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墓碑文)
옛날에는 장사 지내는 데 풍비(豐碑)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서 곽(槨)의 앞과 뒤에다 세우고 그 가운데를 뚫어서 녹로(鹿盧)를 만든 다음 동아줄을 꿰어 하관하는 것이다.
한나라 이후로 죽은 자의 공업을 맨 처음에는 그 위에다 새기던 것을 점점 바꾸어서 따로 돌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유협이 이른바 “원래 종묘에 세워졌던 비(碑)가 무덤에도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晉)나라와 송(宋)나라 시기에 처음으로 신도비(神道碑)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대개 풍수가(風水家)들이 동남쪽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고 하여 그곳에다 비를 세웠던 것인데 이것을 인하여 이름을 삼은 것이다. 당(唐)나라 비의 제도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5품(品) 이상인 관원만 사용하였는데, 근세에는 높이와 너비에 각각 차등을 두었으니 제도가 세밀해진 것이다. 대체로 장사를 치른 자가 지(誌)를 만들어서 유택(幽宅)에다 보관하고 나서 또 비(碑)나 갈(碣)이나 표(表)를 만들어 밖에다 내걸었던 것은 모두 효자(孝子)와 자손(慈孫)이 차마 선조의 덕을 은폐시키지 못하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그 문체가 문(文)도 있고 명(銘)도 있고 서(序)도 있는데, 혹은 사(辭)라고 하고 혹은 계(系)라고 하고 혹은 송(頌)이라고 하는 것은 요컨대 모두 명(銘)을 이르는 것이며, 거기에는 또 정체와 변체가 있다. 불가와 도가에서 장례 지낼 때도 역시 비를 세워 참람스레 품관처럼 하였으니, 아마도 역대로 서로 인습에 젖어 이교(異敎)를 숭상하고 금지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 듯하다.
墓碑文
古者。葬有豊碑。以木爲之。樹于槨之前後。穿其中爲鹿盧而貫繂以窆者也。漢以來始刻死者功業于其上。稍改有石。則劉勰所謂自廟而徂墳者也。晉宋間始稱神道碑。盖堪輿家。以東南爲神道。碑立其地。因名焉。唐碑制龜趺螭首。五品以上官用之。而近世高廣各有等差則制之密也。盖葬者。旣爲誌以藏諸幽。又爲碑碣表以揭於外。皆孝子慈孫不忍蔽先德之心也。其爲軆有文有銘有序。或謂之辭。或謂之系。或謂之頌。「有正變二軆。要之皆銘也。正直頭。變援古起頭也。」至於釋老之葬。亦得立碑。以僭擬乎品官。豈歷代相沿。崇尙異敎。而莫之禁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