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 강의〔經筵講義〕
3월 28일 아침, 《좌전》에 나오는 기질(棄疾)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김우옹(金宇顒)이 아뢰기를 “‘명을 누설하여 형벌을 무겁게 한다.〔洩命重刑〕’라는 그 말은 대개 그의 아비가 그 사실을 알면 혹시 반역까지도 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선유(先儒) 여조겸(呂祖謙)이 논하기를 ‘옹희(雍姬)와 기질의 일은, 군자로서는 반드시 만날 수 없는 일이다.……’ 하였으니, 이 논의가 매우 고상합니다. 사람은 마땅히 충효에 힘쓸 뿐이니, 변통하는 일까지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불행히도 이런 상황에 이른다면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니 기질이 그런 경우입니다.”라고 하였다.
정인홍이 아뢰기를 “평소에 힘껏 간하지 못하여 이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곤경에 처해서도 남몰래 등에 업고 도망가지는 못하고 ‘명을 누설하여 형벌을 무겁게 한다.’라는 말로 핑계를 댔으니 이는 모두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영상 박순(朴淳)이 아뢰기를 “기질은 자식의 도리를 이미 다하지 못한데다가 또 ‘아비를 버리고 원수를 섬기겠다.’ 하였습니다. 이는 임금을 가리켜 원수라고 한 것으로, 또한 도리에 어긋납니다. 임금이 신하를 죽이는 것은 의(義)인데 어찌 감히 원수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임금과 아비에게 모두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정인홍이 나아가 아뢰었는데, 대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지 않으면 위임할 복심(腹心)의 신하가 없게 된다는 말이었다. 김우옹이 뒤를 이어 아뢰기를 “예로부터 비록 소강(小康)의 정치를 이루는 것도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에서 기인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요체는 성학(聖學)이 고명하게 되어 현사(賢邪)가 분명히 구분되게 하는 데에 있으니, 어진 인재에게 맡기고 신임하여야만 비로소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원익(李元翼)이 아뢰기를 “만약 이치에 밝지 못하면 현명함과 사악함이 도치되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김우옹이 아뢰기를 “이치에 밝지 못하면 현(賢)을 사(邪)로 알고 사는 현으로 안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현사를 조금은 안다 하더라도 선을 좋아하기를 따라가지 못할 듯이 하지 못하며 악을 싫어하기를 끓는 물에 손을 넣듯이 하지 못하면 선을 좋아하면서도 오활하다고 아울러 의심하게 되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아울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 현우(賢愚)가 뒤섞여 진출하게 되므로 깊은 복심이 되는 이는 의지할 데가 없어 관직을 버려둔 채 범범하게 날만 보내게 되는데, 이는 모두가 이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정인홍이 말하기를 “오늘날 민생이 곤궁하고 지친 것은 대개 공급하려는 물건이 거의 없고 방납에 관여하는 모리배들이 거의 삼분의 이가 넘기 때문입니다. 또 고을 수령의 탐욕과 서리들이 간사한 꾀를 써서 물건의 시세를 올리는 폐단은 그 형세가 제각기 나눠 차지한 것처럼 삼분오열 되어 있으니 백성들이 어찌 곤궁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통렬하게 고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박순이 말하기를 “정인홍의 말이 아주 타당합니다. 이 폐단은 반드시 통렬하게 고쳐야 백성들이 실제로 은혜를 입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금하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 이것은 사헌부와 호조에서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박순이 말하기를 “그렇기는 하나, 역시 전하의 엄명이 있어야 하고 해당 관원을 오래 그 자리에 두어야 가능합니다.”라고 하였다.
[주1] 기질(棄疾) : 춘추 시대 초(楚)나라 평왕(平王)의 이름이다. 공왕(共王)이 후계자를 정하려고 신에게 제사를 올린 뒤 벽옥(璧玉)을 몰래 종묘의 뜰에다 묻어 놓고는 다섯 아들에게 들어가서 절을 하도록 시켰는데, 오직 막내아들인 기질(棄疾)만이 땅 속에 묻혀 있는 벽옥의 끈 부분에 두 번 모두 머리를 대어〔再拜皆壓紐〕 후일 평왕(平王)이 되었던 고사가 있다. 《春秋左傳 昭公13年》
[주2] 소강(小康) :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정치 상황이다. 이른바 정치와 교화가 맑고 밝으며 백성의 부유하고 안락한 상황을 이르는 말로 우(禹), 탕(湯), 문무(文武), 성왕(成王), 주공(周公)의 정치를 가리킨다.
經筵講義
三月二十八日朝。左傳棄疾事。金宇顒曰。觀其洩命重刑之言。蓋其父知之。或至反逆。故不敢告也。然先儒呂祖謙論之曰。雍姬棄疾之事。君子所必不遇也。云云。此論甚高。人當勉於忠孝而已。未須說到變處。若不幸至此。則惟有死耳。棄疾是也。鄭仁弘曰。平時不能力諫。而至此臨難。又不能竊負而逃。諉諸洩命重刑。皆不能盡其子道者也。領相朴淳曰。棄疾子道旣不盡。又云棄父事讐。此指君爲讐。亦悖理。君之殺臣。義也。何敢讐之。此於君父之間。皆不盡道者也。仁弘進啓。大槪言不分君子少人。無委任腹心之臣。宇顒啓之曰。自古雖致小康之理。未嘗不由於任人。其要在於開明聖學。使賢邪曉然。而委信賢才。乃可集事。李元翼曰。若不明理則賢邪倒置云云。宇顒曰。理有不明則以賢爲邪。以邪爲賢者。固然也。亦有粗知爲賢爲邪。而好善不能如不及。惡惡不能如探湯。好善而兼疑其迂闊。惡惡而兼好其順從。以致賢愚混進。腹心無寄。忨愒天工。泛泛度日。凡以此也。仁弘曰。今日民生困悴。蓋由供上之物無幾。而入於防納牟利之輩。幾過三分之二。又有守宰貪婪。胥吏刀蹬之弊。勢若割據。三分五裂。民生安得以不困乎。此不可不痛革也。淳曰。仁弘說甚當。此弊須痛革。民蒙實惠矣。上曰。予非不欲禁也。此在憲府與戶曹嚴禁耳。淳曰。雖然。亦須自上嚴令。而久任其官。可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