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3장 1-4절. 이방인을 위해 갇힌 바울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계시된 비밀이었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기둥 같은 사도들도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고, 오직 바울을 통해서 계시된 놀라운 계시였습니다.
1절.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reason I, Paul, the prisoner of Christ Jesus for the sake of you Gentiles--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Τούτου χάριν ἐγὼ Παῦλος ὁ δέσμιος τοῦ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ὑπὲρ ὑμῶν τῶν ἐθνῶν—
For this reason I, Paul, the prisoner of the Christ Jesus for you of the Gentiles--
직역하면 ‘이러므로 이방인들인 너희를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가 된 나 바울은’이란 뜻입니다.
‘나’(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1.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란 원문(ὁ δέσμιος τοῦ Χριστοῦ Ἰησοῦ)에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the prisoner of the Christ Jesus)란 뜻입니다.
이 표현은 다른 곳에도 나타나는데(디모데후서 1:8, 빌레몬 1:9),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죄수가 된 자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된 것은 이방인에게 전도한 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감옥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유대인들처럼 이방인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면, 바울은 하등에 유대인의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힐 이유가 없었습니다.
2. ‘이러므로’란 2장에서 말씀한 대로 ‘이방인 신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 신자와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므로’란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황제의 죄수’라거나 ‘유대인의 죄수’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것은 로마법을 어긴 것 때문이 아니고, 유대나라 법을 어긴 것 때문도 아니고, 유대인 고위공직자들이나 로마 총독과 황제와 고위직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것은 순전히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현재 로마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여서 군사들 틈에 끼어 있는 불편하고, 육신의 생활이 몹시 고달픈 죄수였습니다 (에베소서 6:20).
그러나 바울은 쇠사슬에 매여 감옥에 있는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디모데후서 1:12), 오히려 교인들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에베소서 3:13).
디모데후서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에베소서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뿐만 아니라,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힌 상황이 복음 전파에 더욱 도움이 되고, 진전이 되었다고 자부했습니다. (빌립보서 1:12)
빌립보서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보통 감옥에 갇힌 사람은 그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여기고, 신앙적으로도 낙심하기 쉽습니다.
물론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비록 감옥에 갇히더라도 그곳에 주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고, 스스로 감옥 전도자로 알고, 주님의 죄수로 사명감을 가지고 감옥 생활을 할 수 있는 성도는 부끄럽지 않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죄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다가 감옥에 갇힌 애국자들도 투옥된 것을 부끄럽지 않고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3. 지옥 갈 이방인들도 예수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가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사명을 가지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로마의 군인들과 총독들과 귀족들과 황제에게까지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는 율법을 잘 지켜야 천국 간다고 생각했고, 예수만 믿으면 어떤 죄인도 천국 간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를 심히 핍박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하루 8시간 일한 자에게는 8만 원의 품삯을 주어야 하고, 1시간만 일하는 자에게는 1만 원만 주어야 공정한데, 예수님 말씀처럼(마태복음 20장) 하루 8시간 일한 사람이나 1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8만 원을 준다면,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기독교를 세상에서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골수 유대인에서 이방인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행전 13장에서 소아시아 이방인 전도, 사도행전 16-18장에서 헬라 반도의 이방인 전도,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에베소의 이방인 전도를 했습니다.
이제 로마에 가서 전도할 차례인데,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죄수로 재판을 받으면서, 사도행전 24-26장에서는 로마의 총독과 고위 군인들과 고위직 전도, 현재 에베소서를 쓸 당시에는 로마 원로원 자재들 전도와 결국 네로 황제 앞에서 고위직들에게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기록할 당시는 로마 감옥에 막 갇혔을 때이고(62년), 빌립보서를 쓸 때는 로마 감옥에서 풀려나기 직전(63년)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심신이 착잡했으나, 후에는 로마 감옥에서도 황실 자재와 가족들에게 전도할 수 있고, 로마 고관들에게도 전도하고, 전도의 결실을 맺을 수 있어서, 빌립보서를 쓸 때는 ‘갇힌 것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하면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격려했습니다.
빌립보서 1:13.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할 때, 특별히 가이사 황제 가족들이 문안 인사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
바울 사도가 다른 곳에서는 보통 대중 전도를 통해서 교회를 설립했는데, 로마 전도는 특별히 죄수로서 감옥에서 로마 황실 자재들에게 전도하고, 재판을 받으면서 고위직에게 전도해서, 효과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f indeed you have heard of the stewardship of God's grace which was given to me for you;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εἴ γε ἠκούσατε τὴν οἰκονομίαν τῆς χάριτος τοῦ Θεοῦ,
if indeed you have heard of the administration of the God's grace,
직역하면 ‘과연 실로 너희가 하나님의 경륜을 들었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들었을 터이다’(ἠκού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have heard of) 과거에 확실히 들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앞의 가정법 접속사(εἴ, if)가 있어서 우리 성경대로 ‘들었을 터이다’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τῆς δοθείσης μοι εἰς ὑμᾶς,
which having been given to me forward you
‘주신’(δοθείσης)은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given) 과거에 확실히 주어진 것을 가리키고,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경륜을 가리킵니다.
1. ‘은혜의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데 있어서, 아담과 모세에게는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을 말씀하셨고, 예수님 안에서 속죄 언약(the covenant of redemption)과 은혜 언약(the covenant of grace)을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즉 아담과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행위언약이고, 예수님 안에서 죄 용서와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약속하신 것이 속죄 언약과 은혜 언약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조차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조건없이 속죄와 구원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오직 바울을 통해서 계시해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통해서 계시된 것만 알고, 바울을 통해서 계시된 이방인의 구원을 몰랐기 때문에, 바울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2. ‘은혜의 경륜’이란 이방인도 은혜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가리는 동시에, 이방인 구원을 위해 바울에게 계시해주시고, 바울에게 이방인 전도를 맡긴 것을 은혜의 경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에게 이방인 은혜 구원을 말씀한 것과 바울에게 이방인 구원 계시와 이방인 사도직을 맡긴 것이 하나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맡은 자로서 충성한다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4:1-2).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고, 맡은 직분도 은혜인 줄 알고, 겸손히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직분자들은 교인에 대해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하고, 주관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벧전 5:3)
3. 바울 사도가 이방인 구원에 대한 복음을 깨닫고 전하기 이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도 오직 유대인들만 구원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설교할 때, 이방인들에게 성령 부어주심을 보고 놀랐습니다(사도행전 10:45).
그 후에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식사했다고 처벌하려고 했습니다(사도행전 11:2).
그러자 베드로가 고넬료 집 사건을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 주심을 내가 어떻게 막겠느냐고 말하자, 유대인 성도들도 이방에게 생명 얻는 회개 주심을 인정했습니다(사도행전 11:18).
그 후에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서 안디옥에 이방인 교회가 설장되었는데,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주고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로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 신자들과 안디옥 교회 이방인 신자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후 50년에 세계 최초의 총회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다툼과 바울과 베드로의 발표 뒤에 총회장인 장로 야고보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지 말고, 몇 가지 금지사항만 시행하게 하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행 15:19-20)
4. 이방인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바울 사도가 깨닫게 된 것도 하나님의 계시로 된 것이었습니다.
‘계시’란 말은 얼굴을 가린 면사포를 걷어서 보이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바울도 원래는 유대교 골수분자로서 기독교인들을 지독하게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고,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을 핍박하고 잡아 가두고, 다메섹으로 피난 간 기독교인들까지 잡아 오려고 군사를 동원해 갔던 골수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바울이 핍박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유대인이 섬기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고, 이방인 구원의 복음 계시와 이방인의 사도직을 은혜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 구원 계시는 바울 자신이 연구해서 터득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로 알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게 주신’이라는 동사(δοθείσης)는 수동태로서(having been given)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것을 바울은 단순히 받은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5.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변화 받고, 이방인 복음 계시를 받은 후로, 소아시아 지역 이방인들과 마게도냐 지역의 이방인들과 고린도지역 이방인들과 에베소 지방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많은 교회들을 설립했지만,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박해와 많은 고난들을 당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다가 유대인들의 폭동을 만나, 로마 군사에게 체포되고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 가이사랴 총독들의 재판을 받았고, 이제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서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경륜을 하나님이 바울에게 알게 해주셨다는 사실은 에베소 교인들도 다 잘 아는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6. 오늘날 우리들도 이방인으로서 우리들도 할례받고 유대인의 율법과 절기와 제사를 다 지켜야 한다면 얼마나 신앙생활 하기가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바울이 이방인 복음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무서운 박해를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방인의 은혜 구원을 계시해주시고, 우리까지 은혜의 복음을 믿게 된 것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절.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at by revelation there was made known to me the mystery, as I wrote before in brief.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ὅτι κατὰ ἀποκάλυψιν ἐγνωρίσθη μοι τὸ μυστήριον,
that by revelation there was made known to me the mystery
‘알게 하신’(ἐγνωρίσθη)은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re was made known) ‘알게 된 것’을 뜻하고, 의미상으로는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을 뜻합니다.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καθὼς προέγραψα ἐν ὀλίγῳ,
as I wrote before in brief
‘기록함’(προέγραψα)은 부정과거로서(I wrote) 과거에 확실히 기록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먼저 간단히 기록함’이란 에베소서 2장 11-22절에서 기록한 내용을 가리킵니다.
1. ‘계시’란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진리를 하나님께서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알려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바울 사도에게 하나님이 알려주신 ‘이방인 구원 계시’를 가리킵니다.
이 ‘이방인 구원 계시’는 바울 사도에게 알려주신 ‘비밀’이었고, 베드로아 요한이나 야고보 같은 사도들은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서만 알았고, 이방인 구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와 예루살렘 유대인들 간에 이방인 구원 문제로 많이 다투었고, 그 결과 세계 최초 예루살렘 총회가 50년에 개최되었습니다.
거기서 많은 다툼과 변론이 있은 후에 총회장 야고보 장로가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지 말고, 금지사항 네 가지만 지키도록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사도행전 15:8-11, 19-20)
2. 이처럼 바울이 이방인 구원 계시를 받은 것은 다른 사도들에게 전수받거나 가르침 받은 것이 아니고, 순전히 예수님이 계시해주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22:21, 26:17-18)
그 후로 바울은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에 가서 3년 있다가 다시 고향 길리기아 다소에서 11년을 있다가,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에게로 갔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16-18, 2:1)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이방인 구원 계시를 받은 것은 다른 사도들에게 가르침 받은 것이 아니고, 순전히 예수님의 계시로 된 것이었습니다.
2. ‘이미 내가 기록환 것과 같으니’란 말씀은 에베소서 2장 11-22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오직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권속이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에베소서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러므로 계시와 비밀이란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에게 가르쳐주셔서 기록한 성경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고, 이단자들이 성경 이외에 계시로 받았다는 비성경적 신비계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즉 안식교에서 ‘화이트’란 여자가 계시와 비밀을 받았다고 주장하여 안식교 경전을 주장한 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또한 문선명 씨가 비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원리강론을 주장한 것도 거짓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그리고 이슬람 교도들이 코란이란 경전을 주장한 것도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한때 이장림씨가 1992년 예수 재림을 주장한 것도 사단의 속임수였습니다.
신천지 이만희씨가 자신이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교리도 사단의 속임수이고, 안상홍이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하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이처럼 사이비 교주들이 성경 외에 비밀 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모두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4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y referring to this, when you read you can understand my insight into the mystery of Christ,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πρὸς ὃ δύνασθε, ἀναγινώσκοντες, νοῆσαι τὴν σύνεσίν μου, ἐν τῷ μυστηρίῳ τοῦ Χριστοῦ,
by which you are able, reading (it), to understand the insight of me, into the mystery of the Christ,
직역하면 ‘이것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나의 통찰력을 너희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란 뜻입니다.
‘읽으면서’(ἀναγινώσκ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reading) 계속 읽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해할’(νοῆσ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understand)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을 가리키고, ‘너희가—수 있을 것이다’(δύνασθε)는 현재형입니다(you are able).
1. 오늘날은 바울의 사도성을 모두 인정하지만, 바울 당시에는 바울이 사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이 직접 생전에 사도로 세우셨으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개인적으로 사도직을 수여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내가 기록한 성경을 읽으면, 내가 이방인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알 것이다’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그리스도께서 계시해주신 비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 그리스도라는 비밀 등을 가리키는데,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도 유대인처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비밀 계시를 가리킵니다.
‘너희가 읽으면서 --알 수 있으리라’(δύνασθε, ἀναγινώσκοντες, νοῆσαι: you are able, reading (it), to understand)는 것은 이 바울 서신이 두루 읽혀진 것을 가리키고, 이 편지를 읽으면서 복음 비밀 계시를 깨닫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와 비밀은 성경을 읽음으로써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했고, 기도해보면 계시를 받아서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비주의 이단자들은 자기들이 기도해서 특별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마호메트는 성경 이외에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코란경을 특별계시로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안식교의 창설자 화이트란 여자는 세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여 이것을 성경과 동일한 경전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몰몬교 창시자 조셉 스미스는 기도하여 모로나이 천사로부터 계시받았다는 몰몬경을 주장했습니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도 성경을 부인하고 자기가 계시받았다는 원리강론을 경전으로 주장했습니다.
다른 신비주의 이단들도 성경 계시 이외에 기도 중에 계시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성경 이외에 자기 계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계시의 말씀인 성경 이외에 다른 성경 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3. 유대인들도 모세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된 구약 성경 이외에 <마쉬나>와 <게마라> 같은 유대교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구약 성경보다도 서기관들의 이런 율법 규정(전통)들을 더 중요시했고, 이런 서기관들의 율법 규정(전통)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정죄하고 처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그 예로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안 드리고 하나님께 드렸다고만 말하면서 ‘고르반’이라고 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6-13).
4. 교회 밖의 신비주의 이단자들도 문제지만, 어떤 경우에는 교회 안에서 목사의 설교를 비판하면서 신비주의 운동을 하고 교인들을 유혹하는 쓴뿌리도 문제입니다.
즉 소위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해보았다고 하면서, 계시받았는데 이렇게 하라고 하면서 신비주의 운동으로 교회 내에 추종자들을 형성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성경 공부를 하자고 하면서, 이단 계시를 가지고 교인들을 지배하려고 하는 이단자들도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노략질하는 이리들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밀레도 해변서 고별설교를 하면서 흉악한 이리가 들어올 것을 경계했습니다. (사도행전 20: 29-3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 열심히 하시고, 바울 사도와 사도들을 통해서 기록해주신 성경 말씀을 통해서 늘 은혜 생활을 해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하시고, 복된 신앙생활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