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 김지하(1941-2022)
하아따
꼴에
밭두둑에 반 묻혀
반만 나온 비닐 조각 씨허연
저 징그런 놈이
꼴에
바람결에 나붓나붓대며
아침 새 햇살을
먹어라 튕겨라 먹어라 튕겨라
하아따
꼴에
그 꼴에
하양 할랑할랑하는 한 떨기 분홍꽃이여
날맞이 소복 무당 초가망석굿이여 웜메
파묻어도 안 없어지고
불살라도 공중에 그대로 남고
물에 뜨면 오대양 큰 바다
수백 수천 년 갈고 돌아다니고
썩도 않고 삭도 않고 끄떡도 않고
아 그런 징그런 놈이
꼴에
하아따
꼭 산 놈 같다야
밭에서 돋은 산 놈
어째 오늘은 꼭
무슨 영물 같다야
가사 원삼에 꽃고깔 쓴 영물!
살아 있는 것을 함부로 죽여 버리는 것은 시인이 할 일이 아니다. 하찮은 것도 살려내거나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시인이 할 일이다. 김지하 시인은 북쪽 끝 삼척 두타산과 남쪽 끝 해남 백방포 사이의 원한을 진혼곡으로 부른다. 어느 날부턴가 “속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 소리”를 아내가 받아 적어 한 권의 시집을 이룬 것이 『검은 산 하얀 방』이다.
이 구술 시집은 “쇠사슬 같이 끌고 다닌” 원한의 소리 그대로 부르기 위해 종결어미 ‘-다’형의 시행들인 “냉동 구조”를 탈피하여 쓴다고 했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시작詩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한 면이기도 해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시인은 밭두둑에서 본 “비닐”, 그 하찮은 것이지만 검고, 하얀 두 이미지를 포착해 내어 시집의 마지막 시로 앉혀놓았다. 두타산에서의 ‘검은’과 백방포의 ‘하얀’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두타산 무릉계는 임진왜란 당시 수천수만의 화살이 떠 흘러 내를 이룬 ‘화살내’와 사람의 피가 못에 고인 ‘피쏘’(소[沼])가 있는 곳이며 지난 전쟁으로 처참하게 사람들이 죽은 곳. 그곳에서 금강경을 읽어 한을 풀어보고 싶었지만 혼비백산하여 튀어나온 곳이다. 백방포는 고려 때부터 귀양, 사신, 도피, 장사 등 아득한 뱃길을 떠나던 포구로 백 개의 방을 짓고 그의 아낙들이 무사귀환을 염원하던 곳이다. 시인은 이 백방百房을 “한 맺힌 흰 방”, 백방白房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시 「비닐」은 관념적인 언어가 아닌 사물의 실체를 바탕으로 쓴 생태시生態詩로 읽는 것이 맞다. 문명의 산물인 비닐은 “썩도 않고 삭도 않고 끄떡도 않”는 “징그런” 해롭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시인도 타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둡고 비통한 흔들림과 눈부신 흰빛의 섬세한 떨림”이 검은 산이고, 하얀 방이라고 한 시인의 말을 통해서 보면 검고, 흰 비닐의 양가 이미지를 통한 ‘역설’이 들어 있다.
“반 묻혀/반만 나온 비닐조각 씨허연” 놈의 행색은 “새 햇살”을 “먹어라 튕겨라 먹어라 튕겨라” 팔랑거리고 있으며, 햇살을 머금은 “한 떨기 분홍꽃”이기도 하고, “날맞이”하는 무당, “가사 원삼에 꽃꼬깔 쓴” 굿마당을 깔아내고 있다. 진도씻김굿의 초가망석으로 말이다. 초가망석은 죽은 조상을 청해 축원하는 굿이다. 이처럼 시인은 비닐을 낮잡아 “꼴”이라는 말로 썼지만 그 하찮은 것도 이 땅의 죽음을 그냥 버리지 않고 위무慰撫하고 있음을 역설로 되돌려 놓고 있다.