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난지도> 섬 산에서 느끼는 가을바다의 기별
1. 일자: 2024. 10. 5 (토)
2. 섬: 소난지도, 대난지도
3. 행로와 시간
[도비도항(11:00) ~ 소난지도(11:15) ~ 난지대교 끝단(11:35) ~ 돌탑/산길 시작(11:45) ~ 난지도해수욕장(12:50~13:15) ~ 망치봉(13:37) ~ 국사봉 갈림(13:53) ~ (해변) ~ 대난지도항(14:45) ~ 난지대교 끝단(15:10) ~ 소난지도 선착장(15:23) / 14.05km]
오랜 만에 섬 산행을 간다. 서해 난지도가 목적지다. 충남 최북단인 당진시 석문면에 위치한 난지도는 난초와 지초가 많이 자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된 섬인데, 규모가 서울 여의도 만 하다. 두 섬이 인접해 있는데, 대난지도는 행안부가 선정한 '한국 명품 10대 섬' 중 하나이다. 섬 둘레길(9.8km)을 걷다 보면 동해 해변을 닮은 고운 모래사장, 100m 높이의 야산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들, 응개 바닷가 앞 아름다운 솔숲길, 열린교육 모델이 된 삼봉초등학교 난지분교 등을 마주한다고 한다.
섬과 섬길의 대강을 머리에 넣고 토요일 아침을 기다린다.
< 도비도항 ~ 소난지도 >
10시에 도비도항에 도착해 발권을 하고 한 시간 가량 선착장 주변을 서성이다, 11시에 소난지도항 배에 오른다. 배 타는 시간은 고작 10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바다를 느끼기에 부족하진 않았다. 갈매기가 날고 도비항은 점점 멀어지고, 바다 위에는 점점이 떠 있는 작은 배, 다가오는 소난지도의 모습, 이 다이나믹이 내가 섬을 좋아하는 이유다.
섬에 닿자 트렝글을 켜고 길을 나선다. 도로 대신 마을을 지나 난지대교를 건넜다. 멀리 대산항과 인근산업단지가 아득했다. 바다, 그것도 섬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시원하다. 막힘이 없다.
< 대난지도 일주 >
대난지도를 크게 돈다. 도로를 한참 걷다 들어선 산 입구의 커다란 돌비석이 눈길을 끈다. 그 놓임새가 생뚱맞다. 탑만 보면 작은 사찰이라도 있을 분위기였다. 주는은 잡목만 가득하다.
숲길이 계속된다. 100미터 높이지만 진득한 오르막은 제법 산행 느낌을 준다. 곧 바닷길로 이어지겠지 했는데 작은 오르내림은 계속된다. 산길을 한 시간 넘게 걸어 비로소 해변으로 내려선다. 난지도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진다. 해변으로 내려간다. 모래를 밟는다. 발 밑 감촉이 부드럽다. 잠시 흔들그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 저 멀리 사람들이 점점이 보인다. 내가 섬 산행과 트레킹에 빠져드는 이유는 바로 이 여백과 여유로운 풍경 때문이다.
대난지도의 정상, 망치봉으로 오르는 등로를 찾아 잠시 헤매다 이내 제 길에 들어선다. 다시 오르막, 중간에 팔각정은 눈길만 주고 0.2km 남았다는 이정표에 힘을 얻어 망치봉 정상에 도착한다. 높이 119m, 그 높이에 잠시 허탈해진다. 고작 그걸 오르는데도 숨을 헐떡였다니. ㅋㅋ길은 국사봉 방향으로 나 있다. 또 봉우리가 있나? 걱정의 눈빛을 보내며 걸음을 이어간다. 받아 온 트랙의 누적고도가 꽤 높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 사람이 없다. 덕분에 홀로 호젓한 걷기를 즐긴다. 간간이 들리는 숲의 바람소리와 바다의 파도소리뿐, 적막에 익숙해 간다. 참 좋다. 산에선 외로움 따위는 없다. 그저 혼자인 내가 주인공인 무대가 조금 길게 이어질 뿐이다.
13:53, 갈림이 나타난다. 다행이다. 국사봉을 오르지 않고 해변으로 떨어지는 길인가 보다. 10여 분 내려서자 거짓말처럼 억새숲이 보이고 그 너머로 바다의 기별이 느껴진다. 검은 갯벌이 넓게 펼쳐진다. 해변을 유유히 걷는다. 바라보는 풍경이 언젠가 걸었던 강화도 해변과 닮았다. 해변을 뒤덮은 검은 돌들 때문인가 보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길을 따라 쭉 가니 대난지도항이 멀리 보인다. 붉은 등대와 작은 산 밑 바다에 선 기묘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그 옆으로 바닷물에 푹 들어가 낚시를 하는 이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그 여유가 부러웠다.
소난지도로 연결되는 길을 찾아 이리 저리 돌다 용케도 아침에 걸었던 등로와 만난다. 또 다행이다. 다시 난지대교를 건너 소난지도로 들어선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예정보다 30분 일찍 도비도항으로 떠나는 배가 있다하여 부리나케 승선한다. 해그름이 느껴지는 배 위 난간에 선다. 배가 만드는 포말 뒤로 소난지도가 점점 멀어진다.
꽤 괜찮은 섬 삼행이었다. 난지도의 두 섬이 다른 섬과 차별점이 있다면 찾기 쉽고(거리), 걷기에 부담 없고(크기), 무엇보다 산과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음 만 먹으면 언제든 또 찾을 수 있는 친근한 섬이다.
< 에필로그 >
이름이 주는 이미지는 강렬하다. '난지도' 를 처음 접했을 때 상암동 하늘공원과 더불어 '쓰레기 산' 이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바다 건너 찾아 내 발로 걸어본 당진 난지도는 꽤 근사한 섬이었고, 그 풍경이 보물이었다. 잠시나마 감히 쓰레기 더미를 떠올렸던 게 미안했다. 섬의 크기도 풍경도 더하거나 뺄 것 없이 적당했고, 너른 해변은 명품 섬이란 명성을 얻기에 충분했다.
오늘 섬 산행과 트레캉이 더 좋았던 점은 들녘울 노랗게 물들이는 황금 벼가 있는 풍경을 원 없이 보았다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험한 여름을 지나고 태풍도 빗겨가고 바야흐로 결실의 계절을 맞고 있다. 길에서 맞이한 가을은 더 풍요로웠다.
섬 산행이 주는 매력의 또 하나는 배로 바다를 건너며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 조망과 너무 넓어 드는 아득함, 그리움, 설레임 등 감정들의 공존이다. 1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바다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처음으로 죽전간이정류소 부근 주차장에 차를 세워 산행 후 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과 공휴일엔 무료라 한다. 이 역시 아는 만큼 유용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