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 작가들 |
꿩이 풀어 가는 방정식
김채옥
일찍 일어나 텃밭의 농작물을 돌본 덕에, 오후엔 이웃의 오미자 농장을 방문하는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산기슭에 자리한 농장은 낮인데도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산책하기에는 그저 그만이었다. 드넓은 농장에 길게 펼쳐져 있는 펜스 위를 휘감고 올라간 오미자 넝쿨들의 모습은 나에겐 마치 거대한 고인돌을 직접 마주쳤을 때 느꼈던 놀라움과 신비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녹색의 카펫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오미자 터널의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어디선가 신선한 꽃향기가 나의 후각을 사로잡았다. 꽃향기를 따라가 보니 펜스를 감고 있는 오미자 넝쿨 사이로 앙증맞게 생긴 흰색의 꽃들이 만개해 있었고, 꽃 주위에는 꿀을 얻기 위해 모여든 벌들이 공중비행을 하며 앵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꽃향기에 취해, 잠시 정신을 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푸드덕’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순간 검은 물체가 옆 펜스 쪽에서 쏜살같이 튀어 올랐다. 그러곤 내가 고개를 쳐들었을 땐 전선에 ‘꽝’ 부딪치고는 그대로 곤두박질해서는 풀숲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느닷없이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풀숲에는 정적만 흐를 뿐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마도 먹이를 찾으며 호젓하게 시간을 보내던 들꿩이 내 발걸음 소리에 화들짝 놀라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리라. 그러나 놀란 가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마을 쪽 논두렁에서 꿩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고양이 몇 마리가 어느새 꿩이 떨어진 곳으로 모여들었다.
잠깐의 소동이었지만,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던 꿩의 모습이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만의 영역이라고 믿고, 한가로이 먹이를 찾고 있던 꿩이 주변 경계를 늦추고 있다가 당한 어이없는 사고였다. 잔잔한 하얀 꽃송이들이 피어오른 향기로운 오월의 오미자 밭에서 뜻밖의 어이없는 사고를 목격하면서 불현듯 이전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도 직장에 다닐 때 한 마리 꿩이었다. 열심히 일하느라 주변 상황은 신경도 못 쓰고 있다가 성과 때문에 두 부서가 싸움이 나는 일에 휘말리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급기야 감사실에 불려 가서 누구의 공인지를 말해야 했다. 직장 일을 하다 보면 맡은 업무가 두부를 칼로 자르듯 딱 잘릴 수가 없다. 나는 그 일을 서로 도와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감사위원은 자초지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감사가 마무리되고 나서도 두 부서 사람은 그 일을 주도해 왔던 당사자인 나에게 사과는커녕 확실하게 자기편에 안 섰다고 원망을 들어야 했다.
내가 몸담았던 직장은 공공기관인데도 2000년도에 들어서자 승진을 위해서는 성과점수를 꼭 챙겨야 하는 대기업의 경쟁체제를 도입하였다. 그때가 대기업의 CEO 출신이 민선시장이 되고, 대통령의 야망도 키워 나가던 때였다. 필요한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뽑기 시작했고, 계약직의 종류도 점차 세분화되고, 채용도 수시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들어온 직원 중에는 몇 년 후 재계약이 안 되어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는 직장을 떠나며 맘고생을 심하게 하여 큰 병을 얻은 직원도 있었다. 병원이라는 기관의 특성상 애당초 공정하게 성과점수를 낼 수 없는 상황임에도 누군가에게 성과를 주어야 하다 보니 힘이 있는 부서가 성과를 많이 가져갔다. 승진에 눈먼 직원들이 부끄러운 일을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면서 조직은 갈수록 분위기도 안 좋아지고 활력도 잃어 갔다.
성과주의 시스템은 병원이나 학교와 같은, 누구보다 협력이 필요한 조직의 직장 문화를 비인간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다. 오래전에 그 책을 처음 읽고서는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한 폐해를 겪은 라다크의 일을 먼 나라의 일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어느새 내가 몸담은 직장의 환경도 그동안 자본주의 성과체제의 폭력에 라다크처럼 황폐해져 있었다. 전에 비해 월급은 많이 올랐어도 직장에서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동료들과도 어느 순간 가까워지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90년대에는 우리 부서뿐만 아니라 타 부서의 직원들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었다. 심지어 서울에 폭설이 내린 날, 버스가 끊겼다고 핑계 삼아 여직원들이 직장에서 가까운 우리 집에서 밤새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맥주 파티를 한 적도 있었다. 돌아보니, 행복은 혼자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함께 어우러져서 모두 행복해져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자신이 몸담은 직장에서 존중받고, 가치를 인정받으며 안정감을 느낄 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직장을 떠난 요즘도 나는 한 마리 꿩 같은 생각이 든다. 성과주의 사회에 잘 맞지 않는 사고와 굼뜬 행동을 가진……. 이젠 전선에 부딪히는 꿩처럼 되지 않으려면 맛있는 지렁이들이 눈앞에 꿈틀대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따사로운 햇볕을 쬐면서 자신만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더라도 결코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일어났던 그 일은 결국, 조직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자신이 잡은 꿩도 아닌데 꿩을 놓고 서로 먹겠다고 싸우다가 동료들끼리의 불화도 깊어지고 그 일이 외부에 알려져 기관의 위상도 우스운 꼴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한 마리 미련한 꿩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고양이처럼 상대방의 나약성이나 허점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성과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러한 폐허를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를 딛고 올라서서 앞만 보고 달린다면 우리는 성과로 인한 눈앞의 보상에 눈이 멀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 라다크의 교훈처럼.
요즘의 직장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성취감을 얻거나 동료애도 예전 같지 않다. 과거 생각만 하고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기에 가끔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기도 하고, 새로운 비행 훈련도 배워 두어야만 한다.
또한 이번에 방문한 오미자 농장을 다시 산책하게 될 때는, 가끔 휘파람을 불거나 헛기침하여야겠다.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꿩이나 들짐승이 놀라지 않도록……. 내가 그들을 배려해 준 것처럼 다음에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휘파람을 불어 줄 수 있으니까.
김채옥 | 2019년 한국미니픽션 신인상, 2022년 『문예바다』 신인상 수필 당선. 임상심리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