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류 난꽃과 영지가 자라던,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섬 난지도(蘭芝島).
난지도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였던 1970년대 말, 그 ‘기적’의 부산물인 각종 쓰레기를 매립하면서
가장 척박한 땅 '쓰레기의 그랜드캐년'으로 변했다.그 난지도는 환경오염과 자연파괴의 상징이 돼버렸다.
"난지도는 쓰레기산 위로 쏟아져 내리는 불볕은 저주였다.그것은 앙심이었다.쓰레기 더미는 죽음의 산이다.
인간의 삶에서 부스러기가 되어 나온 부스러기 주검들의 산이었다.생활이 죽어 있는 시체들이다.
그 산에는 살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맹열하게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썩어 가는 일과 썩어 가는 냄새뿐이다.
그것만이 죽음도 정지(停止)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그리고 죽음이 침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구더기가 끓고 파리가 들끓는다."-정연희의 소설 <난지도>에서
1978년 3월 쓰레기 및 오물처리장으로 도시계획 사업실시 인가가 나면서부터 서울의 모든 쓰레기를
이곳에 매립하기 시작하여1993년 매립장이 폐쇄되기까지 15년 동안 약 9,200만 ton의 쓰레기가 매립되었다.
그 결과 난지도는 해발 94 m~ 95 m에 면적이 103,000 평 (제 1 매립지) 및 56,000 평인 (제 2 매립지)
봉우리 없는 두 개의 높은 산으로 변하였다. 난지도의 쓰레기 매립은 비위생 단순매립으로 이는 매립이라기 보다는
생활쓰레기, 건설폐자재, 하수슬러지, 산업폐기물 등을 그대로 적재해 놓은 것이다.
당초에는 국제적인 매립장의 일반 높이인 45 m까지 매립하도록 계획되었으나, 수도권매립지의 건설 지연으로
계속 쌓아 갈 수밖에 없어 세계에 유래가 없는 95 m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그 15 년 동안 쌓인 쓰레기매립량은
8.5 톤 트럭 1,300만대 분인 91,972,000 ㎥에 달한다.
"쓰레기들,인간 쓰레기들,시간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들,한 몸뚱아리를 위해 버리게 되는 이 엄청난 물,
고급 양복지를 싹둑거려 옷을 만들고 또 만들면서 흩어지는 옷감,배 터지게 먹어 본대야 제 위(胃) 주머니나
남의 것이나 다를 바 없겠건만 끼니마다 산해진미 차리면서다듬어 버리데 되는 그 많은 음식찌꺼기.........
그리고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허세나 꾸밈이나 과시,고급스러운 인간이라고 자처하는
자일수록 쓰레기를 엄청나게 만들어 내는 쓰레기 제조기 같은 존재다.쓰레기,쓰레기들,인간 쓰레기들."
-정연희의 <난지도>에서
쓰레기는 산을 이루었고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쓰레기의 그랜드캐년' 난지도로 몰려들었다.거기에는 거대한 '난지촌'이 생겼다.
소설 <난지도>는 움막집 720동,동회에 등재된 802세대.삼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난지도 마을이라고 전한다.
이 '난지도 사람들'에게 때아닌 당국의 '안내문'이 도착하여 술렁이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1983년 11월 그 마을에 '판자집 자진 철거 안내문'이 도착한다.'난지도 사람들'에게는 그 보금자리를 떠나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안내장이었다.갱지 한 장에 한 눈으로 읽힐 삼호 크기의 한글 활자로만 인쇄된 안내문으로 마포 구청장과 마포 경찰서장 이름으로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및 오물 처리장 내에서 거주하고 계신 귀하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난지도 처분장은 서울특별시 고시 제107호(1978.3.18)로 고시하여 쓰레기를 매립하고 있는
도시 계획 사업장입니다.따라서 일반인의 출입은 물론 거주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귀하는 임의로 출입하여 판자집까지 설치 거주하고 있어 쓰레기 매립을 위한
도시계획 사업에 크게 장해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판자촌 지역을 제외하고는 매립해야 할 곳이 없어 금년 겨울철에는 부득이
판자촌 지역을 매립하여야 하므로 판자집을 자진 철거하여 본 사업 시행에 지장이 없도록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83.11.
마포 구청장
마포 경찰서장
난지도 쓰레기산은 그들의 생존현장이었다.쓰레기산 옆에 얼기설기 지어진 비닐로 된 정착촌이었다.
이 정착촌은 1984년 대형화재로 완전히 불타고 서울시에서 지은 950여세대의 조립식 주택으로 바뀌었다.
1993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폐쇄되고 공원이 조성되면서 이들 난지도 사람들은 아파트 입주권을 얻어
이주해갔고 조립식 주택단지는 철거되었다.
난지도 매립장이 폐쇄되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이 삼다도(먼지 악취 파리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를
떠나기 시작하였다.1993년부터 진행되어온 주민보상 및 이주대책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얻어 이주하거나
영구임대아파트 등으로 주민들이 이사한 후 더이상 난지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쓰레기매립지 난지도의 환경정비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1990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2년 마련된 ‘서울시 정도 600년 사업’ 기본계획은 여의도, 용산, 상암, 뚝섬, 마곡지역 등 5개 지역의 전략적 개발을 구상하였다.
특히 난지도가 위치한 상암지역은 서울 서북부의 핵심 지역으로서 국제화․개방화 물결과 통일시대 남북교류의 관문이라는 특성을
반영한 도시개발이 구상되었다. 이와 함께, 2002년에 개최될 한일웓드컵경기의 서울 경기장 입지가 1998년 5월에 상암동으로
결정됨에 따라 월드컵경기장 건설을 위한 지역 환경정비가 시급히 필요했다. 또한, 1999년 서울시의 밀레니엄공원 기본계획을
포함한 ‘새서울, 우리한강’ 사업계획에서도 난지도 매립지의 안정화 사업과 공원화 사업이 포함되었다.
난지도 매립지 안정화와 공원화 사업은 2002년 월드컵 경기 개최 시기에 맞추기 위하여 빠른 시간 안에 추진되었다.
매립지 안정화 공사는 1998년 1월에 시작하여 4년 10개월이 경과한 2002년 10월에 종료되었다.공사시간을 단축하고자
공사설계 후 3개월 내에 공사업체 선정 및 착공이 이루어졌다. 생태 공원 조성 공사 또한 안정화 공사와 함께 2000년 10월부터
2002년 6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난지도에 묻힌 폐기물은 아직도 생화학적 분해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며,
서울시는 매립지의 안정화가 2020년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