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뚝섬에는 경마장이 있었다. 지금 경마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울숲공원의 달리는 말에 탄 기수 조각상 10여점이 그때의 추억을 대신하고 있다.
그 경마장은 과천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서울의 숲이 들어선 것이다.
뚝섬은 옛날부터 말과 인연이 깊었다. 조선시대 초부터 말을 먹이는 국립 말목장이 있었다.
그리고 왕실의 사냥터로 쓰이기도 했던 뚝섬이다.바로 살곶이목장이 있던 곳이다.
뚝섬 경마장은 1954년 5월 8일 문을 열였다.당시 상황은 매우 열악하였다.
모래와 초지에 들어선 경마장이다.경마장 중간 중간에는 채소밭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말도 충분하지 못했다.그마저도 경주마가 아니었다.조랑말들로 대신했다.
광주 목포 등에서 공수해온 몽골계 재래종 말로 겨우 경주를 하는 수준이었다.
또 관람대는 미제 맥주깡통을 이어 붙인 허름한 모습이었다.
토털리제이터(배당률 계산기)가 없어 경주 20분전에 베팅을 마감하고 수십명의 직원들이 주판으로
배당률을 산출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
경마장을 시찰하던 박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채소밭을 없애고 골프장을 만들었다.
1968년 6월 개장한 뚝섬경마장 골프 연습장은 44타석의 연습장과 3개의 코스로 이루어졌고, 이후 9개 코스로 시설을 확장했다.
35년 간 서울시민의 애환을 간직하던 뚝섬경마장의 시대는 1989년 과천경마장 개장과 더불어 막을 내린다.
골프장도 1994년 문을 닫고 뚝섬 가족공원으로 변신한다. 이후 서울시가 2005년 대규모 생태공원인 뚝섬 서울숲으로 조성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서울을 점령한다.
서울에 진주한 북한군은 신설동에 있었던 마사회 경마장을 탱크와 차량 등의 군사장비를
은닉하는 시설로 사용했다.미국 공군은 이들 시설을 폭격해 경마장 시설을 전쟁 때 파괴된다.
경마장에 있던 경주마는 북한군에 끌려가 군수물자를 수송하다 한미연합군의 포격으로 거의 죽는다.
1951년 국군이 서울을 재탈환하면서 신설동 경마장은 주한 미공군 비행장으로 징발되고 만다.
한국마사회는 1930년대 조선경마구락부가 경마장 이전 목적으로 매입했던 뚝섬에 경마장 공사를 시작했다.
그 날이 바로 휴전협정이 맺어진 다음날인 1953년 7월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