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연못
외할아버지의 회갑 사진을 보았다. 육십 년 세월의 때가 묻어 사진은 누렇게 변색 되었다. 주변을 하얗게 수놓은 개망초꽃을 배경으로 육모정 돌계단에서 도포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하얗게 웃고 계신다. 두 분을 에워싸고 여섯 명의 딸과 네 명의 사위, 그리고 열네 명의 손주들이 한껏 엄숙한 표정으로 차렷 자세를 하고 계단 아래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할아버지 앞에는 앞머리를 삐뚤빼뚤하게 자른 촌스러운 내가 무에 그리 못마땅한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서 있다.
집 뒤로 낮은 산이 삼태기처럼 포근하게 감싸고, 앞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는 어릴 적 내 고향.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옆으로 우뚝 선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지나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아이들 걸음으로 십 분 거리에 꽤 큰 연못이 있었다. 중심에 있는 샘에서 맑은 물이 쉬지 않고 뿜어져 나와 가뭄이 들어도 물이 철철 넘치는 연못이었다.
모내기를 위해 막아놓았던 연못의 수문을 열어주면 아래 논으로 물이 흘러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너른 논도 연못 아래 있었다. 모내기 철이 오면 사람들은 연못의 물을 받기 전에 소의 등에 쟁기를 얹어 논바닥이 반지르르하게 써레질했다. 연못의 수문을 개방하기 전날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육모정에 모여 제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돌계단에 촛불을 밝히고 사람들이 가져온 떡과 북어포로 제사상을 차렸다. 상에 술잔을 올리며 ‘올 농사도 잘 부탁합니다.’ 하고 할아버지가 먼저 절을 했다. 나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서툰 몸짓으로 절을 올렸다.
할아버지는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주인을 잃은 육모정과 연못 이야기를 해주셨다. 정자가 반듯하게 서 있던 옛날에는 일대의 논과 밭들이 모두 돌아가신 육모정 주인의 소유였다고 한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서너 마지기씩 소작을 주고 연못을 파서 물까지 무료로 대주었다. 다른 지주들이 받는 소작료의 반을 받고도 그해 우환이나 혼사가 있는 집은 그마저 면해 주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자기가 농사짓던 논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연못과 가까운 할아버지의 논도 그때 장만한 것이다.
지주는 할아버지에게 연못 관리를 맡겼다.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성품을 알아본 것이다. 연못에 물을 가두었다가 모내기 전에 수문을 열어 논마다 고르게 물을 채우는 중요한 일이었다. 수문을 여는 날부터 논의 주인들은 공평하게 물이 배분되는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처음 물이 들어가는 당신의 논에 물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 그 방법으로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할 때도 마을 사람들이 다투지 않았고, 그것이 연못 주인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고 할아버지는 굳게 믿었다.
“우리 똘망이도 연못 주인처럼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살기가 어려울수록 주변을 둘러봐야 하는 거야. 내가 가진 걸 나누면 내 몫은 줄어든 것보다 더 불어나는 법이란다. 마르지 않는 연못의 물처럼 말이다.”
할아버지 집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방에 불을 때는 아궁이가 보이고, 그 뒤로 나무를 쌓아두는 작은 헛간 입구에 큰 항아리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을에 탈곡이 끝나고 방앗간에서 쌀가마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그 항아리에 쌀을 가득 담았다. 대문 앞에 찾아오는 상이용사, 탁발 스님은 물론 거지와 문둥병자에게까지 쌀을 고루 나눠 주었다. 흉년이 들어 식구들은 보리밥을 먹어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의 연못은 마르지 않았다.
똘망이의 첫 직장은 인구가 오천 명도 안 되는 작은 면사무소 민원실이었다. 면 단위의 대부분 마을이 집성촌을 이루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이사도 드물어서 어느 동네 몇 번지에 사는 세대주의 이름이 누구인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였다.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손주를 낳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출생신고를 하러 왔다. 그때는 본적지에서만 출생신고가 가능했다. 대부분 손자는 한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가지고 할아버지가 오셨고, 손녀는 할머니가 한글 이름만 불러주며 출생신고를 부탁했다.
나는 성명학 책자와 한자 사전을 펼쳐놓고 할머니들이 가져온 한글 이름에 맞추어 한자를 찾았다. 되도록 뜻도 훌륭하고 쉬운 한자를 골랐다. 돌림자만 알려주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작은 면사무소라고는 해도 호적부터 주민등록까지 처리하느라 부족했던 내 시간을 안 해도 되는 일에 빼앗기는 것이 성가셨다.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베풀면서 살라는 할아버지 말씀을 기억했다. 일부러 찾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마음을 더 내면 되는 일이었다.
딸이라고 해서 이름을 허술하게 지을 수는 없었다. 나는 큰일을 해낸 위인들과 소설 속 멋진 주인공들의 이름으로 목록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을 호적부에 올리고, 그 뜻과 의미를 적어 할머니들에게 주면서 당신의 손녀가 꼭 그렇게 클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지금 사십 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을 ‘서희’와 ‘희수’와 ‘윤경’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나누어준 연못의 물이 그녀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돌보는 마중물이 되었기를, 그래서 가슴 속에 마르지 않는 연못 하나를 지니고 주변을 적시며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덧 할아버지 등에 업혀있던 ‘똘망이’는 먼 여행을 떠나시던 당신의 나이가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처럼 베풀면서 살았을까? 찬찬히 내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았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나누며 살려고 노력했으나 부끄럽게도 내 연못의 물은 너무 얕아서 주변을 충분히 적셔주지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내 마음의 샘을 더욱 깊게 파서 가뭄이 들어도 연못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살피며 살아야겠다.
수필가 김남숙
Profile
2024년 한국산문신인상으로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동서문학회 회원
제5회 KT&G 복지재단 문학상 대상, 제17회 김장생 사계문학상 대상, 제16회 동서문학상 수필 가작, 제10회 문향 전국여성 문학상 대상, 제15회 복숭아 문학상 대상
이메일 주소: nasukim5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