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락정 상량문 [魚樂亭 上樑文]
지극한 행실로 훌륭한 도를 후손에게 물려주었으니 백세토록 추원보본(追遠報本)하는데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곳은 저녁 햇살이 긴 낚싯줄처럼 물에 잠기듯 반사하니 한 곳의 장수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드러나고 감추는 것은 명수(命數)와 운수(運數)에 관련이 있지만 그러나 정자의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것은 그 성정(性情)에 맞다.
삼가 생각건대, 어락 김공은 아, 영가(永嘉)에서 명성과 덕망이 있는 집안이었다. 타고난 기품이 진실로 아름다워 이처럼 효도와 우애의 모습을 마음에 안고 배회하며 태평하게 자연을 즐기는 깊은 취미가 있었다. 일찍이 보백대야(寶白大爺)가 후세에 남긴 훈계(訓戒)를 들은 영손(令孫)들은 그 명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은 서애(西厓)선생이 명명(命名)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니 타고난 성품을 논하면서 감히 망령됨이 깊고 얕음을 말로 다할 수 없으나, 품은 뜻과 행실은 보기 드문 것이라 할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남은 자취를 비록 낚시터를 핑계 삼지만 즐거움이 절로 경국제세(經國濟世)와 같이 온전하였다. 명성(名聲)과 이록(利祿)은 본래 억지로 구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아 임천(林泉)의 새와 물고기처럼 속세의 뜻을 버리고 편안하게 묻혀서 사는 것이 취향임을 일찌감치 알았다. 선행을 인정한 용만 권공(龍巒權公)이 그것이 사리에 맞지 않다면 어찌 효도가 순수하다고 명예스럽게 칭찬했겠는가? 향리의 선철들이 이를 외람(猥濫)되고 괴이(怪異)하다고 여기지 않았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으니 성대한 세상에서 유일(遺逸)이 된 것을 달갑게 여겼다.
일찍이 물욕(物慾)을 멀리하고 오래도록 한평생을 여유롭게 살았다. 옛날 풍산현(豊山縣)의 남쪽에 이 정자를 지었을 때를 생각해 보건대 구름 낀 숲은 밝고 깨끗하여 책을 쓰는데 고요하고 평안하였다.
거울이 열린 듯 낙동강의 물결이 맑아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화산(花山)에 늘어선 산들을 병풍처럼 둘러쌌다. 비단 무늬 하표(霞標)와 큰 자라 바다거북(黿鼂)궁에서 굽어보며 물고기(波臣)들은 그림 속처럼 자태를 보이고, 물오리와 갈매기(鳧鷖)들이 먼 물가를 굽어보니 비단 물고기가 거울같은 물 속에서 뛰고 노닌다. 조상이 살았던 고향에서 낚시질하며 노닐었으니 어느 산 어느 강에서나 비바람 속에 도롱이 차림으로 노를 저었으니 이곳 저곳의 선현의 영혼을 생각하며 스스로 따른 것이다.
세대가 바뀌어 뜻밖에도 용마루와 지붕이 무너지고 벗겨짐을 만나는데 세월이 흘러 사물이 변화하여 슬프게도 어느 때에 잡초만 무성해졌는가? 먼 강과 긴 산이 당일의 유풍(遺風)을 우러르고 있다. 이 일은 옛 것을 복구함에 관계되니 진실로 새로운 땅을 찾아 옮겨 세우는 것이 마땅하고 일은 편의를 따라야 하니 이에 살고 있는 곳의 곁을 골라 정하였다.
자문과 계획을 다 마치고 경영을 부지런히 하였다. 더구나 이 실업은 역시 은거하던 곳이므로 집터가 그윽하고 산세가 막혀 있어 비옥한 토양에 풍속이 순후한데, 자손들이 거처를 영원히 정하여 순순한 모양의 효(孝)가 삼가 어진 이를 사모해 특별히 그 사모하는 마음을 구실삼아 규모도 가지런히 하고 재목을 모으는 것도 부지런히 하며 마음 다해 힘을 모았다.
또한 구식(龜食)을 헤아리고 그 땅 표면의 궐양(厥陽)을 생각하여 가는 것은 서까래로 하고 큰 것은 들보로 하였으며, 문설주와 문턱도 다 갖추었다. 서늘한 마루와 따뜻한 방, 문과 처마(門廡) 뜰과 담장은 각각 마땅하게 하고 모의하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이미 뜻이 맞아 하루에 일이 완성된 듯 일을 고하였다. 귀신이 서로 도운 것 같이 갑자기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되었다. 종족들이 새로 낙성한 것을 축하하면서 모두 너무 들떠서 뛰고(雀躍) 손뼉치며 기뻐하므로(鰲抃) 마을에서 다시 보니 숲과 산도 광채가 더하므로 ‘산국화 향기 남았네’라고 대군자(大君子)의 느낌이 있어 읊었는데 지금까지 구전되어 읊고 있다. 바위 산봉우리는 그림 같은데 조물주가 베풀어 차렸으니 응당 무심하지 않아서 마침내 큰 글자를 써 문미에 걸게 되니 이에 여문(儷文)을 구하여 칭송하노라.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抛樑東 포량동
새벽하늘 빛이 붉고 물과 산줄기 푸르디푸르고 水嶺蒼蒼曙色紅 수령창창서색홍
구원에서 다시 일어난다면 황홀하겠네 怳惚九原如更作 황홀구원여경작
한결같은 효성으로 떳떳한 충정을 비추네 一團誠孝照彛衷일단성효조이충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抛樑西 포량서
홀로 우뚝 선 금산(金山)에 오를 수 없고 特立金山不可梯 특립금산불가제
그윽하고 무성한 초목을 어찌 견주리오 窈窕蔥蘢誰得似 요조총롱수득사
아지랑이 띠 이룬 석양 햇살은 뉘엿뉘엿 晴嵐只帶夕陽低 청람지대석양저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抛樑南 포량남
하늘에 비친 제동 못이 쪽빛보다 푸르러 映空堤澤碧於藍 영공제택벽어람
멀리 출렁대며 은빛 비늘 뛰어 오름을 보니 遙看演漾銀鱗躍 요간연양은린약
영령이 오르내리는 생각과 모습 포용하네 陟降英靈意像涵 척강영령의상함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抛樑北포량북
봉산이 푸르고 푸른빛이 끝내 다함이 없이 封山蒼翠終無極 봉산창취종무극
종래에는 세상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아 從來世上不傳名 종래세상부전명
비록 공덕이 많더라도 누가 다시 알리요 功德誰多誰復識 공덕수다수부식
들보를 위로 던지니 抛樑上 포량상
온 하늘은 밝고 밝아 우러러 볼만하니 天宇昭昭高可仰 천우소소고가앙
착한 일 창도하는데 누군들 흥분하는 마음 없으랴 倡善誰無興奮心 창선수무여구심
떳떳한 충정은 영원토록 해와 별처럼 밝네 彛衷終古日星朗 이충종길일성랑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抛樑下포량하
어떤 사람 대삿갓 쓰고 도롱 입은 채 篛笠蓑衣何似者 약립사의하사자
하루 종일 낚싯대 드리고 낚시는 아니하는데 盡日垂竿不釣漁 진일수간부조어
앉아서 흰 갈대 바라보니 바람이 서로 흔드네 坐看蘆雪風相打 좌간노설풍상타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上樑)한 뒤에 백사장 물새들이 놀라지 않고 시내의 물고기와 같이 즐기소서. 어락정을 영건(營建)하여 반석을 안정시켰으니 하늘과 땅이 어울릴 수 있고 어버이 모두 살아 있는 떳떳한 성품에 어짊과 어리석음에 차이가 없으니 누군들 풍화(風化)와 흥기(興起)를 듣지 않았어도 사람들 모두 함께 사모하니 내가 어찌 헛되이 과장하겠는가.
영양후인 남우룡 삼가 찬술하다.
* 남우룡[南佑龍(1873 ~ 1956)] : 본관은 영양, 호 우계(愚溪), 진주목사, 선산부사를 지낸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 선생의
10대손으로 유학자이다. 1937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이계당에서 이계집속집 3권 2책을 간행했다.
魚樂亭 上樑文
至行垂裕後裔, 百世之追報殫誠。 晩景涵映脩綸, 一區之藏修有美, 故顯晦關乎數運。而輪奐適其性情。恭惟漁樂金公, 猗歟, 永嘉望族。天稟美實, 是孝友之姿, 襟抱, 夷猶太平烟霞之癖。早聞遺訓寶白大爺之令孫, 乃襲厥名, 西厓先生之肇命, 論姿性則不敢妄窺深淺語, 志行則可謂罕覩。古今跡雖託於漁磯, 樂自全於經濟。聲名利祿, 本非心於强求, 魚鳥林泉, 早識趣於閒臥。 許以善行, 龍巒權公, 豈其謬譽稱以孝純? 鄕里先哲, 不是濫詫, 不求人知, 而甘爲盛代遺逸。早謝物累, 而永作卒歲優裕。舊於豊縣之南, 爰有斯亭之築, 盖想夫, 雲林瀟灑, 圖書靜便。鑑開洛水之澄波, 天光雲影, 屛圍花山之列峀。 縠文霞標, 俯瞰黿鼂之宮, 波臣獻態於畵裡, 逈臨鳧鷖之渚, 錦鱗游躍於鏡中。 梓樹桑林, 卽釣遊之, 某邱某水, 風蓑雨楫, 想精靈之於彼於斯, 自從。 世代之遷, 遽値棟宇之陊剝, 星移物換, 愴茂草於幾時? 水遠山長, 仰遺風於當日。事係復舊, 固宜移建於新區, 務在從便, 肆乃擇占於居傍。詢謀旣合, 經營斯勤, 况玆實業之村, 亦是考槃之所, 宅幽而勢阻, 壤厚而俗淳, 雲仍永奠厥居, 淳淳孝謹羹墻特寓其慕, 秩秩規模, 式勤鳩材, 殫乃心竭乃力。亦稽龜食, 相厥土面厥陽, 細者桷大者杗, 椳闑店楔之靡不畢具。 凉以軒, 燠以室, 門廡, 庭垣之各適其宜, 謀旣協於衆人。功告成於一日。鬼神若相助, 焂鳥革而翬飛。 宗族賀新成胥雀躍而鰲抃, 閭井爲之改覩, 林巒于以增光, 山菊遺香, 大君子感吟, 至今傳誦。巖嶂如畵, 造化翁施設, 未應無心, 遂揭大字題楣, 聿求儷文爲頌。抛樑東, 水嶺蒼蒼, 曙色紅怳惚, 九原如更作, 一團誠孝, 照彛衷。
抛樑西, 特立金山, 不可梯窈窕, 蔥蘢誰得似, 晴嵐只帶, 夕陽低。
抛樑南, 映空堤澤, 碧於藍, 遙看演漾銀鱗躍, 陟降英靈, 意像涵。
抛樑北, 封山蒼翠, 終無極, 從來世上不傳名功德, 誰復識?
抛樑上, 天宇昭昭, 高可仰倡善, 誰無興奮心彛衷? 終古日星朗。
抛樑下, 篛笠蓑衣, 何似者, 盡日垂竿, 不釣漁坐看蘆, 雪風相打。
伏願上樑之後, 沙鳥不驚, 溪魚同樂。堂構奠安於磐石, 可以與穹壤, 俱存彛性, 無間於賢愚, 孰不聞風化興起, 衆皆同慕, 我豈虗夸?
英陽後人 南佑龍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