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중국은 북양정부北洋政府에 진입하여 군벌이 혼전하던 중화민국의 시기였습니다.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오래지 않아 해현화상의 큰 형이 붙잡혀서 강제로 징집당하는 바람에 형제 두 사람은 24년이란 긴 세월동안 헤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뒤 이어 바로 해현화상의 둘째 형을 양자로 삼아 기르던 친척집에 변고가 생겼기 때문에, 부득이 15살이나 된 아이를 다시 문씨 집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둘째 형은 몸이 허약하고 병치레를 많이 해서 그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도리어 집안의 부담을 가중시켰습니다. 다행히도 누나의 병이 마침내 완치되었으며, 또한 그 이듬해에 시집을 갔습니다.
해현화상의 어머니께서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여자들이 하는 길쌈을 비롯해서 바느질과 수예 등을 대단히 잘 하셨습니다. 집안에는 농사지을 땅이 없었으므로, 황씨 부인은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바느질하고 수선하고 옷을 빨아 풀을 먹이는 일들을 해주며 얻은 보잘 것 없는 품삯으로 이 만신창이가 된 가정을 가까스로 유지해 나가셨습니다. 황씨 부인은 언제나 늘 밤 새워 술이 달린 긴 허리끈에 수를 놓고, 꽃신에 수를 놓아 그런 다음 나가 팔아서 먹을 양식과 바꾸셨습니다. 해현화상께서는 매우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서 이에 어머니를 속이고 몰래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걸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어머니의 부담을 들어드리려고 했습니다. 3개월이 좀 더 지난 후 결국 어머니에게 들켰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끌어안고 한 바탕 통곡하셨으며, 다시는 그에게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집가朱集街에 성이 최씨인 음식점 주인이 해현화상의 효행을 들은 후 매우 감동하였습니다. 이에 직접 해현화상을 만나러 집에 찾아 와서 나이가 겨우 13살 밖에 안 된 해현을 자신의 음식점에 와서 일을 도와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집안 형편이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해현화상께서는 그 음식점에서 줄곧 18세 까지 일했습니다. 그 해에 다리에 악성 종기가 생겨서 하마터면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소년 시절 그의 신변에 몇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이는 후일 그에게 확고부동하게 출가의 길을 걸어가도록 매우 큰 촉진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8촌 아줌마는 천성이 아주 못되어 매우 사납고 가족이나 이웃들과 수시로 때리고 욕했습니다. 한번은 5촌 아줌마를 때리고 욕하면서 그녀의 옷마저도 찢어버리고 발가벗기기기 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그녀의 신상에 수많은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였습니다. 즉 아줌마는 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 전후로 해서 요절했습니다. 아줌마는 자신의 혀를 자신의 이빨로 깨물어(속된 말로 「혀뿌리 씹기」) 선혈이 계속 흘렀는데 나중에는 결국 혀가 끊어져서 밥을 먹기도 어려웠습니다. 그 후 아줌마는 32살에 딸을 낳고 몸을 풀다가 고통스럽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그 참상으로 인해 해현화상의 누나도 놀라 병을 얻었고, 8촌 아저씨도 스스로 연거푸 병든 몸으로 인간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해현화상의 어머님께서는 8촌 아줌마가 하루 종일 시비를 일으키다가 최후에는 죽어버리는 보기 힘든 모습까지 보면서 해현화상에게 반드시 기억하여 결코 그녀를 배우서는 안 된다고 이르셨습니다. 해현화상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자고로 선량하고 너그러워야 한다.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말거라!” 어머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그의 뇌리에 깊이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그밖에 다른 사건이 소년 해현화상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번은 그가 심은 큰 동과冬瓜를 사촌 남동생이 몰래 따서 훔쳐 갔습니다. 그는 3일 동안 내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내 동과를 훔쳐간 사람은 누구든지 부스럼 병에 걸리게 하라.” 3일 후에 누구지 알게 되었는데, 사촌남동생이 정말로 부스럼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고,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이를 사촌 아줌마가 아신 후에 그를 찾아서 말했습니다. “다시는 중얼거리지 말거라. 네 동생이 그 동과를 땄다고 해서 동생의 온몸에 부스럼이 나라고 주문을 외우는 바람에 너무나 아파서 아버지 어머니 불러가며 큰 소리로 외쳤단다.”
해현화상은 대단히 놀라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남에 대한 생각이 정말로 이렇게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나?’ 이에 곧바로 말을 바꾸어 중얼거렸습니다. “빨리 그가 낫게 하라! 빨리 그가 낫게 하라!”고 하였는데, 사촌남동생의 병이 정말로 금방 나았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던 그것이 나타나므로 다시는 악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상관없이 그 일이 있은 이후로 그는 다시는 감히 남에게 주문을 외우지도 남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일은 그에게 염력의 불가사의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가 성현의 책을 읽은 적도, 성현의 경전을 배운 적도 없었지만, 그는 본성이 선량하고 마음바탕이 청정하고 자비로워 언제나 일상생활에서 계발되었습니다.
전하는 바로는 해현화상이 18살 되던 해, 그의 다리에 악성 종기가 나서 크게 짓물러 매우 심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그를 위해 도처에 의사를 찾아 약을 구해도 치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것이 업장에 의한 병이고 인과응보임을 알고서 탄식했습니다. “원한으로 찾아온 병은 신통한 약으로도 치료하기 어렵다.” 이에 치료를 포기하고 방향을 바꾸어 관세음보살께 간구했습니다.
중국의 민간에는 관세음보살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는 대자대비로 괴로움과 액난으로부터 사람을 구하시므로 구하면 반드시 감응이 있습니다. 이에 그는 매우 참되고 정성을 다해 관세음보살 성호를 일심으로 칭념하셨습니다. 한 달여간 염불한 후 악성 종기는 절로 나았습니다. 이것은 감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관세음보살께서 괴로움과 액난으로부터 사람을 구하시는 것에 대해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보살께서 확실히 자비하심을 점점 더 견고하게 믿으시고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을 염하고 관음보살을 염하면 정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명호의 공덕도 불가사의하고, 염력도 불가사의합니다. 왜 어떤 사람이 염하면 영험이 없는데, 그가 염하면 영험이 있습니까? 그것은 그의 생각이 순수하고 온 마음을 다 기울이며 그렇게 많은 망상과 잡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심으로 전념하면 념념마다 영험이 있습니다. 해현화상께서는 천성이 착실(老實)하고, 말씀을 잘 듣고 순종(聽話)하며, 진실하게 실천(真干)하였고, 참되고 성실한 마음(真誠心) 청정한 마음(清淨心) 공경하는 마음(恭敬心)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어서 그가 염하면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의 신심과 생각으로 자신의 병을 잘 치료하였습니다.
이로부터 해현화상께서는 생사의 길이 험난하고 생사를 가늠하는 일이 중대함을 깊게 깨달으시고서 세속을 떠나려는 마음을 내게 되셨습니다. 그가 19살 되던 해 22살의 둘째 형이 병으로 일찍 죽자 해현화상은 출가하여 수행하기로 결심을 철저하고 확고하게 가졌습니다.
2012년 10월 해현 노화상께서는 남양에서 몇분 거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도적떼들이 내 부친을 떼려죽였지. 그 때 내나이는 12살이었지. 나는 비럭질을 해야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