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수채화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수필창작반 김 윤 균
무더위 한 고비에 비좁은 공간에서 북적댈 일이 걱정이었다. 에어컨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던 차 아내의 고희 선물로 큰딸이 에어컨을 신청했다고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얼마나 다행인가? 날마다 8시간을 켜도 에어컨의 전기료가 월 3만 원도 안 된다니, 전기료에 짓눌려 문명의 이기를 무시하고 살 일이 아니었다.
집밖의 더위는 성하의 계절임을 시위하고 있었지만 적시에 에어컨을 구입해서 일주일 동안 세 딸 가족과 함께 모두 만족하게 사용하고 보니 에어컨이 진가를 발휘한 셈이다.
얼마 전에 친구 5명이 부부 동반으로 강원도 고성에서 1박하고 경북 울진 백암온천에서 1박하며 2박3일간 180만 원정도의 비용이 소요됐었다. 그런데 가족모임은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60만 원에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니 경제적이면서도 흡족한 행사였다.
둘째딸 네와 약속한 대로 아내의 고희여행은 일본 북쪽의 큰 섬, 홋카이도 남부도시 하코다테로 날아갔다. 북위 41°46′에 위치한 곳이다. 온도는 쾌적한 편이나 햇살이 강열했다. 북해도의 남단 관문도시는 새로운 관광도시로 변하는 중이었다. 하코다테 야경이 운무에 가려져 비치는 써치라이트가 마치 달나라로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다.
하코다테는 14세기쯤 혼슈에서 건너온 일본인과 당시 ‘에조’라 불리던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와 싸움이 벌어졌고, 17세기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내려와 사할린과 쿠릴열도에서 세력을 넓혀갔기에 하코다테는 일본문화와 서양문화가 융합된 곳이었다. 종교 역시 러시아의 정교와 가톨릭성당, 기독교, 신사, 불교가 혼재하고 있었다.
하코다테에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성곽인 ‘고료카쿠’가 있었다. 이 성은 방위상의 관점에서 하코다테를 통치하는 관청이 5각형으로 만들어져있어 마치 미국의 팬타곤이 연상되기도 했다. 또 이곳에는 최대 규모의 도야호수가 있다. 유람선이지만 우리는 물살을 스치며 1시간 정도 갈매기와 새우깡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었다. 독도에 갈 때 유람선을 호위하던 갈매기들과 다른 점이 없었다. 호수의 맑은 물은 초록의 산림을 거느리는 천사의 동네라고 할까, 상쾌한 날씨와 자연의 수려함에 끌리는 편안한 휴식시간이었다.
수증기와 강한 유황냄새가 나는 활화산 ‘쇼와신잔’을 구경하고 유황냄새를 느끼며 말고기와 가리비, 새우, 채소로 넓은 오븐(oven)에 구워먹는 오찬이 매력적이었다. 일본에서 말고기를 먹다니, 뜻밖이었다.
하코다테는 약 27만 명이 살고 있는 미래가 있는 도시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먹을거리가 풍부해서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공장지대가 아니라서 공기 또한 깨끗했다. 가을에도 산림이 상록수라 한국의 풍경과는 다르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첫날의 유노카와 쇼엔호텔에서는 침대가 있었지만 다다미 위에 요와 시트를 깔고 편안한 잠을 잤다. 이 호텔의 목욕탕은 구조가 전통적 일본식이었으나 날마다 남탕과 여탕이 바뀌는 게 특징이었다. 남녀의 기운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라 했다.
둘째 날의 도야썬팔래스텔호텔은 4박 중에서 제일 고급호텔이었으나 중국인들을 많이 상대하므로 실내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다. 돈을 벌려고 실내에서 중국인들의 담배 피우기를 허용하기 때문이었다. 큰 호텔이어선지 목욕탕도 넓고 깨끗하며 확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서 야외목욕을 즐기도록 탕을 별도로 두고 있었다. 초저녁에는 운 좋게도 발밑에 찰랑거리는 물결소리를 들으며 폭죽축제가 열려 30여분동안 불꽃놀이의 장관을 즐기는 편안한 밤이었다.
셋째 날은 오타루의 상징물인 운하가 관광객을 위해 운항하고 있었으며, 항구도시에 아기자기한 공예점과 달콤한 디져트 숍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 일행이 요이치로 이동하여 닛카 위스키공장을 견학하고 위스키 시음장에 들렀다. 맛을 보고자 향이 다른 위스키 2잔에 와인1잔으로 어름을 띄워 칵테일을 하니 맛이 훌륭했다.
오후에는 아이누어로 신의 곶을 의미하는 ‘카무이 미사키’ 해군기지를 둘러보며 우리나라 제주도 송악산의 둘레길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 비경 중의 하나라는 ‘시마무이 해안’에서는 아이누 선조들이 청어를 잡아오던 포구를 굽어본 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뷔페식당에서 대게 다리를 추겨 들었으나 음식이 차가워 케이크로 대체한 뒤 원두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넷째 날은 일찍 호텔을 출발하여 3시간 30분간 버스로 달렸다. 북해도 개척당시 러시아로부터 북해도를 지키려고 지은 북해도 신궁을 둘러보니, 삼나무가 울창한 큰 공원이 부러웠다. 이어서 삿보로 시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오쿠라야마 전망대에 리프트를 타고 올랐다. 그곳은 1972년 삿보로 동계올림픽 당시 활강 스키장이었다. 우리나라에도 6개월만 있으면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국위를 선양하는 올림픽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마침 삿보로 시내에서는 맥주 축제가 한창이어서 축제장에 자리를 잡고 맥주 맛을 감상할 시간이 주어졌다. 시원한 맥주가 그리웠지만 한 모금 입을 행구고 더 마실 수 없었다. 나의 통풍 때문에 자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은 석식이 삿보로 시내 음식점에서 있었다. 대게와 털게, 그리고 킹크랩은 무한 리필이기 때문에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아주 인상적인 저녁식사였다.
삿보로 에미시아 호텔 내 사우나 시설이 있는데도 온천물이 아니라며 다른 호텔의 온천을 이용하게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우리가 묵은 호텔의 사우나 실을 찾았다. 규모만 작을 뿐 깔끔하고 좋았다. 온천탕이 무슨 대수일까. 어제 간 곳은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모든 것이 부족한 공중목욕탕이었으니 말이다.
마지막 5일째 오늘은 귀국하는 날이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북해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홋카이도 청사를 돌아보고 하코다테 근교의 휴양지인 오오누마 국정공원을 산책한 뒤 여정의 마침표를 찍고는 인천국제공항으로 날아왔다.
우리는 인천공항을 오가면서 지하철로 움직였다. 김포에서 환승하여 의자에 앉아 앞을 보니 가로로 대어놓은 기다란 스테인리스 지지대에 ‘No Shelves!’란 라벨이 붙어 있었다. 마치 선반처럼 보이지만 선반이 없었다. 무심코 가벼운 짐을 올렸다면 어쩔 번했는가? 나를 웃게 만든 영문 표시, 나는 그걸 꼭 수채화라 부르고 싶었다.
첫댓글 사모님 고희 기념 북해도 여행을 멋지게 하셨군요. 현장에서 보고 있는듯 생생하게 표현해 주셔서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