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西原牧伯尙書李公 (서원목백상서이공, p.33)
「西原牧伯尙書李公 送至布川慈氏院 臨別之際 不勝悒悒 强綴蕪辭 奉呈左右二首」서원목백인 상서 이공이 포천의 자씨원(논산군)까지 전송함으로 이별할 때 섭섭함을 이기지 못해 어설픈 말로 억지 시를 지어 좌우에 바치다.
道喪人誰肯斷金 도 잃은 사람 누가 깊이 사귀기 원하리
感公恩愛久彌深 공의 은애 오랠수록 깊어감에 감동했네
仰憑慈氏靑蓮眼 미륵보살의 천연안(佛의 눈)을 의지하여
質我平生一片心 내 평생의 한 조각 단심을 맡기려네
閑忙相聚勢誠難 한가하고 바빠 서로 모이기 정말 어려우니
世故年來況漸艱 세상일은 근래로 점점 어려워지네
此去重逢應未易 이번 기회 놓치면 다시 만나기 어렵나니
臨分可免涕淚湲 이별에 다다라 눈물 흘러내림 면할 수 있을까?
※ 李敖(이오, 李淑眞) : 中書舍人으로 1270년(원종11) 郎將 尹吉甫와 仇浦에서 三別抄를 공격, 전과를 올리고 1271년 按廉使(안렴사, 구 관찰사)로 있을 때 方甫 등이 진도의 삼별초와 내응하려 하자 공격하여 討平했다. 충지와는 막역한 친구다. 그가 1275년 3월 원나라를 방문하라는 왕의 조서를 받고 가다가 아프다는 구실로 포기하고 李公의 주선으로 華井寺에서 下安居를 했다.
⑧ 寄西原李尙書敖 (기서원이상서오, p.34)
相從語軟思華井 서로 만나 부드러운 말 화정사를 생각하니
遠送恩深記布川 멀리 전송한 은혜 깊어 포천(논산)을 기억하네
別恨感情渾入骨 이별의 한과 감정이 뼛골까지 스며들어
逢人說着便潸然 사람 만나 말하려 하자 눈물이 흐르네
⑨ 奉似牧伯尙書李公 (봉사목백상서이공, p.34)
「至元十三年十二月 受請重到西原 寓居玄巖蘭若 奉似牧伯尙書李公」(지원 13년(1276) 12월 청을 받고 다시 서원(淸州)에 도착하여 현암란약에 우거하면서 목백 상서 이공에게 드림)
去年華井小軒中 지난해 화정사 작은 집에 머물면서
旦夕相從笑語同 아침저녁으로 서로 만나 담소하였네
別淚未乾重到此 이별의 눈물 마르기도 전에 다시 온 것은
只緣恩愛少如公 은애로운 인연 공과 같은 사람 없기 때문이라오
⑩ 西原道俗出城泣送 (서원도속출성읍송, p.39)
大都餞客意難乎 대개 손님을 전송할 때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爲有從前繾綣情 전부터 깊은 정이 있기 때문이네
底事滿城緇與白 무슨 일로 성에 가득한 승려와 신도들이
一時揮涕送吾行 일시에 눈물 뿌리며 내가 가는 길을 보내는가?
⑪ 相國儱西公寄呈行幕 (상국농서공기정행막, p.168)
「相國儱西公 伴上朝中使 監督嶺南 東征兵艦 夜半躬訪山居 不勝感荷 作惡詩一篇 寄呈行幕」(상국 儱西公이 원나라 사신과 영남지방의 동정군함 건조 실태를 감독하러 왔다가 밤중에 몸소 산속을 방문했음으로 그 고마움을 견디지 못하여 조악한 시를 지어 행막으로 보냈다. 儱西公은 청주 牧伯이던 李敖)
世人定交貴勢利 세상 사람의 사귐은 세리를 귀하게 여긴데
誰敢施恩不報地 누가 감히 은혜 베풀고 갚지 않으리
相公獨與時俗異 상공은 홀로 시속과 달라
出處升沈心不二 진퇴와 성쇠에 두 마음이 없었네
我曾逃世脫塵累 나는 일찍 세상을 도망쳐 속진의 번뇌를 벗어나
踪跡便向雲山寄 발자취는 구름 산을 향해 붙였지만
公乃遭時得其志 공은 때를 만나고 뜻을 얻어
歷盡淸資登相位 두루 청자를 거쳐 정승 자리에 올랐네
閑忙旣己兩殊致 한가하고 바쁨이 이미 양쪽이 다르게 되었나니
况我疎頑無可記 하물며 나는 소홀하고 둔해 쓸 만한 것이 없네
公猶眷眷不遐棄 공은 사랑하여 멀리 버리지 않으시고
終始恩情等昆季 시종 베푸는 은정은 형제와 같았네
何當一廻得相値 어떻게 하면 한번 서로 만날 수 있으리
北望時時苦瞻企 북쪽을 바라보며 때로 괴롭도록 보고 싶어 했는데
上天元不逆人意 상천은 원래 사람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다기에
苟有所欲必敎遂 진실로 바라는 일을 반드시 이루게 했네
前春來伴天子使 지난 봄 천자의 사신과 같이 와사
因向松巒廻玉轡 송만을 향하여 옥 수레 고삐를 돌렸나니(轡:고삐)
我時聞之卽馳至 나는 그 때 (소식) 듣고 곧장 달려가
一夕攀陪償宿冀 하루 저녁 모시면서 옛 소망 이루었네
忽忽未暇話心事 바쁜지라 심사를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
握手無言但相視 손잡고 말없이 서로 보기만 했었지
別來遺恨滿胸次 이별 후 남은 한 가슴에 가득해
時復懸懸勞夢寐 때때로 그리워서 꿈속에서도 괴로워 했네
俄有人來傳信字 잠시 후 어떤 사람이 편지를 전하네
又向江南監戰備 강남을 향해 전쟁준비를 감독하고
此行當須訪山寺 이번 행차에 산사를 방문하는데
爲報主人且相遲 좀 늦을 거라고 주인에게 알리라 하네
開緘喜閱至數四 편지 뜯어보고 기뻐서 세 번 네 번 읽었고
急掃風軒望來墍 급히 풍헌을 소제하며 와서 쉬기를 바랐네
方將中使馳馹騎 중사를 데리고 말로 달린다기에
竊恐尋僧誠不易 중을 찾기란 진실로 쉽지 않을까 두렵네
何期半夜踏山翠 어찌 밤중에 푸른 산 밟고 와서
叩門驚我禪餘睡 참선 후 자던 나를 두드려 놀라게 할 줄 기약하리
倒屣欣迎促座侍 신 거꾸로 신고 반가이 맞아 좌석에 모시고
從容半日論情思 조용히 한나절 정을 나누었네
平生幾度受恩賜 평생 몇 번 은혜 받았으나
此廻此惠固無譬 이번 이 은혜와 비교할 수 없네
歡娛未足促飛駟 즐거움 만족하지 않았는데 말 재촉해 달리니
斗覺梅酸先入鼻 먼저 코끝이 찡함을 깨달았네
中心兀兀漸如醉 심중이 뒤흔들려 점점 취한 것 같고
使我一朝顔色悴 하루아침에 나의 안색을 초췌하게 하나니
感情離恨無與誶 감정과 이별의 한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獨坐誰知抆雙淚 혼자 앉아 두 줄기 눈물을 닦을 줄 누가 알리
⑫ 寄天安府守韓郎中珪 (기천안부수한랑중규, p.36)
君鬢靑靑我未鬚 그대 귀밑머리 청청하지만 나는 수염도 나지 않아
幾年相逐共相娛 몇 년이나 서로 좇으며 서로 즐기었던가?
莫言今日閑忙異 이제 한가로움과 분주함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交道寧隨象服殊 사귀는 도 어찌 상복(장식) 따라 다르랴!
⑬ 按廉潘公再訪山中 (안렴반공재방산중, p.63)
每歲觀風閱兩番 해마다 관풍(지방풍속)을 두 번씩 겪나니
淸平誰有似高軒 청평하기 그 누가 반공 같은 분이 있으랴
閭閻枕穩聞爭賀 여염의 베개가 편안해 축하소리 다퉈 들리고
囹圄庭空絶滯寃 감옥이 비었거니 원통한 일이 없어졌네
憂國日添鬚髮皓 나랏일 걱정으로 휜 털이 날로 생기고
訪僧時許笑談溫 승려 찾으매 때론 따뜻한 담소도 허락하네
定看褒詔徵還旆 정말 포상하는 조서로 깃발 되돌림을 보리니
莫忘山中對楊論 산중에서 책상 마주해 나눈 얘기 잊지 말게나
(144-012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1일차에서는 원감국사님의 '西原牧伯尙書李公(서원목백상서이공)' 등 7편의 시가 게재됩니다.
※ 주1) 막역한 친구인 이오(이숙진)와의 이별의 슬픔 등을 노래한 시외 6편의 주옥같은 시들이 11일차에서도 전개됩니다.
※ 주2)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하여 시의 단락을 임의로 나누었습니다.
(본문내용- 원감국사 관련 계속)/ 무곡
인생의 달관의 경지에 다다른 국사님도,
좋은 벗과의 헤어짐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무곡
고급 관료는 물론 원의 황제까지 매료시킨 원감국사님의 문예의 깊이와 폭은 정말 상상 이상인것 같고 그 끝이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무곡
원감국사와 농서공(청주 목백 이오)과의 진한 우정이
참으로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문경지우나 관포지교에 못지 않아 보입니다/ 무곡
국사님의 시는 보기 편하고 평범한 일상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네요./ 벽천
무곡 위상환 !
위의 이오(이숙진)라는 분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안타깝게도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도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경상도 안렴사(도지사급 관료) 재직 당시 밀양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 과정에서의 문제 등과 연관성등이 의심되나 더 이상 확인은 어려운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위관료로서 성공적인 마무리는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역사는 쉼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팩트는 하나이지만, 그것의 해석과
평가 그리고 역사적인 교훈은
후손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와 별개로 원감국사와 이공의 우정은 또한 소중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무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