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앞두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죠.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처용무,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이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미 올라간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까지 더하면, 한국은 세계무형문화유산 8건을 간직한 나라가 되었네요.
여기서 잠깐, 강강술래와 강강수월래를 아직까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몇 언론에선 강강수월래로 적거나 강강술래와 강강수월래를 뒤섞어서 쓰고 있을 정도죠. 강강술래와 강강수월래, 어느 게 맞는 말일까요? 언어문화학자 한창기가 쓴 <뿌리 깊은 나무의 생각>을 보면, 토박이말과 전통문화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한창기씨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모두가 업신여기던 전통문화를 높이 평가하면서 판소리를 되살렸고, 놋그릇과 백자 그릇의 가치를 어렵사리 알린 사람입니다. 서구의 문물이 거세게 쏟아지는 가운데 전통가치와 세계 문화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꾀하면서 한평생을 연구한 사람이죠. 그의 문화비평을 모은 이 책엔 근대화 과정에 있는 ‘한국의 생얼’이 고스란히 담겼네요.
강강술래? 강강수월래? 조선중기의 여인들은 뭐라고 노래 불렀을까
강강술래는 전라도 해안지방에서 부녀자들이 풍요를 바라는 민속놀이였다고 하네요. 음력 팔월 보름, 바로 ‘민족의 명절’ 한가위죠.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서 호남 지방 여인들은 손을 잡고 동그라미를 이루어 돌기 시작하죠. 원을 그리며 춤을 추면서 누군가 매김소리를 하면, 다 같이 ‘강강술래’라는 소리를 되풀이하였죠. 그렇게 <강강술래>가 만들어집니다.
다른 이야기를 곁들이자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도 강강술래에 큰 흔적을 남겼다고 하네요. 이순신 장군은 조선 군대를 많아보이게 하면서 왜군의 기습을 감시하고자 부녀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강강술래’를 하게 하였죠.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강강술래를 하던 여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때를 잊지 않고 강강술래를 하였고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다고 하네요.
그러나 강강술래는 삼십년 전까지만 해도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적었습니다. ‘물을 건너 옴’이란 뜻의 ‘수월래’란 한자말을 쓴 것이죠. 억지로 끼워 맞춘 티가 나는데도 사전에는 강강수월래가 옳다고 하였죠. 조선중기, 대부분이 글자를 모르는 시대에 시골 아낙네들이 수월래란 한자말을 입으로 읊으면서 손을 잡고 돌았다는 상상은 참으로 터무니없건만 사대주의가 강했던 근대화의 지식인들은 강강술래가 그르다고 목소리 높였죠.
그러던 것이 한창기 같은 학자들이 더 연구를 한 결과, 강강술래가 맞다고 밝혀졌고 강강술래로 맞춤법을 고칩니다. 강강술래의 말을 따져 보면, ‘강강’의 ‘강’은 동그라미란 뜻의 전라도 사투리고, ‘술래’는 ‘경계하라’는 뜻을 지닌 ‘巡邏(순라)’란 한자에서 온 말로 짐작이 됩니다. 따라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둘레를 경계하라는 구호로 임진왜란 때 쓰인 거죠.
여인들이 남해바다가 펼쳐진 언덕에서 강강술래를 하고 있네요 @뉴시스
어깨춤이 덩실거리는 강강술래는 소중한 세계유산, 다시 한 번 ‘한국 것’을 돌아봤으면
원래부터 있던 지역 놀이였든, 빙글빙글 도는 춤에 강강술래란 노랫말이 뒤에 붙은 것이든 강강술래는 신나는 민속놀이로 자리 잡았었죠. 처음에는 진양조장단의 느린 가락이 중모리, 중중모리로 바뀌다가 마지막에 가서 자진모리의 매우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 특징을 갖고 있죠. 덩달아 춤도 달라집니다. 처음엔 느릿느릿 걸으면서 돌다가 시간이 갈수록 뛰듯이 돌게 됩니다. 한마디로 신명이 나는 거죠.
손에 손을 마주 잡고 함께 노래를 부를 때 얼마나 즐거운지 경험해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하지만 이제 생활에서 강강술래는커녕 같이 노래 부르는 풍속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노래방만이 외롭게 그 기억을 더듬고 있죠. 강강술래는 사람들 머릿속에만 있거나 그마저도 가물가물한 지경이죠. 사라지는 민속문화가 안타까운 요즘, 강강술래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뻔한 소리지만, 다시 한 번 ‘한국 것’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강강술래를 소리 나는 대로 적자면, 가앙가앙수울래입니다. 느긋하면서 여유 있는 농촌 인심이 느껴지네요. 그러다가 스타카토처럼 끊으면서 강,강,술,래, 빠르게 노래하는 대목에선 어깨가 절로 들썩이죠. 그 흥겨움이 그리워지는 가을입니다. 한가위를 맞아 민속문화와 토박이말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잘 지켜갔으면 하는 소망이 생기네요. 저 달님에게 두 손 모아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