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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성제의
신학과 영성
전통 미사양식과 새 미사양식의 비교
저자 : 프란츠 슈밋버거 신부
독일 뮌헨대학교 수학과 졸업
현재 성 비오 10세회 총장 제1보좌 신부
전자우편 : fsspx@fsspx.org
http://www.sspx.org/
역자 : 토마스 오노다 신부
일본 동경대학 문학부 철학과 졸업
현재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 한국·일본지역 사목
전자우편 : fsspx@attglobal.net
http://sspxkorea.netian.com
"옛날 교회는 사제가 회중에 등을 돌리고 미사를 봉헌했었는데, 지금은 회중과 함께 미사를 지내게 되어 좋아졌다."
"옛날에는 알지 못하는 언어인 라틴어로 미사를 드렸으나, 지금은 각 나라의 말로
미사를 드리니까 사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어 좋아졌다."
"옛날 미사에서는 신자가 수동적으로 성체를 영하였으나, 지금은 능동적으로 영하게
되어 좋아졌다."
"옛 미사에서는 사제만이 특별한 사람이어서 차별적이었지만, 지금은 회중이 미사
중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으므로 사제와 대등해져서 좋아졌다,"는 등의 말을 듣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천주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나아가는 것도 좋지만, 교회의 세속화로 인하여
전 세계에 걸쳐 교회 안에서 거룩한 분위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성체께 대한 믿음이 흐려져, 성체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그저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늘었다."
"미사성제가 단순한 식사·잔치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속의 정신이나 인간중심의 정신이 천주교 신자들 속에도 스며들어 피임과 낙태를 보통으로 여기는 신자들이 많아졌다,"는 등의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려 오고 있습니다.
이 소책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회, 즉 가톨릭 교회의 미사성제의 배경에는 미사성제에 관한 신덕도리 및 거기서 유래하는 영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사성제를 나무로 보아 그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 미사성제에 관한 신덕도리이고 그 나무가 커 가는
방향이 영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먼저 시공을 초월한 진리로서,
천주교회가 미사성제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뜻에서 트리덴티노공의회의 장엄한 결의문을 재확인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부터 이 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되 천주교회의 미사성제에
관한 명쾌한 가르침의 뿌리가 어떻게 나무가 되어 성장하고 있는지, 즉 어떤 식으로 미사성제의 기도와
관습과 전례양식을 이루고 있는지를 하나 하나 살피고 있습니다. 이것을 따라가다 보면 성전(聖傳)에 의한 미사성제야말로 삼위일체이신 천주께 드리는 희생제사라는
믿음, 성체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믿음, 그리고
천주교 사제의 특별한 신품성사에 대한 믿음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또한
이 미사성제가 가톨릭 신앙의 보루, 영성의 중심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자로 하여금 자기를 잊을 정도의 천주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게 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희생제물에 합류된 사랑의 희생제물로서 스스로를 천주께 봉헌케 하며, 날마다 천주 중심의 생활 안에서 십자가를
영웅적으로 짊어지는 원동력이 되어왔음을 알게 합니다.
더불어 저자는 1969년에 사용이 허가된 새로운 전례양식의 정의와 미사경문 및 몸 동작을
고찰합니다. 새 미사라는 나무를 상세히 분석하면 그 뿌리에는 성체가 단순한 빵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단설, 미사는 형제들의 식사에 지나지 않으며 사제건 평신도이건 구별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관념이 깔려 있음을 납득할
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새 미사의 중심은 사람이어서 사람을 위해 거행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영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속의 정신이 그다지도 쉽게 현대의 천주교 신자들 속으로 침투해 들어온 주된 이유,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통과 십자가를 한사코 회피하려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진정한 이유가 저절로 밝혀집니다.
세속화의 문제는 당장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현대 가톨릭 교회 안에서 거룩한 것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천주교 신자의 생활을 성화시키고, 천주께 대한 사랑에 불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소책자는 문제의 뿌리를 공개적으로 제시하여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천년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천주교회의 성전(聖傳)을 조롱 및 중상하는 비판만이 무성한
오늘,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다 비판하면서도 현대화된 교회의 새로운 것을 의문시하는 것만은
해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떠 현실을 직시하며, 잠잠히 타이르는 소리를 따라 외치는 것이
어떨는지요?
이 논문을 번역하는 일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여러 신자들의 협력과 원조가 있었습니다. 저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전에 의한 미사를 사랑하는 이 교우들을 한 분 한 분 거명하여
감사를 표명함이 마땅한 일이겠으나, 그분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의 미사를 통하여 수많은 선조들의 순교정신과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사랑과 믿음을 끊임없이 간직하기를 빌면서 이 소책자의 머리말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머리말
서론 : 트리덴티노공의회 제22회기의 미사성제에 관한 결의문
1. 미사는 희생제사이다
2. 미사는 천주께 드려진다
3. 희생제사의 요소
4. 희생제사의 제물
5. 전통 양식의 제헌경과 새 양식의 예물 준비를 위
6. 사제의 역할
7. 교회의 신비
결론
미주
부록
주요 참고문헌
서론 : 트리덴티노공의회 제22회기의 미사성제에 관한 결의문
우리가 살펴볼 교리문답 공부의 주제는 '미사성제의 신학과 영성 - 전통 미사양식과 새 미사양식의 비교'이다
트리덴티노공의회 제22회기의 결의문(1562.9.17.)은 미사성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제1장: 미사성제의 제정
성 바오로의 증언에도 있듯이, 구약의 레위족 사제직은 완전하게 할 능력 및 사죄의 능력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불완전하였던 까닭에, 인자하신 천주 성부의 안배하심에 따라 멜기세덱의 제도에 따른 또 다른 사제가 등장해야 했으니1), 그 다른 사제는 바로 거룩해지고자 하는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로다.2) 그런즉 우리의 천주시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라는 제대에서 단 한번 죽으심으로써 천주 성부께 자신을 바쳐 영원한 속량3)을 완성하셨음이라. 허나 당신의 죽으심으로 그 사제직이 아주 끝나버리지 않도록4), 당신이 잡히시던 날 밤 최후의 만찬에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정배인 성 교회에 눈에 보이는 희생(can. 1)을 남겨주셨으니, 사람의 본성은 눈에 보이는 희생을 필요로 함이로다. 그로써 십자가상에서 단 한번 완성된 유혈의 제사가 재현되고, 세상 끝 날까지 그것을 기억하여 행케 하셨으되5), 그 구원의 은총은 우리가 매일같이 범하는 죄를 사하기에 이름일세라. 또한 주께서는 자신이 '멜기세덱의 제도에 따른 영원한 사제'6)이심을 선언하시고, 자신의 몸과 피를 면주의 형상으로 천주 성부께 바치시고는, 바로 그 똑같은 모양으로 (당신의 몸과 피가) 당신의 종도들에 의해 영해지기를 명하셨으니, 주께서는 그때 신약의 사제를 세우신 것이로다. 또한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7)라는 말씀으로써 종도들 및 후계자들에게 사제직 안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바치라고 명하셨음이요, 천주교회는 언제나 그렇게 이해했고 또 그렇게 가르쳐 왔음이라(can. 2)8). 해서, 주께서는 출애굽을 기억하는 첨례, 즉 이스라엘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된 고대의 빠스카 첨례(출애굽 12:1∼)를 기념하신 후에 새로운 빠스카를 세우셨으니, 이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성부께로 가신 것을 기억하는 눈에 보이는 표시, 다시 말해서 성 교회에 의하되 사제들을 통한 눈에 보이는 표시로써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기 위함이라. 그렇게 해서 주께서는 성혈을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속량하시어,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 밑에서 건지사 당신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에 옮겨놓으셨나니"(골로새 1,13).
이는 진실로 성총지위를 잃은 상태의 본성과 율법이 지배하던 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희생으로 예시된 바로 그 희생인즉9), 이는 그 모든 희생의 완성이기에 그 희생들로써 표명된 온갖 좋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연고라.
미사로써 거행되는 이 신성한 제사에는 십자가라는 제대 위에서 '단 한번 자기를 바치신'10)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 계시되 피흘림이 없는 형태로 산 제물이 되시는지라. 그리하여 거룩한 주교회의11)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노라. 이 희생은 틀림없는 속죄인즉(can. 3)12), 다음과 같은 효험이 있나니. 즉 두려움과 흠숭의 심정에 젖어 성심껏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사무치게 과오를 뉘우치고 통회하는 가운데 천주께 나아가면 '자비하심을 힘입고 또한 적당한 도움이 될 성총을 얻음'13)이라. 이는 성총과 통회의 은혜를 허락하시는 주께서 이 산 제물을 보시고 의노를 거두시되 허물과 중죄까지도 용서하시는 까닭이로다. 희생제물은 오직 하나요, 저 때에 십자가에서 몸소 바치신 바로 그것, 지금은 사제의 성무(聖務)를 힘입어 드리고 있는 바로 그것인즉, 다른 점이 있다면 드리는 방식 뿐이라. 무혈의 제사가 주님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는커녕, 그 (유혈의)제사의 열매는 이 무혈의 제사를 통하여 아주 풍성하게 골고루 미치나니. 그러므로 이 제사는 살아있는 신자들의 죄, 그 벌 및 다른 필요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으되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자들을 위해서도 종도들의 전통에 따라 올바르게 드려지는 것일진저.
이상과 같은 트리덴티노공의회의 설명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항이 명백해졌다.
? 미사성제는 천주께만 드려지는 참된 희생제사이다.
? 이 희생제사는 삼위일체이신 천주를 찬미하고 흠숭하기 위해서, 감사, 간원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매일 범하는 죄에 대한 속죄를 위해 드려진다.
?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천상 성부께 자기를 바치신다.
? 신약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인 사제를 통하여 및 교회의 전례의식(典禮儀式)에 의해 이 희생제사를 완성하신다.
이 사항들을 더 꼼꼼하게 하나하나 따져보자.
무엇보다도 먼저 성사는 인류, 즉 영혼의 성화를 위해 세워진 것인 반면에 미사성제는 오로지 천주께만 봉헌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제는 천주, 특히 강생하시어 십자가에 달리신 천주께로 향해야 함이 논리적 귀결이다. 목자로서 사제는 양떼와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며 선다. 즉 천당을 향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서 교회는 대부분 동쪽을 향하도록 지어졌고, 그렇게 해서 제단에 서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부활하시어 찬미 받으시는 그리스도, 무엇보다도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이다. 전례학자 클라우스 감버(Klaus Gamber)가 여러 저서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를, 성 교회에는 회중14)을 마주 보고(versus populum) 미사를 드리는 일이 결코 없었다고 하였다.
회중을 마주 보고 미사를 드리는 것은 앞다투듯이 빠르게 전례 거행의 새로운 방침이 되고 있는 신학이 고안해 낸 것으로, 그 안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따라 교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프로그램이 담겨져 있다. 게다가 사제가 회중을 향하게 되면서부터 사제는 복되신 성체성사에 등을 돌리는 일이 잦아졌다.
1) 특별한 장소
희생제사를 천주께 드리려면 마땅히 그에 걸맞게 특별한 장소를 정하고 적합한 건물을 세워서 강복하여 경당으로 삼든지 축성하여 성전으로
삼아야 한다. 또 희생제사와 관련된 모든 것 및 희생제사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것, 다시 말해서 거룩한 복음의 선포와 기도뿐만 아니라 성사 거행과 함께 희생제사만을 드리기 위한 지성소를 세워야
한다.
2) 신성한 언어
나아가 미사를 거행하는 데에는 신성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즉, 신성한 언어는
백성들을 위로 끌어올려 일상사를 초월하게 한다. 우리의 문화 환경에서 라틴어는 교회 일치의 표상인 동시에
끈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1947년 11월 20일자
칙서, '천주의 중재자(Mediator Dei)'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새로운 전례 풍습을 끌어들이는 이들의 무모함과 무엄함은...고약한 비난거리로다. 경애하는 형제들이여, 그런 변혁이 사소하고 세세한 사항뿐만 아니라 중요한 핵심 문제에까지 실제로 도입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매 짐은 한없는 고통을 느끼는도다. 예컨대 실제로 존엄하기 이를 데 없는 성체성사 거행에 나라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
거의 모든 교회에서 관례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라틴어는 교리상의 진리가 어떤 식으로든 훼손되는 것을 막는 효과적인 방호벽이기도 하거니와 명백하고도 아름다운 일치의 징표로다."
3) 신비
한편 신자들이 신성한 의식, 즉 미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반론에 대해서는 미사성제가 우선 교육이나 교리문답 교수가 아니라 천주께 바치는 희생제사라고 대답해 주면
된다. 의식의 내용은 사용된 경문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몸의 움직임으로써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거룩한 미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온전히 헤아리지 못할 신앙의 신비에 관련돼 있다. 그러니 신자들은 집에서 각자의 미사경본을 가지고 거룩한 희생제사를 준비하여,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와 한가지로 신성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십자가 발치에 서서 거행자와 결합하여 신성한 희생제물을 하늘에
계신 천주 성부께 바치고, 신성한 희생제물과 한가지로 자기 자신 및 생활 전체를 봉헌할진저! 동방 교회(정교회)의
예식에서는 전례 중 제일 중요한 부분을 성화벽15) 안쪽으로 들어가서 거행하여 미사성제의 신비적 성격을
더욱 강조한다.
그런데 어떤 천주께 희생제사를 바치는 것인가? 바로 성경의 천주, 계시의 천주, 하나이시고 참된 생활하신(살아 계신) 천주이신 성 삼위께 드리는 것이다. 이 진리는 예식 전체에서 경문 및 몸 동작을 통하여 표현된다. 사제는 다음과 같은 경문으로 신성한 행위를 시작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16). 'Kyrie - 주여'에서는 각 절마다 세 번씩 창(唱)하는 식으로 삼창하여 총 아홉 번을 창하지만, 새 미사양식에서는 여섯 번으로 단축돼 있다. 'Gloria - 영복경'17)은 다음과 같이 성 삼위의 신비가 최고로 훌륭하게 현양돼 있다.
"지극히 높은 데서는 천주께 영광이요 ... 주 천주여 하늘의 왕이신 전능 천주 성부여, 독생 성자 주 예수 그리스도여, 천주의 고양이시요 성부의 아들이신 주 천주여 ... 너 성신과 한가지로 천주 성부의 영광에 계실지어다. 아멘."18)
우리 신앙의 근본이 되는 신비는 '제헌경'의 끝 부분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성 교회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거룩하온 성삼이여, 엎디어 구하오니 이 제사를 받아들이소서. 우리 이를 네게 제헌하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 수난하심과, 부활 승천하심을 기억하기 위하며,... - Suscipe, sancta Trinitas, hanc oblationem..."19)
제헌경20) 중 첫 기도문에서는 천주를 '성부'라고 한다. 나아가 'Sanctus - 거룩하시다'에서는 천주의 거룩하심을 세 번에 걸쳐 찬미한다. 'Canon - 전문'21)은 다음과 같은 경문으로 시작된다. "Te igitur, clementissime Pater... - 이러므로 지극히 어지신 성부여, 네 아들 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들이 네게 간절히 구하고 청하오니..." 변화지례22)는 다음과 같은 경문을 욈으로써 마감된다. "Per ipsum, et cum ipso, et in ip so, - 저를 인하야 저와 한가지로 저 안에 너 전능 천주 성부께 성신으로 더불어 모든 존경과 영광이 있어지이다." 'Agnus Dei - 천주의 고양'에서는 세 차례에 걸쳐 천주의 자비를 간구함과 동시에 'Domine, non sum dignus - 주여,...나 어찌 합당하리이까마는'23)를 연거푸 세 번 외며 우리가 얼마나 합당치 못한지를 고백한다. 거룩한 미사는 'Placeat tibi, sancta Trinitas - 천주 성삼이여, 네 종의 행사를 네게 의합케 하시며...'로 마감된다. 그런 다음 사제는 다음의 경문을 외면서 신자들에게 강복을 베푼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너희들에게 강복하실지어다. 아멘."
경문으로만 숭고한 신비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행위로도 숭고한 신비가 드러난다. 예절 중에는 다음에 예를 든 것과 같이 십자성호를 세 번씩 긋는 경우가 자주 있다.
haec + dona, haec + munera, haec + sancta sacrificia illibata... - 이 + 선물, 이 + 예물, 이 + 정결한 제물...
Quam oblationem tu, Deus, in omnibus, quaesumus,+ bene dictam, ad+scriptam,+ ratam... - 이 예물을 강복+하시며 차지+하시며 진실하고+가합하고 의합한...
Hostiam + puram, hostiam + sanctam, hostiam + immaculatam... - 조촐하신+제물, 거룩하신+제물, 하자 없으신+제물...
Per quem, haec omnia, Domine, semper bona creas, + sanctificas, + vivificas, + benedicis, et praestas nobis. - 주여, 너 저를 인하여 이 모든 좋은 것을 항상 조성하시고 거룩케+하시며, 생활케+하시고 강복+하시며 우리에게 태워 주시나이다.
전문의 끝 부분 'Per ipsum - 주여 너 저를 인하여'에서도 마찬가지로 십자성호를 세 번 긋는다.
제헌 때 향을 피우면서 사제는 향로를 가지고 제물 위에 십자성호를 세 번 표시하고는 시계 바늘과 반대 방향으로 원을 두 번 그린 다음에 시계가 도는 방향으로 원을 한 번 그린다. 이 움직임은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신앙의 신비를 온전히 드러낸다. 십자성호 세 번은 비할 데 없이 거룩하신 삼위일체를, 두 개의 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24)을 의미하며, 하나의 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하나이신 제2위의 천주성 안에 존재하심을 뜻한다.
이 표시들은 물론 경문까지도 새 양식에서는 거의 모두 삭제되고 말았다. 제헌경 중 끝 부분에 있는 Suscipe, sancta Trinitas'도 그렇고, 미사성제 끝에 있는 경문인 'Placeat tibi, sancta Trinitas'도 마찬가지다. 1967년에 이루어진 1차 변혁에서는 각 경문에 있는 세 차례의 십자성호가 생략되었는데, 단 한 번씩으로 되었는데, 이는 예식이 "고상한 단순함으로써 구별되도록...짤막하고 명쾌하며 불필요한 반복이 없게" 한다는 명분이었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조항 제34조에서 요구한 대로 된 것이다. 마치 비할 데 없이 거룩하신 삼위일체, 즉 성 삼위를 단 하나의 위격으로 축약한 듯하지 않은가!
전통 미사양식에서는 서로 떨어질 수 없게 연결된 요소가 세 가지 있으니,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미사의 희생제사적 속성을 표현한다. 세 가지 요소란 바로 제대, 제물을 바치는 사제, 제물 봉헌이다. 이들은 새로운 양식에서도 역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세 가지 요소에 대응되는데, 식탁, 잔치를 벌이는 공동체의 의장 그리고 기념 식사가 그것이다. 그런 사실은 새 미사양식의 정의가 들어있는 'Institutio Generalis - 총론' 제7조의 원문에 드러나 있다. 이에 대하여 격렬한 항의가 있었는데 그 결과, 이 제7조는 'Novus Ordo Misae - 새 미사양식(혹은 새 양식의 미사)'가 도입되고 나서 겨우 1년이 지나고 나서 고쳐져야 했다. 그렇지만 정의된 사항 자체, 즉 새 양식은 가톨릭답지 않은 틀에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1969년 판의 제7조는 다음과 같다.
"주의 만찬 또는 미사는 신성한 회합 또는 하느님 백성의 집회로, 의장직을 맡은 사제의 지휘 아래 주님을 기념하는 잔치를 위해 모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역 모임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은 특별히 참되다. '대개 두 사람이나 혹 세 사람이 내 이름을 위하야 모인 곳에 내 곧 그 가운데 있음이니라'(마두복음 18:20)."25)
이 조항을 보면 개신교26)의 영향을 얼마나 심하게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여섯 명의 개신교 목사들이 이 새 미사양식을 입안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음악계의 예를 들면 이 정의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건전한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정의에 대해 뭐라고 할까. "교향곡은 그것을 작곡한 사람 및 그 첫 연주를 기념하기 위해 지휘자의 주관 하에 음악 애호가들이 모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 교향곡은 음악 애호가들의 모임이 아니라 사람들이 언제나 그 연주를 거듭해서 체험할 수 있도록 작곡된 음악 작품이다. 같은 식으로, 미사는 모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을 피흘림 없게 재현하는 것이다. 미사에서 우리 주께서는 영원하신 대사제로서 인간 사제를 통하여 행하시며, 신자들은 이 신성한 의식에 참례하기 위해 그리고 미사로부터 은총과 축복을 얻기 위해 모인다. 그러나 신자들이 전혀 모이지 않았어도, 즉 사제 혼자서만 미사를 드린다 해도 그 거룩한 미사는 변함 없이 그 내용이 온전함에 따라 천주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이다.
나아가 사제는 개신교 목사가 성찬식을 행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의장이 아니다. 사제는 개신교 목사와 달라서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혀와 손을 빌려드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제를 통하여 자신을 직접 봉헌하신다. 이런 이유로 사제는 "이는 곧 내 몸....이것은 곧 내 피의 잔..."이라는 축성경27)을 외지만, 이 경우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임에도 불구하고 교황 비오 12세가 그의 놀라운 칙서 'Mediator Dei'에서 가르치듯이,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한에서만 천주와 사람 사이의 중재자이다. 사제는 회중을 대표하기에 앞서 대사제를 성사적으로 대리하는 것이다.28) 거룩한 미사는 또 단순히 주님을 기념하기만 하는 잔치가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을 피흘림 없이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미사는 참된 희생제사 봉헌이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인 동시에 교회의 희생제사이다. 전통 양식을 보면 제물 봉헌부터 사제의 영성체까지 전부 37회나 되는 십자성호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예식의 실제 내용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새 양식에서는 남아있는 십자 표시라고 해 봤자 고작 1회에 불과하다. 다만 성찬의 기도 제1양식을 사용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2회의 십자 표시가 있다!
전통 양식을 보건대, 전통적인 제대 미사경본에는 전문 중에서 세 번째 경문인 'Communicantes - 거룩히 연합하여'의 앞에 'Infra Actionem - 행위 안에서'라는 표제가 인쇄돼 있다. 새 양식에서는 'Narratio Institutionis et Consecratio, 즉 성체성사를 제정한 이야기와 성변화'로 바뀌어 있다. 이 두 가지, 즉 전통 양식과 새 양식은 분명히 천양지차로 다른 것이다!
게다가 전통 양식에서 변화지례 경문이 배열된 모양과 새로운 양식에서 거룩한 변화 기도문이 배열된 모양을 비교해 보면 중요한 차이가 있다. 전통 미사에서는 "저 수난 전날에..."라는 경문으로 축성이 시작되는데, 보통 글씨체이고 끝에 마침표가 찍혀 있다. 그리고 나서 큰 글씨로 강조된 실질적인 면병 축성경29)인 'Hoc est enim Cropus meum - 대저 이는 곧 내 몸이니라'가 나온다. 그렇게 해서 이 경문만이 단독으로 축성의 효험을 낼 수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새 미사양식에서는 'Accipite et manducate ex hoc omnes -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는 구절이 실질적인 성변화의 기도문에 보태졌는데, 잠시 중단되었다가 그 덧붙임 기도문을 예비 기도문으로 삼아 읊는 식으로 하여 실질적인 성변화 기도문 앞에 나온다. 결과적으로 새 양식의 배열 및 글씨체로 보아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는 말이 축성경 자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포도주 축성경도 마찬가지인즉, 'Accipite et bibite ex eo omnes -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시라'는 말 역시 축성경에 덧붙여 있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해 보자.
전통 미사양식 저 수난 전날에 거룩하시고 존경하올 손에 면병을 가지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자기의 전능 천주 성부이신 너를 보시며, 네게 사례하사 축성+하신 후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 모든 이가 이것을 받아 먹으라. 대저 이는 곧 내 몸이니라.
대저 이것은 곧 내 피의 잔이니라. 너희들은 이 예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기로 행할지니라. |
새 미사양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당신 손에 빵을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 사례하신 후 축복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 저녁을 잡수신 후 같은 모양으로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당신 손에 귀중한 이 잔을 드시고 성부께 다시 사례하신 후 축복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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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양식을 고안해 낸 자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런 수단, 다시 말해서 식사라는 관념을 통하여 먹고 마신다는 관념을 전면에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의향에서 비롯된 또 다른 변화가 있다. 전통 양식에서는 제병(祭餠)30)이 축성되기 전이건 축성된 후이건 할 것 없이 성체포 위에 놓임에 따라 결국 제대석 위에 놓이게 된다.31) 새 양식에서는 제병을 접시인 성반 위에 그대로 둔다. 이는 희생제사적 관념을 식사의 관념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트리덴티노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여 개신교의 오류를 물리쳤다.
"만일 누가 미사로 천주께 참 그리고 본 제사가 드려지지 않는다거나, 또는 드려진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領)하라고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파문을 받을진저"(제22회기, can. 1).32)
전통 양식에서는 면병과 포도주를 각각 축성하는 이중(二重) 축성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도록 축성경을 배열하여 대비시킴으로써 희생제사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덧붙이건대 새 양식에서 'Mysterium fidei - 신덕의 오묘함이여'33)라는 경문은 축성 예절에서 분리되어 축성 예절이 끝난 다음에 읊는다. 트리덴티노공의회의 배서 하에 간행된 로마 가톨릭 교리문답집에서는 이 경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덧붙여진 경문 '신덕의 오묘함이여'는 실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숨어 있어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확고한 신덕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뜻함이라. 그런데 해당 구절 속의 이 경문은 성세성사에 적용될 때 지니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나니. 여기서 말하는 '신덕의 오묘함'이란 포도주의 형상 아래 가려진 그리스도의 성혈을 신덕을 통하여 보는 데 있으나, 성세성사는 다만 그리스어에 의거하여 신앙의 성사, 즉 신덕의 오묘함이라고 일컫는 것인즉, 이는 성세성사가 그리스도인의 신덕을 온전하게 고백하는 것을 포함하는 연고라. 주님의 성혈을 '신덕의 오묘함'이라고 일컫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덕이 주님이신 그리스도, 즉 천주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참 천주 성자께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고통을 당하셨음과 그 죽으심이 당신 성혈의 성사로써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의 믿음에 제시할 때, 인간의 이성이 어려움과 당혹감으로 특별히 시달린다는 것이로다. 그런즉 성체 축성의 때보다도 오히려 여기서 죄의 사함을 위해 피를 흘리신 장면인 이 부분의 경문에 의해, 우리 주님의 고난이 타당하게 기억되는도다. 그 이유는 따로 축성되는 성혈이야말로 우리 주님의 고난, 죽으심 및 당신 수난의 본질을 더욱 강력하게 모든 이의 눈앞에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는 연고라."
이와 관련하여 새 양식의 라틴어본에 관한 것은 아니고 나라마다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 대부분을 더 꼼꼼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 번역문을 보면 포도주 축성경에 있는 'pro vobis et pro multis - 너희 많은 이를 위하여'라는 구절이 거의 언제나 '너희 모든 이를 위하여'로 표현된다. 이 점에 관하여 위에서 말한 바로 그 로마 가톨릭 교리문답집은 '많은 이를 위하여'라고 읽어야 한다고 설명함과 더불어 어째서 '많은 이를 위하여'라고 읽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추가된 경문 '너희 많은 이를 위하여'를 보건대, 일부는 마두복음에서, 일부는 루까복음에서 취한 것으로, 성신의 인도 하에 성 교회가 한데 모아 마련한 것이다. 그것들은 당신 수난의 결실과 유익을 선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값을 따지자면, 우리는 구세주께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성혈을 흘리셨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인류가 거기서 얻어내는 결실로 치자면, 모든 이가 아닌 많은 이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셨을 때 당신이 의미하신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혹은, 이를테면 유다를 빼고 예수께서 함께 말씀을 나누신 종도들처럼, 유대 백성들 가운데서 선택된 자들이었다. 주께서 '많은 이를 위하여'를 덧붙이셨을 때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가운데서 뽑힌 자 일부를 뜻하도록 이해되기를 바라신 것이다."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말은 축성경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인즉, 언어학적으로 히브리어나 아람어 혹은 그리스어에 의해 정당화되지 못하며 천주교 교리에도 일치하지 않는다.
새 미사양식이 실제로 제대를 식탁으로 바꿔치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그런 교체가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났다. 혁신자들은 이 점에서 아주 논리적으로 행동했다. 풀어서 말하면 희생제사는 제대에서 봉헌되며, 기념 식사는 식탁에서 손님과 함께 먹는다. 제대는 천주교 관습에 따라 희생제사라는 타당한 목적을 위해 주교에 의해 축성되고 그 위에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34)를 상징하여 5개의 십자 표시가 새겨진다. 이 5개의 십자 표시에 성신의 상징이자 성신의 보관소인 성유를 바르고, 그 위에 향을 가득 피워 이 자리가 성스러우며 기도와 희생제물이 천주께로 올라가야 할 장소 역시 이곳이라는 것을 이해시킨다. 제대석 중앙에는 무덤에 해당하는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성인, 일반적으로 순교자의 유해35)를 안치한다. 이로써 자신의 피를 흘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신 성인들은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어 언제나 새롭게 재현되는 제대에서의 피흘림에 동참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위에서 언급된 칙서 'Mediator Dei'로써 교황 비오 12세는 그릇된 풍조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제대를 원시적인 식탁 형태로 복원하려는 자는 온전한 길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일진저."(§62)
그리고는 계속해서 미사성제를 식사로 바꾸는 것을 다음과 같이 단죄했다.
"그런즉 신자들이 영성체를 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 미사를 드리려 하지 않는 저들은 진리의 길에서 벗어남이요, 사제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함께 영성체를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가운데, 여기에는 단지 희생제사만이 아니라 희생제사 및 형제애로 결합된 식사의 문제가 있다는 억지스러운 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오류 속에 훨씬 더 깊이 빠져 있음이요, 그런 자들은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신자들의 영성체를 예식 전체의 정점으로 여김이라. 성체성사의 희생제사는 본디 천주이신 희생제물을 피흘림 없이 바치는 것이로되, 우리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36) 영원하신 성부께 봉헌함으로써 신비롭게 재현되는 것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진저."
4. 희생제사의 제물
참된 희생제사에는 희생의 제물, 즉 희생양이 필요하다. 트리덴티노공의회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변화된 빵과 포도주 형상의 몸과 피 속에, 육신 및 영혼과 함께 천주성과 인성을 지닌 채 참으로, 실제로 및 실체적으로37) 현존하신다.38)
이 경우에 위에서 언급된 제7조의 성체성사 의식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러므로 '대개 두 사람이나 혹 세 사람이 내 이름을 위하야 모인 곳에 내 곧 그 가운데 있음이니라'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이 지역 교회의 모임에 특별하게 실현된다." 심지어 독일 주교단의 허가를 받은 새 교리문답은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이면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고 설명하기까지 한다.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이는 것은 그들이 다음과 같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는 살아 계시다. 우리가 함께 모이면 예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신다." 또 "그리스도인이 예수와 함께 잔치를 열면, 그들은 제대로 나아간다. 사제는 그들에게 작은 빵 조각을 준다. 그들은 빵을 먹는다." 우리 주님의 성사적 현존을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일 때 순전히 영적으로만 현존하시는 것과 같은 수준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결국 이것은 궁극적으로 실제적인 현존을 부정하게 하고야 만다.
새 양식에서 "주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전하며, 주의 부활하심을 우리는 굳세게 믿나이다."라는 회중의 환호가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성변화로써 현존하시게 된 직후에 나오는 것을 듣자니 참으로 기괴하기 이를 데 없다.39)
1) 장궤
여러 차례의 장궤40)는 우리 주님의 현존에 대한 신앙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장궤는 흠숭과 경배의 표시이다. 새로운 양식에서는
장궤가 전반적으로 다 생략된다. 이런 맥락에서 변화지례에서 일어난 변화는 특히 치명적이다.41) 옛 양식에서는 사제가 면병과 포도주에 대한 축성경을
외고 나서는 곧바로 자신이 드린 경문을 힘입어 금방 현존하시게 된 그리스도께 장궤로써 경배를 드린다. 그리고
나서는 회중이 경배할 수 있도록 성변화된 면병과 포도주를 높이 들어올리고42)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어 경배한다.
그 같은 몸 동작은 타당하게 서품을 받은 사제만이 성변화를 이룬다는 천주교의 신덕도리를 완벽하게 표명한다. 반대로 루터파 교리에 따르면, 회중의 신앙이 그 '성변화'를 이룬다고 한다. 새 양식도 그런 해석을 허용한다. 이는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기는 하다.43) 새 미사양식에 따라 미사를 드리는 사제는 축성경을 외워서 성변화시킨 면병과 포도주를 들어올린 후에만 무릎을 꿇어 경배한다. 천주교 신자는 사제의 축성경을 통하여 현존하시게 된 그리스도를 흠숭한다. 개신교로 말할 것 같으면, 예물을 들어올릴 때에 비로소 공동체의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고 한다. 개신교 목사의 '거룩한 변화 기도문'은 아무런 효험도 없는 것이다. 거행자는 축성된 면병과 포도주를 제대나 식탁 위에 놓고 난 후에야 겨우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두 양식을 비교해야겠다.
전통양식 ?사제의 축성경: 그리스도께서 현존
?장궤 ?거양성체성혈 ?신자들에 의한 조배 ?장궤 |
새 미사양식 ?사제의 축성경 ?천주교나 개신교에 장궤가 없음 ?천주교: 거양성체성혈 ?천주교: 신자들에 의한 조배 ?장궤 |
새 미사양식의 애매함이 한눈에 훤히 보이지 않는가.
2) 사제의 손가락
면주44)의 형상 아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현존하심을 나타내고 성체성사의 주님께 타당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사제는
변화지례 때부터 영성체 의 성체 분배가 이루어진 후까지 계속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한데 모으는데, 이는
부주의로 인하여 가장 미소한 성체 조각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함인즉, 천주교의 가르침에 따르건대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미소한 성체 조각에도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한데 모으는 예절은 새 양식에서는
생략된다. 우리가 더 이상 주께서 성체성사에 실제로 현존하심을 믿지 않거나 우리 주께 마땅한 흠숭을
드리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인가?
3) 성구(聖具, 제구)
제일 보배로운 그릇만이 쓰이는 것, 이를테면 금으로 도금된 성작과 성합이 사용되는 것은
언제나 성 교회의 관습이었고 매우 엄중하게 규정돼 있다. 이런 그릇들은 성체성사가 끝나면 곧바로 사제가, 장엄 미사에서는 차부제가 조심스럽게 닦는다.
새 미사양식에서는 더 이상 그런 값진 재료를 사용하도록 규정하지 않는다. 더욱이 성작과 성합을 거룩한 미사 후에 즉시 닦을 필요가 없거니와 더 있다가 나중에 해도 된다. 그리고 이는 제의방 담당자(성구 보관인)나 복사 혹은 다른 평신도가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4) 손으로 하는 영성체
이는 요즘 어디서든지 관례가 되어 있는 손으로 하는 영성체로 이어진다. 그런 곳에서는 신자가
직접 성체성사의 주님을 마음대로 하거니와 영성체자의 손에는 거의 언제나 성체 조각이 남아 있다. 이
조각들은 어떻게 되나? 어린 학생들이 자기가 받은 성체를 호주머니에 넣어서 집으로 가져가든지 다른 갖가지
방식으로 능욕하는 죄를 범한다면...그 모든 신성모독을 책임질 자 과연 누구인가? 이런 식으로 해서 성체성사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신앙이 눈에 띄게 뿌리째 흔들리고 파괴되는 것이다.
신성한 장소에서 범하는 불경과 세속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불경 사이에는 부인할 수 없는 상관 관계가 있다. 천주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창조와 피조물, 천주의 모상을 지닌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외심을 잃고 만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양산하는 폭탄 세례, 모태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천의 생명체에 대해 매일같이 자행되는 살인, 메스꺼운 인간복제의 전망 등은 바로 성체성사의 경건함이 줄어든 결과이다.
5) 성체성사의 거행자
평신도가 특별히 성체 분배의 일을 하도록 위임받은 경우라고 해도 평신도에 의한 성체 분배는 마찬가지로 거부돼야 한다. 서품을 받은 사제만이 성체성사의 신비를 거행하는 사람인즉, 사제만이 적법한 성체 분배자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서품을 받은 부제조차도 예외적인 성체 분배자에 지나지 않는다. 교구청이
있는 독일의 한 도시에서는 성체거동 행렬을 할 때 여자가 성체를 받들고 가고, 교구 주교는 그 옆에서
그냥 따라 걷기만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는지?
천주교 신자에게 있어서 천주의 법에 대한 복종과 순명 그리고 겸손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은 상태로 우리 주님이시요 천주를 영하는 것은 극도로 중요한 문제이다.
6) 제대보
전통 양식에서는 예수의 수의(壽衣)를 나타내는
석 장의 흰색 아마포45)로 그리스도의 상징인 제대를 덮도록 정하고 있다. 이 제대보에는
예수의 수의(壽衣)와 성 삼위를 뜻하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새 양식에서는 한 장의 제대보만 있으면 된다. 상징적인 의미는 제쳐두고라도
전통 양식에는 실질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러니까 성혈이 한 방울이라도 엎질러질 경우, 그 거룩한 형상을 빨아들이는 데는 석 장의 제대보가 안성맞춤인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거룩한 성사에 대한 경외심이 어떻게 줄어들었고 어떻게 모두 사라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7) 감실
영성체가 끝나면 남은 성체는 감실에 모셔진다. 전례 혁신이 일어나 새 양식이 도입되기 전까지
감실은 어디서나 가장 중심이 되는 중앙제대 위에 있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제대에서 감실을 없애는 것을 다음과 같이 단죄하였다. "감실과 제대를
분리함은 본질적으로 함께 속해 있는 두 가지 것을 분리함이요." 요즘 대부분의 천주교회에서는
감실이 옆쪽 어딘가에 있든지, 한 구석, 벽 속 혹은 기둥
뒤에 있다. 감실로부터 성 교회에 당신의 성신을 부어주시되 당신 교회 및 인간 사회 전체의 왕이시요
모든 각 영혼의 사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중심에서 밀려나 한 구석으로 쫓겨나신 것이다.
몇 년 전 예수성체첨례일(축일)에 개신교는 뮌헨에서 바로 그 날을 자기네 교회의 날로 기념하였다. 천주교 뮌헨 교구는 그것을 세계교회주의(에큐메니즘)의 행사로 삼아 그들과 연합하여 성체거동 행렬을 하려고 하였지만, 개신교가 성체께 대한 경배를 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크게 당황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찾아냈다. 바로 교회에 성체를 그냥 모셔놓기만 한 상태에서 성체거동 없이 개신교와 함께 그냥 행렬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성체성사의 주님과 주님에 대한 신앙을 희생시키고 그 대신 에큐메니즘, 이른바 세계교회주의를 살린 꼴이 된 것이다!
5. 전통 양식의 제헌경과 새 양식의 예물 준비를 위한 기도문
미사성제의 예식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 전통 양식의 제헌경46)과 새 양식에서 예물 준비를 위한 기도문을 옆옆이 놓아 나란히 비교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 예물 준비를 위한 기도문은 「나의 주일 미사」(박양운 신부 감수, 1959년 발행)와 「가톨릭기도서」(1983년판)에서 따온 것이다.
전통 미사양식 영원하신 전능 천주 성부여, 나 비록 불감한 네 종이오나, 너 생활하신 내 참 천주께 드리는 바 이 조찰한 제물을 즐겨 받으소서. 이는 내 이왕 범한 무수한 죄와, 네 성의를 거스린 많은 허물과, 네 계명을 소홀히 여긴 내 모든 죄를 깁기 위할 뿐 아니라, 또한 여기 두루 있는 모든 이를 위하여, 네 성교회의 산 이와 죽은 모든 믿는 자를 위하여 드리는 바로소이다. 엎디어 비오니, 이로써 나와 저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얻기에 유익함이 되게 하소서. 아멘.+ 천주여 + 너 먼저 인성의 지위를 기묘히 만드시고 후에 신묘히 고쳐 새로 꾸미신지라, 비오니 네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인성에 참예하심을 혐의치 않으심을 기억하사, 너 우리로 하여금 이 물과 술의 오묘함을 인하여 저의 천주성에 우리도 참예케 하심을 얻게 하소서. 저 너와 성신과 한가지로 천주로서 세세에 생활하시고 왕하시나이다. 아멘. |
새 미사양식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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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사양식 주여 우리들이 네게 이 구원의 잔을 드리오며 네 너그러우심을 간구하오니, 이 잔으로 하여금 마치 아름다운 향내와 같이 네 엄위하신 대전에 사무치게 하시어, 우리와 및 보세 만민의 구령을 위하여 유익함이 되게 하소서. 아멘.+
주여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겸손된 마음과 통회하는 정으로 감히 네 엄위하신 대전에 나아감을 얻게 하사, 오늘날 우리 네게 드리는 바 이 제사가 네 성의에 흡합한 바 되게 하소서.
비오니 거룩케 하시는 자 영원하신 전능 천주여, 임하사 네 성명을 위하여 예비한 바 이 제물에 너그러이 + 강복하소서. |
새 미사양식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
(없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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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사양식 [장엄미사 때는 여기서 사제가 제물과 제대에 향을 드린다. 향합에 든 향을 향로에 넣으며 향을 강복한다.] |
새 미사양식 [새 전례에서는 미사성제의 흠숭과 보속의 성격을 선명히 드러내는 이 장엄한 기도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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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사양식 - 사제가 서간편에서 손을 씻으며 외우되 |
새 미사양식 - 이어서 사제는 제대 한 쪽으로 가서 손을 씻으며 조용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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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사양식 거룩하온 성삼이여,
엎디어 구하오니 이 제사를 받아들이소서. 우리 이를 네게 제헌하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 수난하심과, 부활 승천하심을 기억하기 위하며, 또한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안 세자와 종도 성 베드루 바오로와, 이 성인들과(제대에 있는 성해 성인을 가리킴) 및 모든 성인들을 공경하기 위함이오니, 저들에게는 영광에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구령에 유익함이 되게 하시고 또한 이 세상에서 저들을 기억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천상 전달을 얻게 하시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소서. 아멘. 형제들이여 기구하사이다. 나와 및 그대들이 드리는 바 이 제사를 전능 천주 성부 즐겨 받으시기를 위하여 기구하사이다. ○ 원컨대, 주 네 손에서 이 제사를 즐겨 받으사 당신 성명의 찬미와 영광을 위하여 우리 무리와 당신 온 성교회를 위하여 유익함이 되게 하실지어다. 아멘. |
새 미사양식 (없어졌음) 형제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아주시도록 기도합시다. ○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우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 |
전통
기도문에서는 보상과 속죄라는 희생제사적 목적이 뚜렷하게 표명된다. 사제는 자신을 '이왕 범한 무수한 죄와, 네 성의를 거스린 많은 허물과 네 계명을
소홀히 여긴 내 모든 죄'를 위해 이 제물을 드리는 '불감한
종'으로 묘사한다. 사제는 또 '여기 두루 있는 모든이를 위하며, 네 성교회의 산이와 죽은 모든
믿는 자를 위하여...' 그것을 드린다. 예물 준비를 위한
새 기도문에서는 속죄의 관념을 거의 읽어 낼 수 없다.
전통 미사 끝 부분에는 사제의 마지막 강복이 있기 직전의 'Placeat tibi - 천주 성삼이여'에서 이 속죄의 관념이 한 번 더 등장한다. 이 경문에는 제물이 'sacrificium propitiabile - 속죄의 제사'를 위해 드려졌다고 돼 있다. 새 양식에서 이 기도문은 완전히 삭제되었다.
전통 양식에서 제헌경 중 최초로 나오는 기도문은 자신을 희생하시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hostia immaculata - 조찰한 제물'을 말한다. 새 양식에서는 전통 양식과 대조적으로 인간이 땅을 일구어 얻은 빵에 대해서만 말한다. 이는 강조하건대 단순한 변화 이상이다.
사제가 포도주와 물을 섞으실 때에, 전통 양식의 'Deus qui humanae substantiae - 천주여 너 먼저 인성의 지위를'에서는 창조와 구원을 읊되, 구원은 창조를 영광스럽게 초월한다. 새 양식에서는 창조와 구원의 신비 어느 것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헌작47)할 때에 전통 양식에서는 이 구원의 잔이 우리 와 및 보세 만민의 구령을 위하여 유익함이 되기를 기원한다. 반면에 새 양식에서는 그 중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신을 간원하는 기도문인 'Veni, sanctificator omnipotens - 거룩케 하시는 자 영원하신 전능 천주여, 임하사'는 새 양식에서 완전히 삭제되었고, 성영 2548)의 단 한 소절 'Lavabo - 주여 나 무죄한 자 중에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거룩한 미사의 네 가지 목적, 즉 찬미와 흠숭, 감사, 속죄 및 기원의 속성도 새 양식에서는 근본적으로 흐려졌는데, 특히 속죄의 희생제사에 관하여 모호해졌다. 불온하게도 미사성제의 제일 고약한 파괴자인 마르틴 루터는 로마 양식의 제헌경 및 속죄의 제사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공격을 지휘하였다. 게다가 전통 제헌경과는 대조적으로 빵을 '인간이 땅을 일구어 얻은 결실'로, 포도주를 '인간이 가꾸어 얻은 술'로 묘사한 것에서는 자연론적인 정신이 작용하여 완전히 이 세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시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통 양식의 제헌경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직접 봉헌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성 교회가 시공을 초월하여 지극히 사랑하올 신랑이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이미 현존하시는 것처럼 뵈옵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하건대, 예물 준비를 위한 새 기도문은 빵과 포도주를 선사하는 것이다.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식의 봉헌은 구약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인즉, 구약에서는 짐승과 땅의 열매를 제물로 바쳤던 반면에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만이 참되고 맞갖은 희생제물이시다.
6. 사제의 역할
거룩한 미사에서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페르소나49)로서 행동한다. 그러므로 사제는 회중과 뚜렷이 구별돼야 하며, 심지어는 겉으로 보기에도 회중과 구별돼야 한다. 회중에게는 성변화의 권(權)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중은 사제의 손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봉헌하는 것이요, 성세성사로써 받은 인호를 힘입어 영적으로 신성한 희생제물과 합하여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형제들아, 나 천주의 자비하심을 시사하야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 육신을 생활하고 거룩하고 천주께 의합한 희생으로 바칠지어다. 이는 천주께 대한 너희 정신적 봉사니라"(로마 12:1). 제헌경의 경문 끝 부분에서 'Orate fratres - 형제들이여 기구하사이다'에는 이중적인 형식의 희생이 분명하게 구별돼 있다. "형제들이여 기구하사이다. 나와 및 그대들이 드리는 바 이 제사를 전능 천주 성부 즐겨 받으시기를 위하여 기구하사이다". 새 양식을 보건대 이 구별이 아직 있다고는 하나, 기도문이 임의적인 데다가 다른 기도문으로 대체될 수 있다.50)
전통 양식에서는 사제와 회중 사이의 구별이 눈에 띌 정도로 분명해지는데, 사제는 지성소에서 참례하고 회중은 본당 회중석에서 참례하며, 또 층하경 때 'Confiteor - 고죄경'51)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사제가 먼저 바친 다음에 그 뒤를 이어 회중이 바침으로써 그렇게 된다. 새 미사양식에서는 사제와 신자의 고백의 기도가 함께 바쳐진다. 결국 새 미사양식의 사제는 자신의 직무를 근거로 하여 전능하신 천주의 자비를 회중에게로 내려달라고 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들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전통 양식에서 이 경문은 "전능하신 천주는 너희를 불쌍히 여기사, 너희 죄를 사하시고 너희를 상생에 나아가게 하소서"이다. 이것이 새 미사양식에서는 "전능하신 하느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전통 미사양식에서는 사제와 신자의 영성체가 구별돼 있어서, 사제가 미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제의 영성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반면에 신자의 영성체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52)
새 미사의 총론 제7조는 미사에서 "주의 만찬 혹은 미사는 신성한 집회 혹은 하느님 백성의 모임으로, 주님을 기념하는 잔치를 벌이기 위해 미사를 드리는 사제가 주관함으로써 한데 모이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새 미사양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관한 진리를 얼마나 훼손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교황 비오 12세는 'Mediator Dei'에서 서품된 사제직을 부인하는 것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성체성사의 희생제물을 봉헌함에서는 그 입장이 너무나도 지당하다.
"경애하는 형제들이여, 오늘날 오래 전에 이미 단죄된 오류들을 가까이 하는 자들이 있나니, 저들은 신약에서 '사제직'이라는 단어는 성세를 받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그 사제직만을 의미한다고 가르침이요,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종도들에게 당신이 직접 행하신 것을 행하도록 권(權)을 주신 그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교회 전체에 직접 적용됨에 따라 그로부터, 그로부터만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사제직이 생겼다고 주장하는도다. 그런즉 저들은 백성들이 참된 사제로서의 권한을 지니는 반면 사제는 그저 공동체에 의해서 자신에게 위임된 직무를 힘입어 행동할 뿐이라고 주장함이라. 그런 까닭에 저들은 성체성사의 희생을 말 그대로 '공동 미사 봉헌'으로 여겨, 사제가 미사에 참석한 회중과 함께 '공동으로 미사를 드리는 것'이 회중이 없을 때 사제 혼자서 사사로이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타당하다고 여기는도다. 이런 종류의 궤변적인 오류들이 위에서 이미 설명한 진리에 얼마나 완벽하게 위배되는지는 애써 설명할 필요도 없음일진저."
7. 교회의 신비
주님의 신비체인 교회는 개선지회(凱旋之會), 단련지회(鍛鍊之會), 신전지회(神戰之會)로 나뉜다.53)
개선지회는 하늘의 성인들과 그 무엇보다도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로 이루어진다. 성모 마리아의 영원하신 동정성에 관한 신덕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모든 미사경본에 'semper virgo - 영원히 변함 없으신 동정녀'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영예로운 호칭은 새 미사양식의 라틴어본에도 나온다. 하지만 나라마다 다른 언어로 된 번역본의 경우는 어떤가? 전통 양식에서는 하늘에 계신 성인 성녀들, 특히 성 요셉과 성 요안 세자, 성인 종도들,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초기의 교황들, 즉 리노와 클레도와 클레멘스, 다음으로 로마의 특정 교회에서 특별하게 공경하는 치명자들54)이 언급된다. 성 요안 세자55)는 심지어 고죄경에서까지 성 미카엘 대천신과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에 걸쳐 언급되기도 한다. 새 양식에서는 제1양식의 전문을 제외하면 성변화 이전과 이후에 호칭하는 성인의 목록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제1양식의 전문에서조차 그 목록 중 상당 부분은 그저 임의적으로만 언급될 뿐인즉, 임의적인 부분의 분량과 임의적이지 않은 부분의 분량을 비교할 때 임의적인 부분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한술 더 떠서 그 임의적인 부분을 언급하거나 말거나 별로 대수롭지 않다.
신전지회도 미사성제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기억되는데, 우선 통치하는 교황을 언급하고 다음에는 교구 주교, 그리고 나서 모든 정 교우56)들과 '공번되고 종도로조차 내려오는 신덕을 봉행하는 자들'을 언급한다. 전문에서 이 첫째 경문은 정통 교리에 충실한 자와 그렇지 못한 신앙인에 해당하는 이단자, 배교자들, 스스로 갈라져 나간 자들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한다. 성세성사를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 정통 교리에 충실한 자와 그릇된 이설(異說)을 따르는 이단자, 의인과 죄인 사이의 구별은 천주교의 신덕도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새 미사의 전례에서는 전통 미사의 전례와 대조적으로 회중을 하나하나 구별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뭉뚱그려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57) 이는 틀림없이 자연론적인 계략이다.
단련지회에 대해서 볼 것 같으면, 전통 양식은 전문의 첫째 경문에서 벌써 죽은 신자들을 기억한다.58) 그러나 새 양식은 여기서마저 신앙의 표명을 축소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장례 예절용 새 전례서에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언급할 만하다.
천주교회에 위계제도에 의한 질서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 위계제도에 의한 질서는 성 교회의 제일 중요한 행위인 미사성제를 통하여 표현되어야 한다. 거룩한 미사는 누구에게 드리는 것인가? 바로 복되신 성 삼위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되신 성 삼위께서 으뜸 자리,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높이 올려져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십자가는 제대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 대리자로서 주교가 선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이런 이유로 감실이 주교좌 성당의 중앙 제대에 있지 않고 별도로 마련된 성체 안치 경당에 위치하는데, 주교 자신이 이미 그리스도를 대리하기 때문이다.
주교에 대해서 볼 것 같으면, 한 주교가 동시에 모든 본당에 있을 수 없음으로 해서 주교의 종인 사제가 그를 대신한다. 사제는 전적으로 주교에게 딸려 있고, 주교의 대리자이며 주교를 대신하여 행동한다. 주교에 연결돼 있지 않은 '독립된' 사제, 혹은 어떤 수도회를 통하여 교황성좌(聖座)에 연결돼 있지 않은 '독립된' 사제란 용어상 모순이다.
장엄 예식에서는 부제와 차부제가 사제의 옆에 선다. 그들은 단순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성직 수행에 있어서 하위 품계에 있는 이들에 의해 차례로 보좌를 받는다. 모든 품계에는 지성소에서 각자의 자리가 있는 것이다.
교회의 본당 회중석에는 신자들, 즉 수도자와 성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자녀들이 모인다. 성 교회와 미사성제에는 위계제도에 의한 체계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전례에서는 제대가 식탁으로 대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식탁은 더욱 민주적인 질서를 표현한답시고 교회의 정 중앙에 훨씬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졌다.59)
요컨대, 전통 미사양식은 본질적으로 천주를 섬기는 행위인 반면에 새 미사양식은 인간과 일치하여 인간을 섬기는 행위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1) 새 미사양식을 지지하는 자이건 반대하는 자이건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치한다. 새 미사양식은 교회의 새로운 방침이요, 새로운 교회학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증거를 보이겠다.
(1) 1969년 교회의 고위 성직에서는 전통 전례가 최종적으로 전면 금지되었다는 인상을 내비쳤고, 1975-1976년에는 그런 인상이 더욱 짙어졌다. 이는 물론 신덕도리상으로나 교회법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에는 교회에서 전통적인 미사양식을 지킬 수 있게 공식적인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고, 드디어 1984년 10월 4일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로마는 전통 양식에 따른 미사를 드려도 좋다는 특전을 허가해 주었다.60) 그 결과 독일 주교단 회의의 언론 사무국에서 1984년 10월 19일자 문서를 발행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공의회 이전의 미사양식과 쇄신된 미사양식 사이의 주된 차이는 제일 간단한 방법으로, 각 양식을 시작하는 첫 경문을 살펴보면 분명해지지 않을까 한다. 트리덴티노공의회에 의한 미사양식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Sacerdos paratus', 풀이하면 '사제가 제의를 다 입어, 미사거행의 준비가 다 되었으면'이다. 새 미사양식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Populo congregato', 즉 '회중이 모였으면'이다. 이로써 전통 미사양식에서는 사제의 의식에만 무게가 실리는 반면, 쇄신된 미사양식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 의식이 전면에 부각됨이 분명한즉, 사제는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두 미사양식의 외적인 차이 대부분은 바로 이런 내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
(2) 새 전례의 으뜸 설계자로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던 안니발레 부그니니(Annibale Bugnini) 대주교는 전례 변혁을 통하여 갈라져 나간 형제들에게 걸림돌의 그림자라도 될 만한 것은 모두 전례에서 제거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전통적인 전례에서 무엇이 그다지도 개신교에게 걸림돌이 될 만하다는 것일까? 바로 거룩한 미사의 희생제사적 성격과 속죄의 관념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개신교 목사들이 새 미사양식이라면 당장이라도 봉헌할 수 있노라고 선언한 반면에 전통 양식을 완강히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 전례에 들어있는 천주교의 신덕도리는 극도로 완화된 데다가 극히 애매하게 표현돼 있어 그릇된 신학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3) 1977년 초, 독일 로텐부르크(Rottenburg) 교구 출신의 젊은 신학자들이 주요 구성원이었던 180명의 집단은 뷔르템부르크(Wrttemburg) 주에 있는 루터파 교회의 개신교 목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우리는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예수의 희생제사가 우리의 속죄를 위해 천주와 한가지로 계속해서 재현된다든지 봉헌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희생제사론을 포기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예수의 희생제사를 계속 봉헌한다든지 재현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미사의 본질이다. 그 혁신자들이 그런 '희생제사론'을 포기했다면, 그것은 곧 미사성제를 포기한 것이다! 그 천주교 신학자들은 같은 편지에서 개신교 목사들에게 쓰기를, 자기들, 젊은 천주교 신학자들은 개신교 목사들을 그들 공동체 및 예배의 의장으로 인정하며 그들 안에서 천주교 사제의 권한 및 책임과 똑같은 권한 및 책임이 있는 성무 수행자를 보고 있다고 하였다. 어떻게? 결코 신품성사를 받은 적이 없는 개신교 목사가 어떻게 신품성사를 받은 천주교 사제와 똑같은 전권을 가진 성무 수행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결코 달갑지 않은 사례로 미루어 보건대, 미사성제와 천주교 사제 사이에는 명백한 연결이 있는 것이다. 미사성제를 부인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천주교 사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4) 리히텐슈타인(Riechtenstein)의 하스(Haas) 대주교는 몇 년 전의 한 인터뷰에서 전통 양식과 새 양식의 영성적인 배경, 이를테면 신덕도리와 영성은 매우 달라서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두 미사 양식 사이의 차이가 그저 전통 양식은 라틴어로 되어 있다는 것과 새 양식은 나라마다 다른 언어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언어 문제일 뿐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는 자들이나 새로운 전례를 사용하면서 겪는 주된 어려움은 손으로 하는 영성체라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성찰해 볼 만한 자료이다. 이는 극도로 유해한 것인 한 편으로, 새 미사양식이라는 모자이크 속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으며, 교회의 새로운 방침 전체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
(5)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에콘(Ecne) 신학교61) 신학생들을 위한 지침'으로서 다음과 같은 변혁의 목록을 만들어 신학생들로 하여금 참고자료로 삼게 하였는데, 각각의 변혁 내용 모두가 교회 당국의 공식인가를 받은 것으로, 개신교의 생각과 정신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대가 축성된 성석(제대석) 하나 없는 '식탁'으로 바뀜
?사제와 회중이 서로 마주 보고 드리는 방식의 미사 도입
?사제와 회중이 공동으로 미사를 드림
?미사가 나라마다 각각 다른 언어, 즉 자기 나라말로 봉헌됨
?미사 전문까지도 높은 어조의 목소리로만 드려짐
?미사가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두 부분으로 분리됨
?성구(聖具, 제구)에 대한 신성모독
?성체성사의 재료로서 누룩을 넣은 면병(빵) 사용
?평신도에 의한 성체 분배
?손으로 하는 영성체
?성체를 감실이 아닌 벽 속에 모심
?여자에 의한 독서
?평신도가 환자에게 성체를 영해 줌
별로 꼼꼼하지 않게 대략적으로 작성한 것이 이 정도나 된다.
(6) 페르디난드 안토넬리(Ferdinand Antonelli)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명령에 따라 전례서 변경을 위한 '전례위원회'의 위원이었다. 그가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의 사후 일기 메모가 발행됐는데, 일부가 발췌되어「30일」이라는 월간지(1998년 11월호)에 그 대략적인 내용이 실렸다. 그 비밀을 폭로해야겠다.
"나는 이 일에 대하여 도통 열의가 없다....교황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성급하게 처신하다가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
"더 한심한 것은 표결 방법이다. 표결은 보통 거수로 이루어지는데, 찬성표나 반대표의 수를 세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무도 찬성자가 몇 명이며 반대자가 몇 명인지 말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이게 무슨 망신스러운 일이람."
"성세성사에 관한 단원에서 원죄를 언급하지 않고 어떻게 죄 사함을 말할 수 있다는 말인지?"
"변혁에 영향을 미친 자들 중 많은 이가 우리에게 전해진 것을 전혀 사랑하지도 경외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혼돈의 제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결과가 슬프기 때문에 그것이 애통할 따름이다."
(7) 우리가 아는 젊은 폴란드 사제 한 분이 1년보다 조금 더 오래 전에 전통적인 전례에 따라 미사성제를 드리는 쪽으로 회두하여 돌아왔다. 전통 양식 및 자신이 전통 미사양식으로 돌아온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감동적인 심경을 술회하여 고백하였다.
"[옛 양식으로 드리는] 이 첫 미사는 내가 에콘(Econe)순례의 첫째 날에 드렸던 그 거룩한 첫 미사와 똑같다. 이는 참으로 진기한 경험이었다. 거룩한 전례의 중심에 계시는 천주, 흠숭의 정신, 신비롭고 신성하며 거룩한 현존! 경문과 몸 동작과 표시로 드러나는, 얼마나 영적으로 보배로운 예식인지! 동시에 나는 가톨릭 미사와 신성함이 빠지고 통속성으로 채워진 새 미사양식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새 미사양식은 복되신 성사에 있어서 우리 주님의 실제적 현존에 대한 공경과 흠숭이 결여돼 있고, 모든 것이 공동체 중심으로 회중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에콘과 차이츠코펜62)의 사제 서품식을 복사하면서, 나는 모든 시대의 미사가 폐지되면서 천주교인들이 어떤 보배를 빼앗겼는지를 깨달았다. 전에는 이른바 트리덴티노 양식에 의한 천주교 전례라는 것에서 그 같은 아름다움, 그 같은 깊이와 권위와 공경심을 발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2) 전통 미사양식은 세세 대대로 사제와 수도자들, 많은 영혼이 있는 성 가정을 성화해 왔다. 제물로 바쳐진 천주 성자의 성혈로써 그들을 성화시킨 것이다. 원래 7월 1일에 제1급 첨례로 기념되었던 예수보혈첨례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새 양식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인가? 새 양식은 아직도 새 미사가 영혼을 성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아무튼 새 미사를 드리던 사람으로서 현재 시성되었다는 성인이나 시복되었다는 복자가 없는 것이다.
3) 새 전례에 참례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이다. 전통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집에서 공과책63)에 있는 첨례경64)을 바치고 신령성체를 잘 하면 된다. 혹독한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든 일본의 천주교 신자들은 2백년 동안 완전히 격리된 상태에서 사제나 미사 없이도 신앙을 지켰다. 반면에 오늘날 정기적으로 새 전례에 참례하는 신자들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개신교의 정신에 물들고, 그 뒤를 이어 신앙을 잃어 버리고 있다.
4) 혁신자들이 전례에서 희생제사의 표현에 어떻게 손을 댔는지 살펴봤다. 희생제사, 희생제사의 정신은 우리 자신의 타락한 본성, 세속, 악마와 죄악에 대항해 벌이는 전투인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매우 유사하다. 이런 전투, 희생, 세상 것에 대한 멸시의 개념과 천상 것에 대한 사랑이 거의 모든 곳에서 어떻게 변형되거나 왜곡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성 교회의 미사경본의 경문에서 일어난 변화를 공부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별개의 작업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거룩한 미사로 생활하는 것과 같다. 층하경은 성세성사를 나타내며, 영복경은 기도와 천주 찬미, 복음은 매일의 신앙 고백, 제헌경에 있는 희생제사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시련과 십자가, 성변화는 여러 가지로 일어나는 우리의 일상사에서 천주의 성총을 통한 변화, 영성체는 사랑하올 천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과 그분과의 일치, 'Ite Missa est - 미사가 끝났으니 평안히 갈지어다'는 임종 그리고 마지막 복음은 성총과 진리로 충만하여 성부의 독생성자65)의 영광을 직접 뵈올 영생으로 들어감을 나타낸다.
5) 사제는 성체성사의 의식에서 자기 자신, 즉 주님의 포도밭에서 겪은 자신의 노동과 수고와 고통과 눈물을 봉헌하지 않는가? 수도자들은 자신을 제단의 층계에서 성 교회의 유익을 위해, 영혼 구원과 성화를 위해 자신을 신성한 제물과 합하여 희생제물로 바치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결합된 부부는 신성한 신랑,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지 않는가? 새로운 이브인 성 교회는 그리스도의 뚫린 늑방66)에서 그 신성한 신랑의 흠 없는 신부로 태어났다.
병자, 노인, 외로운 이, 죽어 가는 이들은 모두 우리의 지성소의 희생제물과 하나가 되어 "나 지금 너희들을 위하야 고로움을 당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하심의 결함된 바를 저의 몸이신 교회를 위하야 내 몸으로써 보충하노라"(골로새 1,24)고 하신 것과 같이 자신의 몸으로 보상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자녀들과 청소년들이 한없는 이기주의의 삶을 살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자신과 세속을 끊으며, 주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것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1979년 9월 23일 르페브르 대주교는 파리에서 자신의 사제서품 50주년을 기념하는 강론을 하였는데, 거기서 자신의 생각을 더할 나위 없이 솜씨있게 표현하였다. 그 명강론에서 대주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인 미사성제와 가톨릭 사회 건설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할 때 자신을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희생 없이는 사랑도 없고, 사랑 없이는 그리스도교 문화도 가톨릭 사회도 없다. 희생제사의 개념을 축소하거나 말살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문화도 가톨릭 사회도 와해시킨다. 그로 인해서 미사에 참례하는 이들이 급감하고, 혼인이 파경을 맞음과 아울러 가족이 해체되며, 천주교 정신에 입각한 정치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통 미사양식은 복종, 순명, 천주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새 미사양식은 그 중심에 인간과 인간이 지니고 있다는 권리를 둔다. 전통 미사양식은 자기부정, 희생과 섬김을 의미하고, 새 미사양식은 자기실현을 의미한다.
6) 새 미사양식으로는 귀중한 성소도 얻을 수 없거니와 교회가 성신 안에서 쇄신된다든지 그리스도교 세계가 세워질 수도 없다. 이런 새롭고 가톨릭답지 않은 미사양식으로 인하여 사제성소며 수도성소가 실질적인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주교가 자신의 교구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싶으면, 건전한 신학과 생략되지 않는 복음 강론 외에도 무엇보다도 먼저 거룩한 미사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때에 잠시 동안의 반짝 성공이 탄탄대로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주교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주교며 사제며 신자들은 용기 백배하여 전통 미사양식을 고수하든지 전통 미사양식으로 회귀해야 한다. 각 나라의 고유어 번역본에 의한 수많은 변조와 사제 개인에 의한 무수한 오용만 위험한 게 아니라 새 미사양식 자체, 심지어는 새 미사양식의 라틴어 원본도 위험하다. 오타비아니(Ottaviani) 추기경과 바치(Bacci) 추기경은 '새 미사양식에 대한 비판적 소고(小考)'에 부치는 머리말에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공개적이고도 상세하게 설명한다.
"동봉한 비판적 소고(小考)는 신학자, 전례학자 및 영혼의 목자들이 함께 연구한 결과이다. 그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서는, 광범위하게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는 데다가 드러나지 않게 은연중에 내포된 것으로 보이거나 승인된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요소를 생각하건대, 트리덴티노공의회 제22회기에서 공식화된 거룩한 미사의 천주교 신학으로부터 전체적으로나 세부적으로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The Ottaviani Intervention, TAN ed., p.27)
이 때문에 유명한 구절이 생겼다. "Legem credendi lex statuit supplicandi - 믿음의 법칙은 기도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67) 가톨릭답지 않은 미사양식은 필경 교회의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런 이유로 나라마다 다른 언어로 된 전통 양식과 라틴어로 된 새 양식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할 것 없이 나라마다 다른 언어로 된 전통 양식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7) 어떤 사제들은 새 미사양식의 성찬 기도 제1양식만 있으면 천주교 미사가 성립될 수 있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고려해야 한다. 그 생각이란 제헌경에 관한 주해를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분명하게 이해되겠지만, 전문을 빼놓고는 새 미사양식의 구조 전체가 진정한 천주교 전례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성찬 기도 제1양식은 전통적인 로마식 전문이 아니다. 몸 동작(십자성호, 장궤, 거행자의 움직임)이 미사경본에 있는 축성경의 인쇄 조판과 마찬가지로 바뀐 상태인 것이다. 맺음 경문인 'per Christum Dominum nostrum - 우리 주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소서'는 호칭하는 성인의 목록이 그렇듯,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임의적인 것이 되었다.
8) 아직도 교구 주교가 됐건 로마가 됐건 교회 당국에 호소하여 전통 미사양식을 허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제 및 신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교황 성 비오 5세는 대칙서 'Quo Primum'(1570. 7. 14.)에서 로마에서 지역적으로 거행되는 전례는 온 성 교회를 위해 정해진 것이며 모든 사제들이 그 미사를 언제나 영구히 그것을 거행할 것을 허가한다고 명하였다. 성 교황의 실제 문헌은 다음과 같다.
"로마 교황권을 힘입어 짐은, 어떤 교회에서든지 미사를 창하고 드리기 위해, 양심의 가책이나 형벌 혹은 심판이나 비난받을 두려움 없이 이 미사경본을 절대적으로 따를 수 있으되, 자유로이 및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영구히 승인 및 허가하노라. 그 어떤 주교, 장상, 교회법, 지도신부 및 다른 재속 사제 혹은 어떤 수도회든지 거기에 속한 수도자 혹은 어떤 이유로든지 짐이 명한 것과 다른 방법으로는 미사를 드리지 못하리로다. 마찬가지로 짐은 어느 누구도 이 미사경본을 바꾸도록 강요당하거나 억압받지 않으리라는 것임을 명하고 또 선언함과 아울러, 현재의 이 문서가 결코 철회된다든지 조금이라도 수정되지 않을뿐더러 영구히 유효한 채로 남아 법의 효력을 지닐 것임을 명하고 또 선언하노라."
여기서 비유 좀 들어야겠다. 부당한 정권 체제가 낙태를 허가하고 나아가 중국의 경우처럼 아예 낙태를 하라고 법으로 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아기에게 생명을 주고 싶어하는 부부나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임신부가 정부 당국에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야 하겠는가? 독자는 너무 지나친 사례라거나 부적당한 사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비유가 과연 부적절할까? 어떤 면에서 보면 외국 군대가 천주의 교회를 점령하여 장기적으로 천주교 신앙의 낙태라는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한 의식을 허가하거나 규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전통 미사양식은 새 미사양식과 달리 우리의 거룩한 천주교 신앙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십자가 아래에 서 계셨고 또 의심할 여지없이 거룩한 미사 때마다 천신 및 천상에 계신 다른 성인 성녀들과 함께 계시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성실하신 정녀 마리아는 우리를 위해 빌으시어, 옥좌에 앉아 계신 천주께로부터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 성전(聖傳)에 의한 미사, 고색 창연한 고대 양식의 거룩한 미사에 충실히 남아있을 수 있는 힘을 주시게 하소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시고 군사가 창으로 천주 성자의 늑방(옆구리)을 찔러 여니, "et continuo exivit sanguis et aqua - 즉시 피와 물이 나오는"(요왕 19,34) 것을 보셨다. 부사 'continuo'는 어떤 행위나 사건에 즉시성을 부여하지만 지속성, 영속성도 부여한다. 우리 구세주의 성심으로부터 자비와 성총의 강물이 세기가 거듭되어도 끊임없이 세상 끝날 때까지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비와 성총의 강물은 어디로 흐르는가? 우리의 지성소인 희생제사를 드리는 제대 위로 흐른다. 그런즉 예수성심은 바로 미사성제일진저.
1) 창세기 14,18 : "또한 샬렘의 임금 멜키세덱(말끼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내오니, 그이가 지존하신 천주의 제관이었느니라." 성영 109,4 : 주께서 이미 맹서하셨으니, 다시는 뉘우치지 않으시리라. '너는 멜키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히 사제이로다'. " 히브리 7,11 : "그러므로 만일 레비(가문)의 사제직으로 말미암아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었다면---대저 백성의 전법률은 이 사제직에 기인하니라---아아론의 제도를 따라서 라고 하지 아니하고 별로이 멜키세덱의 제도를 따라 다른 사제를 세우는 것이 아직 무슨 필요가 있었는고."
2) 히브리 10,14 : "대저 성화되고저 하는 자들을 하나의 희생으로써 영원토록 완전케 하셨음이니라."
3) 속전을 내고 죄인을 구제함
4) 히브리 7,24;27 : "그러나 지금에는 영원토록 생활하심을 인하야 영원한 사제직을 차지하시나니라." "다른 대사제들과 같이 매일 첫째로는 자기 죄과를 위하야, 다음으로는 백성의 죄과를 위하야 희생을 제헌할 필요가 없는자이실지니라."
5) 고린도전 11,23 : "대저 나 너에게 전한 바는 주께 받았나니...."
6) 성영 109,4 : "...너는 멜키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히 사제이로다."
7) 루가 22,19 : "또 면병을 가지사 사례하신 후 저들에게 떼어주시며 이르시되 '이는 내 몸이요 너희를 위하야 주는 것이니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 고린도전 11,24 : "사례하신 후 이를 떼시며 가라사대 '[너희는 받어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야 [바칠바] 내 몸이니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를 행하라' 하셨나니라."
8) 트리덴티노공의회 Sess. XXII, can. 2 참조, "만일 누가 이 예를 나를 기억하기로 행하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 종도들을 사제로 세우지 않으셨다거나, 또는 그들과 다른 사제들이 당신 몸과 피를 드리기 위하여 마련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파문을 받을진저."(「상해천주교요리 下」, 윤형중 저, 가톨릭 출판사, 1963, p.283)
9) 창세기 4,4 : "아벨은 자기도 제 양떼의 첫 새끼들과 그 비계를 바치매,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되." 8,20 : "이에 노에가 야훼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온갖 정한 가축과 온갖 정한 날짐승 중에서 잡아, 제단 위에 번제로 올리니." 12,8 : "그 다음 그는 거기에서 산악지방으로 향하여 떠나, 베트·엘 동쪽에 옮겨가 천막을 치니, 그 서쪽은 베트·엘이요 그 동쪽은 아이더라. 그가 거기에서 야훼께 제단을 쌓고 야훼의 이름을 부르니라..."?22?출애굽 여러 곳.
10) 히브리 9,27 : "이는 마치 사람이 다만 한번 죽고 그 후에 심판이 있는 것이 정하여졌음 같이."
11) 트리덴티노공의회
12) 트리덴티노공의회 Sess. XXII, can. 3 참조, "만일 누가 미사성제는 찬미의 것이라거나 십자가상 제사의 단순한 기념일 뿐이요, 속죄제는 아니라고 말하든지, 또는 영하는 자에게 유익할 뿐이니, 산이와 죽은이를 위하여 죄와 벌과 보속과 또 다른 필요를 위하여 드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파문을 받을진저."(「상해천주교요리 下」, 윤형중 저, 가톨릭 출판사, 1963, p.291)
13) 히브리 4,16 : "그러므로 우리는 자비하심을 힘입기 위하며 또한 적당한 도움이 될 성총을 얻기 위하야 신뢰를 가져 성총의 어좌에 나아갈지어다."
14) 일반 신자들
15) 예컨대, 비잔틴 교회에서 동쪽 끝 제대가 있는 제단을 본당 회중석과 분리시키는 칸막이
16) 새 양식의 미사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한다
17) 새 양식의 미사에서는 대영광송
8) 새 양식의 미사에서는 '하늘 높은 데서는 천주께 영광 ... 천주여, 하늘의 임금이여, 전능하신 천주 성부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부의 외아들... 성령과 함께, 천주 성부의 영광 안에서'라고 한다
19) 새 양식의 미사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기도문이 없다.
20) 제헌은 제물 봉헌을 말함
21) 규율과 표준이라는 희랍말로 대축일 때 변경되는 몇 마디 말을 제외하고는 항상 같다
22) 성변화
23) 온전한 경문은 " 주여, 너 내 마음에 나오시기에 나 어찌 합당하리이까마는, 주는 한 말씀으로만 명하시면, 내 영혼이 즉시 나으리이다"
24) 천주성과 인성
25) 최초의 정의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자 제7조는 나중에 수정되었다. 수정된 현재의 총칙 제7조는 다음과 같다. "주의 만찬인 미사 때에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을 기념하여 미사 성제를 봉헌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사제를 중심으로 한 자리에 모인다. 이 같은 지역적 교회 집회에서 '대개 두 사람이나 혹 세 사람이 내 이름을 위하야 모인 곳에 내 곧 그 가운데 있음이니라'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 가장 뚜렷하게 실현되는 것이다. 십자가상 제사의 계속인 미사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단체 속에 실제로 현존하시며, 사제의 인격과 당신의 말씀 속에 현존하시며, 본체적으로는 온전히 성체의 형상 속에 현존하시는 것이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개정 공포된 미사 경본의 총지침(Institutio Generalis Missalis)」(1979년) 14면. 참고로, 영어판에서는 그나마 "주의 만찬 또는 미사는 거룩한 회합"으로 되어 있는 라틴어는 '주의 만찬은 회합'이라는 식으로 '미사' '거룩한'을 뺀 채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새 미사양식의 구조 전체는 최초의 정의에 따라 성립되었으며 실제로 수정된 것이 전혀 없다. 새로운 정의를 보아도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시는 우리 주님의 참되고 실제적이며 실체적인 현존이 당신의 영적인 현존과 마구 뒤섞여 있다. 미사가 우리 죄의 사함에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26)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간 열교를 말한다. 개신교의 각 분파에서는 자기 분파를 제외한 다른 개신교의 분파를 개신교라고 칭함으로써 자기 분파가 정통인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27) 새 양식의 미사에서는 '거룩한 변화 기도문'
28)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로서의 역할이 회중을 대표하는 역할보다 우위라는 뜻임)
29) 성체 축성 기도문, 현대화된 교회 용어로는 거룩한 변화 기도문
30) 미사성제용 면병 혹은 빵
31) 제대석 위에 성체포를 펼치기 때문이다
32) 「상해천주교요리 下」, 윤형중 저, 가톨릭 출판사, 1963, p.280
33) 새 양식의 미사에서는 '신앙의 신비여'
34) 오상이라고도 하며, 양 손과 양 발 그리고 늑방의 다섯 군데의 상처를 말함
35) 성해라고도 함
36) 빵과 포도주가 각각 성변화됨으로써 성사적으로 우리 주님의 몸과 피가 서로 분리됨
37) vere, realiter et substentialier
38) 트리덴티노공의회 Sess. XIII, cap. 3 참조, "천주의 성 교회에 항상 이러한 신덕이 있느니, 축성 후에 곧 오주의 참 몸과 참 피가 면형(麵形)과 주형(酒形)에 그의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있느니라. 그런데 면형 속에 몸이 있고, 주형 속에 피가 있음은 말씀의 힘으로 인함이요, 주형 속에 몸이 있고, 면형 속에 피가 있으며, 영혼이 그 몸과 피와 함께 있음은, 부활하신 후 다시 죽지 않으시는 오주 그리스도의 부분들이 서로 합체되어 있는 그 결합과 연결의 자연적 힘으로 인함이며, 천주성이 함께 있음은 그 영혼과 육신과의 기묘한 위격적 결합으로 인함이니라. 그러므로 어떤 형 속에 이렇게 온전한 그리스도 계심은 지극한 진실이니, 면형 속에와 그 면형의 어떠한 부분 속에든지 온전하고 완전한 그리스도 계시며, 같은 모양으로 주형 속에와 그 주형의 어떠한 부분 속에든지 온전한 그리스도 계시니라"(「상해천주교요리 下」, 윤형중 저, 가톨릭 출판사, 1963, pp.334-335)
39) 상기한 구절은 한국 새 미사의 내용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개편된 한국의 미사 통상문에는, 혹 "주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전하리이다," 혹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풀어 주신 구세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등으로 기도하게 되어 있다. 독문본에는 "오, 주여, 주의 죽으심을 알리고 주의 부활을 기념하여 저희가 잔치를 여나이다, 주께서 영광 속에 오실 때까지"라고 되어 있으며, 영문본에는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무너뜨리시고, 일어나심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회복시켜 주신 주 예수여, 영광 중에 오소서"라고 되어 있다. 전통 양식에서는 성변화 직후에 회중이 읊는 경문이 없는 것과 비교하건대, 새 미사양식에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신자용 기도문을 집어넣었다.
40) 무릎꿇기
41) 미사에 대한 의식(意識)이 천주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었음을 뜻함
42) 거양성체
43) 회중의 신앙이 성변화를 이루는 것이 아님에도 새로운 양식에 의한 예절을 보면 그렇게 해석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는 뜻임
44) 빵과 포도주
45) 제대보를 말함
46) 봉헌 기도문
47) 성작 봉헌
48) 새 양식의 미사에서는 시편
49) in persona Christi : 그리스도 대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로서
50) 영문 번역본에서는 '나와 및 그대들이 드리는 바 이 제사' 대신에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사용함으로써 이 구별이 말살되는 일이 매우 빈번하다
51) 고백의 기도
52) 전통 미사는 사제와 신자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반면 새 미사는 사제와 신자를 하나로 섞어 버린다
53) 개선지회는 천당에 있는 성 교회로 이미 마귀와 육신과 세속을 이긴 성인들로 이루어지고, 단련지회는 연옥에 있는 성 교회로 죄를 보속하는 교회를 말하며, 신전지회는 세상에 있는 성 교회로 아직 마귀와 육신과 세속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교회를 말함
54) 순교자들
55) 세례자 성 요한
56) 올바른 신자들
57) 새 미사 번역 :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신앙에 충실한 모든 이"
58) 이런 이유로 감실이 주교좌 성당의 중앙제대에 있지 않고 별도로 마련된 성체 안치 경당에 위치한다.
59) 이렇게 해서 사제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평신도들이 사제직을 대신하게 됨
60) '특전'이라는 점에서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는 것임, 즉 특전이 아니라 완전한 권리이어야 함
61) 에콘 신학교는 스위스 에콘에 있는 신학교. Seminaire International Saint Pie X, Econe, Riddes, Valais. Website: http://seminaire-econe.com/
62) 차이츠코펜(Zaitzkofen)은 독일에 있는 성 비오 10세회의 신학교. Priesterseminar Herz Jesu, Zaitzkofen, Schierling, Germany
63) 천주교의 전통 기도서
64) 미사에 참례하지 못할 경우에 미사를 대신해서 바치는 기도문
65) 외아들
66) 옆구리
67) 기도의 내용에 따라서 신앙도 달라짐
부록
성전(聖傳)에 의한 미사와 성 비오 10세회에 관한 간단한 설명
성전에 의한 미사란 무엇인가?
성전에
의한 미사란, 초대 교회로부터 로마에 전해지는 전례 양식에 따라 순교자들의 성해가 들어 있는 축성된
제대에서, 모든 천주교(가톨릭) 사제에 의해 바쳐지는 미사성제를 말한다. 천주교 사제는 미사성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으로(즉,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희생을 재현하고 천주 성부께 희생제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봉헌한다. 라틴 전례로 드리는 경우에는 라틴어를 사용하고 로마식 제의를 착용하며, 천주교의
신앙을 온전하게 나타내는 방식으로 미사성제가 봉헌된다. 트리덴티노공의회의 미사라고도 하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로마식 미사라고 하는 미사성제이다.
사제가 미사 전문(까논)을 소리내지 않고 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사성제의 신비를 이해 및 표현하고 있는 모든 전례 양식에서는 ... 주의를
다해 신비라는 사실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동방 전례에서는 사제와 평신도 사이에 성화벽(이코노스타시스)이 있다. 이렇게
해서 신비적 성격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서방 전례)는 사제와 평신도를 분리하는 벽을 두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비라는
표현은 침묵 중에 염하는 경문 중에 함께 한다. 혹 소리를 내어 염하면 그 내용은 속화되고 만다. 그와 반대로 침묵을 지키면 신비 속에 감추어진다. 이 같은 이유로
모든 성전은 전문을 침묵 중에 염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신학적인 근거가 되어 트리덴티노공의회의 결의문에서는 '미사 전문은 침묵 중에 염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단죄한다고 하고 있다."(스티클러(Stickler) 추기경, 1995년 5월)
성전에 의한 미사는 폐지되지 않았는가?
교황
성 비오 5세는 영구히 유효한 법령으로 무류지권을 행사하면서, 대
칙서 'Cuo Primum'(1570년 7월 13일)을 반포함으로써 모든 라틴 전례의 천주교 사제에게 성전에 의한
미사양식을 의무화함과 아울러 이를 자유롭게 봉헌할 수 있음을 장엄하게 확정하였다. 그러므로 그 어떤
교황이나 주교도 성전에 의한 전례양식을 폐지할 수 없거니와 폐지하지도 않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9위의 추기경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질문한 바 ····그 중 8명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교황 성 비오 5세의 미사는 폐지된 것이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 추기경
가운데 한 사람이다···· 또 '주교라면 누구라도 타당한
신품성사를 받은 사제에게 트리덴티노공의회에 의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9위의 추기경은 만장일치로 그 어떤 주교도 천주교 사제에게 트리덴티노공의회에 의한 미사의 봉헌을
금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였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공식적인 금지도 없으며 내 생각으로는
장차 교황이라 해도 절대로 공식적으로 금지할 수 없을 것이다 ····"(스티클러 추기경, 1995년 5월)
천주교 사제는 각각 자기 나라의 언어로 새 미사를
봉헌해야 하지 않는가?
교황
바오로 6세는 1969년에
'Missale Romanum'이라는 사목서한으로 새 미사를 공표하기는 했으나, 이 서한의
라틴어 원문 어디에서도 새로운 전례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으며, 그저 새로운 부분을 도입해도 좋다는
자유를 주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제에게도 새 미사를 드려야 할 의무가 전혀 없다.
성 비오10세회는
언제 설립되었는가?
성 비오 10세회는 르페브르 대주교(Mgr Lefebvre)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1970년 11월 1일
로잔느와 쥬네브 및 프리부르 교구장인 샤리에르 주교(Mgr Chariere)에 의해 Pia Unio로서 가톨릭 교회법전에 따라 정식으로 인가받은 천주교회의 한 수도회이다. 로마 성직자성성의 추기경장관은 1971년 2월 18일자 서한에서 성 비오
10세회를 공공연하게 칭송해 마지않았다. 로마는 과거에 여러 수도회의 수도자들을 성 비오 10세회에 소속(incardinare)시킬 수 있노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허가한 적이 있으며, 이는 성 비오 10세회가 계속해서
그 회원을 소속시킬 수 있음을 로마가 허가하고 그 서품식이 적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7년 2월에는 교황 사절 가뇽(Gagnon) 추기경은 성 비오 10세회의 신학교를 공식 방문하여 성 비오 10세회의 입회식에 교황
사절 자격으로 참관하여 신학교를 칭찬한 바 있다.
성 비오 10세회의
설립 목적은 무엇인가?
성 비오 10세회의 으뜸 목적은 '사제의 성화와 양성'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성전에 의한 미사와 미사성제에 관한 모든
것에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사도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천주교 신앙, 역대 공의회 및 교황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기를 계속하려고 하고 있다. 성
비오 10세회의 회원들은 르페브르 대주교의 다음과 같은 자세를 늘 명심해 왔다. "우리는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천주교 신앙 및 그 신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성전의 보호자인 가톨릭
로마에 일치하는 바이다."(1975년 10월).......
성 비오 10세회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성 비오 10세회는 설립 목적에 따라 현재 베르나르 피레(Bernard Fellay) 주교를
총장으로 하여 400명 이상의 사제와 다수의 신학생, 수사, 수녀들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스위스, 프랑스, 미국, 독일,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의 6개 국제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성 비오 10세회는 영혼의 성화와 구원을 위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가
늘 믿고 사랑하고 실천해 온 바를 그대로 믿고 사랑하고 실천하고 있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1988년 6월 30일에 주교를 성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야기된 신앙의 위기 속에서 사도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앙과 성사를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르페브르 대주교는 1988년 6월 30일에 후계자 주교를 성성하였다. 이는 가톨릭 교회의 신앙의 유산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 천주교회로부터 갈라져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며, 천주교회와 다른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성 비오 10세회는 거룩한 천주교회의 성전(聖傳)에 입각한 신앙과 도덕의 유산을 지키기 위하여 로마 전통의 권위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이되, 가톨릭 신앙의 유산을 지키는 일에 반하는 것은 배척한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의 교정권(교도권)을 거부하는 것은 교회로부터 갈라져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교정권으로부터 갈라져 나가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1983년 6월)
로마와 성 비오
10세회의 관계는 어떤가?
"우리는
성전에 의한 미사가 전 세계에서 봉헌될 수 있도록 시종일관 로마에 요청하고 있다. 우리가 요구하는 바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로마 교황청은 지금도 성전에 의한 미사를 '해방'시켜 자유롭게 봉헌 및 참례토록 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 지는 모르나, 로마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바티칸
내부에는 성 비오 10세회에 호의적인 성직자들이 있어 성전에 의한 미사에 찬성하는 운동을 강화하고 있다 ···· 아직까지는 그 움직임이 충분히 강력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공스러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이 성전에 의한 미사를 봉헌토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티칸 내부에서조차 더욱더 확산되고
있다 ···· 아직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중인 것만은 틀림없다. 로마 꾸리아 내부에는 '힘을 내라.
체념하지 말라. 타협하지 말라'고 우리들을 격려하는
성직자들이 있다 ···· 우리에게는 수많은 벗들도 있지만, 벗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 내부에는 교회의 적이 다수 포진해 있고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피레
주교, 2002년 2월)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들이 거행하는 성사는 유효한가?
1994년 5월 당시 그리스도교 일치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카시디(Cassidy)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 비오 10세회 사제들에
의해 거행되는 미사성제와 성사는 유효하다."
성 비오 10세회는
천주교회로부터 분리되었는가?
성 비오 10세회는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보편적인
치교권을 인정하고 옹호하려는 천주교회의 지체이다. 신앙교리성성 장관 라칭거(Ratzinger) 추기경은 성 비오 10세회가 천주교회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증거는 전무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교황청립 위원회 에클레시아 데이 사무총장인 페를(Perl) 몬시뇰은 2002년 9월 27일자로 아무런 유보없이 다음과 같이 확언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가 거행하는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신자들은) 주일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 이처럼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들은 성 비오 10세회가 결코
교회로부터 분리되지 않았음을 단언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가 동방 정교회의 사제가 거행하는 전례에 참례함으로써는
주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닌 반면,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가 거행하는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주일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동방
정교회는 교회에서 분리된 것임에 반하여, 성 비오 10세회는
교회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 것이다.
성 비오 10세회의
성전에 의한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죄가 되는가?
페를
몬시뇰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그러한 미사에 참례하는 자의 첫
번째 의향이 교황 및 교황과 교류를 함께 하는 자들과 교류하기를 그만두려는 소망을 표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죄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의향이 그저 신심 때문에 1962년 판 미사경본을 기준으로
삼은 미사에 참례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2002년 9월 27일)
한국에도 성 비오
10세회의 성당이 있는가?
성 비오 10세회는 성전에 의한 미사에 참례하고자 하는 한국 신자들의 간절한 요구 및 그 도움을 받아 아래 주소에 성당을
상설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매달 마지막 주일에 성전에 의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1. 「상해천주교요리(하)」, 윤형중 신부, 가톨릭 출판사, 1963.
2. 「나의 주일 미사」, 박양운 신부 감수, 1959.
3.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 선우미디어, 1997. p.p. 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