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1 꿈의 길, 항호 남애항 포매호 휴휴암 죽도정을 걷다
1. 일자: 2024. 3. 9 (토)
2. 장소: 해파랑길 41코스
3. 행로와 시간
[주문진해수욕장(10:03) ~ 항호(10:17~43) ~ 지경해수욕장(10:48) ~ (공사장/군부대 해변) ~ 원포리해변(11:18) ~ (야영장) ~ 남애항 방파제(11:46) ~ 남애포구(11:58) ~전망대(12:04) ~ 남애해수욕장(12:14) ~ 남애초교(12:21) ~ 포매호(12:35~45) ~ 휴휴암(13:05~15) ~ 죽도정(13:40) ~ 죽도해수욕장(13:52) / 13.88km]
해파랑길 33구간을 41로 변경했다. 유튜브를 보다가 더 나은 선택 같아서 바꿨다. 반더룽산악회의 버스는 ㅈ산악회보다 쾌적했다. 복정에서 20분 넘게 기다려 마지막 승객을 태우고 주문진으로 향한다. 시간 개념은 확실히 ㅈ산악회가 최고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낯선 바닷가에 선다. 해변에 놓인 나무 그네가 시선을 끈다. 바람이 몹시 분다. 옷깃을 여미고 해변을 걷는다. 곧 바다와 강이 만나는 석호인 항호가 등장한다. 호수 넘어 대관령에서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흰 눈을 머리가 이고 넘실거린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선명한 눈 풍경에 놀란다. 잠시 접어둔 고산 산행의 욕심이 솟는다. 카메라를 세우고 한참 동안 호수와 산이 어우러지는 풍광을 사진에 담는다. 고요한 호수를 따듯한 봄 햇살을 받으며 걷는 건 최고의 호사였다.
지경리 해변에 선다. 솔숲을 지나자 길이 더욱 한적해 진다. 좌측으로 공사 중인 건물이 있어, 무심코 해변을 따라 걷는데 길이 끊긴 느낌이 든다. 돌아서 가기 싫고 바다를 보고 걷는 게 좋아 끝까지 가 본다, 어렵사리 화상1교 위에서 다시 해파랑길로 연결되었다.
야영장을 지나 원포리 해변에 선다. 남애항이 보인다. 동해 3대 미항 중 하나라 하는데 멀리서 봐도 규모가 꽤 커 보인다. 해변에 사람들이 많아진다. 무리지어 관광 온 이들에게 홀로 걷는 내 모습은 어찌 보여질까 궁금했다. 낭만, 초라, 불쌍....
이제 방파제 옆 등대가 더욱 선명하다. 붉은 색이 무척 매혹적이다. 바닷가에는 커다란 암석들이 이국적인 모습으로 파도에 넘실거린다. 거친 파도가 금방이라도 해변을 덮칠 것 같은 기세로 몰려들었다 물러나곤 한다. 갈매가가 양지 바른 해변에 무리지어 앉아 있다. 언제 또 이리 풍성한 바다 풍경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 순간을 즐긴다. 그래 보아야 멈추고 사진찍고 먼 풍경에 눈길을 조금 오래 두는 것 뿐이지만, 먼 길 달려온 보람은 기대보다 컸다.
남애항 방파제에 선다. 기암과 괴석이 울퉁불퉁 서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시리고 아득하고 광활했다. 포구를 지난다. 정박해 있는 배들을 보면 문득 난 여행 중이구나 하는 자각이 들곤 한다. 멀리 떠났던 배도 돌아오는 데 먼 길을 걷는 내 모습이 비교되어 그런가 보다. 전망대에 오른다. 바다는 더 광활하고 남애항 주변 건물들은 더 작아진다. 눈 덮인 산은 여전히 선명하다. 데이트 온 커플에게 사진 부탁을 한다.
저 멀리 남애북항의 노란 등대에 이끌려 다시 길에 나선다.
남애해수욕장 해변에 도착했다. 이국적인 야자수와 그늘막이 시선을 끈다. 주변으로 서핑과 관련된 시설들이 많아진다. 마을 길을 지나 도로로 들어선다. 바다와 인접한 길가에 학교가 있다. 아마도 내가 경험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가 아닌가 싶다. 운동장 넘어 바다를 향해 늘어선 해송이 멋지다.
다시 석호가 등장한다. 포매호다. 항호에서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호젓한 호수 앞에 선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호수의 풍경은 늘 낭만적이다. 이번에는 산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선 풍력발전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새로 조성된 노란 잔디의 색과 푸른 물빛 그리고 산능선의 흰 눈이 앙상블을 이룬다. 최고다. 해파랑길 41구간은 그간 최고라 여겼던 39구간, 45구간 못지 않다.
줄지어 들어선 캠핑장을 지나 휴휴암으로 들어선다. 이름은 들어본 곳이다. 해안에 조성된 암자는 커다란 해수관음상과 여러 사찰 건물들도 좋았지만 최고의 모습은 내려다 보는 해안에 바위가 있는 풍경이었다. 해안가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이 작게 보인다.
휴휴암을 뒤로 하고 죽도정으로 향한다. 이곳은 서퍼들의 천국인가 보다. 곳곳의 숙소와 음식점들이 하나 같이 서퍼들을 위한 공간임을 강조한다. 어지러운 상가 밀집 지역을 지나 긴 계단을 올라 죽도 전망대에 선다. 아파트 8층 정도 높이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그 주변 풍경은 가히 최고라 할만 했다. 끝 없는 지평선을 바라본다. 그 아득한 광활함에 넋을 잃는다. 모든 걸 다 받아 주어, 바다라 칭한다. 그 품에 나도 오래 빠져들었다.
죽도정에 잠시 들렸다 버스가 정차되어 있다 죽도 해변으로 나온다. 버스 위치를 확인하고는 인근에 있는 막국수 집으로 향한다.
기록을 본다. 13.88km, 3시간 49분. 6분을 쉰 것 말고는 줄기차게 걸었다.
오늘 길과 길에서 본 많은 일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 에필로그 >
푸짐하게 쌓아 올려진 면발이 먹음직한 음식은 멀 길을 홀로 걸은 나그네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었다. 매콤달콤한 국수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 행복감에 젖는다. 소설가 김훈은 인간의 몸과 대상의 교감의 원리는 오직 아날로그의 방식으로만 가능하고, 한 그릇의 음식도 완전히 아날로그적 방식으로만이 세상에 태어난다 했다. 또한 그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착한 마음과 그 놀라운 상상력을 사랑한다 했다. 오늘 이곳 동해 어느 해변에서 이 음식을 먹는 기쁨은 내게도 등불처럼 환했다.
화도 부근에 새로 난 도로 덕분에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덕분에 6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노곤한 하루가 마무리되어 간다. 기쁘다.
일요일 새벽, 커피를 앞에 두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커피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앉아 있을 때, 그 순간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늘은 사진과 노트북이 사람을 대신한다.
사진 속에는 어제 길에서의 감동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