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후기 : recovery라는 용어의 번역에 관하여
다이엘 피셔(Daniel Fisher) 박사와 그가 설립한 NEC(National Empowerment Center: 전국역량강화센터)는 리커버리(recovery)라는 용어를 ‘정신질환자로 남아있기보다 사회적 역할수행을 통해 지역사회로의 참여를 재개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또한 ‘자신의 삶의 통제력과 학생, 근로자, 부모 등과 같은 주요한 사회적 역할을 (다시)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며, ‘관계맺기,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타인을 신뢰하는 것, 발달의 순환을 다시 돌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힘을 얻는 것(empowered)’을 포함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용어와 관련된 학술논문에서는 앤쏘니(William A. Anthony)의 정의가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데, 그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리커버리는 개인의 태도, 가치, 감정, 목표, 기술, 그리고/또는 역할이 변화하는 매우 개인적인, 즉 개인특유의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리커버리는 질병으로 인한 제약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만족스럽고 희망적이며 공헌하는 삶을 사는 방식이다. 리커버리는 개인이 정신질환의 파국적 영향을 극복하며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삶의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발달시키는 것을 포함한다.”(Anthony, 1993, p.15)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용어는 병에 초점을 둔 용어가 아니라, 삶에 초점을 둔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회복’이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알코올중독 분야에 이 용어가 도입되었는데, 알코올 단주자들이 이 용어를 ‘회복’으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AA(익명의 알코올중독자)모임은 ‘회복의 12단계’로 개인의 변화단계를 파악하는데, 이 개념은 궁극적으로 ‘영성회복’에 초점을 둔 개념입니다. 그렇기에 ‘자만과 겸손’을 대비시키며 ‘겸손’을 강조합니다. 이렇듯 ‘영성회복’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리커버리는 회복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적절합니다.
하지만 ‘병’과 관련하여 이 용어를 쓸 때에는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즉 ‘병으로부터의 회복’이라고 하면 그것이 마치 ‘완치’ 또는 ‘병의 호전’을 의미하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리커버리라는 용어는 병 자체가 아니라 ‘병으로 인해 시련을 겪고 있는 인생으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를 ‘임상적 회복’으로부터 구분하기 위하여 ‘전인적 회복’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리커버리는 완치(cure)가 아니라 치유(healing)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질병이 아닌 성장과 관련이 있고,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지향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복구가 아닌 변형(transformation)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회복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뜻풀이하면 ‘이전의 상태를 되찾는다.’는 뜻인데, 이는 방금 살펴본 리커버리의 의미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리커버리라는 용어를 ‘재기’라고 번역해왔고, 제 박사논문에서도 재기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번역할 경우 이것이 ‘인생’과 관련된 용어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과거 상태로의 회귀 또는 복구’가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인생’이라는 의미가 분명히 살아납니다.
이렇게 지난 25년간 저는 이 용어를 재기라고 번역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저는 이 용어의 번역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용어와 이 관점이 아직까지도 국내에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커버리 관점은 미국과 유럽에서 당사자들이 직접 체험한 내적 경험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제기된 관점이며 소비자단체에서 특히 강력히 주장하는 관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소비자(당사자)들의 내적 경험에 대한 연구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소비자단체 또한 그 활동이 매우 미약합니다.
이러한 이유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용어번역의 문제도 이 용어와 이 관점이 국내에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용어와 이 관점이 국내에 제대로 보급되려면 치료관점, 재활관점, 그리고 리커버리 관점이 서로 분명하게 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기존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시각이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용어번역을 회복이라고 하게 되면 ‘치료관점’과 ‘회복관점’이 잘 대비되지 않고 비슷비슷한 관점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재기라고 번역하면 이 문제가 다소는 나아집니다. 즉 ‘치료관점’과 ‘재기관점’은 서로 다른 관점이라는 느낌이 보다 강하게 듭니다. 하지만 학술논문이나 번역문 등에서 현재까지는 ‘재기’라는 용어번역이 거의 채택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최근에 용어번역 문제를 다시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피셔(Daniel Fisher) 박사는 ‘A New Vision of Recovery’라는 그의 책에서 번역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리커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리커버리 개념을 다른 언어와 문화권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더 깊어졌다. 리커버리를 스페인어로 번역하면서 선택된 첫 번째 단어 는 ‘recuperan’인데 이것은 ‘recuperation(만회)’을 의미한다. 번역과정에서 번역자들은 영어에서의 리커버리(recovery)의 의미가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깨닫게 되면서, 삶의 리커버리를 의미하는 ‘recobro de la vida (인생의 회복)’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였다. 한국어에서는 ‘인간다움의 회복 (recovery of one's humanity)’이 가장 적합한 번역으로 선택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정신질환의 가장 파괴적인 측면은 질병으로 인해 붕괴되고 낙인화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간다움(인간성)의 상실인 것이다.......... (중략) ......... 우리는 ‘인간’이 첫 번째 언어가 되길 원한다. 우리는 사람을 특정 범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가지는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지닌 존재로 보이기를 원한다. 우리는 존재의 모든 차원에서, 정신과 육체와 영적인 모든 단계에서, 인격적인 존재로 보이기를 원한다. 우리는 단순한 화학적 합성물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가 지닌 고유한 꿈과 열망을 기초로 자신의 풍성한 삶을 만들어가는 건축가가 되길 원한다.” (Daniel Fisher)
저는 회복이라고 번역하게 되면, 그래서 그것이 병으로부터의 회복인 듯한 착각을 주게 되면, 리커버리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가 심하게 훼손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의 의미를 직역하지 않고 의역하자면 ‘역경을 통한 성장’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공부모임의 이름을 ‘역경을 통한 성장’이라고 붙였습니다. 아무튼 최근에 저는 recovery라는 용어를 차라리 ‘리커버리(재기/회복/극복/성장)’라고 나열식으로 번역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이 용어의 의미가 이런 거구나. 이 용어에 이런 뜻들이 담겨 있구나.”하고 보다 쉽게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첫댓글 방금 내일 오후에 예정되어 있는 [역경을 통한 성장] 제 2회 공부모임 때 나누어줄 자료의 편집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끝부분에 '편집후기'를 달았는데, 그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recovery 공부를 함께 시작하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될 꺼에요~ ^^
저는 대구와지역이 먼곳이라 대구까지 가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저는 사실 인터넷으로도 공부할수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합니다
유투브에서 교수님 강의를 많이 접하지만 제 대상자들께 도움될만한 자료를 많이 보고 들어서 직접 보여드리고 싶네요
전 정신간호사가 아니라 정신간호는 일하면서 자격증을 따기 너무힘든것같아요 좀더 많은 정신간호사가 되기위해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 많이 생겼으면합니다
교수님께서도 대상자 비해 간호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셨는데 제가 정신간호사가 아니라 일하는데 있어 제 자신감 부족 지식부족이 대상지들에게 제약이 되는것같습니다 학교나 정책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오늘도 공부하지만 주부로 애키우고 많은걸하기 부족함이 많아 교수님께 얘기드려봅니다~~^^수고하시고 많은 분들께 힘이 되는 것 잊지마시고 즐건하루되세요~~
리커버리가 단지 재기라고도 하지만 진정한 걸음마에서 달리고 뛰고 심지어 나르고 ㅋㅋ
너무 오버 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