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예술인가, 아니면 일탈인가.. 아슬아슬 '쥴리 벽화'
임주언,박성영 입력 2021. 08. 03. 00:09
덧칠 후에도 헌법적 논란 이어져
G20 쥐 포스터 사건은 유죄 확정
'백설공주 박근혜' 벽보는 무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해 논란이 된 ‘쥴리의 남자들 벽화’가 그려져 있던 서울 종로구 홍길동 중고서점 외벽이 2일 흰색 페인트로 덧칠되고 있다. 아래는 페인트로 덧칠되기 전 벽화의 모습으로 김씨뿐만 아니라 여권 인사들에 대한 비난 문구까지 어지럽게 적혀 있다. 박성영 기자
2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중고서점 외벽이 흰 페인트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쥴리 벽화’로 논란이 일었던 곳이라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다. 페인트를 들고 온 남성은 “서점 주인의 요청으로 벽화를 아예 하얀색으로 지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처음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여성 얼굴 그림과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문구는 검정 페인트로 덮인 채였다. 벽면 위쪽에 걸린 현수막에는 ‘맘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셔도 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경찰에는 명예훼손과 벽화 훼손에 대한 고발이 함께 접수됐다.
‘쥴리 벽화’ 논쟁은 표현과 예술의 자유로서 용인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헌법적 질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 범위를 과거보다 넓게 인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범위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법조계에서도 창작물에 단순 비방 의도가 있거나 사실무근인 내용이 담겼을 때는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오남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헌법 제22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에게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보장된다. 다만 공인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을 헌법이 인정한 자유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어떠한 지점에서 규제를 적용해야 하는지는 그동안 법원이 여러 차례 고민해 왔던 부분이다. ‘G20 정상회의 쥐 그림 포스터’ ‘전두환 29만원 그림’ 등의 정치적 풍자 사건 때마다 법원은 “피고인의 예술적·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려왔다. 이번 논란에서도 예술의 자유에 대한 규제 적용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됐다. 규제론에 무게를 싣는 쪽에서는 진실성의 부합 여부, 비방의 정도 그리고 선거에의 개입 여부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따질 때는 진실과 부합하는 것인지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본다”며 “쥴리 벽화의 경우 공인이라고는 하나 사실로 보이기 힘든 것들을 토대로 하고 있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반대로 현재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관련해 비슷한 벽화가 그려졌어도 표현의 자유가 있어 괜찮다고 볼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후보와 그 가족을 공격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도 논쟁적인 지점이다. 법원과 학계는 공인의 풍자에 있어서는 대체로 표현의 자유가 인정돼야 한다고 보지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허위사실 공표나 후보자 비방과 연결될 경우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왔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적 인물에 대한 정치적 풍자는 법적으로 어느 정도 허용되지만 이 역시 허위사실에 기반할 경우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청와대에서도 국민청원에 답변하며 “언론과 예술의 자유를 포함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예술의 자유에 가해지는 ‘우회규제’
권력층에 대한 풍자가 재물손괴나 경범죄처벌법 등 ‘우회로’를 통한 기소와 처벌로 연결되는 경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동안 정치적 풍자 관련 소송은 재물손괴, 도로교통방해 등으로 법원 판단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G20 쥐 포스터 사건은 정치적 패러디가 다른 사람의 작품이나 안내문에 대한 훼손으로 이어졌다는 이유로 공용물손상 혐의의 유죄가 확정됐다. 2015년 11월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의 공사장 담장에 욱일승천기와 박근혜 전 대통령 그라피티를 그리고 ‘사요나라’라고 썼던 사건에서도 유죄 판단이 나왔다. 사건 이후 기업이 50만원을 들여 훼손된 철제 담장을 교체한 것으로 보이는 등 재물의 효용성을 떨어뜨린 점이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정치적 풍자를 예술의 자유로 보호할 것인지 규제할 것인지는 충돌하는 법익들 가운데 무엇을 우위에 두느냐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러 우회로를 통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는 만큼 공인 풍자는 허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그림을 통해서 풍자하는 것에는 명예훼손 요소가 함께 있지만 공인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넓게 인정되는 특수 영역이 있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풍자’의 목적 자체가 비판이기 때문에 비방의 목적만으로 이를 규제하거나 처벌해야 한다고 볼 순 없다”고 했다. 실제 무죄 취지의 판단이 나온 경우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간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포스터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재판부는 “박근혜가 사과를 든 백설공주로 묘사된 것은 당시 국내언론이 사용하던 박근혜의 별명을 소재로 활용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판시했다.
임주언 박성영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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