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덩굴/ 조이섭
빨간 벽돌 건물이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담쟁이덩굴의 새잎이 돋아나 매일 물감이 번지는 듯하다. 나는 담쟁이가 덮인 붉은 벽돌 건물이 트레이드마트인 이 대학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본관은 조지언 콜로니얼 스타일(Georgian Colonial Style)로 지었다. 이 건축양식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대학 등이 캠퍼스를 조성할 때 적용한 스타일이다. 이들 대학의 건물이 담쟁이덩굴인 아이비(Ivy)로 덮여 있는 모습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누군가 ‘담쟁이는 저주의 식물’이라고 했다. 고속도로에 돈을 들여 투명한 방음벽을 설치했는데 담쟁이가 타고 올라 시야를 가릴뿐더러 보기에도 흉하다고 했다. 담쟁이가 벽을 파고 들어가 건물을 상하게 하고 흉가를 만든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담쟁이를 심는 이유는 미국의 아이비리그를 모방하는 잘못된 행태라고 주장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건물을 흉내 내거나 고속도로 방음벽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잘못이지만, 담쟁이가 건물을 파괴한다는 근거는 불분명하다. 담쟁이의 덩굴손은 흡반 구조로 되어 있어 벽이나 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달라붙어 기어오른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콘크리트나 벽돌로 된 건물은 손상을 우려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담쟁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된 토담이나 돌담과 어우러져 정겨운 전통 마을의 풍광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학교에 근무하면서 담쟁이를 두 해 동안 키워 본 경험이 있다. 대학에서 실험하고 난 후에 폐수를 처리하는 것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마침, 폐수를 처리하는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와 시공을 도왔다. 완공 후에는 우리 부서가 입주하여 실험실 폐수를 처리했다. 물론, 이 건물도 빨간 벽돌로 외벽을 치장하고 담쟁이덩굴을 심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정원의 화초 가꾸듯 담쟁이덩굴을 보살폈다. 덩굴손이 창문을 만나면 피하도록 자리를 잡아주었다. 붉은 벽돌 쌓은 줄눈을 눈금 삼아 담쟁이덩굴 자라는 것을 가늠했다.
담쟁이는 봄이면 연둣빛 덩굴손을 파르르 들어 올려 흡반을 내린다. 여름이 되면 삼지창 같은 이파리 뒤에 숨어 하얀 꽃이 수줍은 듯 피었다. 찬바람이 불면 담쟁이 잎은 붉게 단장하고 세상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한다. 붉은 벽돌담에 얼키설키 얽혀 있던 흙빛 담쟁이 가지와 마디에 맺힌 까만 열매가 익으면서 고요히 침잠한다. 담쟁이덩굴을 살피면서, 대학을 설립한 사람들이 이 식물을 심은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교육기관인 만큼, 경제적이나 미적인 측면보다 교육적인 효과를 먼저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담쟁이덩굴이 자라는 모습을 통해서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을까.
덩굴손을 뻗어 위로 향하는 것은 절망이나 고난의 벽을 만나면 그것을 극복하고 희망을 향해 위로 올라가라는 뜻이다. 진취적인 기상을 기르라는 의미이다.
덩굴손은 저 혼자서만 올라가지 않는다. 홀로 높이 오르려고 하는 꿈은 추락하기 마련이 아닌가. 수많은 가지와 이파리가 마치 깍지를 끼듯이 어우러져 함께 올라간다. 서두르지 않고 아래서부터 굳건하게 짜 올라가는 모습은 인내와 협동과 배려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담쟁이덩굴은 붉은 건물의 벽을 위해 뜨거운 햇볕을 막아낸다. 한여름에 세찬 소낙비가 내리면, 갑옷미늘처럼 겹쳐진 초록색 이파리가 빗물을 미끄러지게 한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흙빛 줄기로나마 벽돌을 감싸 안는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 찬 도시의 녹색 갈증(biophilia)을 해소하고, 열매는 겨울철 새들의 먹이로 내어주어 환경과 생태계에 기여한다. 그물을 던지면 고기를 잡아야 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대학에서 북돋우고 익힌 인격과 학문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라는 뜻이다.
담쟁이덩굴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지만,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실제로 행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속내 깊은 가르침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말았다. 담쟁이덩굴이 왜 올라가는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깊이 사색하지 않았다. 인내와 희생의 가치를 따져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그만 퇴직하고 말았다.
살랑이는 봄볕을 타고 담쟁이덩굴 새순이 올라온다. 지난겨울에도, 담쟁이덩굴은 해 질 녘에 비껴내린 바람과 차가운 달빛을 견디고 마지막 잎새 한 잎 남겨 세상의 존시*에게 희망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대학 본관을 바라보며 잊어벼렸던 가르침을 반추해 본다.
*존시 :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의 여 주인공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