nose, tongue, body, mind.
4-3. na rūpa-śabda-gandha-rasa-spraṣṭavya-dharmāḥ |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법(法, 마음의 대상)도 없으며,
無色聲香味觸法
No form, sound, scent, taste, touchable, mind-object.
4-4. na cakṣur-dhātur yāvan na mano-vijñāna-dhātuḥ |
눈의 요소도 없고 나아가서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도 없다.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No eye element..., until we come to: no consciousness-element
4-5. na avidyā na avidyā-kṣayo yāvan na jarā-maraṇaṃ na jarā-maraṇa-kṣayo |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나아가서 늙음․죽음도 없고 늙음․죽음이 다함도 없다.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No ignorance, no extinction of ignorance..., until we come to: no old age and death, no extinction of old age and death.
4-6. na duḥkha-samudaya-nirodha-mārgāḥ |
괴로움과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도닦음도 없고,
無苦集滅道
No suffering, arising, cessation, way.
4-7. na jñānaṃ na prāptir na a-prāptiḥ |
지혜도 없고, 증득도 없고 증득하지 못함도 없다.
無智亦無得
No knowledge, no attainment, no non-attainment.
5-1. tasmāc chāriputra a_prāptitvād bodhi-sattvasya
사리뿌뜨라여! 그러므로 [공에는] 증득이란 게 없기 때문에 보살은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Therefore, Sariputra, it is because of bodhisattva's non-attainment
5-2. prajñā-pāramitām āśritya viharaty a_citta-āvaraṇaḥ
지혜바라밀에 의지하여 마음에 장애가 없이 머문다.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that he dwells without the hindrances of the mind, having resorted to the perfection of wisdom.
5-3. citta-āvaraṇa na_astitvād a_trasto vipary_āsa_atikrānto niṣṭhā-nirvāṇa-prāptaḥ |
마음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고 뒤바뀐 인식을 넘어서서 궁극의 열반을 증득한다.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Because of non-existence of the hindrances of the mind, he is not frightened, he has crossed over distortions, at the end he will attain Nirvana.
6-1. try_adhva-vyavasthitāḥ sarva-buddhāḥ prajñā-pāramitām āśritya
삼세에 나타나신 모든 부처님들은 이러한 지혜바라밀에 의지하여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All the Buddhas existing in the three times, having resorted to the perfection of wisdom.
6-2. an_uttarāṃ samyak-sambodhim abhi_saṃbuddhāḥ |
무상 정등각을 철저하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다.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have fully awakened to the highest and right awakenment.
7-1. tasmāj jñātavyaṃ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故知
Therefore one should know:
7-2. prajñā-pāramitā mahā-mantro mahā-vidyā-mantro an_uttara-mantro a_sama_sama-mantraḥ
반야바라밀은 위대한 주문이고, 크게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고, 동등함이 없는 것과 동등한 주문이며,
般若波羅蜜多是大神呪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the perfection of wisdom as the great mantra, the mantra of great knowledge,
the highest mantra, the unequalled mantra,
7-3. sarva-duḥkha-praśamanaḥ satyam a_mithyatvāt
모든 괴로움을 평정하고, 거짓됨이 없기 때문에 진실하다.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It is a truth - because it could not be wrong.
7-4. prajñā-pāramitāyām ukto mantraḥ | tad-yathā,
반야바라밀에서 설한 주문은 이러하다.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The mantra was proclaimed in the Perfection of Wisdom.
8. gate gate pāra_gate pāra_saṃ_gate bodhi svāhā |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감이여, 감이여, 저 언덕으로 감이여, 저 언덕으로 완전히 감이여, 깨달음을 위하여 스와하!)
揭帝揭帝 波羅揭帝 波羅僧揭帝 菩提娑婆訶
[It sounds] as follows: [For him or her] who is gone, who is gone, who is gone to the other shore, who is completely gone to the other shore, there is an awakenment, hail!
9. iti [ārya-]prajñā-pāramitā-hṛdayaṃ [sūtram] samāptam ||
이상으로(聖스런)반야바라밀다심(경)를 끝냈다(완성하였다).
Thus, the heart of the perfection of wisdom is completed.
참고 : 조계종 표준 한글 반야심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1.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2.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3.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4.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5.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6.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7.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8.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 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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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본 범어 반야심경
범어 paramita 의미 , 바라밀다(波羅蜜多)
para는 초월의 의미로 우리말의 바라보이는 저곳 정도의 의미이고 m은 ‘~ 에’의 의미로 대격, 즉 저곳에, 저편에 의 의미가 되겠다.
ita는 이르게 되어지는 (수동적 의미) 정도의 의미임.
prajna paramita hrdaya sutram (반야바라밀경)의 의미는 '지혜의 저편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경전'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여기에 maha가 붙으면 ‘크다’라는 의미로 영어의 mega와 동일하다.
범어 hrdaya sutram (심경(心經))의 의미
보통 이 용어를 마음(心, mind)으로 알고 있는데 생물학적인 심장(心臟)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눈물이 ‘흘르다’, 피가 ‘흘르다’의 ‘흘르다야’인데 심장이라는 의미의 우리말 ‘흐르다’와 어원을 같이 함을 알 수 있고, 의미는 피가 흐르는 것 정도이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장소로서의 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어에서도 장기로서의 심장과 마음을 ‘heart’라고 쓴다.
참고로 범어에서 ‘viharati(비하라띠)’의 의미는 정주(定住)하다, ‘머무르다’의 의미인데 vi는 아닐비(非)의 의미이고 harati 는 어근 ‘hr’ 에 능동성 a를 더하여 ‘흐르다’(자동)에서 ‘운반하다’(능동)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곧 마음이 흐르지 못하게 능동적으로 마음을 잡는 의미다.
sutram은 경전의 의미인데 su는 실을 ‘꿰매다 ,묶다’의 뜻이고 ~tra는 우리말의 ‘~ 틀’ 이며 영어로는 tool이 된다.
고대에는 종이가 없었고 나무나 나뭇잎을 엮어 책간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를 끈으로 역은 것을 ‘sutra’ 라고 하였다.
반야심경 서문
om namo bhagavatyai arya -prajna- paramitaayai
옴! 존경스러운, 거룩한 반야바라밀다에게 경배합니다.
om : a u m 으로 이루어진 복모음이다. a는 우리말의 훈민정음 아래아 (·) 에 해당되어 음의 시초(훈민정음 해례본 의 설명)요, U 로 지속 되어 m으로 마무리 된다. 이는 알파요 오메가를 뜻하는 것으로 생성 지속 소멸의 우주의 소리이다.
*범어의 a는 단음으로 훈민정음 아래아 (·) 와 동일한 음가임.
namas : ‘절을하다, 경배하다’는 의미로 뒤에 오는 자음의 영향을 받아(연성의 법칙: 범어문법) as가 o로 바뀌어 나모‘namo’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나무관세음보살에서 나무(南無)로 쓰인다. 대체로 경전 앞에서 ‘귀의 합니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인도에서는 ‘나마스떼(namaste)’라는 인사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라 한다.
bhagavatyai : bhaga 는 ‘분배하다 나누다’는 의미인데 우리말로 ‘받다, 받들다’는 의미이다. 인도철학에서 ‘박띠운동’으로 유명한 'bhakta'는 ‘헌신한’이 되며 우리말로 보면 ‘바치다’와 같음을 알 수 있다. vat는 mant로 ' ~ 할만한'의 의미로 '받을 만한'의 뜻으로 '존경스러운'으로 해석된다. 여기서는 반야반라밀을 수식하는 형용사이다. 세존을 'bhagavat'라 한다.
범어 어원 연구를 한 혹자는 "bhagavat'을 우리말로 '박아 밭'으로 ‘밭에 박다(성교하다)’ 의미로 성스러운 뜻이라고 풀이한다.
arya : '거룩한'의 뜻으로 오페라에서 아리아라고 할 때 본래 범어 어원이라고 함.
반야심경 본문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arya-valokitesvaro bodhi-sattvo gambhiram prajna-paramita-caryam
caramano vy-avalokayati sma. panca-skandhastams-ca sva-bhava-
sunyan-pasyati sma.
심오한 지혜의 완성을 실천하시는 성스러운 관자재보살께서는 다섯 무더기들의 스스로 그러한 모습이 공함을 확실하게 낱낱이 관찰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보신다.
*arya : '거룩하신'이다. 원래 아리안을 지칭하는 용어. '아리어'란 인도, 이란계열에서 자기들 민족을 존칭으로 쓰던 말로서 이란이란 말 자체가 '아리어'란 뜻이다.
*avalokitesvaro bodhi-sattvo : '관자재보살'이다. ava는 '아래로 두루' 이고, lokite는 수동형으로 '보임' 영어의 look 하게 된,
isvaro는 '이슈와라' is는 ‘소유하다, 노력하다’는 의미로 ‘주인이 되다, 통치하다’는 주재자, 소유주를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거룩한 아래에 두루 보게 된 주재자'
bodhi는 '깨닫기' sattva는 '있는 것' 으로' 깨닫기 있는 것'이 된다. 즉 보살이란 ‘깨달을려고 노력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으로 보임. buddha 는 '붓한아 兒' 가 되어 '깨달은 자'가 된다.
*gambhiram : '깊은' '심오한' 의미
*caryam : '수행'을 의미한다. car 어근은 움‘직이다 수행하다’는 의미로 carya 는 우리말의 ‘정신을 차리다, 밥상을 차리다’와 가깝다. 발음은 차, 짜 로 된다. 영어의 car, carry 등이 어원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caramana : '차리면서' 정신을 차리면서 즉 '수행을 하면서' 의 의미. ‘~mana’ 는 동작의 결과가 행위자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범어 문법에서 반조태로서 '~하면서' 가 된다.
*prajna paramita : '지혜의 저편에 이르는 것'으로 지혜의 완성으로 번역 됨.
접두사 pra- 는 우리말의 뿌리, 풀, 뿔 과 연계해 볼 수 있는데 '시작하는 근원, 작용을 내는 출발점'의 의미로 영어의 ‘pre-’와 같다. pre-history
jna 는 영어의 know, 희랍어의 gno- 와 같은 어원이다. 결국 prajna 는 음사로 반야, 우리말 지혜로 번역 되는데 어원적으로 접근해 보면 지혜가 무엇인지 의미가 명확해진다.
*vy : vi는 ‘아니다 (非)와 빛, 비, 빗자루, 머리 빗는 빗’등의 의미, 낱낱이 라는 의미가 있는데 의미상, 모양 상으로 서로 연계가 됨을 알 수 있다.
*sma : 우리말의 '습니다 '와 같다.
*pasyati : '보시었다' ‘빠시야띠’라고 발음하므로 우리말과 흡사하다. 현장은 이를 조견 照見으로 번역함.
*panca ; '다섯' 희랍어의 ‘penta’와 같다. 미 국방성 펜타곤은 오각형별을 상징.
*skandhah : 무더기, 꾸러미
즉 오온인데 色受相行識으로 물질적 현상, 감수작용, 표상작용, 의지작용, 식별작용을 말한다.(물질적 현상을 인간이 지각되어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sva-bhava : '자체(self) - 존재 ' 의미. 이를 현장은 번역하지 않았고, 일부는 자성(自性)으로 번역하였다. 이 bhava 는 法으로 번역되는데 dharma(다르마)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sunyan : '공한' 팽창을 하면 빈 상태가 되는. 범어에 vina가 있는데 우리말의 ‘빈’ 이다. 이를 있다고 하면 아주 틀리고, 없다 하면 그것 역시 틀리다.
쑤우니아 식으로 발음하여 쑤에 엑센트가 있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iha, sariputra ! rupam sunyata sunyataiva rupam,
rupan-na prthak-sunyata sunyataya na prthag rupam,
yad rupam sa sunyta ya sunyta tad rupam :
evam eva vedana-samjna-samskara-vijnanam.
사리불아 ! 이 세상에서 물질적 현상은 공한 것이고,
공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물질적 현상이 될 수 있다.
공한 것이라 해서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며,
물질적 현상이라 해서 공한 것을 떠나 있지 않다.
물질적 현상은 모두 스스로의 모습이 공한 것이며,
또 스스로의 모습이 공한 것은 무엇이든 물질적 현상을 갖는다.
감수작용과 표상작용과 의지작용과 식별작용이 모두 이와 같이 공한 것이다.
*iha : '여기' 부사 (범어문법에서는 불변화사라 한다. - 성, 수, 격변화를 하지 않는다)
*sariputra : sari(사리)-putra(아들), 호격. sari 는 새를 의미하거나 사리처럼 작은 공을 의미하기도 한다. 리그베다에서는 ’화살’할 때 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말과 유사하다. 일설에 의하면 사리자의 어머니 이름이 사리라 한다.
*rupa : '형상' 우리말로는 ’모습이 어리다’의 '어릇'이다. 어두의 r발음은 이와 같이 모음을 첨가하여야 한다. 우리말 고어로는 '얼구' 이다
*sunya-ta : '공한 것' -ta 를 붙이면 '~것'의 추상명사가 된다.
*prthak :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는 ’쪼개진 ,벌어진’ 이다
*na : 아니다' 문장 전체의 부정의 의미로 ,영어의 not
*sa : '그것'
*evam : '이와같음'
*eva: '바로'
*vedana : '감수작용' 감관의 받아드림, 즉 인지이다. 한역으로 受.
어근은 vid 인데 ’뷔다, 빛’의 ’뷛’ 인데 ’ana ~ 아나’는 과거 수동분사가 됨.
*samjna : 한역으로 구마라즙은 相, 현장은 想으로 번역함.
이는 우리말 그대로 '쌈' 인데 '분별하여 앎'이다. 우리말의 쌈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분별하여 골라서 싸는 것’으로 차(遮)단의 의미도 있다.
어쨌든 썀냐로 시작하여 이것이 심화되어, 굴러가기 시작하면 실재 행위(行)로 연결이 되고 생각의 타래 뭉치 (識)로 발전하게 되면서 업과 식으로 발전하고 유전하게 된다. 이렇게 되니 감관의 받아들임 없이도 이젠 자발적으로 생기기 까지 한다. 금강경의 주요주제가 이 ‘썀냐를 어떻게 타파할 것 인가’ 이다.
prajna(지혜)와 대비되는 단어이다.
일부 학설에 따르면 相은 나무를 고르기 위해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무에 초점을 맞추면 형상이라는 의미가 되고 나무를 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 ’본다. 골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전체와 부분의 분별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보면 相자는 ’samjna쌈냐’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금강경에서 표지라는 의미로 ’laksana’가 있고, 모양이라는 의미로 ‘nimitta’가 있는데 구마라즙(삼장)은 이를 모두 相으로 번역하여 상당히 혼동스럽다.
’samjna, laksana, nimitta’는 그 의미가 다르므로 반드시 구별하여야 한다.
*samskara : '行’, 의지작용' 으로 12연기의 업도 이 용어를 쓴다. kara 의 어근은 kr인데 여기에 능동자성 ’a’ 를 추가(범어문법용어 guna화) ’kara(행위)’가 된다.
*vijnanam : ’識, 식별작용 으로 ’낱낱히 앎’ 정도 되겠다. 12연기의 무명, 업, 식 ....에서 식도 이 용어임.
*ya : 여기 (관계대명사)
*sa : 그것은 (여성)(지시,상관대명사)
*tad : 그것은 (중성) "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感
iha sariputra sarva-dharmah sunyata-laksana an-ut-panna aniruddha amala avimala anuna aparipurnah.
사리불이여! 이 세상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공한 모습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렵혀지지도 않고 더렵혀질 수 없지도 않으며,
늘어날 수도 없으며 줄어들 수도 없다.
*iha : 여기, 불변화사.
*sariputra : 사리자, 사리불
*sarva : '모든 곳' sa : 우리말로 싸, 모두, 전부 va는 ‘~바, 所’ 로 볼 수 있다.
*dharmah : 法. h는 우리말 주격조사 ’가, 이, 은, 는’이다. 어근은 dhr 인데 약변화가 되면 ’들다’, 강변화가 되면 ’달다’가 된다. 약변화는 우리말의 ’방패를 들다’로 ‘보호하고 지지하다, 지키다’의 의미를 갖고, ‘사위를 들이다’ 하는 경우는 ’소유하다’가 된다. 또한 ’마음에 들다’가 된다.
*sunyata : '공한 것' 어근 su는 ’팽창’인데 여기에 과거 수동분사 ya 붙어 '팽창한'이 된다. ~ta 는 우리말 ’~것’. su- 접두어는 ’바람이 들어 빈다’라는 의미와 별개로 ’빼어난, 좋은’뜻으로도 쓰인다. 금강경에 나오는 수보리는 su-bhuti 인데 여기서 su는 ’잘 생긴, 秀’ 이다.
*laksanah :이는 우리말의 ’알앗다’로 '표식,표지' 어근 laks 는 관찰하다, 인정하다. 해석은 "모든 법의 공한 것의 특성은' 정도 되겠다. 위에서 범어 원문 해석은 외국어대 서종순 교수의 해석인데 락사나 와 니미타는 다르므로 모습 보다는 특성으로 해석하는게 바람직하다. 또한 한역의 相 역시 뜻이 혼란스럽게 된다.
*anutpannah ; 不生. 생(生)은 우리말 '뺀나' 이다. an(않)- ut(윗)- pad(빠지다,빼지다) 로 우리말로 하면 ’않뺀나’이다. an(않)은 우리말의 부정과 같고 사용법도 같다. n은 모음 회피를 위해서 들어간다. ut는 ’윗’, 영어의 up 이다.
어근 padna 가 연음법칙으로 ’panna’가 되었다.
*aniruddah : 不滅. a (않) - ni(접두사, 내리다) 어근 rudh 는 우리말 ’우릿하다’에서 기원한다. dha 는 과거수동분사.
*amalah : 不垢. 한자는 때구 임. ’우리말 말라비틀어진’이 되어 ’귀이게, 코딱지,가래’ 등 ’말라붙은 더러운 것’을 뜻함. 더럽지 않은 것
*avimalah : a(않)-vi(非)-malah, 더렵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
*anunah : 不減. an(않)-una(부족한 적은). 이는 ’옷감이 울다 줄어들다, 우그러지다’와 연관시킬 수 있다. 우리말로는 ’줄다’ minus 와 같은 의미.
*aparipurnah : 不增. a(않)-pari(fully)-purna(불어나). 우리말의 ’불어나, 뿌러나’이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是故 空中無色 無受相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tasmac-chariputra sunyatayam na rupam na vedana na samjna na samskara na vijnanam
na caksuh-srotra-ghrana-jihva-kaya-manam-si
na rupa-sabda-gandha-rasa-spras-tavya-dharmah
그러므로 사리불아 ! 공함에는 물질적 현상도 없고
감수작용도 없고, 표상작용도 없고, 의지작용도 없고, 식별작용도 없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고, 몸도 없고, 생각도 없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세도 없고, 맛도 없고, 만져지는 대상도 없고, 개념도 없다.
*tasmat : '그러부터' 불변화사. ta(그)-sam(습니다)-at(에서) '그럿슴에서' 즉, '그러므로' 가 되겠다.
*sunyatayam : '공한 것 안에' yam 은 여성,단수,처격 이므로 '~안에'임.
*rupam, vedana, samjna, vijnanam : 위에서 설명 함.
*samskara : 行. 이는 복수 인데 수 상 식은 단수이다.
이렇게 되는 원인은 'veda'에서 감관을 통해 외부의 대상들이 내부와 만나서 인지가 된다. 그 다음 단계로는 'samjna'에서는 이를 분별로 싼다. 즉 최초의 분별은 주관과 객관으로 분별을 하는데, 이렇게 된 원인은 우리의 인식하는 방식이 대(對-對)의 대비로 인식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보는 자' 와 '보이는 대상'으로 인식을 한다.
그리고 이를 헤아려 좋고 나쁨 등으로 분별을 하고, 이 최초의 분별은 곧이어 가지 생각으로 소설처럼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를 'samskara' 라 하고 이는 다시 실제 행위로 일어난다. 그리하여 하나의 분별에 여러 가지 생각과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복수가 된다.
문제는 이런 작동이 관성을 가져, 새로운 생각의 패턴들을 저장하게 되고, 이는 다음에 패턴의 해석에 써 먹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고착화된 인식하는 메커니즘이 마음에 남게 되는데, 이를 업(業)이라 하고, 12연기 에서는 이를 'samskara' 라고 다시 부른다.
그래서 이번에는 비록 외부에서 감관의 받아들임이 없어도 갖가지 생각(vi-jna)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도 모르게 얼기설기 엮여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을 연기(緣起- 연하여 일어나는 것, pratitya-samutpada)라 한다.
'안이비설신의'는 6근(根)이며, 이를 6내입처(indriya-ayatana)라고도 한다.
'색성향미촉법'은 6경(境)이며, 이를 6외입처(bahya-ayatana)라고도 한다.
6근과 6경을 합쳐 12처라 한다. 즉 위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처럼 그 자체존재(sva-bhava)'가 이렇게 공한 것이다.
*na : '부정 (not, no) 여기서는 각 단어 앞에 붙으므로 no 의 의미라 보여 지는 데, 외국어대 서종순 교수는 없다로 번역하였다(현장도 無로 한역함).
허나, 존재의 유무라기 보다는 규정할 수 없음 의 'no' 의 의미에 가깝게 보여 진다. (이는 권중혁 선생님의 견해와도 약간 다른 저의 사견임음 밝힙니다.)
*caksu : '눈, 시력' 찾다의 어근인 '찾''불을 켜서 보여주다' 인 어근 kas, 즉 '켜다'의 중복 어간이다. 이 말은 '찾아보는 행위'라는 의미의 명사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눈을 가리키는 말이 지만 'caksus'는 '찾아봄'이란 의미를 갖는다.
**중복어간은 범어 문법의 강의, 강조법인데 우리말의 '버벅대다, 서성이다, 다다르다'와 같은 용법으로 이때 앞의 '버'는 벅의 간략화된 말이다. kha가 되면 ka로 간략화가 된다. 특히 'k' 와 'g' 처럼 목구멍 소리(후음)인 경우는 그에 상응하는 구개음 'ca,ja‘로 바뀐다.
참고로 눈을 가리키는 다른 단어인 'netram'이 있는데 ne(눈)-tra(틀) 이 되어 'eye'가 되는 것이다.
또한, 어근 khya- 는 우리말의 '알다, 말하다' 로 '뭐라혀봐, 뭐라 카노'이다.
*srotra : '청각', sro(소리)-tra(틀). 어근 Sru는 '듣다' 인데 발음은 '슈'로 마치 바람이 나무가지를 스치는 소리이다.
'-tra'는 ‘베틀, 형틀’할 때의 ‘틀’인데 영어로는 tool, instrument의 ‘tru’가 여기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ghrana : '냄새 맡는 것' 어근 ghra- 는 ‘냄새 맡다’임.
*jihva : '혀'인데 이는 불꽃이 너울거리는 모양을 형상화 하였다고 함.
*kaya : '신체, 몸' 어근 ci- 에서 파생한 말. 어근 ci- 는 우리말의 ‘울타리를 치다. 공구리를 치다’와 같은 ‘건설하다, 쌓아 올리다’이고, 결국 kaya는 '건설되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몸'이 된 것이다.
이 경의 뒤에 나오는 마음의 의미로 cit는 마음작용이 되어 '마음 짖기, 알아채기'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마음이 라기 보다는 마음작용이란 의미이다.
*manamsi : '생각' 어근 man- 은 ’생각하다, 추측하다‘. 어근 ma- 와 같은 계열이다. 어근 ma- 는 '맞추다'의 의미로 영어의 matching(맞추기) 와 그 어원을 공유한다. 우리말의 ’만들다(make), 맞춰보다(measure)‘와 같은 말들이 모두 여기서 유래함을 알 수 있다.
*rupa : 형상. 영어로 look과 연관성이 있음 우리말로 연관시킬 땐 'r' 변환룰에 따라 '어루-파'로 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얼룩. 어른거리다. 얼굴'등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sabda : 소리
*gandha : 냄새
*rasa : 맛. rasati의 어간형 명사이다. 맛보다, 느끼다. rasa는 명사형으로 사전적 의미는 '(초목의) 즙, 액, 과즙, 맛'이 된다.
*spras : 촉감. 어근 sprs- 의 미래수동 분사형으로 '접촉되어져야 할' 영어의 'spray, 흩뿌리다'도 이 어근에서 파생한다. 참고로 어근 sna- 는 '씻나', 즉 '목욕하다' 이다.
*dharmah : 法. 법에는 의미가 3가지로 구분 되는데
1.'다룬다' 에서 출발하는 '법률, ~하는 법'이 있고
2.'담는다'는 '지각의 수용'
3.여기서는 위의 'manas'의 짝이 되므로 '안 이 비 설 신 의'외 모든 지각 대상, 즉 오온(색 수 상 행 식)의 처리하는 법을 포함한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na caksu-dhatur-yavan na mano-vijnana-dhatuh
눈의 영역부터 의식의 영역까지 모두 없는 것이다.
6근과 6경이 주체와 객체로 결합하여 6識을 이룬다. 이를 18界라 한다.
*caksur-dhatuh : '찾아서, 眼'- '界' 어근 'dhatu- '는 '두다'로 우리말 '둚'으로 '界,層,根' 의 의미로 쓰임. -h 는 주격.
*yavan : '이어 받아~' '~까지' . 원래 yavat 인데 뒤에 유성음이 따라 오므로 연성작용을 일으켜 t -> n 이 되었다. 우리말로 하면'이이받아 ~ 까지'이다.
*mano-vijnana : mano(생각, 意) - vijnana(낱낱이 앎, 識). 여기서 識이란 생각이 빗줄기 처럼 갈래갈래인 것을 의미한다.
원래 manas 인데 역시 연성작용으로 as가 o로 바뀜.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navidya navidyaksayo yavanna jara-maranam na jara-marana-ksayo.
깨달음도 없으니 무명도 없고, 깨달음이 없어질 일도 없으니 무명이 없어질 일도 없다. (이로 부터 )
그러니 늙을 일도 없고 죽을 일도 없고 늙음과 죽음이 없어질 일도 없다.
무명(a-vidya)은 12 연기의 최초의 모습이고 노사(jara-marana)는 12연기의 최후의 모습인데 이 12연기 전체가 ‘색과 공의 관계’에서 처럼 '자체존재'가 공(sunya)하다는 것이다.
*na-a-vidya : na(부정)- a(않)- vid(빋)-ya(이어). '않 비는 것도 없음' 즉,
‘무명도 없다' 이다
*ksayah : '꺼지다' k는 후두음 폐쇄음으로 앞에 k 받침이 있음을 가정한다. 우리말로 대응 시키면 '끄다, 자다, 꺼지다' 가 되겠다. 실제 범어 발음으로는 '자요' 즉, '바람이 자요' 식으로 들린다.
*yavat : '내지' '~부터 ~까지'
*jara-maranam : '자라'의 뜻은 우리말의 커진다가 아니라 '늙다'의 의미이다.
maranam 은 '죽음' 어근 mr- 는 '죽다’라는 의미로 우리말의 '배추가 물른다'와 유사하다(mrnati)
** 참고 12연기(pratitya-samutpada)
緣起는 ‘因緣生起’의 준말이다. 원인이나 이유에서 스스로 가게 하는 것,
가공의 주재자를 설정하고, 이를 일으켜, 다양한 작용을 하고,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언어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즉, 이런 작동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복잡한 시스템과 그 작용이 생겨남’을 '연기'라 한다.
avidya : 無明
samskara : 行
vijnana : 識
namarupa : 明色
sadayatana : 6入 , sad(6)-a(에)-yat(옇)-ana(과수분 명사어미), 즉, 안이비설신의
sprasa : 觸
vedana : 受
trsna : 愛, 어근 trs- 는 목마르다.
upadana : 取, upa(옆)-a(에)-dana(대나)
bhava : 有
jati : 生, 자아나기
jara-marana : 老死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na duhkas-samudya-nirodha-marga na jnanam,
na praptir na apraptih.
고통의 현실도 없으며, 고통의 원인도 없고, 고통의 소멸도 없고,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도 없다.
도무지 안다고 하는 것도 없으며,
깨닫는 다고 하는 것도 없으며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 것도 없다.
여기 사성제(Arya-satya)도 앞의 ‘색과 공의 관계와 같다’라는 의미이다.
*duskha : '고통' 'dus(나쁜)-khu(구멍). 즉, 수레바퀴의 구멍이 잘 맞지 않아 삐걱됨을 고통이라 한다 함.
*samudaya : 원래는 ‘위로 올라가는 것, 일출, 혹은 생산하여 쌓이는 것’을 말한다. 앞에 sam(함께)을 붙이면 '모아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리하여 집(集).
*nirodha : 'ni(내)-어근 rudh-는 (닫다, 잠그다, 새장에 넣다, 옭다, 제지하다, 멈추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내릿다' 처럼 이것이 사라진다는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 우리말로 직관적으로 보면 ‘잃오다, 닗오다’로 보이며 의미는 멸(滅)이다.
*margah : '길, 방법' 어근mrj- 는 '닦고, 문지르고, 헹구고, 광내고, 깨끗이 하고, 꾸미는 것, 부드럽게 하는 것, 을 의미하며 이는 물과 관계가 깊다. 여기서 mrga 가 되면 ‘무리지어 가다’가 되어 야생동물이 된다. 종합하면 marga는 '짐승이 지나다니면서 길이 난 것'을 의미하면서 '다듬는 수단'이라는 의미가 있어 '길,방법'이 된다. 중국에서 도(道)를 닦는다는 것은 자꾸 다녀 길을 내지 않으면 금방 무성하여 지므로 '열심히 길을 내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한다.
*jnanam : '알아 냄'
*praptih : 'pra(뿌리내기)-ap(얻)-ti(기)-h(주격), 얻기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tasmac-chariputra apraptitva-bodhisattvasya prajna-paramitam-asritya viharaty acitta-varanah citta-varana-na-stitvad-atraasto vi-pary-asa-tikranto nistha-nirvana-praptah.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모든 구도자들은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며 마음의 장애가 없이 편안히 생활한다.
마음의 장애가 없이 편안히 생활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고 뒤집어지는 마음의 상태를 멀리 떠나 영원한 편안함에 들어간다.
*반야바라밀(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열반을 얻는다는 설명
*apraptitvat : 'a(않)-pra(내다)-ap(얻)-ti(기)-tvat(것 에서)' 무소득에서, 여기서는 앞절에서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 것도 없는 것'에서 부터라는 의미임.
*astritya : '~에 기대서' , a(~에)-어근sr(실어)-itya(서), 기대다, 의지하다, 우리말 처럼 '실어서'가 적확하다.
*viharati : '정주하다, 머무르다', 어근 hr(흐르)의 강변화(능동성 a첨가)로 '운반하다'가 된다.
*avarana : '~에 막는, 장애) 어근 vr는 ‘덮다, 숨기다’로 ‘이불, 덤불’할 때의 '블로킹'의 ‘블’이다. 약변화로 vrnoti는 덮다, 강변화로 varati는 ‘포위하다, 막다, 중지하다’가 된다. 영어에서는 block, barrier, barricade 처럼 쓰인다. 우리말로 하면 '발을 치다' 차(遮)가 되어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acittavarana ; '마음의 장애'
*astivat : '~에 서 있는 거 에서' asti는 불변화사로 '있는'
*atras : ' 두렵지 않아서', a(않)-어근tras(떨어서)
*viparyasa : '전도, 바른 자세가 아닌' vi(非)-pary(바른)-asa(자세)
*atikrantah : '위로 높히 걸어가게 된, 뛰어 넘어', ati(위로 높히)-어근 kram (활보하다, 걸음하다)
*nistha : '내려 선, 궁국의'
*nirvana : 'nir(잃)-va(바람, 불)na, 욕망의 불이 꺼짐, 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try-adhva-vy-ava-sthitah sarva-buddhah prajna-paramitam-asrity-anuttaram samyak-sambodhim-abhi-sambuddhah
삼세(과거, 현재, 미래)에 머물고 계신 모든 각자(붓다)들은 모두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더없이 온전한 깨달음(무상정등각)을 얻으셨다.
삼세제불들이 모두 이 '반야'를 통해 무상정등각을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tri : '셋' 우리말의 ‘베틀’할 때 틀과 같이 도구라는 의미이다.
셋 셑 틀 three 쓰리 셋
*adhva : '시간, 거리, 여행, 길'을 의미하는데 우리말의 '아득한'으로 볼 수 있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vyavasthitah : 'vy(낱낱이)-ava(두루)-sth(섵ㅎ)-ita(과수분)-ah
*sarva : '모든 곳' 처처(處處)', 우리말 ‘싹 바(所)’
*anuttaram : ' 더 이상 위가 없는, 무상(無上)', an(않)-ut(윗)-tara(더)-am
*samyak : '바르게, 정확하게, 참으로. 불변화사', 완전히 계합하여가는, 정등(正等)이다.
*sambodhim : '완전한 깨달음이, 정각(正覺)'.
*abhi : '앞, 분명히', to, for, toward, fully의 의미를 가진 전철로 쓰인다.
*sambuddhah : '완전히 깨달아 진 자'
고지 반야바라밀다시대신주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故知 般若波羅蜜多是大神呪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tasmaj jnatavyam : prajna-paramita maha-mantro mahavidya-mantro nuttata-mantro ' samasama-mantrah.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한다.
지혜의 완성의 위대한 주문,
위대한 깨달음의 주문,
더 높은 깨달음의 주문,
더 높은 것이 없는 주문,
비교할 바가 없는 주문은,
*jnatavyam : '알으렴', jna(앎, 智)-tavyam(~져야하는, 미래수동분사)
*maha : '큰' 영어의 mega, 원래 h는 gh로 본다.
*mantrah : '주문', man(생각)- tra(틀)
*vidya: '보여지는, 밝아지는, 깨달아지는',어근 vid-는 ‘뷔다, 빛’. 강형으로 ved- '뵈다'
*asamasama : '견줄 수 없는, 비교할 수 없는', a(않)-sama(영어same)-sama(等), sama 는 우리말 ‘(상추)쌈하다, 한데로 싼다, 하나로 분류한다’의 의미로 영어의 same이 된 것이다.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sarva-duhkha-prasmanah, satyam-amithyatvat.
prajna-paramitayam-ukto mantrah.
tadyatha :
우리의 모든 고통을 평정하며,
거짓이 없기 때문에 진실한 것이라는 것을.
그 주문은 지혜의 완성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여 진다.
*prasmanah : '진정시키는'. pra(뿌리)-어근sam(평정하다)-ana(아나,과수분)
파생하는 말로 samatha가 있는데 이를 ‘靜定’이라 한다.
*satyam :'진실한, 불변화사'
*amithyatvat : '거짓이 아닌 것 에서', a(않)-mith(迷)-ya-tva(것)-at(출격, ~에서). 어근 mi- 는 ‘길을 잃다, 갈피를 못잡다, 속이다’가 된다
*uktah :'말 하여진', 어근 uk- 는 말하다. 어근 vac - uc - uk 로 변화,
vac는 영어 vocal, vocaburary의 어원.
*tadyatha : '그것은 이렇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tad(그것은)-ya(이)-tha(러 ㅎ 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아제 모지 사바하
한자생략 - (음사로 의미 없음)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iti prajna-paramita-hrdayam samaptam.
간너간 분이시여 ! 건너간 분이시여 ! 저 멀리 건너간 분이시여 !
저 멀리 완전히 건너간 분이시여 !
깨달음이여 ! 만세 !
이처럼 지혜의 완성의 핵심이 끝난다.
* 참고로 범어의 게송이나 만트라는 문법이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범어 해석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만트라는 격보다 소리가 중요하다. 우리말로 "가제! 가제! 저편으로 가제! 저편으로 완전히 가제! 깨달음 만세! " 정도가 문법에 관계없이 적당할 듯하다.
*gate : 'ga(가)-ta(과수분, ㅅ타)-i(호격) , ai가 e로 바뀜.
*paragate : '저편으로 건너간 분이시여'
*svaha : '만세 !, 불변화사' su(잘,秀)-ah(말하다), 즉 '좋다고 말하다'
*iti : '~이리, 이렇게'
*samaptam : 'sam(쌈, 완전히)-ap(얻)-ta(었다), 우리말로 보면 삼아 얻다, 삼아뿌타, 비근한 예로 사위로 삼다, 삼위로 삼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