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설〔五常說〕
《중용》의 ‘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에 대해 주자(朱子)가 이를 해석하여 “하늘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할 적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理) 또한 부여하니 명령(命令)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물건이 태어남에 각각 건순(健順), 오상(五常)의 이(理)를 얻음에 따라 덕으로 삼으니 이른바 성(性)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풀이가 지극히 명백하여 다시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읽는 자가 오상(五常) 자를 봄이 넓지 못하여 단지 오상이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의 이름이 되는 줄만 알고, 오상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비록 인의예지의 이름이 되지만, 하늘에 있어서는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의 이름이 되고, 사시(四時)에 있어서는 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의 이름이 되고, 사물에 있어서는 생(生)ㆍ장(長)ㆍ수(收)ㆍ장(藏)의 이름이 되며, 사물에 나아가 나눈다면 금수(禽獸)에 있어서는 꿈틀거림[蠢]ㆍ움직임[動]ㆍ휴(休)ㆍ식(息)의 이름이 되고, 초목에 있어서는 싹틈[萌]ㆍ자람[達]ㆍ시듦[悴]ㆍ거둠[斂]의 이름이 되어, 비록 동일한 오상일지라도 있는 바에 따라 이름을 달리함이 이와 같은 줄을 알지 못함이다.
지금 이런 뜻을 간파하지 못하고 도리어 금수(禽獸)와 초목에서도 또한 반드시 인의예지신으로써 찾으려 하니 이는 심히 이치에 통하지 못해서이다. 저 범[虎]ㆍ이리[狼]의 부자(父子) 관계와 벌[蜂]ㆍ개미[蟻]의 군신 관계와 저(雎)ㆍ구(鳩)의 부부 관계와 홍(鴻)ㆍ안(鴈)의 형제 관계와 창(鶬)ㆍ경(鶊)의 붕우 관계가 비록 조금 밝은 곳이 있어 희미하게나마 인의예지신에 비슷한 밝은 곳이 있지만, 어찌 사람에게 있는 순수한 것과 더불어 나란히 논할 수 있겠는가. 조금 상통하는 금수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초목처럼 완전히 막히어 더욱 말할 만한 게 없는 것임에랴.
대개 건순(健順) 오상(五常)이란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이(理)에 불과한데 음양 오행이 가는 데마다 있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건순 오상 또한 가는 데마다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그 기(氣)가 온전함이 있고, 편벽됨이 있고, 통함이 있고, 막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이(理) 또한 따라서 같지 않다. 천(天)에는 천의 오상이 있고, 인(人)에는 인의 오상이 있고, 물(物)에는 물의 오상이 있고, 금수(禽獸)에는 금수의 오상이 있고, 초목(草木)에는 초목의 오상이 있으니, 오상은 곧 하나이지만 있는 곳마다 같지 않음이 실로 이와 같은 점이 있다.
지금 다만 각각 그 처한 위치[地頭]에 따라 이를 살펴보면 이른바 ‘사람과 물건이 태어남에 각각 그 부여한 바의 이(理)를 얻어서 건순 오상의 덕을 삼는다.’라고 한 것을 하나로 꿰뚫어[一以貫之] 통하지 않을 근심이 없을 수 있으니, 읽는 자가 어찌 이 하나의 ‘각(各)’ 자에 대해 상세함을 다하지 않겠는가?
五常說
中庸天命之性。朱子釋之曰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氣以成形而理亦賦焉。猶命令也。於是人物之生。因各得其健順五常之理以爲德。所謂性也。此訓至爲明白。無復可疑。而但患讀者看五常字不闊。只知五常爲仁義禮智之名。而不知五常在人雖爲仁義禮智之名。而在天則爲元亨利貞之名。在時則爲春夏秋冬之名。在物則爲生長收藏之名。就物而分之則在禽獸爲蠢動休息之名。在草木爲萌達悴斂之名。雖同一五常。而所在異名如此。今乃看此意不破。顧欲於禽獸草木上。亦必以仁義禮智信求之。此不通之甚也。彼虎狼之父子。蜂蟻之君臣。雎鳩之夫婦。鴻鴈之兄弟。鶬鶊之朋友。雖有些一點明處。依俙略似於仁義禮智信。而惡得與在人之粹然者。比方而論之哉。禽獸之稍通者。猶尙如此。則况於草木之全塞而尤無足言者乎。大抵健順五常者。不過陰陽五行之理。而陰陽五行。無所往而不在。故健順五常。亦無所往而不在。然由其氣之有全有偏有通有塞。而此理亦隨而不同。天有天之五常。人有人之五常。物有物之五常。禽獸有禽獸之五常。草木有草木之五常。五常則一也。而所在不同。實有如此者。今但各隨其地頭而觀之。則夫所謂人物之生。各得其所賦之理。以爲健順五常之德者。可以一以貫之。而無不通之患矣。讀者盍於此一各字致詳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