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릉(魯陵 단종(端宗)) 때의 정승 황보공(皇甫公)의 묘문(墓文)
노릉 때 정승 황보공의 묘가 파주(坡州) 천참(泉站) 서쪽 발흥(勃興) 관도(官道)에 있다. 그 연대를 상고하니, 노릉 2년(1453, 즉위년까지 계산하여 2년이 됨)에 공이 이미 화를 당했는데, 묘소에 표지를 세운 것은 중종 14년(1519)이었으니, 67년 만이다. 화를 당하여 자손이 모두 죽어서 현재는 황보씨의 대가 끊어졌으며, 그를 거두어 장사 지내고 또 묘소에 표지를 세운 자도 모두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후세에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를 기록하여 파평고사(坡平古事)에 붙이는 바이다.
그 묘표(墓表)의 글을, ‘영천 황보공의 묘[永川皇甫公之墓]’라고 크게 새겼고, 또 작은 글씨로,
“공의 휘는 인(仁)이니, 노산조(魯山朝)의 수상이다. 경태 계유년(1453, 단종1) 정난(靖難) 때에 두 아들, 한 손자와 같이 화를 당하였다.[公諱仁魯山朝首相景泰癸酉靖難時幷二子一孫被禍]”
라고 22자를 새겼으며, 맨 끝에는 또, “정덕 기묘년(1519, 중종14) 2월에 비를 세웠다.[正德己卯二月立石]”고 새겼다.
금상(今上) 7년 병오(1666, 현종7) 4월 상현(上弦) 후 2일에 허목은 쓴다.
[주1] 계유년 정난(靖難) : 단종 원년(1453)에 세조(世祖)가 황보인(皇甫仁)ㆍ김종서(金宗瑞) 등을 죽인 일을 말한다.
魯陵相皇甫公墓
魯陵相皇甫公墓。在坡州泉站西勃興官道上。考其年月。魯陵二年。公旣被禍。立標其葬。在恭僖十四年。爲六十七年。當禍子孫皆死。今皇甫氏已絶世。其收葬而又表其葬者。皆沒其名。後世莫知也。識之以附坡平古事。其墓表之文。大刻永川皇甫公之墓。又小刻公諱仁。魯山朝相。景泰癸酉靖難時。幷二子一孫被禍。二十二字。末又刻曰。正德己卯二月。立石。上之七年丙午四月上弦後二日。穆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