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작가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초판 ; 1866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초인은 세속적인 도덕을 부수고 새로운 윤리를 정립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한다. 소개된 본문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이러한 라스콜리니코프를 갱생하게 하는 소냐의 헌신적 사랑을 다루고 있는 대목이다. 매춘부인 소냐가 그에게 꺼져 가는 촛불 아래서 성경 구절 '나자로의 부활'을 읽어 주고, 시베리아의 유형지까지 따라와 마침내 그의 정신적 부활을 도왔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 기독교적 색채가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약 성서 요한 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자로의 부활'은 종국에 이르러 구원의 모티브가 된다. 예수의 사랑을 받던 나자로가 병을 앓다 죽어서 돌무덤에 나흘 간 묻혔을 때, 예수가 와서 살려 내는 기적을 보여 주는 메시지이다. 즉 가장 불가능한 죽음에서의 부활을 제시함으로써 이 지상에서는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으며 갱생의 길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출처 : 김열규 신동욱 공저 동아출판사 문학)
작품을 단순한 추리 소설이 아닌 이유는 인간 양심의 문제, 당대의 사회악과 싸우는 인간 양심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첫 장편이기도 한 이 작품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초인은 세속적인 도덕을 부수고 새로운 윤리를 정립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의 살인을 정당화한다.
매춘부인 소냐가 그에게 꺼져 가는 촛불 아래서 성경 구절 '나자로의 부활'을 읽어 주고, 시베리아의 유형지까지 따라와 마침내 그의 정신적 부활을 도왔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 기독교적 색채가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약 성서 요한 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자로의 부활'은 종국에 이르러 구원의 모티브가 된다. 예수의 사랑을 받던 나자로가 병을 앓다 죽어서 돌무덤에 나흘 간 묻혔을 때, 예수가 와서 살려 내는 기적을 보여 주는 메시지이다. 즉 가장 불가능한 죽음에서의 부활을 제시함으로써 이 지상에서는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으며 갱생의 길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세속적인 도덕을 무시한 채 새로운 윤리를 수립하려는 라스콜리니코프를 통해 인간 정신의 부조리와 선악의 분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소냐의 희생으로 부활하는 그의 영혼을 통해서 이 세계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며, 갱생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신약 성서의 '나자로의 부활'에서 영향 받은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죄와 구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동시에 그 해답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촉구함으로써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죄와 벌’은 흔히 죄의식을 탐구한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다만 공포를 느낀다. 다른 인간들과는 격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친구들이 그를 돕고자 하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그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심지어는 그들의 사랑과 동정을 이해조차 못한다.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이 인간사회와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어떤 원인이나 결과로서가 아니다.
이 소설은 1866년에 쓴 작품이지만 현대의 까뮈와 베케트로 이어진다. 20세기 고독 문학의 위대한 선구이다.
(줄거리)
가난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라스콜리니프는 5층칩 꼭대기에 다락처럼 생긴 조금마한 방을 빌려서 생활하고 있었다. 돈이 없었으므로 시계, 담배 갑 등을 들고 전당포를 들락거렸다. 전당포 주인은 말로니 이바노브나 노파이다. 이자 한 푼까지도 철저하게 챙기는 수전노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우리의 주인공은 그 노파를 죽이기로 하였다. 자신은 가치 있는 인간이고, 그 노파는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쓰레기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독백한다. “불행한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인류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악인을 없애는 것은 마땅하지 않은가? 세상의 악을 제거하는 것은 이성이 단연히 수행해야 할 의무이다.‘ 그런데도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 한다. ”너는 무엇 때문에 그런 비열하고 더럽고 천한 짓을 의식적으로 저질렀느냐?“
선술집에서 퇴역 관리를 알게 되었다. 퇴역 관리에게는 소냐라는 딸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소냐는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파는 매춘부였다. 시장에서 노파가 혼자 있는 시간이 언제라는 것을 들었다. 라스콜리니스프는는 노파를 죽일 생각을 하였다. 도끼를 준비하여 전당포를 찾았다. 돈을 빌리러 온 척 하였다. 그는 살인을 하고 도망하였다. 돈을 훔쳐서 도망을 하였다. 돈을 돌 밑에 감추어 두었다.
선술집에서 사귀었던 노관리(소냐의 아버지)가 죽자 주인공은 어머니가 어렵게 보내 준 25불을 장례비에 보탠다. 이것을 계기로 소냐 집의 가족들과 친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우리의 주인공이 살인 사건을 자기 합리화하기도 하고,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는 과정을 기술한다. 몇 번 자수하려고 하였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자수를 하지 않았다.
마침내 소냐의 설득으로 자수를 하고, 8년 형을 선고 받았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소냐도 시베리아로 따라간다.
소냐의 준 십자가를 쥐고 깨닫는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의 기치를 지니고 있다. 살인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작가>
저자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1821년 10월 30일(신력으로는 11월 11일) 군의관이었던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 빈민 병원에서 일을 했으며,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지주였다. 종교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어머니와는 달리, 잔혹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작품 속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부재하거나, 무능하거나, 잔학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몸을 팔게 하거나, 자식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자녀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심지어 성적인 폭군으로 등장하거나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모스크바 빈민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의 많은 환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어린 도스토옙스키는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가난의 심리학의 대가가 될 씨앗이 여기서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평생을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였다. 그는 돈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현실적"이지 못했던 사람이고, 자신이 감당할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떠넘겨지는 짐을 사양할 줄 몰랐다.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년)에는 작가의 가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가난이 인간 심리와 삶에 끼치는 영향들, 그리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젊은 날의 도스토옙스키에게 형제애 속에서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솁스키 서클은 목마른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반가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차르 니콜라이 1세의 반동 정치하에서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 금지 서적을 읽는 것들만으로도 총살감이었다.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은 간신히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4년간의 감옥 생활과 또 4년간의 유형이 끝난 후, 도스토옙스키의 인간관 및 세계관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1840년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도스토옙스키는 1860년대 완전히 극우 보수주의자(슬라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유형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는 1861년 러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그의 형 미하일과 함께 잡지 [시대(Время)]를 창간했고, 1863년 [시대]지가 정치적 이유로 발행정지 조치를 받게 되어 폐간된다. 이듬해 형 미하일과 함께 두 번째 잡지, 더욱더 극우적이고 슬라브주의적인 잡지 [세기(Эпоха)]를 발간하여, 그 첫 호에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발표한다.
1866년, 후에 그의 부인이 된 속기사 안나를 고용하여 [노름꾼]과 [죄와 벌]을 속기하게 하여 발표하고, 1868년 그리스도를 닮은 "긍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고자 한 [백치]를, 1872년 [악령]을, 죽기 한 해 전인 1880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모두 [러시아 통보]에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세계문학사 중 가장 위대한 작가 도스토옙스키는(역자는 이렇게 말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1881년 1월 28일,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사건들이 넘쳐 나는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러시아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가 말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구상에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제대로 접한 독자라면 베르댜예프의 이 말에 충분히 공감을 할 것이다.
첫댓글 지난 강의 시간에 본
'사형수의 5분'영상 기억하고 계시죠^^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면
이루어지지않는게 없다는 말
5분이 모여 대작을 이루었듯이
간절한 5분 우리도 가슴에 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