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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2절 뒤에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에 대해 자랑하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평화와 접근과 아울러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의 결과는 자랑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그 영광(the glory)의 소망 안에 자랑합니다.
여기에서 “자랑하다”라고 번역한 헬라어(카우카오마이)는 자랑하다(boast), 자랑으로 여긴다(glory), 기뻐한다(rejoice)를 뜻합니다,
기뻐한다(rejoice)고 번역하기보다 자랑한다(boast)는 의미입니다.
“영광(榮光)”이라는 말은 “꽃 영(榮)”자와 “빛 광(光)”자로 이루어졌고, 꽃이 핀 것처럼, 영화와 빛이 빛나는 것처럼 광택의 상태가 영광입니다.
평화와 접근과 아울러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의 결과는 자랑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 안에 자랑합니다.
1. 신자들은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 안에 자랑합니다.
로마서 5장 2절 뒤에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 안에서 자랑하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찰스 웨슬리의 찬송가 중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는 찬송이 있는데, 가사 중에 “영광에서 영광으로 천국까지 이르러”라는 소절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어 가사에 의한다면 “Changed from glory into glory”입니다. 다시 번역하여 보는 때 “영광으로부터 영광 안으로 바꿈을 받아”입니다. 이 순간 신자들은 “영광으로부터 영광 안으로 바꿈을 받으며” 자랍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 안에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볼 날이 오게 될 것인데, 이것이 소망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에 “내가 있는 곳에 그들도 나와 함께 있기 위하여 당신이 나에게 주신 나의 것을 그 영광을 그들이 지켜보기 위하여 내가 바랍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지켜보는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으로 설명될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의 영광을 영원히 지켜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미리 맛보며 사는데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살 것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의 제일 되는 존재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기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입니다.
파울은 자신의 눈을 멀게 하기에 충분한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도 산에서 이런 영광을 목격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을 기대하고 이것에 대해 자랑합니다. 크리스천들은 해처럼 빛나는 그의 영광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마 17:2).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되 얼굴과 얼굴로 바라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그 하나님의 영광의 이르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므로 자력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에서 의롭다고 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접근을 가지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화됩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이런 삶을 살고, 그의 영광을 지켜보며 살 것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을 닮아 영원히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그날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날 아름다움이 우리의 것이 되겠고 우리의 몸은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지금 세상에서 누구도 가지지 못한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영광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몸은 온전하지 아니한 모습이고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부패해 가고 있으며 늙어 가고 있으며 죽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연약하여 병들고 고통스럽고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매일 우리의 몸은 죽음을 향하여 한 걸음씩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면 젊은 시절과 비교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둘러싸여 해와 같이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최고로 멋지고 아름다운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미스 월드나 미스터 월드와 비교할 수 없는 멋진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미스 월드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아름답게 못 만드시겠습니까? 지금 세상의 몸은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 죽음의 씨앗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몸의 기능의 1%도 발휘할 수 없는 몸입니다.
아프거나 피곤하지 아니한 최상의 상태를 지니는 몸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넘치는 활력과 에너지(energy)와 능력(power)을 갖춥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육체의 가시들은 모두 제거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틈에서 그들에게 둘러싸여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근본 원천이신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아름다우신 하나님과 사랑 안에 친밀하게 교제하며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영원히 지치지 아니하고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그의 따뜻한 사랑의 품속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놓으신 즐거움은 말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풍부와 행복과 영광을 얻기를 추구합니다. 그들은 그 근원인 하나님 없이 그것들만을 구하니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살아 있을 때 그러한 것들을 누리려고 하니까 근시안적인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크리스천들에게 이 땅 위에서 많은 것들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내세의 것을 바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신자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에 대해 자랑합니다.
장래에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는 주(主)시라’고 말하여도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주여”라고 말한 것이 거짓된 것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 예언자를 만들기에 노력하고 그에게 많은 것들을 줍니다. 거짓 예언자들을 통하여서 수많은 사람을 멸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엄청나며 사탄은 그들에게 이 세상의 영광을 줍니다. 그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또는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를 갖게 합니다.
크리스천 서점에서 팔고 있는 많은 인기도서가 사탄의 책인 것입니다. 사탄을 찬양해서 사탄의 책이 아니라 뱀의 독소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들에 아담과 하와를 죽음으로 이끈 치명적 독이 포함된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교회 성장에 혈안이 되어 독인지 약인지 분별하지 못하며, 사탄의 독을 맛있다고 먹어 중독되고 교인들에게도 독을 먹게 만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영광의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젊음과 순결과 풍부와 안식이 영광의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움과 풍부와 영광 자체를 추구하면 그것을 얻을 수 없으나 하나님을 선택하면 하나님께 모든 좋은 것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크리스트를 선택하는 슬기로운 처녀들이 됩시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2. 신자들은 고난들 안에 자랑합니다.
로마서 5장 3절에 “우리가 그 고난들 안에 자랑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5장 3~5절 말씀은 처음 두 절에 말해오던 것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 고난들 안에도 자랑할 수 있다면 구원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믿는 자들은 고난들도 자랑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자주 혹독한 모든 시험과 고난을 견뎌내야 합니다.
고난이 일어나는 때 넘어지는 자들은 돌밭으로 떨어진 씨앗입니다. 돌밭으로 떨어진 씨앗과 같은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은 그가 당하는 고난들 때문에(in) 자랑합니다.
크리스천이 되면 전에 없던 고난들이 믿는다는 것 때문에 닥쳐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그 고난들 안에 기뻐하고 자랑으로 여깁니다.
1) 고난이 인내를 산출함을 알기에, 고난들 안에서 자랑합니다.
로마서 5장 3절 끝에 “그 고난이 인내를 산출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은 신자들의 소망을 촉진하고 더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산출하다”라고 번역한 단어(카테르가조마이)는 영어 성경들에 가져온다(bring), 산출한다(produce)고 번역되었습니다. 일하는(에르가조마이) 결과 가져오거나 산출하는 것입니다.
고난들 가운데 자랑하는데 그 고난이 인내를 산출하기 때문입니다.
견딘다는 말은 사람 또는 생물이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거나 죽지 않고 계속해서 버티는 상태가 되고 잘 참아 낸다는 것을 뜻합니다(마 10:22).
견딘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어려운 환경 아래 머무르는 것을 뜻합니다. 히브리어로는 기대한다, 기다린다는 뜻이 있습니다(욥 30:26, 시 25:3).
자신의 참된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들만이 구원함을 받을 것입니다. “인내”는 확고부동하게 견디고 참는 힘을 뜻합니다.
무엇인가의 아래 잘 머무르는 것이 견디는 것이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향해 견디는 이는 구원함을 받게 됩니다(마 10:22, 24:13).
고난이 인내를 산출하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고난들 안에 자랑합니다. 고난은 인내를 산출(産出)하고 낳습니다(produce).
2) 인내는 인격을 산출함을 알기에, 고난들 안에서 자랑합니다.
로마서 5장 4절에 “그러나 그 인내는 인격을,”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내”는 고난을 겪음으로써 더 강해지는 영적인 용기를 뜻합니다.
루카복음 8장 15절에 “그 좋은 땅은 좋고 선한 마음 안에 말씀을 들은 그들이 인내 안에 열매를 맺는 자들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으려면 요구되는 “끈기”입니다.
“인격(character)”이라는 헬라어(dokimhv)는 “연단”으로 번역되었는데, “증명된 인격”(proven character)이나 “인격”(character)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캐릭터”인데 등장하는 “인물”, “개성”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독특한 인물의 모습을 디자인에 도입한 것도 “캐릭터”로 많이 부릅니다.
“캐릭터”는 “인격”, “성격”, “품격”, “인물”이라는 의미인데 인내는 이러한 “인격”, “성격”, “품격”, “인물”을 산출한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을 “인내”로 견딜 때 시험받고 입증된 “인격”이 됩니다. “시험”은 과정은 어려워도 통과하면 새로운 삶이 열리는 법입니다.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판정되는 “성품의 단련”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난”은 “인내”를, 그리고 “인내”는 “인격”(character)을 산출합니다. 고난은 인내를 거쳐서 고아한 품격을 가지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그래서 그 고난이 값지고, 우리는 그 고난들 안에도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아한 품격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3) 인격은 소망을 산출함을 알기에, 고난들 안에서 자랑합니다.
로마서 5장 4절 끝에 “그러나 그 인격은 소망을,”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우리가 자랑하는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입니다(롬 5:2). “그 고난”은 “그 인내”와 “그 인격”을 거쳐서 “소망”(hope)을 성취합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고난들 안에도 기뻐하고 자랑으로 여깁니다(glory).
소망이 부끄러움에 두지 않으며 실망하게 하지 않으니(롬 5:5),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안에 성령을 통하여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5절은 “소망”이 5:1~11의 초점임을 보이며, 돌쩌귀 역할을 합니다.
여기 부끄러움에 둔다고 번역한 헬라어(카타이스퀴노)는 부끄러움에 둔다(put to shame), 실망하게 하다(disappoint)는 뜻이며, “실망”은 소망을 잃는 것입니다. 소망은 소망을 잃게 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 안에 신뢰할 때 그는 결코 부끄러워하지 아니합니다(시 25:2). 하나님 안에 기대하는 자는 다 부끄러워하지 아니할 것입니다(시 25:3). 다윗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게 해 주시기를 호소하였습니다(시 25:20). 신자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할 것입니다(사 28:16)
소망이 부끄러움에 두지 않으며 실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안에 성령을 통하여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쏟는다”라는 동사는 풍부하고 “과도한” 넘침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안에 쏟아졌기에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안에 쏟아졌고 지금도 계속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의 마음들 안에 부어졌습니다. 에스겔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겔 36:27). 여기 로마서에서 “성령”이라는 말이 처음 나옵니다. 파울의 성령 교리가 로마서 5장 5절에 처음 도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영(Spirit)이 쏟아질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사 32:15). 하나님께서 그의 영(Spirit)을 모든 육체에 따르실(pour out)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영(Spirit)을 종들과 여종들에 따르실 것으로 예언되었는데 오순절에 성취되었습니다(욜 2:28~29).
우리가 무력한 때 크리스트께서 불경한 자들을 위해 돌아가셨음이니. 이는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어떤 사람이 간신히(hardly) 죽을 것임이며, 그 선한 사람을 위하여 아마 어떤 사람이 또한 담대히 죽기는 할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으로 그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시니(demonstrate), 우리의 아직 죄인들일 때 크리스트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본문 6~8절은 하나님의 사랑의 절대적 성격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무력한”이라는 단어(아스데네스)는 “무능한”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선을 행할만한 능력이 없었을 때가 있었습니다(롬 5:6).
모든 사람은 율법을 전부 행하여서 의롭다 칭함을 받기에 무력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모두 무능력합니다.
구원은 전부 하나님께 속하여 있고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죄에 대한 증오가 있고 또 죄인을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무력한 때 크리스트께서 시간을 따라 돌아가신 것입니다. 크리스트께서는 “시간을 따라”(in due time) 마땅한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 적절한 시간에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주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가치 없고 불경한 자들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은 의인을 위해 간신히 죽고 선인을 위해 담대히 죽으나(롬 5:7),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해 그러신 것이고 악인을 위해 그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하고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그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롬 5:8). 우리의 아직 죄인들일 때 크리스트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그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시니(demonstrate), 우리의 아직 죄인들일 때 크리스트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의 결과입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돌아가신 것이며, 그가 죽지 아니하셨다면 어떤 사람도 구원하시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입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찬송가 149장)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해하는 방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능(無能)하고 무력(無力)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측량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크리스트께서 우리를 세우시기 위해서 낮아지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져서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숭배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불경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사랑을 명명백백하게 나타내셨으므로 거기에는 어떠한 의문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더욱더 많은 것에 지금 그의 피 안에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는 그를 통하여 진노(震怒)에서 구원될 것입니다(롬 5:9).
히브리어에서는 “코”(아프)가 “노염”을 뜻합니다(창 27:45, 30:2). “콧구멍(nostril)들의 바람”은 “노염의 바람”을 뜻할 수 있습니다(출 15:8). “하나님의 노염이 불타다”라는 표현으로써 언급됩니다(출 32:11). 하나님의 노염이 이스라엘 안에 불탔습니다(판 3:8, 왕하 13:3, 23:26). 구약성경에 “하나님 노염의 맹렬함”에 대해 기록되었습니다(대하 30:8).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노염의 맹렬함이 돌아가게 만듭니다(스 10:14).
하나님의 “코의 바람”은 곧 그의 “노염(anger)의 바람”입니다(욥 4:9). 출애굽기 15장 8절도 하나님의 “콧구멍들의 바람”을 말합니다. “코의 바람”은 숨을 몰아쉴 정도의 노염으로 생긴 “노염의 바람”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격노(헤마)가 기록되었습니다(민 25:11). 하나님의 격노는 불타거나 쏟아집니다(왕하 22:17, 대하 12:7, 34:25).
하나님의 진노가 그 아들에 불복종하는 자 위에 머무릅니다(요 3:36). 로마서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말합니다(롬 1:18). 하나님의 진노는 하늘에서 불신앙과 불의에 드러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올바름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도 드러납니다. 그 진리를 억압하는 사람들의 모든 불신앙과 불의에 대해서 드러납니다.
유대인은 그 완고와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진노와 의로운 판단이 나타날 날 안에 진노를 자신에 쌓습니다(롬 2:5).
하나님의 진노가 있으나 신자들은 진노에서 구원될 것입니다(롬 5:9). 이미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이므로 진노에서 구원될 것은 확실합니다.
원수인 우리가 하나님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화해시킴을 받았으면, 더욱더 많은 것에 화해된 우리는 그의 생명에 구원될 것입니다(롬 5:10).
여기 “화해시키다(reconcile)”라는 헬라어(카탈랏소)는 평화를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더욱더”(말론)는 “훨씬 많게”, “보다 많이”(more)를 뜻하는데 그가 더 큰 것을 행하셨으니 그보다 더 작은 일도 행하실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불경한 자들이었을 때 크리스트의 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면, 이미 옳다고 칭함을 받은 우리는 더욱 쉽게 진노에서 구원될 것입니다.
파울은 소망이 실망하게 하지 않는 주제로 돌아가 근거를 제시합니다. 원수들이 화해되었다면, 이미 화해된 사람들은 더욱더 구원될 것입니다. 만일 큰 것에 그러하다면 적은 것에는 더욱더 그러하다는 논리였습니다.
내가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가장 큰 일을 하셨으므로 이미 그의 자식이 된 나를 포기한다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구원될 것이다”라는 죄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최종 구출을 말하며, 신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신자들의 구원은 종말에 완성될 것이며, 아직 완성되지는 아니하였으나 완성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논합니다.
그가 믿는 자들을 위해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롬 4:25). 우리가 화해되었다면 화해된 우리는 그의 생명 가운데 구원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하나님께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해 화해시킴을 받았으면 그의 부활의 생명(의 영역) 안에 구원함을 받을 것입니다(롬 5:10).
3. 신자들은 하나님 안에 자랑합니다.
로마서 5장 11절에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 자랑하나니, 그를 통하여 지금 그 화해를 우리가 받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화해(reconciliation)”(카탈라게)는 “교환”, “회복”입니다. 앞에 “화해시키다”라는 동사(카탈랏소)에서 나온 말입니다.
파울은 “자랑하다”라는 말로 이 단락을 수미상응 방식에 끝을 맺으나, 파울은 머리와 꼬리를 아무 변화 없이 똑같이 반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앞에 2절에서는 “하나님의 그 영광의 소망 위에 자랑하노라”라고 하였고 여기는 “하나님 안에 크리스트를 통하여 자랑하노라”라고 바꾸었습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자랑하는데 율법에 의지하여 자랑합니다(롬 2:17). 반면 믿는 자는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자랑합니다(롬 5:11).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성품을 숙고한다면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우리의 하나님을 자랑하고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신자들은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지금 화해를 받았습니다. “화해(和解)”는 싸움을 멈추고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애는 것입니다.
파울은 “화해”라는 말로 1절에 나오는 “평화”라는 말과 상응시킵니다. “화해”(reconciliation)는 1절의 “평화”(peace)와 같은 뜻의 말입니다.
자신이 화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충족된 것을 깨달으면 하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을 자랑합니다(찬송가 149장).
성경을 충분하게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믿는 자의 삶에 중요한 것은 성경을 연역해 보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첫째 요소는 이성이고 감성은 그 이후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기 전에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시 34:8). 너무 감정에 따라도 안 되고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시작하신 착한 일을 중도에 그만두실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최종 구원의 보장에 넉넉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하나님을 자랑합니다(롬 5:11).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63.
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64.
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67.
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68.
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69.
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70.
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81.
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82.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85.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87.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89.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90.
13) David L. Turner, 『BECNT 마태복음』, BECNT 성경주석, 배용덕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366.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90.
15) Douglas J.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손주철 옮김 (서울: 솔로몬, 2012), 423.
16) Moo, 『NICNT 로마서』, 423.
17) Moo, 『NICNT 로마서』, 423, n. 48.
18) Moo, 『NICNT 로마서』, 424.
19) Moo, 『NICNT 로마서』, 425.
20) Moo, 『NICNT 로마서』, 426.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34.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37.
2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38.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39.
2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42.
2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44.
2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45.
2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47.
2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49.
3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50.
3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51.
3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52.
3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56.
3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92.
35) 김세윤, 『칭의와 성화』 (서울: 두란노, 2013), 138.
3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193.
3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00.
38) Don Β. Garlington, Faith, Obedience and Perseverance (Tübingen: J. C. B. Mohr, 1994), 79.
3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02.
4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04.
4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07.
4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08.
4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