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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에 발간된
<사천문학>(2011. 12호)에
김진환 소설가의
장편 팩션(Faction)소설
『니나 다 해무라』에
대한 해설
"소설이야기"
/<니나 다 해무라>는
뭘 다 해먹으란 말인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가?/
가 실렸다.
《사천문학》 편집진은 각 회원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코너를 특집으로 기획하였다. 필자는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이 장편소설(2009. 11. 14)이기에 몇 마디 설명으론 부족하여, 이 소설 제재 구성의 방법으로 본 종류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본다.
-소설 이야기
장편 팩션Faction소설
《니나 다 해무라》는 뭘 다 해먹으란 말인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가?
김진환####
소설이란 현실에 있음직한 일을 작가가 상상하여 꾸며낸 이야기. 학술적으로는 현실의 인생 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미적으로 질서화하여 통일적인 의미 관련이 있도록 산문으로 서술한 서사문예라고 한다. 판타지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허구의 이야기이므로 소설의 범주에 포함한다. 그렇다면 소설됨의 원론은 허구 여하에 있다. 허구虛構는 사실에 없는 일을 사실처럼 꾸며 만드는 것, 있을 수 있는 사건이나 가공적인 인물을 상상력에 의해서 진실인 것처럼 꾸며내는 이야기. 이에 반해 실제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나 전기는 논픽션nonfiction이라 해서 구별한다. non은 명사나 형용사 앞에 붙어 아니〔非, 不, 無〕의 뜻을 가지는 접두사이므로 허구fiction가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에 크게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는 철저히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수사대상이 되어 처벌을 받을 정도의 실화이며, 세계적인 멀티밀리언셀러가 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토대이다.
이렇게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작가의 눈을 통해 구성적構成的으로 서술한 창조적 이야기, 즉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의 장르를 팩션Faction소설이라고 한다. 팩션은 팩트〔fact : 사실〕와 픽션〔fiction : 허구〕을 합성한 말로, 실존인물의 이야기나, 실제 있었던 사건에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가공의 인물들을 창조하는 문학 장르를 가리키는 조어인데, 이를테면 《도가니》는 대표적인 팩션 소설인 것이다.
2년 전에 출간한 필자의 장편소설 《니나 다 해무라》는 팩션Faction소설이다. 책머리의 작가의 말은 팩션 소설임을 입증하고 있어 머리말을 잠깐 인용하기로 한다.
경북 영주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 사도도마의 암각석상이 발견되어 사계에 충격을 던진 일이 있다. 이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가야시대(1~5세기)에 기독교 전래 가능성을 연구하러 여러 곳을 다니다가 어떤 세미나장에서 나영이라는 이름의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다. 300석 규모의 좌석을 가득 메운 세미나에 나온 강사는 대학을 갓 졸업한 묘령의 아가씨였다. 훤칠한 키에 미모를 갖춘 그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강의에 그만 넋을 잃게 된 것이 이 소설의 집필 동기가 된다. 특히 그녀 아버지의 극렬한 반대는 딸의 머리채를 끄집어 당겨 세숫대야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잡힐 정도였음에도, 변화하는 시대의 비즈니스를 궤뚫어 읽고 성취해낸 그녀의 판단과 결심에 감동하였고, 그녀에게서 엿보인 효심에 감격했기에, 그날로 돌아와 먼저 쓰던 원고를 접어두고 이 이야기를 워드에 올려놓은 것이다.
사실, 이 소설 쓰기를 종용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작품의 소재나 테마가 그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탁을 한다고만 해서가 아니었고, 당시에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에, 자료 조사와 주인공의 행적과 필자의 체험과 상상력을 넘나들며 근 9개월여에 걸쳐 탈고를 하게 되었다.
문학작품이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또한 시대의 문제의식과 관심사가 어우러질 때 더러는 각광을 받고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을 얻는다. 졸고 《니나 다 해무라》도 시대의 멘토(길잡이)라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과, 리처드포의 《제4의 물결》, 법학자 김태수 박사의 《한국사회 최고의 기회》나, 국립군산대학의 정균승 교수의 《프로슈머마케팅》 등의 주장과 사상이 많이 반영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도 이론과 실제가 맞아 주지 않는, 씨앗과 텃밭이 조화되지 못하는 변수로 네트워크 마케팅 비즈니스 자체가 한계에 부닥치는 결과로, 소설 또한 영향을 받아 한동안 주목을 받고 전국을 불려 다니는 즐거운 비명이 있긴 했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잡아 두지는 못한 것 같다. 문학작품이 사회적 시대배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는 이야기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장편 《니나 다 해무라》가 팩트 부분 즉 실제 있었던 사실은 어디까지이며, 픽션 부분 즉 허구가 어느 장면 어떤 부분이었는지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 몇 장〔章, chapter〕을 짚어, 팩트와 픽션을 흥미롭게 가려내어 보기로 한다. 경험적 서사와 허구적 서사로 나눠 보자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지 못한 독자는 조금은 이해하는데 무리가 따르리라 생각되지만, 그런대로 짚어 짐작하기를 바랄 수밖에.
부분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있으나, 전편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김나영 23세 대재 3년, 그의 친구 경화․미라․상진, 대학 선배 지준․경주 등과 어머니․아버지․이모 가족집단과 직장의 고인재 사장 등이다. 시간배경은 대체로 집필 현재시점에서 2~3년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아버지 세대가 설정되어야 했기에, 약 40년 세월로 거슬러 넘나든 몇 장chapter이 있고, 공간배경은 대부분 부산지방이지만 농촌과 국외(독일, 덴마크)로 확대되기도 했다.
첫째 장 <에델바이스>는 대학 3학년 겨울, 1년 뒤에 있을 취직 걱정을 하던 김나영과 그의 친구들 다섯 명이 12월 말 설악산 겨울 등반을 떠난다. 힘들게 대청봉 정상을 밟았으나 장정長程의 등반을 처음 해본 나영은 지친 몸으로 천불동 계곡 절벽의 에델바이스를 뽑다가 넘어져 발목을 심하게 삔다. 험준한 설악산 양폭산장에서 비선대 아래 소공원까지, 일행중 서울 C대학 4학년 지준(나영이 보다 2살 위임)이 그 밤길을 3시간 가량 업고 내려온다. 그러니까 설악산 한밤을 스물다섯 살 총각이 스물세 살 처녀를 장장 3시간 동안 양폭산장 계곡을 업고 쉬기를 수십 번, 지준의 한겨울 내의에 땀이 배는 역사役事를 치르게 했던 것이다. 119구급대나 헬리콥터가 아니면 도저히 내려올 수 없는 위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철저히 허구였다. 필자는 등반이래야 설악산 울산바위나 양폭산장까지는 올라 봤지만 대청봉은 가까이 쳐다보기만 했지 올라보지 못한 경력이라, 등반 기술이나 구난방법은 전문가에게 여러 차례 자문을 받아 이 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팩션 소설의 허구 부분은 철저히 사건을 소설이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등반 경험이 없는 나영이 섣달그믐(양력)에 설악산을 가야 하는 이유는 에델바이스를 뽑으려다 다쳐야 하고, 지준이 업고 내려와야 하고, 업은 지준은 착하디착하게 보이지만, 임기응변에 능한 입체적 인물(사건의 전개에 따라 성격이 변해가는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에델바이스는 소설의 작은 복선으로 쓰인 소재였다.
두 번째 장 <언니 니나 다 해무라>는 팩트 부분으로,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언니 니나 다 해무라는 아시다시피 억센 경상도 사투리다. 언니 당신이나 다 해먹어라 여기서 해먹다는 부정한 짓으로 재물을 모으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따위의 뜻을 가진 어휘로 역설적 표현이다.
세 번째 <순수원시림불개미> 장은 사실 부분이 많다. 나영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은 팩트다. 그런데 큰 이모의 두 번째 문병은 실제이지만, 한약 순수원시림불개미를 사들고 가는 장면은 픽션이다. 그것은 교통사고 환자에게 필요한 희귀한 한약재를 선보이기 위한 필자의 배려였다. 지구상에 있는 동물 중에서 자기 몸무게의 50배에서 100배나 되는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괴력을 지닌 개미는 지상의 모든 동물과 곤충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로 비유된다. 개미를 잡아먹고 사는 곰도 힘이 매우 셀 뿐만 아니라 그 쓸개는 몹시 귀한 약재이다. 우리 선조들은 3천 년 전부터 개미를 식용으로 이용하고 약으로도 다양하게 써 왔다. 의학자들은 개미가 지닌 개미알데히드라는 기력을 늘리는 보약으로서의 효능이 산삼이나 녹용 같은 것보다 월등하게 높아, 중년의 교통사고 환자에게 특별히 권할 만한 문병선물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다른 문학 장르와는 다르게 독자를 다양한 전문지식과 교양 생활상식들을 은연중 간접 경험케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장 <한밤에 업어준 남자>는 1장 <에델바이스>와 함께 전적으로 픽션이다. 실존인물 나영은 설악산 근처에도 간 일이 없었지만, 소설의 나영은 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다섯 번째 장 <초등학교 남자 친구>는 각색된 팩트다. 실존인물 나영(작품상 이름)과 상진은 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그들은 좋아한 사이였다. 둘 다 꽤 공부를 잘한 편이었는데 나영은 대학에다 대학원까지 진학한데 비해 상진은 실업고교를 나와 일찍이 취업을 하고…. 상진은 나영을 간간이 그리워하였다. 그들이 동창회에서 만나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노래방에 가는 상황은 픽션이다. 여기서 픽션과 팩트가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소설 한 대목을 쫓아가 보자.
나영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전체 모임행사가 끝나고 6학년 반끼리 모이는 저녁 행사에 우루루 노래방엘 갔었다. 나영의 노래 솜씨가 예사가 아님을 잘 아는 친구들이 같은 반 남자 얼짱 서상진과 노래를 부르란다. 상진이 나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까. 그들은 환호와 박수로 둘을 스탠드 쪽에 세우고 휘파람을 불어대며 곡목까지 주문했다.
─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그거 해라. 제목도 감칠맛 나잖아?
상진이 나영의 눈치를 보며 엉거주춤 걸어 나간다. 나영은 팔짱을 끼고 친구들을 노려보고 있다.
─ 야 느그들이 우리 띄워놓고 흔들어 술안주 삼으려고 그러지?
나영이 새우눈으로 친구들을 째려보고 하는 말이지만 그닥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 아이고 우리는 띄워줄 상대가 있어야 뜨지. 야, 왕년의 노래솜씨 어디 갔나? 상진이 앞에 나가 다리 아프게 기다린다.
─ 좋아! 하긴 하는데….
상진과 나영은 듀엣으로 불렀다. 이혜진 주영훈이 부른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는 정작 실제가수 주영훈보다 상진의 표정과 모습이 절실하고 진지하다. 상진은 바이브레이션인지 감흥의 울림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음색으로 나영을 리드하여 친구들을 환호하게 하였다.
♬니가 아침에 눈을 떠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은 것을 대할 때면 함께 나누고픈 사람이 나였으면
노래방 반주키가 남녀 달랐지만 상진에게 맞춰진 키를 나영은 그냥 괜찮게 맞추고 있었다.
상진이 첫 소절을 나영이 두 번째 소절을 불렀을 때,
─ 야, 느들 손잡고 해라. 뮤직비디오도 안 봤나?
누군가의 주문에 정말 상진은 손을 내밀었다. 나영이 못 이긴 척 손을 잡자 상진은 세 번째 소절을 호소하듯 불렀다.
♬그래 알고 있어 지금 너에게 사랑은 피해야 할 두려움이란 걸
♬사랑이 짙어지면 슬픔이 되는 걸 아느냐고 하지만 넌 모른거야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는 걸 (합창부분)
─ 야아- 가사가 딱 느그들 거네 뭐. 히야, 안무 팀이 있었으면 더 끝내 주겠는데.
─ 야, 느그들 노래보다 분위기가 더 좋은데! 상진이는 꿈꾸는 것 같은 폼이네.
─ 이러다가 진짜 일 나는 거 아니야?
노래를 끝낸 나영이 이 대목에서 발끈한다.
─ 거봐 이것들이! 사람 노래시켜놓고 이런 구설수 올리지 말라했거늘, 쯔쯔쯔 또 그 수작이네.
오랜만의 동창회는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정작 그날 이후 상진은 가슴에 싹 하나가 자라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초등학교 4학년의 짝지, 6학년 같은 반, 중고 땐 가끔 거리에서 만나면 반가웠던 나영이, 대학을 졸업하고 산나리처럼 훤칠하게 변한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이 훗날 나영의 사업에 동반자로 참여하여 화려한 성공자로 뜨는 계기가 된다. 두 인물의 관계와 좋아하는 감정, 사업의 동반자가 되는 줄거리는 fact이고, 동창회 장면이나 노래방 부분은 순전히 fiction이다
<세숫대야에 빠진 머리카락> 이 장의 충격적 사건이 소설을 쓰게 되는 결정적인 제재였다. 필자는 이 대목의 실존인물 나영의 의지와 효심에 감동하는 것이다. 소설장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집안청소는커녕 빨랫감은 목욕통에 처박혀 뒹굴고, 싱크대엔 밥그릇, 숟가락, 행주가 뒤범벅이 되어도 큰 딸년과 에미는 몹쓸 다단계에 빠져 돌아가는 꼴이 못마땅해 김형규는 기원棋院에서 아예 저녁 느지감치 들어오곤 했었다.
그는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그의 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다, 아내와 딸이 한패가 되어 아예 의논도 없으니 이게 다 그 다단계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울화통이 치밀고 심기가 있는 대로 뒤틀린 것이다. 어렵게 빚을 내서 교육대학원에 등록을 하게 했는데, 한 학기를 다니고 휴학한 후 복학 때가 되었는데도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어, 대학원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아니, 벌써 자퇴서를 제출했다고.
─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나는 애비도 아니고 이집 사람도 아니다. 이런 건방진 놈, 이게 다 에미가 끼고 하는 수작의 결과다. 내 이것들을 어째야 분이 풀릴꼬.
그는 자정이 가까웠지만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벽에 달린 뻐꾸기가 꼭 열두 번을 울었을 때 아파트 문이 열렸다.
침실에 든 줄 알았는데 거실 한복판에 망연히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보자 나영이 흠칫 놀란다.
─ 아버지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인사를 했지만 움쩍도 않는 그의 앉음새에 냉기가 돌았다.
─ 니 거기 앉아 봐라.
나영은 아버지의 심기가 심상찮음을 감지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유선생은 모른척 화장실로 안방으로 들락거렸다.
─ 내가 느그들 눈에는 뭘로 보이나?
나영은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살피고 있었다.
─ 말이 말 같지도 않나? 뭘로 보이냔 말이다.
언성이 높아졌다.
─ 아버지이지요. 무슨 말씀인지 해서요.
─ 애비라면 내 말과 뜻과는 사사건건 엇질로 나가고 이래도 되는 것이가?
─ ……무슨 말씀을 드릴라 해도 반대가 너무 완고해서 말씀드릴 틈이 없었어요.
─ 다단계 그거 하지 마라고 그렇게 싫다는데도 고집대로 하는 거 하며, 없는 돈 시골에까지 가서 빌려 등록을 한 대학원을 기어코 자퇴를 해버려! 일언반구 말도 없이. 느그들이 사람의 새끼가? 엉!
─ 아버지는 틈이 없어요. 일방적 지시일변도에요. 저희들이 하는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신단 말이어요.
나영도 그간에 말 못하고 아버지의 눈치만 살폈던 불만이 그런 볼멘소리로 되어 나왔다.
─ 이놈의 계집애가 어디서 눈을 치켜뜨고. 내 요걸 그냥…….
그는 그간 참아온 아내에 대한 불만도 함께 싸잡아 올라, 사정없이 딸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호되게 뺨을 맞은 나영은 여태껏 참았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 왜 때려요? 다 이유가 있는데도 말씀드릴 틈을 주지 않아 못 드렸는데 아버지는 때리기만 하면 어쩌란 말인가요?
그녀는 엉엉 울면서 아버지에게 대꾸를 하고 덤볐다.
─ 뭣이 요게 머리가 컸다고 대드는구나! 에라이 빌어먹을 놈의 새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형규는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딸의 머리채를 사정없이 낚아채 후려치고 말았다.
여태 아무 대꾸도 없이 서성이던 나영의 어머니 유선생이 깜짝 놀라며 끼어들었다.
─ 당신은 뭘 그리 잘했다고 애를 그렇게 때려요?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애먼 새끼를 그렇게 때려요. 이 밤까지 온갖 머리를 다 짜가며, 당신이 잃은 재산 반에 반이라도 건져, 살아 볼 거라고 발버둥치고 오는 애를 애비라는 사람이 그 연약한 얼굴에 어디 손댈 데가 있다고! 차라리 나를 때려요. 나를 때리란 말이어요!
유 선생은 거의 발악에 가까운 절규로 딸과 남편 사이에 엎어지며 자지러졌다.
모처럼 일찍 와서 잠들었던 작은딸 서영이 아버지의 고함, 엄마의 비명에 깜짝 놀라 뛰쳐나왔다. 이런 아수라장이라니 요즘 들어 언니가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건 더러 보았지만 엄마까지 합세한 이런 불상사는 처음인 것이다.
이성을 잃다시피 억울함을 어쩌지 못한 나영은 털썩 주저앉은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유선생은 흩어진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형규는 서영이를 손짓해 가져온 물병째 벌컥벌컥 물을 켜고,
─ 그래 말 잘했다. 느그들이 나를 어찌 보고 얼마나 왕따를 시켰는지, 여기서 쑤근쑤근 나만 들어오면 입 싹 닦고, 무슨 해인사 털어먹을 궁량만하는 짓거린고. 집구석은 만날 폭탄 맞은 난장판에다
─ 그래요 난장판 집안을 만든 건 사실이라요. 그게 전에도 그럽디까? 그럴밖에 없는 상황이 있단 말이어요.
상황은 무슨 놈의. 그 망할 놈의 다단계 하지 말라는 짓 그것 한다꼬?
─ 그러니 당신하고 말이 안 통하지. 네트워크마케팅은 그런 게 아니래도. 변화하는 시대상에는 귀도 막고 눈도 가리고 무턱대고 싸잡아 예전에 보고 들은 선입견만 가득 채운 벽창호에다 대고 무슨 의논을 한단 말이요? <중략>
나영은 그녀대로 아버지에게 밉보여 자주 야단을 맞았지만 오늘은 너무 서럽다. 하염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대학원 자퇴서를 낼 때,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을 떠올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녀는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잠들지 못했다. <중략>
지난밤 집안의 노도는 땅 끝이 가까운 것 같았으나 아침 해는 커튼 틈새마다 햇살을 쏟아 넣고 있었다. 나영은 눈을 부스스 비비고 거실로 나왔으나 노도에 휘말린 집안은 정적으로 괴괴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만이 이명耳鳴처럼 아스라한데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10분 전 10시였다.
나영은 수화기를 들었다가 그냥 가만히 내려놓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숫물을 한 대야 받아 부석한 얼굴을 헹구고 머리를 감았다. 헹굼 대야에 머리카락이 새까맣게 엉겨 있다. 대야 물을 휘돌려 손 안에 쥐어진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었다. 다시 설움이 북받친다.
─ 이 머리카락이 가눌 길 없는 아버지의 증오인가? 교육대학원을 자퇴하고, 그렇게 말리는 피라미드 다단계한다고 싸돌아 다니는데 대한 미움의 결정체인가?
그녀는 느지감치 사무실에 나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퇴근길에 찻집에서 좀 보자고. 엄마는 왜 그러냐는 한마디 반문도 없다. 묻지 않아도 딸의 기분이 어떤지를 꿰고 있다는 듯이.
모녀는 오랜만에 호젓한 찻집에서 찻잔을 사이하고 마주앉았다.
─ 다른 얘기는 다 두고 엄마, 아버지가 내 아빠가 맞는 거유?-
생그런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다짜고짜 내뱉는 나영의 첫마디다. 이건 아닌 밤에 홍두깨 내미는 정도가 아니라 후려치는 화두다. 유선생은 움찔 놀랐다.
─ 얘가 흉년에 꿀까먹는 소리한다더니 무슨 그런 천벌 맞을 소리를 하고 있어!?
─ 아버지가 나를 너무 미워하는 것 같아서,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빠진 머리칼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나를 미워해. 엄마야말로 화가 난다고 영진공업의 부도로 살림 다 내주고 집까지 넘긴데다가 내 월급은 벌써부터 원천징수 반액 압류되는 거 하며, 그런데 외려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 같애. <중략>
아버지가 딸의 머리채를 끄잡고 때린 사실, 아버지 몰래 교육대학원을 자퇴한 사실들은 한량없는 팩트다. 그런데, 어머니 유 선생과의 갈등은 픽션이다. 부부의 심한 갈등구조는 다음 장 40년을 회귀하며, 형규가 프랑크푸르트로 코펜하겐으로 옛 애인을 만나러가는 빌미를 만들고, 그가 외유 중에 눈을 들어 크게 깨우치는 계기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 나영이 찻집에서 엄마를 만나 내 아빠가 맞느냐고 생경스런 질문으로 엄마를 놀라게 하는 대목은 미구에 진정으로 딸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이 역설적으로 표출되었음을 그리기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 나영의 효심이 아홉 번째 장 <아버지의 처진 어깨>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영과 같은 사업을 하는 회사의 고사장이 그 완고한 아버지를 설득해 보겠다고 마련한 자리에 마지못해 참석한 김형규는 무슨 말을 해도 귀를 열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 같았다.
세 사람 모두 입맛 모르는 식사가 끝나고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진 뒤 나영은 아버지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오늘 일은 생판 남인 고인재 사장이 당당한 승자요, 혈육인 아버지는 편협한 아집에 갇힌 패자였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순간, 나영의 원망은 연민으로 바뀌고 있었다.
너른 횡단보도를 걷던 나영은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를 보았다. 봄이 깊었는데도 퇴색된 겨울 양복에 구두 바깥 뒤축은 심하게 닳았고 넥타이는 안쓰럽도록 후줄근하다. 몇 걸음 뒤에서 걷던 나영은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팔을 꼈다. 흘금 딸을 보는 듯하더니 그냥 팔을 맡기고 걸었다. 나영은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대학 특강에서 들은 한퇴지의 눈물이 떠올랐다.
중국 당나라 문학자이며 사상가인 한퇴지는 그의 홀어머니가 공부를 가르치면서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 매를 때렸는데, 어느 날은 어머니의 매를 맞으면서 엉엉 울었다는 고사다.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아프던 매가 그날은 별로 아프지 않아서 울었으니, 그것은 퇴지는 자랐고 어머니는 늙어 기운이 쇠잔해져 매가 아프지 않음을 한탄한 효성을 그린 이야기다. 우리 아버지,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아버지가 어찌 이리 이빨 빠진 호랑이 고집불통 늙은이로 변하고 말았을까? 어서 내가 성공하여 아버지의 처진 어깨를 세워드려야지! 그녀는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의 처진 어깨를 보며 새롭고 강한 결심을 하는 것이었다.
이 장은 대부분이 실존인물이 고백한 팩트다. 다만 상황이나 심리 묘사와 대화, 한퇴지의 삽화 등은 각색 또는 창작되었다.
이후 <덧없는 세월 저편>부터 마지막 <아버지의 기도>등 7개의 장 대부분은 창작된 허구다. 두어 차례 반전을 넘어 갈등이 해소된 결말단계의 실존인물 나영의 생각과 독백의 마무리를 보자.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어둠에 잠긴 시가지가 서서히 회색 여명으로 떠오르며, 은빛 지느러미를 지닌 은어처럼 싱그럽게 도시의 새벽이 깨어나고 있었다. 봄의 새싹과 여름 녹음으로 뒤덮었던 초목이 변색의 몸짓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또 다른 활력을 돋우는 겨울이 그녀 앞에 다가왔음을 느낀다. 나영은 일어나 창을 열었다. 52평 빌라의 넓은 커튼 사이로 열리는 하늘 아래 영혼의 빛이 계시처럼 다가오는 자신의 쇄신을 보았다.
'아, 나는 행복한가? 아니야, 이 성공을 복권 당첨에나 빗대는 것은 천박한 일이다. 나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지금부터 시작인 거야.'
나영이 영국 유학길을 떠나는 인천공항엔 배웅 나온 사람이 줄잡아 백 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런던의 히드로 공항엔 에든버러의 총각 박철민 박사가 기다린다는 메시지가 나영의 휴대폰에 와 있었다.
소설은 이쯤에서 대미를 짓는다. 스물일곱 성공한 처녀를 먼나라 영국에서 모든 준비를 다해놓고 기다리는 총각은 설악산을 업어 내린 지준도 아니요, 짝사랑하던 상진도 아닌 서른한 살 에든버러 대학의 전임강사 박철민이었다.
이른바 서술의 근원상황으로 볼 경우 소설은 아득한 옛날 서사의 형태로서 발생했으리라. 수렵과 채집의 군거群居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이 서로 즐기기 위하여 동굴의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그들이 실제로 경험했거나 일어난 사건을 가장 단순한 서술 형태로 이야기한 것에서부터 서사문학은 발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야기된 내용은 근원적으로는 사실적寫實的인 서사였다가, 점차 인간의 상상력에 의하여 사실을 극적으로 변형하는 있음직하거나 허구적인 서사체를 만들기 시작함으로써 이야기문학이 발달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서사체는 근원적으로 경험적 서사체와 허구적 서사체를 양대 근간으로 삼고 있다. 전자의 역사적인 발전형태가 실록이라면, 후자는 곧 설화요 전기傳奇이며 허구인 소설이다.
소설 입문단계의 작가 지망생은 이 경험적 서사체가 훨씬 설득력이 있고 작품의 성공확률이 높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경험적 서사체가 소설의 발생단계이고 허구적 서사체가 완성도가 높은 서사체라고 규정짓는 것은 옳지 않다. 소설의 발달 과정을 보면 허구라는 개념은 소설이 자리 잡히기 시작하면서 '현실감을 효과 있게 전달하기 위한 구성 방법'이라는 방향으로 조정되었다. 여기서 현실감이란 말은 사실의 재생이라는 뜻 이외에 진리와 진실의 전달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다시 허구를 짚어보면, 허구는 '진실됨'을 얻기 위한 방편이다. 현실 세계가 우연성과 개별성에 의해 지배되는 반면, 허구의 세계를 그 현실 속에서 필연성과 보편성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무질서의 세계가 아니라 '새롭게 꾸며진 질서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흥미진진하고 조직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이라도 그 자체가 완성도 있는 문학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허구란 무질서의 질서화이다.
현실사회의 실제 인물과 소설 속의 작중 인물은 처음부터 그 세계를 달리하고 있다. 물론 그 둘은 서로 일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소설이 현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와 진실과 논리에 의해 운행되는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어디까지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일상적인 현실과 다른 허구적인 현실이며, 그 허구적인 현실이 리얼리티가 획득될 때 그 세계는 생동하고 살아 있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남현 교수의 <소설원론> 한 구절을 더 인용하면서 <소설이야기>를 맺는다.
소설의 세계는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한 질서의 세계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리얼리티(reality : 현실성)가 있는 질서이다. 리얼리티는 소설 속의 필연적 인과관계에의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말한다. 소설을 소설이 되게 하는 것도 소설의 허구성에 있으며, 소설의 허구성은 리얼리티가 있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다.
문학에서의 모방은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하여 대상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미메시스(모방)는 대상을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능력으로 재해석되었다. 리얼리즘은 이러한 모방의 정신을 가장 직접적이고 성실하게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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